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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30332321 / 800쪽 / 1,520g / 188 x 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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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刊 行 辭 훌륭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녀서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和의 철학을 몸소 보여주신 晴潭 최송화 선생님의 희수를 맞이하여, 선생님의 학문적 여정을 기리고 선생님의 평생의 헌신을 되새기고자 우리 모두의 존경심을 담아서 이 책을 봉정하고자 합니다. 작년 2월 제가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회장을 지내신 선대 회장님들께서 고희, 희수, 산수, 미수, 백수 등을 맞이하거나, 고인이 된 경우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는 때에는 이를 축하드리기 위하여 기념논문집을 봉정하는 축하의 마당을 마련하여 드리는 전통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하였고, 이에 따라 晴潭 최송화 선생님께서 희수를 맞이하게 되어 제일 먼저 기념논문집을 봉정하게 되었으니 경하의 마음이 더욱더 크고 흐뭇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국행정판례연구회는 우리나라 행정판례연구의 역사이고, 또한 행정판례를 두고서 선학과 후학이 시공을 초월하여 대화하고 만나는 곳입니다. 晴潭 최송화 선생님은 과거 어려운 시절인 1984년에 목촌 김도창 선생님을 도와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창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晴潭 최송화 선생님의 이력과 문주반생에 대하여는 박윤흔 교수님의 축하의 글에서 기리고 있기 때문에 더 언급할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무엇보다도 晴潭 최송화 선생님은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회장을 역임하시면서 연구회의 기반을 다지셨고, 우리 연구회의 오늘과 미래를 위한 소중한 다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특히 晴潭 최송화 선생님이 제8대 회장으로 재임하실 때 2007.8.17. 법원행정처로부터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아 2007.9.14.에 법인설립등기를 마쳐서 한국행정판례연구회가 사단법인으로 재탄생하였습니다. 총 142건의 행정판례를 주제별로 정리하여 행정판례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대역사인 ?행정판례평선?의 발간을 제안하고 주도하시어, 21세기의 행정법학과 행정판례의 발전을 선도하는 계기가 마련되게 하셨습니다. 최근까지도 월례발표회에 직접 참여하시어 후학들을 격려하고 모범을 보이시는 등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계십니다. 지금 행정을 비롯한 국가 전체가 과거와는 현저히 다른 환경에 처하여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듯이, 행정판례 및 행정법을 비롯한 공법 역시 시대와 호흡하고 나아가 시대를 견인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최근에 젊은 회원님들이 월례발표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시각에서 행정판례를 새로이 자리매김하려는 매우 고무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행정상의 분쟁을 정의롭고 타당하게 해결할 책무를 지고 있는 실무가들과 이들의 관계를 때로는 교정하고 때로는 지원해준 이론가분들이 앞으로 공동체 속의 우리의 삶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행정판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소유하고 있는 분들의 모임인 우리 한국행정판례연구회를 지탱하는 힘은 무엇보다도 회원 여러분들의 상호간의 존경과 우정, 그리고 유대감으로부터 우러나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晴潭 최송화 선생님의 평생의 학문적 화두인 ‘公益論’을 계승하기 위해 ‘행정판례와 공익’을 대주제로 삼아 당대의 지혜를 집성한 이번 기념논문집은 변하고 있는 환경에서 행정판례연구 및 공법 그리고 나아가 법학의 새로운 모색을 강구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행정판례의 발전을 위한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수 있는 뜻 깊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기념논문집의 발간작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 한국행정판례연구회가 보여주는 이런 적극성과 역동성이야말로 행정판례 및 행정법을 비롯한 공법이 맞닥치는 쉽지 않은 시대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행정판례연구 및 공법학을 위한 위대한 이정표를 만드는 데, 많은 분들이 함께 주셨습니다. 특히 과거 2002년에 간행된 ?法治行政과 公益?과 ?現代公法學의 課題?에 이어 이번 논문집도 題字를 써주신 朴秉濠 교수님, 그리고 축하의 글을 써 주신 金南辰 교수님, 朴鈗炘 교수님, 權寧卨 교수님, 朴正勳 교수님 그리고 金容燮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축하의 글을 통해 晴潭 최송화 선생님의 이력과 활동상을 시공을 넘어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되어 기념논문집의 가치가 한층 더 올라갔음을 실감합니다. 특히 독일에서 옥고를 보내주신 슈토버 교수님(Professor Dr. Dr. h. c. mult. Rolf Stober)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옥고를 보내주신 학계의 교수님과 실무 법조계 여러분, 아울러 이 책이 계획에 따라 순조롭게 출간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노력을 해준 간행위원회 위원 여러분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다시 한 번 晴潭 최송화 선생님의 희수를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앞날의 행운과 만수무강을 축원 드립니다. 2018년 7월 간행위원회 위원장 金 東 建 賀 序 刊 行 辭 晴潭 崔松和 敎授님이 건강하신 모습으로 喜壽를 맞이하셨음을 축하드리며, 이를 축하하는 기념논문집에 글을 올리게 되었음을 영광으로 여기는 바입니다. 晴潭 崔松和 敎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첫인상이 우리 행정법학계에서 누구보다도 순탄하게, 또한 화려하게 학자의 길을 걸어오신 점이라 하겠습니다. 한국 최고의 인재의 산실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현재의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학문적 업적을 쌓으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셨고, 서울대학교 부총장 등 보직을 맡아 대학 및 고등교육의 발전을 이끄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大法院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大法院 司法政策硏究院 초대 院長,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 연구회 초대 이사장 등 대외적으로도 수많은 활약을 하셨음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晴潭 崔松和 敎授를 생각할 때, 우리나라 행정법학의 개척자이며, 토대를 닦으신 牧村 金道昶 博士의 총애를 받으신 愛弟子이신 점 또한 빠트릴 수 없다 하겠습니다. 行政審判法? 行政訴訟法 改正案 審議委員會(法務部, 1983-1984) 委員 등, 金道昶 博士가 주도하신 각종 심의회에 동참하셨으며, 전체 세 권(상중하)으로 구성된 한국행정판례집(1976)의 발간에 참여하시는 등 金道昶 博士의 학문 활동의 동반자이셨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그 당연한 결과로서, 金道昶 博士가 창설하신 韓國行政判例硏究會의 회장을 역임하시는 등 지도적 인물로서 활약하셨으며, 金道昶 博士가 작고하신 후에는, 유업인 牧村記念事業會의 창립위원, 목촌법률상 심사위원, 회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계십니다. 한국, 일본, 중국 및 대만의 행정법학자로 구성된 東아시아행정법학회가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2012년 6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학회에서는 晴潭 崔松和 敎授가 이사장을 역임하셨는데, 필자(김남진)에게 기조연설을 행할 기회를 주신 바 있으며, 덕분에 저명한 행정법학자들을 상대로, 미숙하나마 현대행정법학이 지향할 길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晴潭 崔松和 敎授의 업적 가운데, 또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한국행정법학회”의 창설이라 하겠습니다. 2001년을 전후하여, 한국공법학회에서 분립된 “행정법학회”의 설립이 논의되었던바, 설립위원장이며, 초대 회장이신 晴潭 崔松和 敎授의 원만하고 탁월한 헌신이 있었기에 “한국행정법학회”의 탄생이 가능했다고 확신합니다. “행정법”은 오랫동안 “國內公法”으로서 정의되어왔습니다. 행정법은 “국내법”이고 “공법”이기에 國際法이나 私法은 행정법과 무관하다는 뜻을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government만이 유일한 행정주체이던 시대의 유물이라 하겠으며, 公私協力(민관협력)이 강조되고, 그에 따라 복수의 government가 활약하는 governance의 시대에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global化로 인해 국내, 국외의 구분은 거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으며, 또한 새로운 유형으로서의 행정법인 行政私法(Verwaltungsprivatrecht), 私行政法(Privatverwaltungsrecht)이 등장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행정법의 목표인 “공익의 실현”은 포기할 수 없는 명제입니다. 이번 논문집이 晴潭 崔松和 敎授의 평생의 지향점인 ”公益論“을 바탕으로 ”行政判例와 公益“을 대주제로 삼은 것은, 비할 수 없게 바뀐 행정환경과 사회현실에도 불구하고 여하히 공익실현이라는 행정법의 존재이유를 견지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인식이 담겨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晴潭 崔松和 敎授께서 이와 같은 변화한 풍토에서도 계속 우리 행정법학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시기를 기대하며, 기원하는 바입니다. 金 南 辰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한국행정법학회 이사장, 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賀 序 晴潭 최송화 교수가 어느덧 희수를 맞이하셨다. 최 교수는 그동안 학문의 길을 꾸준히 걸어오시면서 동시에 그가 전공하는 학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많은 행정?입법?사법관련 전문기관에서도 커다란 족적을 남기면서 알찬 인생길을 바쁘게 달려오셨다. 최 교수는 우리 학계의 원로이면서 또한 훌륭한 인품을 가지신 우리 사회의 스승이시다. 언제나 온화한 웃음을 띠고 누구와도 친화적이어서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아 온 원로이시다. 최 교수는 전공하는 행정법학 연구에 충실하면서도 시야를 넓혀 폭넓은 연구를 하셨으며, 또한 여가를 선용하여 테니스?수영 등 운동이나 바둑 등에서도 거의 프로 수준의 실력을 가진 다양한 인생을 사셨다. 특히 바둑계에서는 최 교수는 아마 5단이라고 하며, 이창호?유창혁 등 프로기사 14명을 초청한 서울대학교 개교 50주년기념 바둑대회에서 바둑황제 조훈현 9단과 대결하여 4점 깔고 6집 승으로 이겨 도하 신문에서 최 부총장이 ‘기염’을 토했다고 보도했다. 최 교수와 나는 학문적인 동료로서 형제와 같은 친밀한 사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같은 대학의 선후배로서 다 같이 우리나라 행정법을 개척?발전시키신 목촌 김도창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거의 평생 동안 같은 행정법을 전공하는 학문의 길을 걸어왔다. 우리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함께 다녔으며, 젊은 시절 합숙하면서 목촌 선생님의 저서와 논문의 교정을 보기도 하고, 학회활동 등을 통하여 학문연구를 같이 하였다. 대학원 시절에는 최 교수 등과 함께 일반대학원, 행정대학원, 사법대학원의 전공이 관련된 학생들 30여 명이 UFOI(United Frontiers of Intelligence)라는 학술모임을 구성하여 활기차게 학술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최 교수가 1973년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깁스생활로 조교수 승진 후 첫 학기인 1974학년도 1학기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어 최 교수 이름의 행정법강의를 서울법대강의는 당시 문교부차관을 지내고 변호사 개업 중인 은사이신 김도창 선생님이 대강을 하시고, 서울상대강의는 내가 대강을 한 일이 있는데, 제자의 강의를 선생님이 대강하신 것은 두터운 제자사랑이라고 하겠다. 최 교수는 1971년에 모교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임명받은 후 2006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35여 년 동안을 한결같이 학문의 길을 걸어왔으며 그동안 행정법에 관한 많은 저서와 연구논문을 발표하여 학문발전에 커더란 업적을 남기셨다. 우리 동료 학자 분들은 최 교수의 자당이신 김철안 여사께서 큰 여성정치인으로 이승만 정부시절에 제3대 民議院의 홍일점 의원으로 보건사회분과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분이셨기에 최 교수께서도 언젠가는 학계를 떠나 정치를 하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끝끝내 학계를 지키셨다. 최 교수께서는 특히 ‘법치행정과 공익’, ‘공익론’ 등 공법학의 근본문제인 ‘공익’과 ‘법치주의’를 話頭로 하여 일관되고 깊이 있는 저서와 연구논문을 발표하였으며, 그 밖에 특히 행정쟁송관련문제와 통일을 대비한 ‘남북한 법체제의 비교연구’ 및 정보공개 등에 관한 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하셨다. 이들 저서 중 ‘공익론’은 대한민국학술원으로부터 우수학술도서로 추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목촌 김도창 선생님과 함께 편저한 8,000여 면에 달하는 ‘한국행정판례집 Ⅰ?Ⅱ?Ⅲ’ 집은 우리나라 행정법 판례연구에 있어 불후의 명저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또한 최 교수가 집필대표가 되어 편저한 ‘행정판례평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적인 판례평선으로 역시 명저작이라 하겠다. 최 교수는 학자로서만이 아니고 교육행정가로서도 커다란 업적을 남기셨다. 그는 그가 재직한 서울대학교의 부총장직을 거쳐 총장직무대리를 맡으셔서, 서울대학교 개교50주년의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민족의 대학, 학문의 대학, 세계의 대학으로’라는 발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울대법제정 및 법인화추진, 통합전산화달성, 연구문헌HUB대학정착, Super Computer 도입, 6?25 참전 학생에 대한 명예졸업장수여제도 도입 등 많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서울대학교발전에 크게 기여하셨다. 또한 최 교수께서는 한국공법학회 회장, 한국행정판례연구회 회장, 한국행정법학회 회장직 등을 맡으셔서 법학계의 발전에 공헌하셨다. 최 교수는 또한 상아탑에만 안주하지 않고 전공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국무총리산하 인문사회연구회(소관 9개 연구원) 이사장, 경제?인문사회 연구회(소관 23개 연구원) 이사장(통합연구회 초대) 직을 맡으셔서 우리나라 인문사회분야 싱크탱크의 개발 육성에 크게 기여하셨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의 위기’가 크게 거론되었으며, 이에 최 교수는 김여수 한국철학회 회장을 비롯하여 이인호 박사, 김우창 선생 등 철학, 역사, 문학, 교육 등 인문학 분야의 사회저명인사들로 ‘인문정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학술대회, 심포지움, 집담회, 연구모임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인문학의 위기의 극복과 대안마련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을 기우려 큰 성과를 내셨으며, 우리나라 인문학의 발전과 인문학진흥에 커다란 초석을 놓으셨다. 아울러, 국가의 미래의 발전을 위한 정책연구로서, 우선 첫 번째로 유럽연합(EU)을 모델로 장차 유럽연합과 같이 발전하기를 기대하면서 ‘21세기 동북아문화공동체(Asian Union, AU)의 구상’(2004)(편저)이라는 저서를 발간하였고, ‘국가의제 2015: 풍요와 평화의 미래한국’(2005)이라는 권위 있는 연구보고서를 내놓으며 정책연구를 미래학으로 발전시켰다. 최 교수는 또한 초대 ‘대법원사법정책연구원’ 원장직을 맡으셔서, 국민을 위한 사법, 열린 사법을 목표로 정하고,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법조계 내부 의견뿐만 아니라 외부전문가와 일반인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민사법?형사법?공법 등 관계 대형 학회들(9개 학회)과 MOU를 체결하였으며, 비단 법조계?법학계뿐만이 아니라 관련된 인문사회 분야와도 연구에 있어 서로 공동연구 협동연구를 하도록 하여 열린 사법의 길을 다지셨다. 최 교수께서는 또한 대외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하셨는바, 한국하버드옌칭학회(The Harvard- Yenching Visiting Scholars Association, Korea)의 회장을 맡으셔서 하버드옌칭연구소의 후원으로 <21세기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와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대규모 학술대회와, <세계화 속의 동아시아: 갈등과 타협>이라는 주제로 한국하버드옌칭학회 창립 5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東아시아행정법학회(한국?일본?중국?대만) 이사장을 맡으셔서 두 번의 국제학술대회를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국제관계에서의 법률교류를 촉진하셨다. 아울러 2001년 이래로 동남아한국학회(The Korean Studies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의 한국학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말레시아?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라오스?캄보디아?호주 등의 9개 참여대학의 총장 또는 부총장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각 대학의 학장으로 집행위원회를 조직하여 학술대회, 심포지움, 동남아한국학 장학생제도 운영 등 동남아지역의 한국학연구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최 교수의 세대가 살아온 시대는 우리나라가 역사상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여 그야말로 도약을 이룩한 시대였다. 최 교수는 이러한 시대를 함께하면서 발전의 주역들을 길러내는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여 오셨다. 최 교수께서는 이제는 모든 부담에서 벗어난 자유인으로 돌아가 건강을 챙기면서 자기인생을 찾아 즐기면서 한편 학계와 사회의 원로로서 일선에서 뛰고 있는 오늘의 주역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살피는 역할을 하시기를 기대한다. 朴 鈗 炘 전 대구대학교 총장, 전 환경부 장관 신사(愼思)하는 신사(紳士) 최송화 교수님 대학의 기원과 그 원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는 단순한 호기심의 수준을 넘어서는 지적 탐구의 대상입니다. 중세의 아시아·아프리카 특히 오늘의 모로코를 드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수긍하는 전문가가 많지 않지요. 협동조합이나 길드조직으로 비롯된 1088년 설립된 볼로냐 대학, 그리고 솔본느 대학, 옥스퍼드 대학으로 뒤이어져 왔다는 설명에 이제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서양의 대학 아카데미즘은 법학 신학 의학이 중심축을 이루어 발전되어왔고 지금 또한 그에 크게 다름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튼 이들 서양의 모태대학들 가운데서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은 법학으로 시작하여 바로 그 법학분야로 명성을 높여왔고, 거의 1,0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대학대헌장(Magna Charta Universitatum)’운동의 발원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계의 인식은 이와 사뭇 다릅니다. 이를테면 (사)한국사회과학협의회 조직에 법학은 아예 빠져있으며, (사)한국학술협의회에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식민기간을 거친 탓인지 법학을 그저 관학(官學)으로 보는 고정관념, 그리고 관변지향성(官邊志向性)에 매몰된 이를테면 수험학습 분야로 단정하는 경향이 적지 않은 까닭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 소속 대학이나 법학 관련 학회를 제외하고 국가R&D기관이나 공·사정책 관련 연구조직을 대표하는 자리에 법학교수가 나선적도, 선임된 경우 또한 별로 없었습니다. 왜 이리 도입부분을 장황히 이어가는가 하는 의문은 청담 최송화 교수님의 지나온 발자취를 살펴볼 때 곧 드러나기 마련이지요. 인문과학·사회과학 분야 정부출연 국책연구기관 대표관리인으로 법학자가 선임된 첫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정부 행정개혁위원장을 거쳐 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으로 옮겨온, 해외에서 외려 더 알려진, 저명한 지식경영학자 김인수 박사는 재임 1년도 채 못 넘기고 낙상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시고 말았습니다. 이사장 궐위의 이 상황에서 당시 연구회 이사로 있던 필자에게 어김없이 떠올랐던 적격의 그 후임 후보자는 다름 아닌 최송화 교수님이었습니다. 다만 그 시점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기간을 벗어나 막 취임한 무렵이라 지원 전에 살펴보고 헤아려 볼 사항이 한 둘이 아닌 실로 예민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지요. 당시 새 정부의 국책연구기관 컨트롤 타워의 첫 번째 선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 알아온 최송화 교수님이 매사 신중하고 심사숙고하는 성품임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놀라울 바 없었지만 여러 날이 지나도 후보자로 나설지에 대한 가·부 간의 결심을 확인할 길이 없었지요. 부단(不斷)은 얼핏 결단을 쉽사리 못 내림으로 풀이들 하나 단절과 파탄을 부르지 않으려는 사려 깊음을 뜻하기도 한다는 점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드러납니다. 결과는 쟁쟁한 여러 후보자들의 경합 속에서 너끈하게도 1위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짐짓 앞에 나서기보다는 뒷줄에서 ‘신사(愼思)하는 신사(紳士)’의 모습이야말로 그때도 그 후에도 달라짐이 없습니다. 그 으뜸상징(트레이드마크)은 이 분을 평판하고 기리는 데 있어 첫 번째로 꼽게 되는 품성이라고 봅니다. 이 같은 덕망이 어디 하루아침에 길러진 것이겠습니까? 이 나라 의정사에 큰 자리매김을 하신 자당의 남다른 아드님 양육이 맺은 결과라고 할 것입니다. 잠시 얘기를 옮겨가지 않을 수 없군요. 20세기가 막 시작될 때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고 열린 정치가 허용되었던 국가는 지구상 오직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뉴질랜드입니다. 100여 년이 훌쩍 지나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법적으로 여성정치를 가로막아 자물쇠를 채운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시대반동적인 중동의 몇 개일 뿐입니다. 정부수립 석 달 전 헌법제정을 위한 국회의원선거가 이 땅에 시행되었습니다. 선거권·피선거권을 남·여 구별 없이 보장했던 천지개벽의 이 정치실험에 경향 각지 18명의 여성이 개척정신으로 도전했지만 한 분도 ‘제헌’국회에 입성하시지는 못했습니다(임영신의원은 그 이듬해 안동보궐선거에서 당선). 바로 이 당시 국가출범에 앞장 선 여성후보 18분 가운데 한 분이시며, 제3대 국회기 4년의 유일한 여성의원이고, 잇달아 제4대에 재선까지 하신 김철안 의원이 최송화 교수님의 모당이심을 제자나 후학 가운데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어느 경우에도 내세우지 않는 조용한 몸가짐의 아드님인 점을 아신다면 쉽게 이해하실 터이니까요. 그렇다고 마냥 얌전하게만 처신하고 뒷전에만 머물러 있는 분이라고 본다면 결코 그 분의 진면목을 못 보신 것 입니다. 10.26으로 대표되는 국가적 혼란과 질풍노도의 학생운동 바로 한 복판에서 서울대학교 학생처 부처장, 그리고 대학 내부의 혼란과 교체기인 1998년 서울대학교 부총장/총장직무대리 시절을 기억하신다면 또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 당시 이사장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통폐합을 단행하면서 ‘인문사회연구회’와 ‘경제사회연구회’ 사이의 조정과 통합을 말끔히 이루어낸 점 또한 기억에도 새롭습니다. 하나만 덧붙인다면 8년 전 한국공법학회와 별도로 한국행정법학회를 창립하시고 초대 회장을 맡으시는 어려움을 도맡으셨지요. 당나라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에는 희귀한 장수의 예시를 칠십(七十)으로 드는데 그쳤지만 청담(晴潭) 최송화 교수님에게는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축수(祝壽)일 뿐입니다. 일본식 약자체를 번안한 헌사는 더욱 예가 아닐 것입니다. 부디 오래 건강하시면서 신사하는 신사의 길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權 寧 卨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한국공법학회 고문 ― 일곱 번의 學恩 ― 感謝의 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1978년 9월, 서울대 법대 학부 2학년생으로서, 당시 법대 학생담당학장보를 맡고 계셨던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법대 교수님들에 대한 저의 선입관을 완전히 무너뜨릴 정도로, 선생님께서는 너무나 인자하시고 미남이시고 젊으신 교수님이셨습니다. 당시 유신독재 하에서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항상 학생의 편에 서서 저희들을 돌보셨고, 1980년 ‘서울의 봄’에는 서울대 학생부처장으로 학생들을 보호하시다가 고초를 겪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學恩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학교 앞에서, 그리고 선생님 댁에서, 밤늦게 맥주를 사주시면서 학생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법학교수’가 저렇게 멋있구나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의 전공인 행정법도 자연스럽게 좋아하였고, 결국 대학원에서 행정법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學恩입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1975년 牧村 金道昶 선생님의
刊 行 辭
훌륭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녀서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和의 철학을 몸소 보여주신 晴潭 최송화 선생님의 희수를 맞이하여, 선생님의 학문적 여정을 기리고 선생님의 평생의 헌신을 되새기고자 우리 모두의 존경심을 담아서 이 책을 봉정하고자 합니다.
작년 2월 제가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회장을 지내신 선대 회장님들께서 고희, 희수, 산수, 미수, 백수 등을 맞이하거나, 고인이 된 경우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는 때에는 이를 축하드리기 위하여 기념논문집을 봉정하는 축하의 마당을 마련하여 드리는 전통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하였고, 이에 따라 晴潭 최송화 선생님께서 희수를 맞이하게 되어 제일 먼저 기념논문집을 봉정하게 되었으니 경하의 마음이 더욱더 크고 흐뭇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국행정판례연구회는 우리나라 행정판례연구의 역사이고, 또한 행정판례를 두고서 선학과 후학이 시공을 초월하여 대화하고 만나는 곳입니다. 晴潭 최송화 선생님은 과거 어려운 시절인 1984년에 목촌 김도창 선생님을 도와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창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晴潭 최송화 선생님의 이력과 문주반생에 대하여는 박윤흔 교수님의 축하의 글에서 기리고 있기 때문에 더 언급할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무엇보다도 晴潭 최송화 선생님은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회장을 역임하시면서 연구회의 기반을 다지셨고, 우리 연구회의 오늘과 미래를 위한 소중한 다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특히 晴潭 최송화 선생님이 제8대 회장으로 재임하실 때 2007.8.17. 법원행정처로부터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아 2007.9.14.에 법인설립등기를 마쳐서 한국행정판례연구회가 사단법인으로 재탄생하였습니다. 총 142건의 행정판례를 주제별로 정리하여 행정판례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대역사인 「행정판례평선」의 발간을 제안하고 주도하시어, 21세기의 행정법학과 행정판례의 발전을 선도하는 계기가 마련되게 하셨습니다. 최근까지도 월례발표회에 직접 참여하시어 후학들을 격려하고 모범을 보이시는 등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계십니다.
지금 행정을 비롯한 국가 전체가 과거와는 현저히 다른 환경에 처하여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듯이, 행정판례 및 행정법을 비롯한 공법 역시 시대와 호흡하고 나아가 시대를 견인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최근에 젊은 회원님들이 월례발표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시각에서 행정판례를 새로이 자리매김하려는 매우 고무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행정상의 분쟁을 정의롭고 타당하게 해결할 책무를 지고 있는 실무가들과 이들의 관계를 때로는 교정하고 때로는 지원해준 이론가분들이 앞으로 공동체 속의 우리의 삶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행정판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소유하고 있는 분들의 모임인 우리 한국행정판례연구회를 지탱하는 힘은 무엇보다도 회원 여러분들의 상호간의 존경과 우정, 그리고 유대감으로부터 우러나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晴潭 최송화 선생님의 평생의 학문적 화두인 ‘公益論’을 계승하기 위해 ‘행정판례와 공익’을 대주제로 삼아 당대의 지혜를 집성한 이번 기념논문집은 변하고 있는 환경에서 행정판례연구 및 공법 그리고 나아가 법학의 새로운 모색을 강구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행정판례의 발전을 위한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수 있는 뜻 깊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기념논문집의 발간작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 한국행정판례연구회가 보여주는 이런 적극성과 역동성이야말로 행정판례 및 행정법을 비롯한 공법이 맞닥치는 쉽지 않은 시대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행정판례연구 및 공법학을 위한 위대한 이정표를 만드는 데, 많은 분들이 함께 주셨습니다. 특히 과거 2002년에 간행된 「法治行政과 公益」과 「現代公法學의 課題」에 이어 이번 논문집도 題字를 써주신 朴秉濠 교수님, 그리고 축하의 글을 써 주신 金南辰 교수님, 朴鈗炘 교수님, 權寧卨 교수님, 朴正勳 교수님 그리고 金容燮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축하의 글을 통해 晴潭 최송화 선생님의 이력과 활동상을 시공을 넘어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되어 기념논문집의 가치가 한층 더 올라갔음을 실감합니다. 특히 독일에서 옥고를 보내주신 슈토버 교수님(Professor Dr. Dr. h. c. mult. Rolf Stober)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옥고를 보내주신 학계의 교수님과 실무 법조계 여러분, 아울러 이 책이 계획에 따라 순조롭게 출간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노력을 해준 간행위원회 위원 여러분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다시 한 번 晴潭 최송화 선생님의 희수를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앞날의 행운과 만수무강을 축원 드립니다.
2018년 7월
간행위원회 위원장 金 東 建
賀 序
刊 行 辭
晴潭 崔松和 敎授님이 건강하신 모습으로 喜壽를 맞이하셨음을 축하드리며, 이를 축하하는 기념논문집에 글을 올리게 되었음을 영광으로 여기는 바입니다.
晴潭 崔松和 敎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첫인상이 우리 행정법학계에서 누구보다도 순탄하게, 또한 화려하게 학자의 길을 걸어오신 점이라 하겠습니다. 한국 최고의 인재의 산실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현재의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학문적 업적을 쌓으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셨고, 서울대학교 부총장 등 보직을 맡아 대학 및 고등교육의 발전을 이끄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大法院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大法院 司法政策硏究院 초대 院長,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 연구회 초대 이사장 등 대외적으로도 수많은 활약을 하셨음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晴潭 崔松和 敎授를 생각할 때, 우리나라 행정법학의 개척자이며, 토대를 닦으신 牧村 金道昶 博士의 총애를 받으신 愛弟子이신 점 또한 빠트릴 수 없다 하겠습니다. 行政審判法․ 行政訴訟法 改正案 審議委員會(法務部, 1983-1984) 委員 등, 金道昶 博士가 주도하신 각종 심의회에 동참하셨으며, 전체 세 권(상중하)으로 구성된 한국행정판례집(1976)의 발간에 참여하시는 등 金道昶 博士의 학문 활동의 동반자이셨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그 당연한 결과로서, 金道昶 博士가 창설하신 韓國行政判例硏究會의 회장을 역임하시는 등 지도적 인물로서 활약하셨으며, 金道昶 博士가 작고하신 후에는, 유업인 牧村記念事業會의 창립위원, 목촌법률상 심사위원, 회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계십니다.
한국, 일본, 중국 및 대만의 행정법학자로 구성된 東아시아행정법학회가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2012년 6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학회에서는 晴潭 崔松和 敎授가 이사장을 역임하셨는데, 필자(김남진)에게 기조연설을 행할 기회를 주신 바 있으며, 덕분에 저명한 행정법학자들을 상대로, 미숙하나마 현대행정법학이 지향할 길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晴潭 崔松和 敎授의 업적 가운데, 또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한국행정법학회”의 창설이라 하겠습니다. 2001년을 전후하여, 한국공법학회에서 분립된 “행정법학회”의 설립이 논의되었던바, 설립위원장이며, 초대 회장이신 晴潭 崔松和 敎授의 원만하고 탁월한 헌신이 있었기에 “한국행정법학회”의 탄생이 가능했다고 확신합니다.
“행정법”은 오랫동안 “國內公法”으로서 정의되어왔습니다. 행정법은 “국내법”이고 “공법”이기에 國際法이나 私法은 행정법과 무관하다는 뜻을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government만이 유일한 행정주체이던 시대의 유물이라 하겠으며, 公私協力(민관협력)이 강조되고, 그에 따라 복수의 government가 활약하는 governance의 시대에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global化로 인해 국내, 국외의 구분은 거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으며, 또한 새로운 유형으로서의 행정법인 行政私法(Verwaltungsprivatrecht), 私行政法(Privatverwaltungsrecht)이 등장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행정법의 목표인 “공익의 실현”은 포기할 수 없는 명제입니다. 이번 논문집이 晴潭 崔松和 敎授의 평생의 지향점인 ”公益論“을 바탕으로 ”行政判例와 公益“을 대주제로 삼은 것은, 비할 수 없게 바뀐 행정환경과 사회현실에도 불구하고 여하히 공익실현이라는 행정법의 존재이유를 견지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인식이 담겨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晴潭 崔松和 敎授께서 이와 같은 변화한 풍토에서도 계속 우리 행정법학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시기를 기대하며, 기원하는 바입니다.
金 南 辰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한국행정법학회 이사장, 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賀 序
晴潭 최송화 교수가 어느덧 희수를 맞이하셨다. 최 교수는 그동안 학문의 길을 꾸준히 걸어오시면서 동시에 그가 전공하는 학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많은 행정․입법․사법관련 전문기관에서도 커다란 족적을 남기면서 알찬 인생길을 바쁘게 달려오셨다.
최 교수는 우리 학계의 원로이면서 또한 훌륭한 인품을 가지신 우리 사회의 스승이시다. 언제나 온화한 웃음을 띠고 누구와도 친화적이어서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아 온 원로이시다. 최 교수는 전공하는 행정법학 연구에 충실하면서도 시야를 넓혀 폭넓은 연구를 하셨으며, 또한 여가를 선용하여 테니스․수영 등 운동이나 바둑 등에서도 거의 프로 수준의 실력을 가진 다양한 인생을 사셨다. 특히 바둑계에서는 최 교수는 아마 5단이라고 하며, 이창호․유창혁 등 프로기사 14명을 초청한 서울대학교 개교 50주년기념 바둑대회에서 바둑황제 조훈현 9단과 대결하여 4점 깔고 6집 승으로 이겨 도하 신문에서 최 부총장이 ‘기염’을 토했다고 보도했다.
최 교수와 나는 학문적인 동료로서 형제와 같은 친밀한 사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같은 대학의 선후배로서 다 같이 우리나라 행정법을 개척․발전시키신 목촌 김도창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거의 평생 동안 같은 행정법을 전공하는 학문의 길을 걸어왔다. 우리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함께 다녔으며, 젊은 시절 합숙하면서 목촌 선생님의 저서와 논문의 교정을 보기도 하고, 학회활동 등을 통하여 학문연구를 같이 하였다. 대학원 시절에는 최 교수 등과 함께 일반대학원, 행정대학원, 사법대학원의 전공이 관련된 학생들 30여 명이 UFOI(United Frontiers of Intelligence)라는 학술모임을 구성하여 활기차게 학술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최 교수가 1973년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깁스생활로 조교수 승진 후 첫 학기인 1974학년도 1학기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어 최 교수 이름의 행정법강의를 서울법대강의는 당시 문교부차관을 지내고 변호사 개업 중인 은사이신 김도창 선생님이 대강을 하시고, 서울상대강의는 내가 대강을 한 일이 있는데, 제자의 강의를 선생님이 대강하신 것은 두터운 제자사랑이라고 하겠다.
최 교수는 1971년에 모교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임명받은 후 2006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35여 년 동안을 한결같이 학문의 길을 걸어왔으며 그동안 행정법에 관한 많은 저서와 연구논문을 발표하여 학문발전에 커더란 업적을 남기셨다. 우리 동료 학자 분들은 최 교수의 자당이신 김철안 여사께서 큰 여성정치인으로 이승만 정부시절에 제3대 民議院의 홍일점 의원으로 보건사회분과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분이셨기에 최 교수께서도 언젠가는 학계를 떠나 정치를 하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끝끝내 학계를 지키셨다. 최 교수께서는 특히 ‘법치행정과 공익’, ‘공익론’ 등 공법학의 근본문제인 ‘공익’과 ‘법치주의’를 話頭로 하여 일관되고 깊이 있는 저서와 연구논문을 발표하였으며, 그 밖에 특히 행정쟁송관련문제와 통일을 대비한 ‘남북한 법체제의 비교연구’ 및 정보공개 등에 관한 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하셨다. 이들 저서 중 ‘공익론’은 대한민국학술원으로부터 우수학술도서로 추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목촌 김도창 선생님과 함께 편저한 8,000여 면에 달하는 ‘한국행정판례집 Ⅰ․Ⅱ․Ⅲ’ 집은 우리나라 행정법 판례연구에 있어 불후의 명저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또한 최 교수가 집필대표가 되어 편저한 ‘행정판례평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적인 판례평선으로 역시 명저작이라 하겠다.
최 교수는 학자로서만이 아니고 교육행정가로서도 커다란 업적을 남기셨다. 그는 그가 재직한 서울대학교의 부총장직을 거쳐 총장직무대리를 맡으셔서, 서울대학교 개교50주년의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민족의 대학, 학문의 대학, 세계의 대학으로’라는 발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울대법제정 및 법인화추진, 통합전산화달성, 연구문헌HUB대학정착, Super Computer 도입, 6․25 참전 학생에 대한 명예졸업장수여제도 도입 등 많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서울대학교발전에 크게 기여하셨다. 또한 최 교수께서는 한국공법학회 회장, 한국행정판례연구회 회장, 한국행정법학회 회장직 등을 맡으셔서 법학계의 발전에 공헌하셨다.
최 교수는 또한 상아탑에만 안주하지 않고 전공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국무총리산하 인문사회연구회(소관 9개 연구원) 이사장, 경제․인문사회 연구회(소관 23개 연구원) 이사장(통합연구회 초대) 직을 맡으셔서 우리나라 인문사회분야 싱크탱크의 개발 육성에 크게 기여하셨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의 위기’가 크게 거론되었으며, 이에 최 교수는 김여수 한국철학회 회장을 비롯하여 이인호 박사, 김우창 선생 등 철학, 역사, 문학, 교육 등 인문학 분야의 사회저명인사들로 ‘인문정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학술대회, 심포지움, 집담회, 연구모임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인문학의 위기의 극복과 대안마련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을 기우려 큰 성과를 내셨으며, 우리나라 인문학의 발전과 인문학진흥에 커다란 초석을 놓으셨다.
아울러, 국가의 미래의 발전을 위한 정책연구로서, 우선 첫 번째로 유럽연합(EU)을 모델로 장차 유럽연합과 같이 발전하기를 기대하면서 ‘21세기 동북아문화공동체(Asian Union, AU)의 구상’(2004)(편저)이라는 저서를 발간하였고, ‘국가의제 2015: 풍요와 평화의 미래한국’(2005)이라는 권위 있는 연구보고서를 내놓으며 정책연구를 미래학으로 발전시켰다.
최 교수는 또한 초대 ‘대법원사법정책연구원’ 원장직을 맡으셔서, 국민을 위한 사법, 열린 사법을 목표로 정하고,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법조계 내부 의견뿐만 아니라 외부전문가와 일반인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민사법․형사법․공법 등 관계 대형 학회들(9개 학회)과 MOU를 체결하였으며, 비단 법조계․법학계뿐만이 아니라 관련된 인문사회 분야와도 연구에 있어 서로 공동연구 협동연구를 하도록 하여 열린 사법의 길을 다지셨다. 최 교수께서는 또한 대외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하셨는바, 한국하버드옌칭학회(The Harvard- Yenching Visiting Scholars Association, Korea)의 회장을 맡으셔서 하버드옌칭연구소의 후원으로 <21세기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와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대규모 학술대회와, <세계화 속의 동아시아: 갈등과 타협>이라는 주제로 한국하버드옌칭학회 창립 5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東아시아행정법학회(한국․일본․중국․대만) 이사장을 맡으셔서 두 번의 국제학술대회를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국제관계에서의 법률교류를 촉진하셨다.
아울러 2001년 이래로 동남아한국학회(The Korean Studies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의 한국학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말레시아․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라오스․캄보디아․호주 등의 9개 참여대학의 총장 또는 부총장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각 대학의 학장으로 집행위원회를 조직하여 학술대회, 심포지움, 동남아한국학 장학생제도 운영 등 동남아지역의 한국학연구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최 교수의 세대가 살아온 시대는 우리나라가 역사상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여 그야말로 도약을 이룩한 시대였다. 최 교수는 이러한 시대를 함께하면서 발전의 주역들을 길러내는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여 오셨다. 최 교수께서는 이제는 모든 부담에서 벗어난 자유인으로 돌아가 건강을 챙기면서 자기인생을 찾아 즐기면서 한편 학계와 사회의 원로로서 일선에서 뛰고 있는 오늘의 주역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살피는 역할을 하시기를 기대한다.
朴 鈗 炘
전 대구대학교 총장, 전 환경부 장관
신사(愼思)하는 신사(紳士) 최송화 교수님
대학의 기원과 그 원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는 단순한 호기심의 수준을 넘어서는 지적 탐구의 대상입니다. 중세의 아시아·아프리카 특히 오늘의 모로코를 드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수긍하는 전문가가 많지 않지요. 협동조합이나 길드조직으로 비롯된 1088년 설립된 볼로냐 대학, 그리고 솔본느 대학, 옥스퍼드 대학으로 뒤이어져 왔다는 설명에 이제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서양의 대학 아카데미즘은 법학 신학 의학이 중심축을 이루어 발전되어왔고 지금 또한 그에 크게 다름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튼 이들 서양의 모태대학들 가운데서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은 법학으로 시작하여 바로 그 법학분야로 명성을 높여왔고, 거의 1,0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대학대헌장(Magna Charta Universitatum)’운동의 발원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계의 인식은 이와 사뭇 다릅니다. 이를테면 (사)한국사회과학협의회 조직에 법학은 아예 빠져있으며, (사)한국학술협의회에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식민기간을 거친 탓인지 법학을 그저 관학(官學)으로 보는 고정관념, 그리고 관변지향성(官邊志向性)에 매몰된 이를테면 수험학습 분야로 단정하는 경향이 적지 않은 까닭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 소속 대학이나 법학 관련 학회를 제외하고 국가R&D기관이나 공·사정책 관련 연구조직을 대표하는 자리에 법학교수가 나선적도, 선임된 경우 또한 별로 없었습니다. 왜 이리 도입부분을 장황히 이어가는가 하는 의문은 청담 최송화 교수님의 지나온 발자취를 살펴볼 때 곧 드러나기 마련이지요. 인문과학·사회과학 분야 정부출연 국책연구기관 대표관리인으로 법학자가 선임된 첫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정부 행정개혁위원장을 거쳐 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으로 옮겨온, 해외에서 외려 더 알려진, 저명한 지식경영학자 김인수 박사는 재임 1년도 채 못 넘기고 낙상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시고 말았습니다. 이사장 궐위의 이 상황에서 당시 연구회 이사로 있던 필자에게 어김없이 떠올랐던 적격의 그 후임 후보자는 다름 아닌 최송화 교수님이었습니다. 다만 그 시점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기간을 벗어나 막 취임한 무렵이라 지원 전에 살펴보고 헤아려 볼 사항이 한 둘이 아닌 실로 예민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지요. 당시 새 정부의 국책연구기관 컨트롤 타워의 첫 번째 선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 알아온 최송화 교수님이 매사 신중하고 심사숙고하는 성품임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놀라울 바 없었지만 여러 날이 지나도 후보자로 나설지에 대한 가·부 간의 결심을 확인할 길이 없었지요. 부단(不斷)은 얼핏 결단을 쉽사리 못 내림으로 풀이들 하나 단절과 파탄을 부르지 않으려는 사려 깊음을 뜻하기도 한다는 점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드러납니다. 결과는 쟁쟁한 여러 후보자들의 경합 속에서 너끈하게도 1위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짐짓 앞에 나서기보다는 뒷줄에서 ‘신사(愼思)하는 신사(紳士)’의 모습이야말로 그때도 그 후에도 달라짐이 없습니다. 그 으뜸상징(트레이드마크)은 이 분을 평판하고 기리는 데 있어 첫 번째로 꼽게 되는 품성이라고 봅니다.
이 같은 덕망이 어디 하루아침에 길러진 것이겠습니까? 이 나라 의정사에 큰 자리매김을 하신 자당의 남다른 아드님 양육이 맺은 결과라고 할 것입니다. 잠시 얘기를 옮겨가지 않을 수 없군요. 20세기가 막 시작될 때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고 열린 정치가 허용되었던 국가는 지구상 오직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뉴질랜드입니다. 100여 년이 훌쩍 지나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법적으로 여성정치를 가로막아 자물쇠를 채운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시대반동적인 중동의 몇 개일 뿐입니다. 정부수립 석 달 전 헌법제정을 위한 국회의원선거가 이 땅에 시행되었습니다. 선거권·피선거권을 남·여 구별 없이 보장했던 천지개벽의 이 정치실험에 경향 각지 18명의 여성이 개척정신으로 도전했지만 한 분도 ‘제헌’국회에 입성하시지는 못했습니다(임영신의원은 그 이듬해 안동보궐선거에서 당선).
바로 이 당시 국가출범에 앞장 선 여성후보 18분 가운데 한 분이시며, 제3대 국회기 4년의 유일한 여성의원이고, 잇달아 제4대에 재선까지 하신 김철안 의원이 최송화 교수님의 모당이심을 제자나 후학 가운데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어느 경우에도 내세우지 않는 조용한 몸가짐의 아드님인 점을 아신다면 쉽게 이해하실 터이니까요.
그렇다고 마냥 얌전하게만 처신하고 뒷전에만 머물러 있는 분이라고 본다면 결코 그 분의 진면목을 못 보신 것 입니다. 10.26으로 대표되는 국가적 혼란과 질풍노도의 학생운동 바로 한 복판에서 서울대학교 학생처 부처장, 그리고 대학 내부의 혼란과 교체기인 1998년 서울대학교 부총장/총장직무대리 시절을 기억하신다면 또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 당시 이사장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통폐합을 단행하면서 ‘인문사회연구회’와 ‘경제사회연구회’ 사이의 조정과 통합을 말끔히 이루어낸 점 또한 기억에도 새롭습니다. 하나만 덧붙인다면 8년 전 한국공법학회와 별도로 한국행정법학회를 창립하시고 초대 회장을 맡으시는 어려움을 도맡으셨지요.
당나라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에는 희귀한 장수의 예시를 칠십(七十)으로 드는데 그쳤지만 청담(晴潭) 최송화 교수님에게는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축수(祝壽)일 뿐입니다. 일본식 약자체를 번안한 헌사는 더욱 예가 아닐 것입니다. 부디 오래 건강하시면서 신사하는 신사의 길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權 寧 卨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한국공법학회 고문
― 일곱 번의 學恩 ―
感謝의 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1978년 9월, 서울대 법대 학부 2학년생으로서, 당시 법대 학생담당학장보를 맡고 계셨던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법대 교수님들에 대한 저의 선입관을 완전히 무너뜨릴 정도로, 선생님께서는 너무나 인자하시고 미남이시고 젊으신 교수님이셨습니다. 당시 유신독재 하에서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항상 학생의 편에 서서 저희들을 돌보셨고, 1980년 ‘서울의 봄’에는 서울대 학생부처장으로 학생들을 보호하시다가 고초를 겪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學恩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학교 앞에서, 그리고 선생님 댁에서, 밤늦게 맥주를 사주시면서 학생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법학교수’가 저렇게 멋있구나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의 전공인 행정법도 자연스럽게 좋아하였고, 결국 대학원에서 행정법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學恩입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1975년 牧村 金道昶 선생님의 행정판례집(상․중․하) 간행과 1980년 판례교재행정법의 출간에 주도적 역할을 하시고,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서울대학교 법학에 매번 ‘행정판례회고’를 기고하셨는데, 저는 선생님이 쓰신 행정판례회고를 보면서 행정법에 남다른 흥미를 가졌습니다.
선생님께서 1996년부터 서울대학교 부총장으로 봉직하시면서,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를 전임교수로 받아 주시고, 학자로서의 장래를 격려하고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이 세 번째, 가장 큰 學恩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선생님을 보다 더 가까운 자리에서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1999년 한국공법학회 회장이실 때, 저를 총무간사로 지명하시어 학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당시 학회를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살피시고 힘쓰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에 선생님의 추천으로 후임 權寧卨 회장님을 연구이사로 보좌하면서 학회에서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 선생님께서 이끌어 주신, 네 번째 學恩입니다.
선생님께서 1983년 법무부의 「행정쟁송제도개선을 위한 특별분과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여 행정소송법 전면개정에 참여하신 후, 2002년에 대법원 행정소송법개정위원회의 좌장으로, 2011년 법무부 행정소송법개정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셨는데, 두 번 모두 제가 개정위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온화한 포용력으로 많은 쟁점들을 지혜롭게 정리하셨고, 특히 저의 졸견을 존중하여 주시고 격려하셨습니다. 그때 아낌없이 보여주신 선생님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섯 번째 學恩으로 가슴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동아시아행정법학회 제2대 한국 이사장으로 2004년 제6회 한국 서울 대회를 주최하실 때, 저를 사무총장으로 임명하시어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보좌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치밀하고도 온화한 지도력에 저희 제자들은 온 마음으로 몸을 던져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였습니다. 대회를 마치고 큰 성공이라고 하시면서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선생님께서는 2012년 제10회 서울 대회도 성공적으로 마치시고 부족한 저를 제3대 한국 이사장으로 지명하셨습니다. 대외적으로 한국 행정법학계를 대표한다는 영광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의 學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함께 이사로 선임된 안철상 대법관, 한견우 교수, 김용섭 교수, 김유환 교수, 김연태 교수와 힘을 합쳐 2014년 제11회 중국 광쩌우 대회와 2016년 제12회 대만 카오슝 대회에 성황리에 참가하였고, 2018년 11월에 제13회 일본 오오사카 대회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2020년 11월 제14회 한국 대회를 제주도 서귀포에서 개최하기로 내정하고 준비하고 있는데, 저의 일생일대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면밀한 계획으로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2010년 한국행정법학회를 창립하시고 2012년까지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실 때, 저는 출판이사로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보좌하였습니다. 학회 창립 초기의 어려운 상황 하에서도 선생님의 지휘를 받들어 행정법학 창간호에서 제5호까지 나름 충실하게 발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학술지의 이름과 표지 디자인을 결정할 때 선생님께서 진지하게 숙고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행정법학회의 창립 학술대회에서 「행정법에 있어 판례의 의의와 기능」을 발표하고, 2013년 4월 학술대회에서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과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을 발표할 때, 선생님께서는 저를 별도로 불러 논문을 잘 썼다고 칭찬 하셨습니다. 변변치 않은 저의 이론이 선생님께 인정받았다는 것에 감격하고, 그때부터 더욱 연구와 논문 발표에 힘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일곱 번째 學恩인,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그 밖에도 선생님께서 2005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행정판례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실 때, 상임이사로, 그리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원장으로 봉직하실 때에는, 자문위원으로, 저는 항상 선생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喜壽를 맞이하여 아둔한 제자가 감히 ‘感謝의 글’로 선생님의 學恩을 기리고자 ‘일곱 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선생님의 크신 學恩이 어찌 일곱 번에 그치겠습니까. 일곱 번에 일곱을 곱해도 모자랄 만큼, 아니 그동안 40년 계속하여 선생님의 존재 자체가 學恩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온화한 인간미와 세심한 배려, 탁월한 지도력으로 한국 행정법학계와 저희를 이끄신 학계의 큰 기둥이자 산 증인이십니다. 선생님의 모범을 따라 저희도 미력이나마 학계를 위해 봉사하고, 후진양성을 위해 노력하며, 학문연구에 매진하겠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크신 學恩에 보답하는 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욱 健康하시고 萬壽無疆하시어 변함없이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고 지켜보아 주십시오. 선생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朴 正 勳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賀 詞
1. 머리말
온화한 人品과 따뜻한 가르침, 高潔한 君子의 삶을 살아오시면서 어려움에 봉착해도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學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晴潭 최송화 교수님(이하 “晴潭 선생님”이라 한다)께서 77세 喜壽를 맞이하셨다. 우선 晴潭 선생님의 喜壽를 기쁜 마음으로 축하드린다. 인생은 나무처럼 봄날에 새싹이 돋고 여름날 줄기에 잎이 무성하다가 가을날 낙엽이 지고 겨울에 裸木으로 돌아가며 새봄에 다시 새싹이 돋는 자연의 순환법칙에 따른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희로애락이 있는 한편의 드라마이다. 어느 때는 苦難과 悔恨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歡喜와 成就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晴潭 선생님은 한국의 공법학계를 견인한 공법학의 巨木인 동시에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양성한 교육자이시다. 晴潭 선생님께서 이룩한 成就의 輝光한 삶의 이면에는 주위에 잘 알려지지 않은 苦難의 순간이 함께 하였기에 그동안의 업적이 더욱 큰 빛을 발하게 된다. 晴潭 선생님께서 學問과 德行에 있어 비범하고 출중한 능력을 갖추시고 不動心과 平常心의 경지에서 中庸의 道를 一貫되게 견지하면서 한국공법학회와 한국행정법학회 그리고 한국행정판례연구회 등의 형성과 발전에 크나 큰 貢獻을 하신 업적을 후학이 기려 “晴潭 최송화 교수 喜壽기념 논문집 행정판례와 공익”을 간행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스승의 學恩을 누구보다 많이 받은 필자(이하 “弟子”라 한다)로서 존경하는 晴潭 선생님의 학문적·실천적 업적을 기리는 喜壽기념 논문집에 賀詞를 쓰게 되어 개인적으로 크나 큰 榮光이 아닐 수 없다.
弟子는 1983년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행정법을 전공하면서 晴潭 선생님으로부터 35 星霜 동안 訓導를 받아온 경험을 토대로 賀詞를 쓰려고 하니, 세월이 흐르는 강물처럼 빠르게 지나간 것을 실감할 수 있다. 晴潭 선생님의 어깨 너머로 학문하는 자세나 사람을 만나고 일처리에 있어서 德을 통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至誠無息의 삶을 살아오신 晴潭 선생님께서 많은 부족함이 있는 弟子가 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변함없는 격려와 지지를 해 주신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니 감사의 마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며 지난 날 晴潭 선생님과 함께하였던 소중한 追憶의 시간이 走馬燈처럼 지나가게 된다.
2. 晴潭 선생님의 人生旅程
晴潭 선생님은 해방전인 1941년 6월 27일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 88-7번지에서 부친 崔義元 공, 모친 金喆安 여사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김철안 여사는 자유당 시절에 2선의 국회의원으로 보건사회분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女流 정치인이었다. 불교신자인 모친께서는 어린 시절에 晴潭 선생님을 김천에 있는 直指寺에 자주 데리고 다니며, “기본이 튼튼해야 탑이 높이 올라간다”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晴潭 선생님은 “전쟁통에 피난갔다 고향인 김천에 다시 올라오니 집이고 뭐고 간에 모두 산산조각이 나서 새로 출발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유년시절에 大自然이 있는 고향에서 성장하면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찍 깨닫고 김천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와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였다.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려고 생각도 하였으나, 사회변화와 국가에 대한 기여 등을 생각하여 법학을 전공하기로 하여 법대를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학문세계로 진출하기 위하여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스승 牧村 김도창 박사를 만나 그의 지도를 받게 되는 그 시기가 晴潭 선생님의 학자적 삶에 있어서 變曲點이라고 할 수 있다.
晴潭 선생님은 1971. 4. 13. 가톨릭 집안인 대구출생의 주민숙 여사와 결혼하여 단란하면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해 오셨다. 晴潭 선생님께 내조를 아끼지 아니한 사모님은 숙명여대 미술대학장을 지낸바 있는 교수출신 한국화가로 활동하셨다. 사모님은 건강이 악화되어 2017. 8. 26. 哀惜하게 먼저 돌아가셨다. 晴潭 선생님은 젊은 날 가톨릭 집안의 부인을 맞이하느라 종교를 가톨릭으로 개종까지 하신 점에 비추어 琴瑟이 좋으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膝下에는 1남 1녀를 두었으며, 사위는 대학병원의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晴潭 선생님은 2006년 서울대에서 정년퇴임을 하시고 2007년 전북대 법학연구소 주최 초청강연에 오셨을 때 “법과대학 4년간의 시간동안 사색하고 토론하면서 보냈고, 그 당시 목표는 칸트, 헤겔, 켈젠 등의 이론과 종교의 경전처럼 가치와 꿈을 실현할 시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희망이 있었지만 4년간은 문화적 충격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법학도로서 향후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겠다는 꿈을 간직한 시기였다”고 법과대학 시절을 回顧하신 적이 있다.
晴潭 선생님은 각자는 각자의 시기에 생존하면서 자기만의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데, 법학의 가치는 정의, 선, 자유, 평등, 인권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중에는 한국적 가치도 있고, 인류보편적 가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울러 晴潭 선생님은 “지식의 공부는 신체부위 중 머리에 해당하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의 문제는 선과 악의 문제인 정의감의 문제로서 가슴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지식은 정의감으로 뜨거워져야 한다. 이는 비로소 실천을 통하여 가능하게 된다”고 역설하셨다.
晴潭 선생님은 교육자로서 知, 德, 體의 전인교육의 관점에서,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하는 것’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법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晴潭 선생님께서 계속 승승장구의 大路만 걸은 것이 아니다. 교통사고로 인해 生과 死를 넘는 岐路에서 장기간 입원하여 다행히 완치되어 다시 학자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술회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또한 1980년의 봄에 학생처 부처장과 학생처장 직무대리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 학생운동을 하던 학생을 잘못 지도·선처하였다는 이유로, 국가정보기관에 임의동행 연행되어 며칠간 조사 받고 풀려나 건강이 악화되어 장기 입원했었고, 보직 및 해외여행이 금지되었던 사정을 언젠가 들려주셨다. 그런가 하면 역설적으로 대학의 정교수 시절 보다는 서울대 법학연구소 전임강사 시절이 東奔西走하면서 역동적으로 보낸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술회하시고, 그 당시에는 법학개론뿐만 아니라 법학전반에 대한 강의를 하였으며, 특히 법사상사 과목을 강의하면서 법사상사가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晴潭 선생님은 195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이래 2006년 정년퇴임하실 때까지 모교인 법과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통해 탁월한 업적을 쌓아오셨고, 선비의 길인 학자의 외길 인생을 天職으로 여기고 성실히 살아오셨다. 오랜 기간 서울대의 校庭을 지키시며 학문연구와 후진양성 그리고 서울대학교 부총장과 총장직무대리 라는 대학행정의 중책을 맡으셨다. 晴潭 선생님은 대학에서의 停年 이후에는 학계의 지속적인 발전에 큰 貢獻을 하셨고, 국가사회의 부름에 따라 역할이 맡겨진 경우 그 조직을 종전보다 한 단계 格上하고 그 조직을 떠나신 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3. 晴潭 선생님의 學問世界
(1) 公益論의 새로운 體系
大丈夫는 삶을 살아가면서 立德, 立功, 立言의 不朽의 3가지를 남길 필요가 있다는 말이 膾炙된다. 晴潭 선생님은 立德과 立功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2002년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한 공익론은 晴潭선생님의 행정법의 학문적 지향점이 압축되어 나타난 저서라고 할 것이다. 이 저서는 立言에 해당하여 한국 공법학계의 오래 오래 기억되는 학술서로 자리매김 한다. 특히 晴潭 선생님의 공익론에 관한 체계적 연구서는 2004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晴潭 선생님의 독보적 이론서는 외국의 이론까지 망라하면서 체계적인 공익론으로 발전하여 한국행정법학의 위상을 높인 名著라고 할 것이다. 晴潭 선생님은 공익론의 연장선상에서 공익의 법문제화, 법에 있어서의 공익이라는 주제로 2006년에 서울대 법학연구소에서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2) 法治主義의 전개와 시대적 召命
晴潭 선생님은 2002년 화갑기념논문집의 제목을 “법치행정과 공익”으로 할 정도로 법치행정과 공익을 핵심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평생의 화두로 삼으셨다. 晴潭 선생님은 한국공법학회 제13회 국제학술대회에서 “한국 법치주의의 역사적 전개”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한 바 있다. 晴潭 선생님은 이 땅의 법치주의의 정착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법치주의를 전개하는 일에 공법학자로서 시대적 소명과 책무를 절감하셨다.
晴潭 선생님은 “우리의 경우에는 해방 후 국민주권의 법으로서 독일이나 일본과는 출발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압축경험하였으며, 한부분의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관점에서 법률문화의 소산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일제시대에 통용되던 특별권력관계와 공정력이론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 우리의 문제로서 인식되고 있는 것을 극복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3) 實事求是的 관점에서 행정판례의 중요성
晴潭 선생님은 1976년 한국행정판례집 (상), (중), (하)를 牧村 김도창 박사 등과 공편으로 발간하였다. 1980년에 김도창·서원우·김철용·최송화 4인 공저 형식의 “판례교재 행정법”을 법문사에서 발간하였다. 1980년에 발간된 4인공저의 판례교재 행정법은 그 당시 행정판례와 이론이 발전하지 않은 단계임에도 그 내용이 풍부하다고 할 것이다.
晴潭 선생님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회장을 2차례 연임하면서 행정판례연구회 월례발표회에서 국내의 판례연구에 그치지 않고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외국의 판례를 매년 연말에 발표하고 이를 행정판례연구지에 게재하는 전통을 세웠다. 또한 晴潭 선생님께서 역점을 두고 기획하여 95인 공저의 “행정판례평선”을 박영사에서 2011년에 발간한 바 있다. 위 책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지정된 바 있고 2016년 제2판이 출간되었으며,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공동작업의 결실이라고 할 것이다.
(4) 世界平和와 人類共榮에 이바지하는 공법학
晴潭 선생님은 미국의 하버드 옌칭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의 초청으로 동 연구소의 Visiting Scholar 및 Harvard Law School의 Visting Scholar로 연구년 생활을 보내셨다. 미국법에 관심을 가지시고 그동안 한국 하버드옌칭 학회의 회장을 맡아왔으며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계시다. 晴潭 선생님은 동아시아행정법학회 한국측 이사장을 南河 서원우 초대 이사장으로부터 물려받아 2차례에 걸치는 국제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과 아울러 다른 나라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적 위상을 높이셨다고 생각한다. 또한 晴潭 선생님은 오늘날 국경을 초월하는(boderless) 법적 환경하에서 법해석이 재판에 봉사하는 해석학으로 전락해서는 안 되고, 국제공동체안에서 세계인으로 커나가야 하며, 敎學相長의 관점에서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思考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5) 현안 문제에 대한 실용적 접근과 立法에의 參與
晴潭 선생님은 “북한의 법체제의 비교연구”라는 공저를 1972년에 출간하였고, “남북한 관계변화에 대비한 국내공법조정방안”을 공저로 1973년에 출간하였다. 또한 晴潭 선생님은 북한의 헌법과 통치구조, 북한법제총설, 남북한 행정조직의 비교 등 북한법제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통일에 대비하기 위한 법적인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이처럼 晴潭 선생님은 통일문제 뿐만 아니라 “학칙의 법적 성격과 국가감독”, “법과대학의 학과체계와 교과과정의 재검토”, “서울대학교법 제정에 관한 연구”, “교육개혁의 현황과 과제”, “부총장의 역할에 관한 국제비교연구” 등 교육법의 문제를 비롯하여 “한국의 입법기구와 입법자”, “한국에서의 입법의 기능과 문제점” 등 입법학에 관한 현안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수행하였다. 나아가 “한국행정법학 50년의 성과와 21세기적 과제”, “뉴 밀레니엄에 즈음한 한국공법학의 회고와 전망” 등 시대적 변화와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과제에 연구를 집중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晴潭 선생님은 행정절차법과 행정소송법 분야의 괄목할 만한 연구성과와 입법참여를 한 공적을 들 수 있다. 또한 晴潭 선생님은 1983년에서 1984년까지 법무부의 행정심판법·행정소송법 개정안 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94년에서 1996년까지 총무처 소관 정보공개법안 심의위원회 위원장, 행정절차법안 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晴潭 선생님은 무엇보다 2002년 법원행정처 행정소송법 개정위원회 위원, 2011년 법무부 행정소송법 개정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법제처 2013년 행정소송법 알기 쉽게 새로 쓰기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이처럼 晴潭 선생님은 행정법이 공리공론이나 탁상공론이 되는 것을 경계함과 아울러, 학문적 연구성과를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입법에 반영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입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4. 晴潭 선생님의 品格과 卓越한 力量
(1) 品格
晴潭 선생님은 대공무사(大公無私)의 정신을 기초로 선비와 군자의 中道적인 삶을 살아오셨다. 晴潭 선생님은 특유의 여유와 지도자의 조건인 風道와 謙讓의 德을 갖추시고 삶의 국면 국면마다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品格을 지키셨다. 晴潭 선생님은 茶山 정약용 선생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이려 하는 자는 남이 낮추려 할 것이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낯추려 하는 자는 남이 높여 줄 것이다”라는 뜻의 “자상자인하지(自上者人下之)요, 자하자 인상지(自下者人上之)”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품고 실천해 오셨다.
晴潭 선생님은 일처리에 있어서 매사 신중하시고 격식을 중시하시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듯이 가령 외부에 나가는 문장 표현에도 신경을 쓰셔서 하나의 문장이라도 좋은 표현이 나올 때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꼼꼼하게 완벽을 기하시는 철저함이 있으셨다. 晴潭 선생님은 春風大雅하신 風貌와 내면의 세계에서 自己節制를 철저히 하시는 外柔內剛형이시다.
晴潭 선생님은 仁義를 갖추시어, 자신에게 仁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仁으로, 다른 사람에게 義가 아닌 자신에게 義로 대하신 진정한 君子이시다. 공자가 道에 뜻을 두고, 德을 바탕으로 삼고 仁에 의지하고 禮에 노닐어라 라고 말씀한 것처럼 晴潭 선생님은 道에 큰 뜻을 두셨고, 德을 기본 바탕으로 하여 어짊에 의지하여 禮를 다하는 삶을 지금까지 살아오셨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晴潭 선생님은 제자들과 後學들에게 處世의 妙理와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신 고덕대현(高德大賢)이라 할 것이다.
(2) 卓越한 力量
첫째로, 晴潭 선생님은 행정법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卓越한 역량을 발휘한 大學者이며 후진 양성과 대외활동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도출하였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正統派 學者로서의 올곧게 대학에 머물면서 正道를 지향하였다. 晴潭 선생님은 젊은 시절에 건강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수 본연의 업무인 학문활동과 후학의 양성 그리고 대외적 봉사활동에 심혈을 기울이셨다.
晴潭 선생님은 한국공법학회 회장, 한국행정법학회 초대회장, 동아시아행정법학회 한국 이사회 이사장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한국공법학회 회장 재임 당시에 한국공법학회의 사단법인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셨다. 동아시아행정법학회 제2기 한국측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2차례에 걸친 동아시아행정법학회의 한국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고, 다른 나라에서 동아시아행정법학회를 개최할 때 한국측 발표자를 엄선하고, 행정법학자와 실무가를 인솔하여 함께 참석하는 등 한국행정법학의 위상을 높였으며, 동아시아행정법학회 한국, 중국, 대만의 이사의 숫자가 4인이던 것을 일본과 동일하게 6인으로 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둘째로, 晴潭 선생님이 回甲을 마치신 후 停年을 앞둔 시점에 국무총리 소속의 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통합연구회 초대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국가정책의 싱크탱크 차원에서 국가사회에 크게 공헌하셨다. 晴潭 선생님은 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2004년 “21세기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구상”이란 책을 평생의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권영설 교수님과 함께 공편의 형식으로 출간한 바 있다. 또한 바쁜 공무활동중임에도 주말에 개최되는 행정법이론실무학회에 매번 참석하시어 제자들과 격의 없이 자리를 함께 하여 주셨으며, 학회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거나 뒷풀이의 사적인 자리에서 여러 가지 업무환경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언젠가 누군가 그런 자리를 갈 경우에 대비하여 처신해야 할 규범이나 원칙에 대해서도 제자들에게 자상하게 말씀해 주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셋째로, 晴潭 선생님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이른바 신영철 파동이 대두되어 윤리성을 확보하면서 공익을 위해 활동한 법관을 사장시키지 않고 국가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공직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신 것은 높은 경륜에서 우러난 현명한 결정이라고 평가된다.
晴潭 선생님께서 2014년 2월 3일 사법정책연구원장으로 임명되어 그해 3월 10일 사법정책연구원 개원식을 갖고 2016년 2월 1일 퇴임식 까지 근무하셨다. 晴潭 선생님이 사법정책연구원의 재직 중 통일과 법-현재와 미래, 바람직한 법관임용방안, 개원기념 미래사법의 청사진, 개원 1주년 기념 법학의 새로운 지평과 미래사법정책 등 4차례 심포지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고, 바람직한 사실심 심급 구조의 설계 세미나, 북한 주민의 인권과 사법적 지원 방안 세미나 등 2차례 세미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아울러 사법정책연구원을 사법부의 싱크탱크로서 역량을 키우기 위해 국회입법조사처, 헌법재판연구원과 업무협약식, 한국공법학회, 한국민사법학회, 한국형사법학회, 한국비교사법학회와 업무협약식, 한국규제법학회와 업무협약식, 도산법연구회와 업무협약식을 가졌다. 晴潭 선생님은 건강악화에도 불구하고 2년간 직무를 성공적으로 마치신 후 제2대 원장인 호문혁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그 직을 인계하고 日常으로 돌아오셨다.
晴潭 선생님은 최초로 사법정책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일산의 사법연수원에서 개최된 역사적인 개원기념식과 취임식은 물론 2년 후에 거행된 퇴임식에서 보여준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晴潭 선생님은 취임식을 맞이하는 처음의 순간이나 퇴임식을 맞이하는 마지막의 순간이 首尾一貫되고 마음의 상태가 得意 冷然, 失意 泰然의 경지에서 봉사와 섬김의 지도자로서 平靜如一한 것을 보여주셨다.
넷째로, 晴潭 선생님은 1982년부터 2000년까지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 입법고시 등 각종 국가시험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감사원, 법무부 등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하였으며, 내무부, 법무부, 감사원 등 각종 중앙행정기관의 행정심판위원회의 위원과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재단법인 안중근의사기념관 건립위원회 이사, 재단법인 의사안중근장군장학회 이사장, 헌법재판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 징계위원회 위원, 대법관 제청자문위원장을 맡았다. 한편, 교육인적자원부 연구윤리확립추진위원회 부위원장, 제2기 교육개혁위원회 제4소위원회 정책분과 위원장, 새교육공동체위원회 대학위원회 위원장 등 교육관련 각종 행정위원회에 참여한 바 있다.
또한 晴潭 선생님은 1993년부터 2002년까지 3기에 걸쳐 9년간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위원과 국토이용계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국무총리 소속 지방자치제도발전위원회 위원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았으며,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사, 자연보호중앙협의회 이사, 한국행정연구원 이사, 삼성제일의료재단 이사, NGO 환경보호국민운동 전국총본부 총재, NGO 환경보호국민운동본부 전국환경청소년단 총장, 3·1문화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제48회 부위원장, 제49회, 제50회, 제51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이러한 광범위한 대외활동과 사회봉사의 과정에서 原則에 입각하여 公明正大한 방향으로 결론이 도출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하셨다. 현재에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자문위원, 특별자문 위원, 동남아한국학회 자문위원장, 재단법인 송복은 장학재단 이사 등의 사회활동을 하고 계시다.
5. 晴潭 선생님의 指向點과 價値觀 및 趣味
(1) 牧村 김도창 박사의 愛弟子이면서 繼承者
牧村 김도창 박사가 한국행정법학의 아버지라면 晴潭 선생님은 牧村 김도창 박사께서 생전에 가장 아끼는 愛弟者 중 한 분이다. 牧村 김도창 박사의 학문활동은 공동 작업이 많은데 晴潭 선생님이 함께 하면서 巨人의 어깨 위에서 더 큰 세계를 조감하면서 성장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1970년대 중반 한국행정판례집 상, 중, 하의 발간에 있어 牧村 김도창 박사의 공적이 매우 크지만, 그 활동의 저변에는 晴潭 선생님의 조력과 참여가 결실로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牧村 김도창 박사의 문하에서 수학한 최광률 전 헌법재판관을 비롯하여 김철용 교수님, 박윤흔 전 환경부장관과의 友誼를 돈독히 하면서 스승인 牧村 김도창 박사의 총애를 받으면서, 여러 가지 협동적인 일에 있어서 스승을 위해 내일처럼 발벗고 나서는 등 열과 성을 다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울러 牧村 김도창 박사께서는 2002년 작성한 晴潭 최송화 화갑기념논문집의 賀序에서도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40년 이상을 두고 학문의 세계에서 고락을 같이 해 왔다. 특히나 행정법관계 저술이나 판례 연구 등에 있어서 나는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2006년 이래 牧村기념사업회 창립회원, 총무이사, 부회장, 회장, 牧村법률상 심사위원, 부위원장 및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제1회부터 제11회까지 牧村법률상의 추진과정에서 김&홍 재단과의 원활한 업무협조를 통해 스승인 牧村 김도창 박사의 학문세계와 가치관을 알리는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점은 친 자식 못지않은 각별한 因緣이 작용한 것이라고 본다.
晴潭 선생님은 牧村 김도창 박사의 장례식에 護喪을 맡았고 작고 후에 追悼辭를 작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공법학회의 요청에 따라 공저 형식으로 제작한 “한국의 공법학자들-생애와 사상-”에 牧村 김도창 박사의 학문세계를 재조명하는 글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서울지방변호사에서 발간된 시민과 변호사 1995년 6월호에 “김도창 교수의 학문과 인생”에 관하여 글을 싣고 있다. 법제처에서 발간하는 법제 2005년 9월호 법제인코너에 晴潭 선생님께서 쓰셨던 “故 牧村 金道昶 박사(前 법제처장)”를 감명깊게 읽은 적이 있다.
晴潭 선생님은 2세대 행정법학자로서 牧村 김도창 박사의 1세대 행정법을 3세대로 연결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晴潭 선생님이 대학에서 길러낸 수많은 제자들이 학계 및 법조실무계에서 국가의 동량지재로 맹활약하고 있으며, 그 제자들 중에는 행정법분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여 활약하는 것을 알 수 있다.
晴潭 선생님의 스승인 牧村 김도창 박사께서 1973년 발간한 행정법 교과서 서문에서 “내일을 위하여 다리를 놓는 사람들은 자기 위로에 살아야 한다. 그 다리를 건너 미래로 전진하는 이들이 손을 흔들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晴潭 선생님은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시점인 1995년 서울대 법학 제36권 제2호에 게재된 “한국행정법학 50년의 성과와 21세기적 과제”라는 글에서 “오늘을 위하여 다리를 놓는 분들에게 그 다리를 건너 미래로 전진하는 이들은 손을 흔들어야 한다.”고 회고하였다. 晴潭 선생님께서 스승의 문구에 대응하는 글을 써서 사제지간의 모범적 사례를 만들어 냈다.
晴潭 선생님은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장으로 재직 중 식도암의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임에도 서울대 우천기념관에서 개최된 牧村 김도창 박사 서거 10주년 기념 공동학술대회의 폐회사 석상에서, “사과 한 개 속에 씨앗이 몇 개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사과씨 하나가 몇 개의 열매를 맺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신 말씀의 울림이 매우 컸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이처럼 晴潭 선생님은 스승인 牧村 김도창 박사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스승과 先學의 학문적 傳統을 제자들과 後學들에게 잘 전수하여 한국행정법학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등 大學者로서 뚜렷한 足跡을 남기고 있다.
(2) 제자들의 학문적 成就와 발전에 心血을 기울이심
晴潭 선생님이 서울대 법대 행정법 전임교수로 재직하는 기간 동안 서울대 행정법 교수로 있던 南河 서원우, 中凡 김동희 교수님과의 사이가 매우 좋으셨다. 1989년 행정법이론실무연구회의 창설당시부터 지도교수로 활동하신 이래 행정법이론실무학회로 발전하고, 한국행정법연구소를 발족하는 등 학회가 지금까지 長足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晴潭 선생님을 비롯한 세 분 선생님의 사이좋은 관계가 제자들이 서로 아끼고 공동으로 연구하는 모임으로 발전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晴潭 선생님을 비롯한 서울대 행정법 세 분 선생님은 공자가 말한 가르침에 차별이 없다는 “有敎無類”를 터득하시어, 모든 제자들에 대하여 차별 없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晴潭 선생님을 비롯한 세 분 선생님의 個性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합심 협력하시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여 매년 정초에 제자들은 선생님께 세배도 올리고, 선생님들께서 제자들에게 德談을 해 주시는 것을 들으면서 제자들이 많은 깨우침을 얻었고 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세 분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모신 제자들로서는 형제애를 느끼면서 지도교수님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세 분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랐다. 제자들은 학회의 모임에서는 학술적으로 치열하면서 서로 격의 없이 그리고 상호 인격적으로 존중하면서 학문적으로 자극을 받으며 발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세 분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주시고 좋은 방안에 대하여는 건설적으로 살펴봐주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晴潭 선생님은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의 생각이 더 큰 지혜를 낳는다”는 持論을 갖고 계셨다.
(3) 大局的 觀點에서 새로운 조직의 발전을 도모함
晴潭 선생님은 한국행정법학회의 창립에 깊이 관여하시어 사실상 주춧돌을 놓으시고 초대 학회장을 역임하여 행정법학자가 서로 나누어지는 것을 막으시고 화합적 공동체로서 기능하는 한국행정법학회로 발전시켰다. 한국행정법학회 창립총회에 한국공법학회 회장과 한국헌법학회 회장의 축사를 포함시켜, 3개 학회간의 협력을 통해 한국공법학회의 형해화를 막고 母학회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강조하셨다. 한국행정법학회 회장 재직시 공동연합학술대회를 치르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느 임원이 학회의 재원이 걱정되므로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것을 걱정하자, 晴潭 선생님께서는 “뜻이 있으면 길은 열리게 마련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는 일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가 중요하고 그 일이 꼭 추진할 만한 일이라면 재원마련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설득한 후 관철해 내신 逸話가 있다.
晴潭 선생님 회장 재직시인 2011년 18개 학회가 참가한 제1회 행정법분야 연합학술대회의 개최를 필두로 2016년에 17개 학회가 참여하는 제5회 행정법연합학술대회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성과는 晴潭 선생님께서 멀리 내다보시고 개별학회 차원을 넘어서서 행정법분야 여러 학회가 함께 학술발표회를 갖는 전통을 수립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晴潭 선생님께서 최초로 하신 일들이 많으시다. 특히 초대 사법정책연구원의 원장을 맡으시어 無에서 有를 창조한다는 각오로 법원내의 싱크탱크로 東奔西走하면서 기관의 위상을 높였다. 晴潭 선생님께서 연로하시어 弟子로서는 사법정책연구원장의 직무 수행이 약간은 걱정이 되었으나, 晴潭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조직을 창설하여 초석을 놓는 데 마지막으로 국가사회에 대한 봉사의 마음으로 흔쾌히 임하였다. 晴潭 선생님은 영문학자이면서 문학평론가인 김우창 대한민국 예술원회원을 사법정책연구원 자문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위촉하는 등 법학을 넘어서서 긴 안목으로 사법정책의 이슈를 바라보셨다.
“접시가장자리 너머를 보라(Über den Tellerrand blicken)”는 독일의 격언처럼 晴潭 선생님께서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넘어서서 큰 시야에서 일을 처리하신 점을 제자들과 후학들은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4) 價値觀: 和而不同과 君子懷德, 易地思之 및 誠實性과 至誠無息
먼저 晴潭 선생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것이 和而不同과 君子懷德, 易地思之 그리고 誠實性과 至誠無息의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晴潭 선생님은 君子가 표방해야 할 和而不同을 트레이드 마크로 하고 계시고 이름 속에 和가 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어울리며 소통하는 것이 바로 和而不同이라고 할 것이다. 아울러 “君子懷德, 小人懷土”라는 孔子의 말이 있듯이 晴潭 선생님은 德을 마음에 품고 계신 君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晴潭 선생님은 신중하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에 대하여도 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대인관계에 있어서 易地思之로 대하시면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깊게 생각하시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살펴보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아가 晴潭 선생님은 법학을 전공하는 후학들에게 “지적 정직성과 성실성이 중요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은 민법의 대원칙이면서 법학을 하는 사람의 덕목의 하나이다. 따라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그것은 법의 일반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역설하신 적이 있다. 晴潭 선생님은 평소 誠實과 正直에 기반하여 盡人事待天命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삶의 과정에 예기치 않게 봉착한 어려운 순간을 환경이나 남을 탓하지 아니하고 苦難을 自己鍊磨를 위한 기회로 여기며 精誠을 다하고 쉼 없이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는 至誠無息의 삶을 살아오셨다.
(5) 趣味: 上善若水와 流水不爭先을 추구하는 바둑
晴潭 선생님은 특히 아마 5단의 기력을 보유하고 있는 애기가로서 바둑을 두실 때에 布石을 중시하시고, 大勢的 형세판단에 기초하여 물 흐르듯이 유연하게 두시는 견실한 棋風으로, 선생님의 성격의 一面을 드러낸다고 할 것이다. 晴潭 선생님은 서울대 바둑부의 창립당시 부터 지도교수를 맡으셨고, 1977년부터 1996년까지 서울대와 동경대의 바둑교류 20년의 기보를 모아 부총장으로 재직하면서 “烏鷺의 饗宴”이라는 책자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晴潭 선생님은 건강이 악화되기 전까지 매년 개최되는 서울대 동창바둑대회의 심판위원장으로 참석하시었다.
晴潭 선생님은 소동파의 觀棋라는 시에서 나오는 이기는 것도 흐뭇한 일이지만 지는 것 또한 즐거움이라는 뜻의 “勝固欣然, 敗亦可喜”라는 말로 바둑의 妙味를 설명하시고, 승패를 다투지 않으면서 和局을 향해 흐르는 물처럼 오고간 수담을 통해 지성의 대화가 쌓여가고, 그를 통해 평화와 발전의 새시대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을 “烏鷺의 饗宴”에서 밝히고 계신다. 晴潭 선생님은 上善若水의 경지에서 流水不爭先의 자세로 승부를 떠나 道를 추구하는 심정으로 인생의 바둑을 두어 오신 것을 알 수 있다. 晴潭 선생님은 1997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아마추어 바둑협회 부회장의 직을 맡았으며, 유창혁 프로기사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는 등 바둑과 관련하여서는 폭넓은 행보를 보여주셨다.
2012년 바둑모임인 “流水會” 를 결성하여, 晴潭 선생님을 회장으로 모시고 총무를 맡은 弟子는 주기적으로 안철상 대법관, 연기영, 박균성, 오준근, 강현호 교수 등과 함께 서초동에서 手談을 나누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談笑를 나누곤 하였다.
6. 晴潭 선생님과의 작은 因緣
자치통감을 쓴 북송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司馬光은 “경사이우(經師易遇) 인사난우(人師難遇)”라고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경사를 만나기는 쉬워도 인생의 스승을 만나기 어렵다는 말로 표현하였듯이, 晴潭 선생님은 經師이면서도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신 人師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晴潭 선생님은 삶의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고 올바른 삶이 무엇인가를 몸소 실천해 주셔서 弟子는 많은 인생의 가르침을 터득할 수 있었다.
세상사는 緣起의 법칙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會者定離와 去者必返이 반복된다고 할 것이다. 1990년대 초반 弟子가 법제처에 재직시에 晴潭 선생님의 모친인 김철안 여사가 돌아가셨을 때 晴潭 선생님께서 경기고 55회 수첩을 주시면서 訃告를 알리기를 바라셔서 동기분 들에게 일일이 전화 연락을 취했던 적이 있다. 지나간 일이지만, 弟子는 1995년에 독일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법제처에서 과장 승진 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과천에 있는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晴潭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도 하였고, 그 과정을 이수한 후 법제처 사회문화행정심판담당관으로 승진을 하여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에서 과장으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弟子가 법제처를 떠나 5년간의 경희대 전임 교수 생활을 하는 동안 논문심사를 하러 경희대에 오셨던 적이 있다. 弟子가 경희대 교수생활을 접고 서초동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되자, 晴潭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걸어 위로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2002년 “晴潭 최송화 교수 화갑기념논문집”에 원고를 제출할 당시 변호사로 활동하는 바쁜 와중에도 법제처의 용역을 받아 수행한 연구주제중의 일부를 흔쾌히 晴潭 선생님의 화갑기념 논문집에 동참하기 위해 “內認可의 법적문제”로 제출하였던 기억이 있다.
晴潭 선생님께서 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던 2004년에 행정상 분쟁해결제도에 관한 한국법학원 주관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晴潭 선생님을 座長으로 모시고 발제를 하였는데, 弟子가 ADR 분야에 관한 연구활동과 특강 및 한국조정학회의 활동을 지속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弟子는 서초동의 법무법인 아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중 3년간 한국법제연구원의 비상임 감사로 활동하였다. 弟子가 법제처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지만, 晴潭 선생님의 激勵와 助言에 힘입은 바 크고, 비상임 감사로 활동하는 동안 晴潭 선생님은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법제연구원의 감사의 기능과 위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晴潭 선생님은 弟子가 2005년에 변호사 활동을 잠시 접고, 다시 학계로 옮겨 가게 되자 그 당시 대학으로 이동하게 된 여러 제자들과 함께 여의도 63빌딩의 음식점으로 초대하여 격려와 조언을 해 주시던 기억이 난다.
弟子는 2007년 3월 전북대 법학연구소장이 되자 학계 원로의 특강을 마련하여, 정년퇴임을 하신 晴潭 선생님을 그해 4월에 제일 먼저 특강에 초청하였고, 그 후에 법학계의 명망 있는 원로 교수님들을 순차적으로 초청하여 각 전공영역별 법학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하여 소중한 경험을 듣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아울러 2008년 6월에 전북대 법학연구소 주최의 “재판외 분쟁해결제도(ADR)의 법적과제-법학전문대학원에서의 ADR 교육의 활성화를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에 초청하였을 때 晴潭 선생님께서 흔쾌히 祝辭를 해 주러 오셨고, 전주에서 일박하신 후 晴潭 선생님을 모시고 진안 마이산의 탑사와 은수사 등 사찰을 둘러보는 작은 여행을 한 추억이 있다.
晴潭 선생님은 2008년에 개최된 동아시아행정법학회의 제8회 대만대회에서 법제처 행정심판업무의 경험과 ADR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弟子에게 “행정소송전단계의 권리구제방법 및 절차”라는 주제로 발표할 기회를 부여해 주었다. 또한 이홍훈 대법관께서 晴潭 선생님의 뒤를 이어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회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弟子로 하여금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연구이사를 맡아서 一助를 할 수 있도록 弟子를 추천해 주셨다.
지나간 일이지만, 2010. 6. 25. 한국행정법학회의 창립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고, 晴潭 선생님이 힘들어 하실 때 弟子로서 微力이나마 가까이에서 誠心껏 도와드렸던 기억이 난다. 弟子는 한국행정법학회 초대 기획이사를 맡아 晴潭 선생님께서 꼼꼼하게 일정을 챙기시고 완벽에 완벽을 다하는 자세를 어깨 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晴潭 선생님은 한국행정법학회가 화합적 학문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시고 임원 선임은 물론 학회 발표 등에 있어서 특정 학교 출신에 치우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신중한 결정을 내리시곤 하였다. 2017. 8. 晴潭 선생님의 사모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弟子에게 이른 아침에 연락을 주셔서 弟子는 그 사실을 여러 학회에 알리고, 현대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제일 먼저 달려가기도 하였다.
7. 맺음말
晴潭 선생님의 77세 喜壽를 기념하는 논문집에 축하의 글인 賀詞의 작성을 마치면서, 弟子는 晴潭 선생님께서 사법정책연구원장의 재임시절 건강이 악화되어 서울대병원에 치료를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不屈의 투혼으로 病魔를 이겨 내신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感懷가 새롭기만 하다. 晴潭 선생님은 학문의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실천의 영역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셔서 學問과 德行에 있어 공히 발전과 창성을 이루어 학덕쌍창(學德雙暢)의 경지에 오르셨고, 지금까지 平生 동안 선비로서 모범적인 學者의 삶을 살아오셨다.
무엇보다 한국행정판례연구회의 회장으로 재직하시면서 牧村 김도창 박사의 뜻을 이어받아 동 학회를 이론과 실무를 架橋하는 학술단체로 우뚝 서게 하신 功勞를 회원의 한사람으로 감사드리고, 한국공법학계와 행정법학계에 기여한 貢獻은 오래 오래 기억될 것이다. 晴潭 선생님께서 최근에 건강이 악화되어 弟子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병원의 재활과정을 통해 쾌유하시어 건강한 가운데 미래세대의 後學들이 학문적으로나 덕성적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시기를 염원한다. 晴潭 선생님께서 폭넓고 卓越한 力量과 視野를 갖추신 원로 공법학자로서 계속해서 제자들과 後學들에게 그동안 쌓으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와 經綸을 베풀어 주실 것을 懇請드린다.
晴潭 선생님께서 그동안 弟子에게 베풀어 주신 각별한 사랑과 學恩을 秋史 선생이 歲寒圖에 새겨 넣은 “長毋相忘”의 落款처럼 弟子는 오래 오래 잊지 않고 마음속에 기억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晴潭 선생님께서 健康과 活力을 다시금 회복하시어, 가끔씩 手談을 나누면서 소소한 행복과 마음의 平穩을 찾으시고, 나아가 萬壽無疆을 간절히 祈願하면서 賀詞를 마치기로 한다.
?ISO 19600: Ein Beitrag zur Regelkonformitat der offentlichen Verwaltung
(Rolf Stober) 1
?敎育判例에서의 公益(이경운) 17
?이행강제금에 관한 농지법 규정의 위헌 여부(금태환) 37
?公法人의 處分(이광윤) 59
?환경행정판결을 통해 본 공익실현의 명(明)과 암(暗)(이은기) 73
?행정판례를 통해 본 공익의 행정법적 함의와 기능(박균성) 101
??부담금관리기본법?을 위반하여 설치된 부담금의 효력(오준근) 125
?取消判決의 反復禁止效 二重危險禁止, 그리고 旣判力과 羈束力 및 訴訟物(박정훈) 151
?행정심판제도의 존재이유-독일에서의 행정심판제도 폐지·축소를 위한 입법과정과
그를 둘러싼 논의를 중심으로-(최정일) 169
?地方議會 再議決에 對한 提訴指示權者와 提訴權者(배병호) 197
?晴潭의 公益論과 公益關聯 行政判例(김유환) 225
?公開된 個人情報 處理의 違法性(함인선) 241
?정보공개법의 적용범위(유진식) 257
?韓國行政判例硏究會의 判例硏究의 歷史的 考察(김중권) 275
?청탁금지법상의 몇 가지 주요 쟁점-증정도서?외부강의?상호접대를 중심으로-
(신봉기) 301
?인공지능 규제법 서설(김광수) 319
?도로점용허가와 주민소송(선정원) 349
?元의 법서 수용과 세종의 법치주의(정긍식) 367
?判例硏究方法論(이원우) 387
?임대아파트의 분양가와 강행법규이론(김종보) 421
?公法上 留止請求權 實現의 法治國家的 課題(김현준) 435
?행정청의 행위기준으로서의 재량준칙에 대한 법적 고찰(강현호) 455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례에서 본 이중배상금지의 원칙(정하명) 485
?기초 지방의회의 재의결에 대한 제소권자-주무부장관의 제소권 인정 여부를 중심으로-
(문상덕) 499
?영업규제에 있어 ‘혁신’의 공익성 판단을 위한 試論(이희정) 519
?경찰의 위험인물 계도에 대한 법적 고찰(김성태) 539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독청의 직권취소의 범위와 한계(조성규) 561
?親日殘滓淸算과 追認的 法律(이현수) 589
?命令?規則 등의 不眞正行政立法不作爲에 대한 法院의 規範統制
-특히 獨逸의 規範補充訴訟을 中心으로-(정남철) 613
?行政訴訟에서 假處分 規定의 準用(하명호) 647
?合議制行政機關의 設置와 條例制定權(장경원) 671
?공공조달계약과 공익-계약변경의 한계에 관한 우리나라와 독일법제의 비교를 중심으로-
(김대인) 685
?公益訴訟과 行政訴訟(김태호) 709
?성소수자의 난민인정요건(최계영) 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