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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26886151 / 363쪽 / 508g /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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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460년 전 맨손 격투 기술, 그들은 이렇게 움직였다.”
동아시아 맨손 격투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 오늘의 언어로 되살아난다.
《권법 바이블: 《기효신서》를 통해본 고전 권법》은 무예학자이자 무예인인 최복규 박사가 풀어낸 460년 전 무예서의 우리말 번역이다. 저자는 무예를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기술로 한정하지 않는다. 그에게 무예는 한마디로 내적 깨달음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위 예술이다. 물리학도였던 그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무예를 평생의 화두로 삼겠다는 결정을 한다.
그는 말한다.
“무예는 나에게 상상의 나래를 펴주는 동화이기도 하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한 과학이기도 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치열한 수행의 방편이기도 하다. 나에게 무예는 실천과 이론이 중층적으로 결합된 유기적인 세계다. 나는 그 세계를 여행하며 무한한 행복과 만족을 느껴왔다. 실천가의 맹목적인 수련 혹은 이론가의 탁상공론 일변도로 흐르기 쉬운 연구, 그 사이에서 나는 탱탱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실천과 이론이 결합된 지행합일을 꿈꿔왔다. 이제 무예를 실천의 대상으로서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러한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이 책은 바로 무예 실천과 이론을 추구해왔던 그의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20대부터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던 화두였던 《무예도보통지》, 거기서 시작된 관심은 명‧청대의 고전 무예서로 거슬러 올라가 드디어 그 정점에서 《기효신서》를 맞닥뜨렸다. 《기효신서》는 명나라의 유명한 장수이며, 실제 무예를 몸소 익힌 무예인이기도 한 척계광(1528~1588)이 편찬한 병서이자 동시에 동아시아 고전 무예서의 효시였다. 《기효신서》 권14 <권경첩요편>은 권법을 그림과 가결을 사용한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권경첩요편>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동서양에서 여러 차례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460여년의 시간차, 한문이라는 언어 장벽, 판본학, 교감학, 음운학, 시학, 군사학, 무예학 등 제반 분과 학문의 지식을 요구하는 복잡성으로 인해 현대어 번역은 늘 한계가 있었다.
그는 본서의 편찬을 위해 현재까지 나온 동서양의 거의 모든 번역을 검토했으며, 원래의 의미에 다가가고자 최대한 노력했다. 번역에 사용한 저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의 하나인 융경(1567~1572)본 《기효신서》로 본서를 통해 국내에 최초로 소개된다. 아울러 《삼재도회》 본, 조선본, 학진탐원본 《기효신서》를 대조본으로 사용하고 다수의 참조본을 활용해 정확한 번역을 하고자 했다.
본서는 독자들을 400년 전의 권법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사실 무예서 편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 무예사는 ≪기효신서≫에서 시작해 ≪무예도보통지≫에서 완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예도보통지≫가 종착역이라면 ≪기효신서≫는 출발역인 셈이다. 오늘의 한국 무예가 직간접적으로 ≪무예도보통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한국 무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예도보통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다시 ≪무예도보통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효신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기효신서≫를 타파하지 않고는 한국 무예사 더 나아가 동아시아 무예사에 대한 그 어떤 통찰도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_ 저자의 글 중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1980년대 후반 90년대 초만 해도 한국 무예계의 화두는 ‘전통’이었다. 일제 식민지배기에 유입된 검도와 유도, 해방을 전후한 시기 전해진 당수도[공수도]의 무예 담론에 맞서 등장한 전통무예 담론은 기존 무예 담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함으로써 무예에 대한 자의식을 환기하는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고유와 외래라는 단선적 흑백논리에 머물 뿐 문화 행위의 하나로 무예에 내재되어 있는 중층적인 발전 과정의 복선을 읽어내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_ 저자의 글 중
이런 상황에서 《무예도보통지》 역시 냉철한 분석과 평가를 받아보기도 전에 《기효신서》의 복사판이나 중국 무술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편견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중국 무술이어서 혹은 일본 무술이어서 나쁠 이유는 없다. 모든 무예는 인간의 몸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게 마련이다. ‧‧‧‧‧‧ 아울러 무예가 민족주의와 결합하게 되고 대중들의 의식 속으로 교묘하게 파고 들기 시작하면서 무예는 자민족 중심주의의 상징이 되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나에게는 《무예도보통지》가 전통무예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그것이 중국 무술의 보고여도 상관이 없다. 《기효신서》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주의, 일국주의(一國主義), 순혈주의 혹은 전통주의를 벗어나 인간이 왜, 어떻게 무예를 했는지, 역사 속에서 무예는 인간의 삶과 어떤 관련을 맺으며 발전해왔는지, 그리고 무예를 하는 그 인간의 의식 구조는 어떠했는지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무예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무예는 나의 존재론적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참고자료일 뿐이다.
_저자의 글 중
근대적인 교육 제도의 관점에서 구전심수(口傳心授)는 때때로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이루어지는 교육 방식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하지만 구전심수의 방법론은 교사와 학생의 직접적인 대면 접촉이 강조되고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오늘날로 치면 오히려 수준별 학습과 질적 교육이 결합된 교육 모델의 면모를 지니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구전심수는 표준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다. 구전심수의 관건은 교사의 자질에 있었다. ‧‧‧‧‧‧ 아무리 뛰어난 교사가 있더라도 그의 지식이 온전히 전해지지 못한다면 전대의 지식과 경험은 사장될 수밖에 없다. 특히 군사 조련은 그 특성상 통일성과 일관성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표준적인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체계화된 훈련과 교습을 위해서 구전 지식은 표준화되고 궁극적으로 문서화될 필요가 있었다.
_ 21~22쪽
무예 지식은 몸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 축적되어 형성된 것이다. 두 팔과 두 다리에 의지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간의 움직임은 제한된 범위 안에 놓여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한계 내에서 인간은 무한한 변주를 만들어냈다. 무예는 바로 유한한 인간의 몸을 무한으로 확장하려는 과정에서 생긴 깨달음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깨달음은 깨달음을 얻은 개인 존재의 소멸과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일회적이다. 무예서는 그 깨달음에 영속성을 부여했다.
_ 25쪽
통계에 따르면 《기효신서》는 1561년 처음 편찬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균적으로 매 5년마다 새로이 판각되어 간행되었는데, 동아시아에서 《손자》 병법을 제외하고 병서로서 《기효신서》만큼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책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중국에서만 유명세를 탄 것은 아니었다. 한국과 일본에까지 알려지고 해당 지역에서 다시 판각되어 재 간행되기를 거듭한 시공을 초월한 오늘날로 치면 한마디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였다.
_ 2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