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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와 선비 오늘의 동양과 서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백승종 저 | 사우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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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332237 / 324쪽 / 616g /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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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동양과 서양의 역사에 두루 정통한 독보적인 역사가 백승종 교수의 역작
신사도와 선비정신을 비교·분석하고,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을 묻는다

“중세의 기사도와 신사도는 어떻게 서구 시민사회의 교양으로 부활했는가”
“신사의 길과 선비의 길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조선에는 선비가 있었고, 서양 중세에는 기사가 있었다. 그 시기 일본에는 사무라이가 있었다. 이들은 각기 사회를 떠받치는 중추 세력이었다. 하지만 걸어간 길은 저마다 달랐다. 특히 중세 기사도는 신사도로 발전했고, 이어 근대 시민의 교양으로 활짝 꽃을 피운다.
역사가 백승종 교수는 유럽 문화의 요체라 할 수 있는 기사도와 신사도의 본질과 역사에 주목한다. 저자가 신사도에 주목한 이유는, 신사의 가치관과 태도가 서구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세 기사도에 뿌리를 둔 신사도는 근대 시민사회의 미덕으로 승화되었다. 신사도는 공교육을 통해서 근대시민의 보편적 가치로 전환되었다. 지난 천 년 동안 기사도를 계승한 신사도는 유럽사회의 변화를 추동한 힘이었다.
“현대 서구 시민들은 직접적, 간접적으로 신사도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들은 수백 년 전 중세 기사들이 그랬듯, 기꺼이 정의의 편에 서고 개인의 명예를 중시하기를 원한다. 어려운 처지일지라도 기품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깍듯한 예의와 절도 있는 생활을 높이 평가한다. 다급한 위기의 순간에도 아이와 여성보터 보호하는 것을 확고한 원칙으로 삼는다. 또 모든 경쟁에서 ‘페어플레이’를 추구한다. 현대 서구의 시민들은 이상을 실천하고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기꺼이 희생하는 이들을 존경한다. 서구의 시민교육은 과거의 기사나 신사처럼 고상한 기질과 품성을 가진 이를 모범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세 기사도의 이상은 현대에도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선비가 만든 나라 조선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선비의 길은 “아름답고 안타까운” 길이었다. 선비는 도덕적 가치를 가장 소중히 여겼다. 선비는 기사나 사무라이와 다른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지식인이었다. 조선 500년 동안 선비의 길은 더욱 세련되고 빛났다. 조선시대에는 고매한 인품과 매서운 절개를 몸소 보여준 선비가 많았다. 저자는 선비들의 철학적 모색과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선비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선비의 길에는 분명 한계도 있었다.
“조선은 500년간 성리학 근본주의에 빠져 있었다. 성리학만을 정학으로 믿고 살아 선비들의 시야가 좁아졌다. 사상의 자유와 관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새로운 문문을 수용하고, 기술과 과학을 발전시키려는 의지도 빈약했다. 성리학 근본주의가 근대의 길목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급기야 조선 왕조가 멸망하면서 선비의 길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선비정신은 명맥조차 잇지 못하고 있다. 서구사회가 자신들의 전통을 시대에 맞게 계승하면서 발전해온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제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선비의 길에도 과연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선비문화가 한국의 미래를 밝혀줄 가능성이 있는지를 깊이 탐구한다.
우리는 서구 시민의 교양이 어떻게 태동하고 발전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녔던 고결한 이념과 도덕적 가치는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한다. “그래서인지 현대 한국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도덕적 준거를 망각한 지 오래이다. 지도층의 부패와 몰염치는 도를 넘었다.”
저자는 서구 사회가 걸어간 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중세의 기사도와 신사도가 성립되고, 그것이 근대시민의 교양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보았듯이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전통사회의 본질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그 속에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기사도와 신사도, 시민의 교양으로 활짝 피어나다

이 책 1부는 신사의 역사를 탐색한다. 신사의 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중세 기사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먼저 저자는 기사의 행동규범인 ‘기사도’가 탄생한 배경을 살펴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사의 이미지는 이렇다. 명예를 중시하며 약자를 보호하는 용감한 무사. 그런데 실제 중세 사회의 기사는 이와 전혀 달랐다. 저자에 따르면, 기사는 전쟁에 나가지 않을 때는 평민들을 상대로 약탈을 일삼았고, 자기들끼리 이권을 두고 싸움을 벌이기 일쑤였다. 기사들의 일탈은 당시 유럽 사회의 안정을 위협했다고 한다.
로마교황청은 사회의 안정을 위해 기사에게 도덕적 규범을 요구한다. “이에 부응하여 기사는 기독교 신앙에 기초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겸손을 실천하며 타인에 대한 관용을 베풀겠다고 서약했다. 또 여성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강한 적을 만나더라도 용맹하게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기사도다. 이렇게 탄생한 기사도 정신은 십자군 원정을 통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고, 서양 중세 귀족문화의 정수를 이루었다.
14세기 르네상스의 도래와 함께 중세사회는 해체되기 시작했고, 기사도도 기억에서 잊혀갔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 기사도가 부활했다. 중세 기사들의 가치관이 달라진 상황에 맞게 변형되어 ‘신사도’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잊혔던 기사도가 되살아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산업혁명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산업혁명으로 생산은 크게 증가했으나 소수의 자본가들이 점점 더 많은 부(富)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때문에 대다수 노동자들은 극도의 빈곤에 시달려야 했다. 노동자와 빈민층의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근대 서구인들은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중세 기사도를 근대적으로 해석해 다시 불러냈다. “기사들이 숭상한 예절과 기독교적 도덕관념이 근대의 옷을 입고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이는 시민사회의 이상인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는 데 기여했다. 기사도라는 중세적 유산이 신사도로 변형되어, 근대시민국가의 건설에 이바지한 것이었다.”
신사도가 유럽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데는 공교육의 역할이 컸다. 서구인들은 시민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학교에서 신사도를 가르쳤다. 신사도는 공교육을 통해서 근대시민의 보편적 가치로 전환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이제 신사도는 현대의 ‘시민의식’으로 진화하게 된다.

아름답고, 안타까운 선비의 길

2부에서는 선비의 길을 따라가 본다. 저자는 선비라는 존재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살펴봄으로써 선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스스로 인격을 수양하고 언행을 바로잡아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저자는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두 가지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바로 ‘수기치인’과 ‘천인합일’이다. 두 개념에서 선비들이 추구한 이상이 무엇인지, 존경받는 선비들은 그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 더듬어볼 수 있다.
“서양의 기사와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철학적 고원함, 이것이 선비의 특징이었다.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고상한 뜻을 끝끝내 버리지 않는 것이 선비였다. 조선 사회에는 절개가 유난히 높은 선비들이 많았다. 그들이 현세를 이상사회로 바꾸지는 못했으나, 윤리의 시대를 연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선비들은 명분과 절개를 숭상함으로써 조선 사회를 전형적인 성리학 사회로 바꿔놓았다. 그들은 한국의 역사에 새 장을 썼다.”
그러나 아름다움 뒤에는 짙은 그늘이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오직 성리학만을 경전으로 떠받들다 보니 서자 차별, 당쟁, 문체반정, 위정척사 등 심각한 폐단이 나타났다. 선비의 시야는 너무 협소했다.
19세기 말 세상은 급변하고 있었다. 근대화에 성공한 서구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조선은 대항할 여력이 없었다. 선비는 조선의 멸망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그와 함께 ‘선비정신’도 힘을 잃고 말았다.

선비의 역사는 한국 사회의 미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3부에서는 조선시대 선비의 본질을 탐구하고, 선비정신이 어떻게 계승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저자는 우선 마을에 살면서 마을을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한 선비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많은 선비가 시골 마을에 살면서 서당을 운영하고 이웃사람들을 일깨웠다.
“이것이 조선 사회를 역사상 독특한 사회로 만들었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외적의 침략을 받으면 각지에서 의병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고, 조선시대 마을의 문화적 수준이 매우 높았다.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국가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은 ‘마을공화국’의 연맹체였다. 선비들이 건설한 조선 사회의 실상은 우리가 지레짐작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선비는 ‘공동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계회(契會)가 있었다. 마을공동체와 다양한 조직은 든든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했다. 이 책에서 다각도로 보여주는 조선시대 마을과 선비의 모습을 통해 불평등과 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구 사회는 자신들의 문화전통을 계승해 당면한 과제를 하나씩 해결했다. 우리는 선비의 길을 다시 되짚어보고 그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역사적 존재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낳고 길러준 문화적 토양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세상에는 이른바 문화적 유전자라고 불리는 공동의 문화유산이 존재한다. 우리가 역사 속 선비의 길을 논의하는 것은 그 유산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저자는 조선왕조가 일제의 침략에 무너졌지만 선비정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20세기에도 청렴하고 고결한 선비들이 많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부터 민족시인 백석, 김홍섭 판사, 정의로운 선비 심산 김창숙 등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선의 문화적 전통을 한국 사회가 물려받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문화적 전통을 계승할 수 있다면,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공정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저자 소개

청년시절 독일에 유학하여 유럽사, 중국학, 지리학, 인류학 등을 폭넓게 공부해, 튀빙겐대학교 문화학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내외 여러 대학에서 가르쳤다.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로 시작하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베를린자유대학교 한국학과 임시학과장, 경희대학교 초빙교수, 보훔대학교 한국학과장 대리 등을 지냈다. 프랑스 국립사회과학원 및 독일 막스플랑크역사연구소에서도 초빙교수로 연구와 강의에 전념했다. 건국대학교 사학과, 충남 홍성의 풀무학교 및 영등포의 하자센터에서도 좋은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지금은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로 있으면서, 수년째 서울의 서당에서 제자들과 동양고전을 읽고 있다.
시민과 함께 역사를 되새기는 작업이 곧 학문의 ‘실천’이라고 확신한다. 신문 칼럼을 쓰기도 하고, 방송과 공개 강연을 통해 역사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작업에 정성을 쏟는 이유이다. 
1990년대부터 미시사(Microhistory) 쓰기에 매달리고 있다. 미시사 연구는 '생태적 전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근대역사학과 성장주의에 대한 비판이 공부와 글쓰기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저서로는 『한국 사회사 연구』,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 『그 나라의 역사와 말』,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 『한국의 예언문화사』,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제52회 한국출판문화상), 『정감록 미스터리』,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 『금서, 시대를 읽다』(2012년 한국출판학술상), 『역설, 백승종 역사 에세이』, 『조선의 아버지들』 등이 있다.

책 속에서

P.28~29 : 서양 중세의 기사도는 조선의 선비가 사는 법과 상당한 유사점이 있었다. 기사든 선비든 그들은 명예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다. 책임감도 투철했다. 선비도 끝까지 약속을 지키려 했고,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데 마음을 썼다. 또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라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선비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붓이었다. 또 선비는 기독교와 같은 종교기관에 복종하지 않았다. 선비는 성리학(유교)의 이념에 충성을 바쳤다. 서양의 기사는 사람에게 충성을 바쳤다. 기사는 자신이 섬기는 영주(왕, 주교 포함)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했다. 조선의 선비는 그렇지 않았다. 도리에 어긋난 왕명을 거역하고, 왕과 국가의 잘못된 결정에 반대하는 것이 선비의 충성으로 이해될 경우가 많았다. 선비는 명령권을 가진 이에게 순종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천명(天命)에 따라 백성을 돌보고, 인과 예의 가치를 수호하며, 종묘사직의 안녕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하는 사람이었다. 서양의 기사가 현실 권력에 절대복종한 것과 달리, 선비는 도덕과 이념에 헌신했다.


P.59~60 :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북중국 일대를 강제 점령했다. 그러자 니토베 이나조라는 식민사학자는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일본의 침략행위를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그는 일본의 전통문화를 널리 선전할 목적으로 『부시도! 일본 정신』이라는 책을 간행했다. 그가 이 책을 쓴 동기는, 일본의 고유한 윤리와 도덕을 강조함으로써 문화국가 일본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었다. 서양이 기독교 중심으로 윤리의식을 발전시켜온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사무라이 특유의 도덕관념이 발전했다. 이렇게 선전하는 것이 그의 저술 목적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성공했다. ‘일본에는 서양 중세의 기사도를 무색하게 하는 무사중심의 고급문화가 존재하였다.’ 니토베는 서구의 지식인 사회를 이렇게 믿도록 만들었다.


P.60~61 : 니토베는 사무라이를 도덕적 존재로 부각시켰다. 의(義), 용(勇), 인(仁), 예(禮), 성(誠), 충(忠)의 도덕적 덕목으로 철저히 무장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사무라이의 고유문화로 정착한 할복의 경우에서 보듯, 죽음마저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사무라이의 태도는 누구라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숭고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니토베의 책이 간행되자 많은 서구인들이 일본 정신의 독특한 미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일본인들의 자긍심은 더욱 높아졌다. 내가 보기에, 사무라이의 미덕에 대한 일본 사회의 자화자찬은 지나쳤다.

목차

여는 글_ 비슷하면서도 다른, 신사와 선비의 길

1부 신사도, 시민의 교양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다
1장 기사도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되기까지

01. 기사도의 전통
02. 기사도의 역사
03. 문학으로 남은 기사도 정신
『아서왕 전설』, 유럽으로 퍼져나가다/『니벨룽의 노래』, 독일 기사문학의 대표작/『돈키호테』, 시대를 뛰어넘은 걸작
04. 서양의 기사도와 일본의 ‘부시도’
사무라이 정신이 화려하게 재탄생한 배경/서양인들은 왜 일본 문화에 호의적인가

2장 신사와 산업혁명
01. 상류층 인구의 증가가 영국 사회에 미친 영향
02. 젠트리에서 자본가로
03. 산업혁명은 왜 하필 영국에서 일어났을까
04. 젠트리와 산업혁명

3장 신사도, 시민의식으로 꽃피다
01 신사도는 공교육에 어떻게 스며들었는가
02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의 탄생
03 신사도가 시민의 교양으로
04 막스 베버의 기독교 윤리와 자본주의의 발전

2부 아름답고, 안타까운 선비의 길
4장 선비는 어떻게 살았는가

01. 『대학』, 선비의 사명을 가르치다
02 수기, 어떻게 인격을 완성할 것인가
03 『성학집요』, 율곡 이이의 성리학적 통찰
04 우암 송시열, 극기복례와 사군애민
05 덕촌 양득중, 항상 선행을 실천해야
06. 다산 정약용, 효제 하나만 제대로 실천하라

5장 자연과 하나 된 선비들
01 천인합일,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
02 천명도,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천착하다
03 자연에 은거하며 권토중래를 꿈꾸다
04 소쇄원, 학문과 심신수양의 공간

6장 ‘윤리적 인간’의 시대 - 조선이라는 특이한 나라
01 백강 이경여, 난세에도 지조를 지킨 선비의 모범
02 농암 유수원, 과거제의 폐단을 말하다
03 학교 교육에 대한 선비의 생각
04 부귀영화보다 마음의 안정
05 선비의 ‘출처’, 언제 벼슬길에 들고 날 것인가

7장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폐단
01 서자 차별이라는 고질병
02 수백 년 이어진 당쟁의 굴레
03 문체반정의 한계
04 금서의 덫
05 위정척사, 역사의 딜레마

3부 역사에 미래의 길을 묻다
8장 마을에 깊이 스며든 선비의 힘

01 선비, 마을공동체를 이끈 주역
02 서당은 마을문화의 거점
03 한 마을 선비와 농민이 손잡고 의병이 되어

9장 인간관계와 사회 질서의 촘촘한 그물망
01 정이 넘치는 계모임 풍경
02 족계, 든든한 사회안전망
03 합당한 규칙이 있는 마을공화국
04 스승과 제자, 운명을 건 진리공동체

결론에 대신하여_ 불평등의 심화와 역사가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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