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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6121220 / 296쪽 140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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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낮은 곳’, ‘금기’, ‘국가 경계 밖‘의 존재들로 풀어가는 한국사 “다른 학술서적과 달리 광장의 한복판에서 출발”(4쪽)한 이 책은 그동안 한국사 서술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국사의 한복판으로 끌고 온다. 열 세 개의 주제는 모두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의 역사를 다루지만 모두 권력과 역사의 관계성을 고민한 결과라는 공통점이 있다. 책의 구성도 연대기적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역사담론의 방향에 맞춰 구성되었다. 먼저 1부는 ‘낮은 곳’에 위치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려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름 짓기, 1925년 예천사건과 백정, 현대사의 중산층 가족 도전기, 월남 파병 군인, 공장노동자 등 권력을 쥐지 못했던 사람들의 주변 환경과 삶의 궤적을 들춰낸다. 2부는 한국사에서 직접적으로 배제되고 ‘금기시’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권력은 온전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여장남자, 수감자 가족, 무속인, 근친혼 등을 혹은 지우고 혹은 외면했다. 역사가 배제한 사람들을 새롭게 복원할 수 있는지, 우리는 또 누군가를 지워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3부는 ‘국경’의 안팎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역사를 다룬다. 한국전쟁기 포로의 삶, 연변 조선인들의 조국관, 세종의 북방정책과 이주민, 낙랑군과 대방군 거주민의 이야기로 근대적 국경.국적 중심의 역사서술이 갖는 한계를 되짚는다. 한마디로 이 책은 눈앞에 보이는 국가권력에서 우리 일상에 스며든 근대 권력, 젠더 권력에 이르는 모든 권력에 대한 역사학적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삶, 우리 역사를 비춰보는 ‘보통사람’들의 세상살이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를 ‘순진한 사람들의 역사’로 생각했다면 이 책을 읽고 충격에 빠질 수 있다. ‘교과서’에선 결코 만날 수 없는 1925년 ‘예천사건’은 “선한 약자와 악한 강자의 대결이 아닌 약자들 사이의 대립, ‘갑’이라 할 수 없었던 ‘을’ 간에 벌어진 전쟁”(49쪽)이었다. 현대사 속 여장남자들은 “사회가 이들에게 부과한 낙인과 억압과는 별개로, 이들이 사적으로 영위했던 섹슈얼리티의 실천”(150쪽)을 가졌다. 또한 무속을 미신?여성과 연관시킨 것은 조선총독부뿐만 아니라 “조선의 남성지식인들도 마찬가지”(183쪽)였다. 이처럼 권력은 일상에서 공기처럼 작동했고, 가해자/피해자는 한 공간에서 뒤섞여 살아갔다. 이 밖에도 여러 글에서 각계각층 사람들의 다양한 세상살이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덮을 즈음, 독자는 필진들의 호기로운 질문들, “당신을 있게 한 그 할아버지와 김 씨는 얼마나 다른가? 다르다면 어디가 어떻게 다를까?”(77쪽), “‘위생 처리’로 구축된 역사는 실증적 사실에 근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교훈도 도출할 수 없을 것”(224쪽), “현대인들은 과연 세종‘대왕’에게서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인가?”(257쪽)에 스스로 답해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10년 뒤, ‘한국사’를 더 궁금하게 만드는 책 열 세편의 글은 모두 강한 개성을 갖고 있다. 소재뿐 아니라 문장을 이끌어가는 힘과 분석방법, 역사학적 관점도 모두 다르다. 이는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는 젊은 필진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역사인식을 비판하면서도 학계의 연구방법론에 빚지고, 또 새로운 역사서술의 대상과 방법론을 찾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매우 실험적이고 현재진행형의 역사 서술을 보여준다. 또한 학계 연구 성과와 대중의 역사인식이 어떻게 조우할 수 있는지 가늠자 역할을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소비하는 한국사와 앞으로 10년 뒤 한국사의 모습을 비교하고 상상하며 책을 읽을 수 있다. 어떠한 독자들에게 어울릴까 한국사 학습과 토론을 위한 실마리로 맞춤이다. 또한 각 대학과 지역의 모임,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에서도 한국사 공부를 시작하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하다. 많은 글들이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와 역사인식을 의식하며 최대한 쉽게 서술되었으며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서 소홀히 다뤄진 내용과 신선한 문제의식을 포함한 덕분이다. 토론에 알맞은 구성도 이에 힘을 보탠다. 책의 기획자들은 서문 말미에 “뜨거웠던 광장의 연장선상에서 함께 민주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독자 여러분과 《한뼘 한국사》를 나눕니다. 이 책이 더 많은 사람의 손에서, 더 많은 교육현장에서 쓰임새 있길 기대합니다”(11쪽)라고 적었다. 이 책에 담긴, 역사에서 주변화 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오늘 우리와 주변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정식 성명은 윗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출 때 사용했다. 또한 공적인 자리나 문서에 주로 사용했다. 예컨대 호패戶牌, 호구단자戶口單子, 과거시험 답안지[시권試券], 족보 등과 같은 곳에 쓰였다. 타인이 정식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면 그 자는 죄인에 해당될 뿐이었다(22쪽).
일제 식민권력은 형평사 같은 사회단체가 ‘지정된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원했다. 권력의 통제에 따라 사회체제가 ‘지정된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 것은 ‘치안유지’를 위해 중요했다. 예천사건이 발생한 이후 식민권력이 형평운동의 ‘온순함’과 ‘순수함’을 강조했던 것은 식민권력의 속내를 잘 보여준다(40쪽).
암담한 현실과 마주했을 때 사람들의 분노는 자신들보다 강한 사람에게 향하기보다, 자신보다 약하게 보이는 집단에게 향할 가능성이 높다. 그 대상이 오랫동안 멸시해 왔던 존재라면 더욱 그렇다(46쪽).
1960년대의 무허가주택을 상상하면 흔히 청계천 일대의 판자촌을 떠올린다. 그러나 당시 서울시에 즐비했던 무허가 주택가는 판자촌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 당시 서울시 주택보급률은 50퍼센트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주택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말미암아 다수의 공원용지에는 주택가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도 이러한 형편을 모른 척할 수 없었고, 무허가주택은 암암리에 정상적인 주택처럼 거래되었다(61쪽).
사병들이 베트남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평균적인 경제적 보상은 당시 도시 근로자 가구의 월 평균소득 13,000원을 약간 밑돌았다. …… 이들이 목숨을 걸고 벌어온 달러는 어느 정도 경제적 보탬이 되었을지언정, ‘내 집 마련’과 같이 인생을 안정시키거나 도약시킬 만큼의 결정적인 ‘특수’였다고 보긴 어렵다(91쪽).
박정희 대통령은 냉전의 완화를 국가안보의 위협으로 강조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들의 총화단결을 요구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말하는 ‘총화단결’이란 국가안보 아래 국민의 희생을 의미했다. 그 희생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의 포기였다(109쪽).
근무시간이 끝나도 공장새마을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의 꽃이라는 분임조 활동을 해야 했다. …… 남성노동자에게 술과 담배는 금지되었고 퇴근 후에는 새마을부인회에서 사업지침을 하달받아 새마을노래 합창, 각종 위문공연에 참여해야 했다. 한편 여성노동자들은 건전한 심신을 가꾸라며 요리강습, 꽃꽂이, 등산 등의 공장 내 서클 가입이 권장되었다. 이는 여성노동자들의 외부 접촉 기회를 줄이면서 종업원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목적으로 운영되었다(120쪽).
수술을 원하는 사람 가운데도, 남성이 찾아와 “구직처가 없으니 차라리 ‘밤의 여인’이 되겠다”며 수술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모두 1955년의 기사였으며, 1969년에는 급기야는 부모가 갓난 아들을 데리고 와 “집에 사내아이만 셋 있으니 이 아기는 여자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례도 있었다(144쪽).
서대문형무소가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로 이름을 바꾸고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범죄’를 ‘탄압’하는 과정에는 옥바라지에 대한 방해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수감자의 아내는 서울구치소의 옥바라지 규정에 대해 “영치물 차입은 많은 가족들을 속상하게 하는 악마들의 규정이 있어 까다롭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168쪽).
3․1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통치’하에서 일제의 정책은 변화한다. …… 조선총독부는 일본에서 건너온 신도와 불교, 기독교만을 ‘종교’로 인정했다. 다른 신앙은 ‘유사종교類似宗敎’라 지칭하며 경찰의 감시 및 단속 대상으로 삼았다(178쪽).
김 씨계는 예외적이라 할 수 있는 근친혼을 행해서 신라의 왕위를 독점하는 데 성공하였고 더 나아가 골품제라는 제도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권력 독점에 대한 욕망이 비정상적 혼인방식인 근친혼을 정상적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후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근친혼은 시행된 지 수백 년이 지나서야 악습으로 인식되어 폐기되었다(205쪽).
1950년 10월 8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중국인민지원군 조직에 관한 명령을 정식으로 발표하였고, 19일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넜다. ‘미국제국주의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는’, 이른바 항미원조전쟁抗米援朝戰爭이 정식으로 시작된 것이다. …… 항미원조운동의 열기는 한국전쟁을 ‘자신들의 전쟁’이라고 생각했던 연변 조선인사회에서 곧 대대적인 참전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연변 측 주장에 따르면 한국전쟁 기간 동안 연변에서 5,000여 명에 가까운 조선인 청년들이 입대하였고, 군인을 제외하고도 5,740명이 통역원․운전수 등으로 참전하였다(237쪽).
신설된 진에는 함경남도 의 백성들 중 일부를 뽑아 채워 넣었고 이를 통해 발생한 함경남도의 공백은 하삼도下三道(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백성들 중 일부로 메웠다. 국가에 의해 백성들의 거주 지역이 변경되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사민정책은 전근대 사회의 국가주도적이고 반강제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왕조도 이를 의식하여 자원해서 사민에 응하는 사람에게는 입거入居 지역의 토지를 주거나 감세 혜택을 주는 등 상당한 특전을 약속하기도 했다(249쪽).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학에서는 낙랑군을 중국이 설치한 ‘식민지’로 이해하고, 지배층을 중국 사람, 피지배층을 고조선 사람으로 보았다. 조선 역사의 주체성을 없애고 중국에 의한 타율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낙랑군=중국 식민지’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이에 반해 한국의 민족주의 역사학에서는 한민족이 성장하여 낙랑군이라는 식민지를 우리 영토에서 몰아냈다고 이해했다(260쪽).
책을 내며
1부 ‘낮은 곳’에 있는 존재
01 _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름 짓기와 부르기 … 편소리
02 _ ‘을’들의 전쟁, 1925년 예천사건 … 최보민
03 _ 육남매 아빠(1915~1994)의 중산층 가족 도전기―월남민 김 씨의‘ 중산층 판타지’는 연착륙했을까? … 김재원
04 _ 월남에서 온 그는 왜 ‘김 병장’이 아니었을까―베트남 특수의 군 계급별 경험 차이 … 권혁은
05 _ 공장새마을운동의 두 얼굴―박정희가 꿈꿨던 공장, 노동자들이 원했던 현장 … 임광순
2부 ‘금기’시된 존재
06 _ 1950~60년대 한국의 여장남자―낙인의 변화와 지속 … 김대현
07 _ 식민지기의 ‘옥바라지’와 현재의 우리 … 전영욱
08 _ ‘미신’이 된 무속 … 장원아
09 _ 금기를 깨다! 신라왕실의 근친혼 … 이성호
3부 국가 ‘경계’ 밖의 존재들
10 _ 미군 포로심문보고서가 남긴 한국전쟁기 한 포로의 삶 … 윤성준
11 _ 연변 조선인들의 ‘조국’을 되돌아보다 … 문미라
12 _ ‘세종대왕’과 북방 ‘영토’ … 조용철
13 _ 한국 고대사에서 사라진 낙랑군?대방군 사람들 … 임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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