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88965455790 / 316쪽 152 x 225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정약용, 정영훈
-
이선민
-
주경철
-
김도형(별별역사)
- 12,600
- 31,500
- 45,000
- 16,920
출판사 리뷰
▶ 독립운동에는 무장투쟁만 있지 않았다.
외교로 항일투쟁하며 조선독립을 알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외교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일생을 조선 독립운동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정부수립시기까지 세계사와 현대사의 굴곡이 서영해의 삶에 투영되어 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척 관계자를 만나 서영해의 삶을 짚어간다.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독자들에게 글로 서영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서영해의 숭고한 정신과 함께 더 많은 독립운동가가 발굴되고 세상에 알려져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의 정신이 후대에 오랫동안 전해지길 바란다.
▶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유럽 외교관이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언론인이자 소설가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의 나이로 3·1 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수배 대상자가 된다.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하다 임시정부의 권유로 1920년 12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임시정부에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부친이 부쳐준 생활비로 근근이 공부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이마저도 끊겨 재정적 지원 없이 어렵게 유학생활을 마친다. 이후 임시정부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한다. 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리면서, 일본에 의해 왜곡된 한국 이미지를 바로잡고 참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불어로 쓴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민담집 『거울, 불행의 원인』 등도 집필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유럽에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은 프랑스 언론의 높은 관심으로 1년 만에 5쇄를 인쇄할 만큼 주목을 받았다.
▶ 서영해의 글로 독립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그려본다
서영해는 오랜 기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국내 활동기록이 적다. 또한 해방 후 정치적으로 승자였던 이승만을 따르지 않고 김구를 추종하였다. 서영해는 타국에서 외롭게 조선독립을 위해 투쟁했지만 해방 이후 조국으로부터 환대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김구를 추종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설자리를 잃었다. 아쉽게도 서영해는 말년의 행적이 불확실하다. 저자는 책을 내기 직전까지도 서영해의 마지막을 수소문했지만 정확하게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서영해가 남긴 글들이 남아 있다. 서영해의 글로 강렬했던 독립에 대한 열망을 그려본다.
P.8 서영해의 활동범위는 파리에 한정되지 않고 벨기에, 제네바, 스페인 등 유럽전역과 때로는 중동의 이집트,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까지 광범위하였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서 ‘파리의 독립운동가’라기보다는 ‘유럽의 독립운동가’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P.52 서영해가 다른 일반 유학생과 구별되는 점은 그가 단순히 유학만한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주불대표로서 활동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에 있는 유학생들과 임시정부 간의 공식적인 연결통로였다. 주불유학생들은 서영해를 통해 임정의 소식을 듣고, 그는 유학생들의 유학현황을 임정에 보고하고 그들을 결집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P.177 그는 오직 한평생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염원했던 순수한 민족주의자였으며, 공산주의에 반대한 민주주의자, 약탈적 자본주의를 싫어했던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회주의자였다.
P.181 이제 모든 걱정, 근심 내려놓고 그의 두꺼운 안경 너머로, 그리고 역사의 망각 뒤에서 평화로이 잠들기를 기원한다. 자랑스러운 후손들이 그의 뜻을 기리고, 그의 위업을 언젠가 완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글
추천사: 나의 할아버지를 찾아서_수지 왕
01 출생과 성장, 상해로 망명 가다
부산 한약방집 아들
아버지 ‘서석주’, 부산에서 유명했던 한의사
작은 거인의 3?1 독립운동 참여
상해로 망명, ‘임정의 막내’가 되다
02 혁명가의 도시 파리에서의 고단한 유학생활
프랑스 유학, 고난의 여정
상해 출발, 파리 도착 스케치
혁명과 망명가의 도시, 파리
03 임시정부 주불특파위원 외교로 항일투쟁하다
대학진학과 독립운동의 시작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 전개
고려통신사 설립
한국인이 쓴 최초의 불어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
한국 민담집 『거울, 불행의 원인』
본격적인 대유럽 독립운동의 전개
04 유럽의 격동기에도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이승만과 서영해, 가깝고도 먼 사이
오스트리아 여인과의 결혼과 이별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 참여
05 해방 후 통일된 정부수립을 외치다
해방 이후 좌우이념 대립과 서영해
귀국 후 서울에서의 생활
한국 여인 황순조와의 결혼, 짧은 만남 긴 이별
국내정치에 대한 환멸과 프랑스로의 재출국
상해 인성학교와 서영해
06 서영해가 남긴 사랑, 사람, 사상
황순조의 사부곡
서영해의 오스트리아 손녀, 수지의 한국 뿌리 찾기
국립중앙도서관의 ‘영해문고’
서영해의 이념과 사상
나오는 글
부록1 「해외에서 지낸 십오성상(十五星霜)을 돌아다보며」-자필 유고
부록2 서영해 프랑스 언론 기고문과 관련 자료
부록3 서영해 연보(年譜)
도판출처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