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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2442234 / 322쪽 / 626g / 158 x 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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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벌써 20년이 훨씬 지난 일이다. 내일이면 일본으로 유학 떠날 아들을 불러놓고 “너 가거든 ‘조총련’ 조심해라”는 무뚝뚝한 아버지의 한 마디. ‘우리’가 만들어낸 불온한 대상. 이는 단순히 내 아버지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물음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재일조선인/한국인, 그들은 ‘우리’의 안과 밖에 존재해온 타자이다. 당시 내 아버지에게는 ‘조총련’으로 대표되었지만 그들은 교포, 동포, 재일조선인, 자이니치, 재일한국인, 재일한인, 재일코리언 등등, 이제껏 많은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오히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세계를 향해 스스로를 드러내며 이야기해왔다.
이 책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목소리, 즉 그들의 자기 이야기에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는 데 있다. 그것은 너무도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통해 이야기되어왔음은 물론, 문학작품, 구술기록, 영화, 연극, 미술 등 온갖 매체를 통해 표현되어왔다. 그것은 해방 이후 국민국가의 경계 바깥으로 버려진 국민, 즉 기민(棄民)의 처지에 놓인 채 살아온 오랜 삶의 이야기였다. 또한 어느 재일 작가가 자신의 가족사를 그린 소설의 제목을 ‘백 년 동안의 나그네’라고 했던 것처럼 그 어떤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떠도는 부평초 같은 삶들의 이야기였다. 이향(離鄕)의 시간을 살다가 다시금 조국으로의 귀환을 시도하는 그 이야기는 끝내 조국이라는 목적지에 닿지 못한 채 자자손손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조국이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피식민자의 경험과 기억을 전승하며 또 그것을 변형시켜가며 거듭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만들어내고 있다.
제국-식민지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과거’처럼 남겨진 피식민자. 이미 이향에 묻힌 1세로부터 2세, 3세, 지금은 4세까지 이어져온 그들의 역사는 이제 일본에 정주(定住)하며 조국과 과거 식민 본국 사이에서 살아온 기록들이다. 조선적(朝鮮籍) 혹은 한국적(韓國籍)이 새겨진 외국인등록증 소지자, 더러는 귀화한 일본국적자,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런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 열도의 각지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조선인촌(村). 오사카(大阪)의 이카이노(猪飼野)와 같은 전통적 집주지나 도쿄(東京)의 신오쿠보(新大久保)와 같은 신흥 코리언타운이 지금은 한국인/조선인 집주지로 대표되지만, 시모노세키(下関)부터 홋카이도(北海道)까지 지역별로 대소규모의 다양한 형태의 조선인/한국인 집주지가 존재했다. 그 대개는 일본 내 차별부락과 지근거리에 존재했던 섬과 같은 곳이었으며 점차 희미한 기억만 남기고 사라져갔다.
일본 내 작은 조선인촌들은 빈집처럼 텅 비어갔다. 하지만 그 흔적이랄까 ‘똥굴’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다. 부관(釜關)페리의 선착지인 시모노세키의 한 구석의 ‘똥굴’, 오랜 옛날(?) 그들이 돼지를 사육하며 그 오물을 실개천으로 흘려보냈다 해서 그렇게 불렸단다. 악취(?)로 기억되는 ‘작은 조국’, 거기에는 조선적과 한국적의 그들이 아직도 뒤섞여 분단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마을의 한 가운데에는 ‘우리학교’라고 불리는 조선인 학교가 있다. 그렇게 분단의 ‘일상’은 자자손손 이어지고 있다.
일본 열도 내에서 그들은 새로이 장소를 만들며 또 빼앗기기를 거듭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도시의 익명성에 숨기도 하고, 아예 조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그만큼 그들에게 자기동일화(identify) 과정에서 일본이라는 국가와 장소의 영향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2세나 3세의 자기 서사 속에 많이 나타나는 에피소드이기는 한데, 일본인 학교를 다니며 사용하던 일본 명(名)의 거죽을 벗고 자기의 본명을 찾는 커밍아웃은 그들의 서사관습의 하나처럼 반복된다. 이는 마치 ‘조선인(한국인) 되기’의 통과의례와 같으나 필생의 거사처럼도 의미심장하다.
내가 나인 것 / 그대가 그대인 것 / 그 구속으로부터 도망칠 장소는 / 언제나 옷깃 스치는 타인 마을의 / 군집 속에 있었다. / 사람의 훈기에 거친 숨소리 / 서로 뒤섞이고 서로 다투며 / 쉼 없이 걸어온 것이 / 바로 어제 일인 듯한 / 느낌이 없지도 않은 / 재일(在日), 이었다.(종추월(宗秋月)의 시, 「이름(名前)」 중에서)
‘나’에서 ‘재일’로의 귀결, 그들의 자기 서사는 정형성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면서도 ‘우리학교’ 럭비 팀의 고군분투를 그린 다큐멘터리 <60만 번째의 트라이(try)>라는 제목처럼, 60만 아니 그 이상의 이야기로 존재한다. 이렇게 거듭 반복적이면서도 차이를 보이는 개별적 이야기가 일본이라는 국민국가의 ‘군집’ 속에 존재해온 것이다. 그 ‘군집’ 속에서 벗어나 ‘나’를 드러내고 말하는 것 자체가 저항이었던 것이다.
2018년, 오늘. 일본 열도 안에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즉 혐오의 언어가 조선인을 향하고 있다. 외마디밖에 할 수 없는 조선어/한국어, 조선인/한국인으로서의 그 어떤 중얼거림, 심지어 상상력과 몸짓까지, 그들의 자기표현은 다름 아닌 일본이라는 국민국가에 대한 도전이면서 또한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파열 그 자체이자 문화적 실천일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화두로 삼고 있는 재일조선인/한국인의 자기 목소리는 바로 그런 것이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2014년부터 3년 동안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재일조선인 자기서사의 문화지리>라는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수차례에 걸쳐 개최했던 학술대회의 결과물이다. 더불어 이렇게 결과물을 하나로 묶어내는 데는 동국대학교 교내 연구과제인 <재일조선인 기억의 역사와 기념의 정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재일조선인/한국인을 주제로 한 연구는 특히 민족과 세대와 같은 거대담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연구팀은 그 거대담론에 포섭되고 모순되는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 그리고 중얼거림처럼 들리는 이야기에 더욱 주목했다. 그 동안 학술대회에서의 발표뿐 아니라 그 옥고를 흔쾌히 내준 필자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8년 7월
필자들을 대표하여
박광현
제1부 재일조선인의 자기 기획과 (탈)장소화
제2부 재일조선인의 공간 재편과 지리적 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