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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1570947 / 332쪽 140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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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아버지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결국 꺽꺽거렸다.
아버지가 꺽꺽대는 동안 나는 돌아서서 개고개 아래를 봤다.
멀리 방앗간과 부름고개가 보였다. 이 개고개를 넘으며 울었던 사람을 생각했다.
언니도 이 개고개를 넘어가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고, 아무것도 없는 집에 동생을
시집보내고 넘어가던 외삼촌도 피눈물을 뿌렸다고 했다.”-본문 가운데
출판사 리뷰
“아버지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결국 꺽꺽거렸다.
아버지가 꺽꺽대는 동안 나는 돌아서서 개고개 아래를 봤다.
멀리 방앗간과 부름고개가 보였다. 이 개고개를 넘으며 울었던 사람을 생각했다.
언니도 이 개고개를 넘어가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고, 아무것도 없는 집에 동생을
시집보내고 넘어가던 외삼촌도 피눈물을 뿌렸다고 했다.”-본문 가운데
|모두가 잊었지만, 누구나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
1970년대를 이야기할 때 노동자 전태일을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전태일이 차비를 털어 붕어빵을 나눠 주었던 어린 여공들의 삶은 흔히 묻힌다. 오빠의 진학을 위해, 남동생의 공부를 위해 당연히 희생했던 딸들, 그녀들의 마음속에 솟아나고 사그라들던 아픔과 슬픔은 대상화되고 객체화될지언정, 주인공이거나 중심인 적은 없었다.
이 책은 겨우겨우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결국 졸업을 못 하고 집과 학교를 떠나 공장에서 일하게 된 이구남의 일생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핸드볼이 뭔지도 몰랐던 소녀가 골키퍼로 성공하는 꿈을 꾸고, 당연한 것처럼 그 꿈을 잃어 간다. 운동화를 사려고 모은 돈은 육성회비 값으로 들어가 버리고, 날마다 생의 무게로 짓눌리는 부모님을 그냥 지켜보기엔 구남이의 마음이 너무 착하다. 언니가 먼저 자리 잡고 있던 부산의 공장에 취직하고, 직장을 옮기고,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리기까지의 삶은 그 시절 누이들이 겪은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 또한 그런 누이 덕에 대학에 가고, 교사가 되었다. 한평생 고생만 하다 비명에 가신 누이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당시 공장을 다시 둘러보기도 했고, 누이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기도 했다. 작가는 누이의 삶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 세상에 이런 삶도 있었노라고. 그들에게 빚을 졌음을 우리 모두 잊지 말자고.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주인공 구남의 언니 희남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직했다. 동생 구남이가 중학교라도 졸업할 수 있도록 힘껏 도우려 하지만, 연달아 찾아온 불행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장손 복이와 국이, 덕이까지 줄줄이 딸린 동생들 공부도 시켜야 한다. 몸져누운 할아버지 생각도 해야 하고, 수레에 깔려 운신을 못하는 아버지 생각도 해야 한다. 결국 구남이는 학교를 포기했고, 개고개를 넘어 고향을 떠났다. 너무 어린 나이라 나이를 속였고, 이름도 바꿨다. 공장에서의 삶은 고되고 힘들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울고, 집에 가고 싶어 울었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한 뒤 갈빗집으로 옮겨 조리사 자격증을 땄고, 일식집에서 자리도 잡았다. 결혼으로 고단한 삶이 따뜻해지나 싶더니, 남편은 중병으로 곧 죽고 만다. 홀로 남은 구남 씨는 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불어난 계곡 물에 차가 휩쓸려 생을 마감하게 된다.
누이의 삶을 소설로 재구성한 것은, 애잔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나마 누이의 아픈 삶을 많은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이렇게 살다 간 이들의 삶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작품의 감동은 디테일한 묘사들에서 온다. 겪지 않으면 알 수 없었을 세세한 묘사는 그런 시대, 그런 장소에서 살아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마음으로 어루만진 문장들에선 상처를 보듬는 따뜻한 위로가 묻어난다. 어린이도 자연스럽게 농사일을 거들던 시대, 일하는 어린이가 흔했던 시대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 낸다.
이제는 누구도 가족을 위해 내 생을 뒤로 물리는 것을 당연하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우리 언니들은, 누나들은 왜 그렇게 한사코 착하기만 했던 걸까. 공장에 일하러 와서도 “이제 소죽은 누가 끓이는고?” 걱정하는 것이 누이의 마음이었다. 누이들을 일찌감치 어른으로 만들어 버렸던 시대의 이야기. 화가 나면서 눈물겹고, 마음이 아파서 책장을 휙휙 넘기기 힘든 그런 이야기다.
끝없이 이어지는 우환. 집에 불이 나고, 한겨울에 식중독에 걸릴 만큼 면역력이 약해진 할아버지 때문에 치료비를 뭉텅이로 쓰고, 몰래 담근 술 때문에 경을 치르는 동안 주인공의 식구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체념은 쉽게 이해가 된다. 가난한 아이들은 중학교에 가는 것조차 사치였고, 잘 살아 보려는 노력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로 돌아와 쓰라린 배신을 안긴다. 끝내 고향을 떠나는 둘째 딸을 배웅하며 꺽꺽 소리내 우는 아버지의 마음이 손에 잡힌다. “누구도 원망 안 합니더.” 열다섯 살 누이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넘었다. 슬프고 아린 이런 순간들의 기록이 모여, 소설 전체가 묵직한 감동을 남긴다.
꿈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한 번도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어 스스로에게 질문조차 던지지 못했던 시간을 보내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 스스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 뻐근하다. 가짜 이름과 나이를 버리고 진짜 이름과 나이를 찾은 뒤에도 평생 다른 이를 거두고, 키우고, 먹이고, 보살피는 삶을 살다가 갔다. 그런 누이의 삶을 한 사람이라도 더 기억해 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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