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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아시아

배경한 저 | 한울아카데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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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62351 / 264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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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 저자 : 배경한
지은이 : 배경한
신라대학교 사학과 교수.
중국현대사 전공.
주요 저서: 『장개석 연구』』(1995), 『從韓國看的中華民國史』(2004), 『쑨원과 한국』(2007), 『왕징웨이 연구』(2012) 등  

책 속에서

『조선책략』은 기본적으로 청국에게 최대의 적으로 간주되고 있던 러시아의 침략을 막기 위해 조선을 이용하려는 목적 아래 조선으로 하여금 일본, 미국과 연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아시아 지역 연대의 모양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청국과 일본의 연대라고 하는 것도 러시아의 남침에 대한 공동 대응의 필요성에 근거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완전한 동상이몽이었고 더구나 미국이라는 서양 열강을 연대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서구 열강에 대한 아시아인들의 공동 대응이라는 흥아회류(類)의 아시아주의와도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오히려 러시아와 일본의 침략 아래 중국의 종주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조선에 열강 간의 세력 균형을 이루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청국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유지 내지 강화해가려는 것을 기본 의도로 한다는 점에서 “이이제이”를 기본으로 하는 중국의 전통적 화이관(華夷觀), 즉 중화질서의 국제관이 더 크게 드러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_49쪽

신해혁명 전후 시기 쑨원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비록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공존하는 복잡한 면모를 보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이해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문제인 한국문제에 대한 쑨원의 소극적 내지 자기 규제적 태도를 고려할 경우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일본에 대한 쑨원의 인식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또 마찬가지 입장에서 쑨원이 강조하고 있던 중일연대나 중일공동영도를 전제로 하는 아시아주의 주장도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중국 침략을 본격화하고 있던 제국주의 열강 일본에 대한 쑨원의 인식이 얼마나 환상에 가까운 것이었던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_89~90쪽

아편전쟁 이후 점증하는 열강의 침략으로 중국은 제국에서 약소국으로 몰락하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주변 지역이나 국가들을 조공국(朝貢國)이라는 명목 아래 일종의 완충지대로 확보하는 전통적 국제체제, 즉 중화제국질서도 와해되어버렸다. 이를테면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아시아 국제질서 또한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0년대 국민혁명(國民革命)의 성공으로 난징국민정부(南京國民政府)라는 중앙집권적 통일정부를 만들게 된 것은 중국이 국민국가의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강대국 중국’의 회복을 향한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커다란 전기(轉機)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러나 1931년 만주사변(滿洲事變) 이후 본격화된 제국주의 일본의 중국 침략과 1937년 칠칠사변(七七事變) 이후 전면전으로 확대된 8년간의 중일전쟁은 ‘강대국 중국’의 회복 시도를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도록 만들었으니, … 이러한 상황 아래 1941년 12월에 발발한 태평양전쟁과 그에 이은 미국의 참전은, 오랜 항전으로 거의 고사 직전에 놓여 있던 중국과 중국인들에게 승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 1940년대 종전(終戰)을 전후한 시기 장제스를 중심으로 하는 국민정부의 새로운 아시아 질서 구상을 살펴보는 것은 전후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중국의 의도와 함께 이러한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중국의 위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시각을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_127~129쪽

한국광복군 창설을 둘러싼 한국임시정부와 국민정부 사이에 벌어진 논의는 1940년 한국임시정부의 충칭 정착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는데, 그것은 임시정부의 독자적 운영권 확보 노력과 이에 대한 중국의 견제 및 통제 정책을 잘 보여준다. 중국은「한국광복군행동구개준승」을 제정해 광복군을 군사위원회에 예속시키고 실제적인 군 운영도 군사위원회에서 파견한 중국 장교들이 장악하도록 했다. 중국의 이러한 정책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군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으로 일면 타당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러한 조치는 항일을 위한 연대라는 중한호조(中韓互助) 측면이나 한국망명정부에 대한 인도적 지원 측면보다는 주변 약소민족에 대한 통제와 예속 측면을 더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_146쪽

동아시아의 발칸이라고 불리던 한반도의 경우 일본 패망으로 해방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미국과 소련이라는 새로운 열강들의 분할 점령에 놓이게 되었으니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 시도는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꿈에 불과했던 것이다.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으로 말미암아 중국이 사대강국(四大强國)에 포함되기는 했으나, 장제스의 걱정대로 ‘강대국 중국’은 아직 그 명실이 상부하지 못했던 것이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제스와 국민정부가 도모하고 있던 한국정책은 일본의 아시아 침략 이전 상태의 아시아 국제절서의 회복과 그것을 통한 중국의 주도권 회복을 잘 보여주고 있고 거기에서 드러나는 장제스와 국민정부의 전후 아시아 구상은 전통적 중화제국체제의 회복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_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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