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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의 봄노래

홍신선 저 | 파란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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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756187 / 137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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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1944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하였으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예술대학과 안동대학교, 수원대학교 등을 거쳐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계간 󰡔문학・선󰡕의 발행인 겸 편집인 일을 하고 있으며, 시업에 전념하고 있다. 1965년 월간 󰡔시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서벽당집󰡕 󰡔겨울섬󰡕 󰡔삶, 거듭 살아도󰡕(시선집) 󰡔우리 이웃 사람들󰡕 󰡔다시 고향에서󰡕 󰡔황사바람 속에서󰡕 󰡔자화상을 위하여󰡕 󰡔우연을 점 찍다󰡕 󰡔홍신선 시 전집󰡕 󰡔마음經󰡕(연작시집) 󰡔삶의 옹이󰡕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실과 바늘의 악장󰡕(공저) 󰡔품 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잡지 않는다󰡕 󰡔사랑이란 이름의 느티나무󰡕 󰡔말의 결 삶의 결󰡕 등이 있고, 저서로 󰡔현실과 언어󰡕 󰡔우리 문학의 논쟁사󰡕 󰡔상상력과 현실󰡕 󰡔한국근대문학 이론의 연구󰡕 󰡔한국 시의 논리󰡕 󰡔한국시와 불교적 상상력󰡕 등이 있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현대불교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머리말

뜻하지 않게 귀촌을 했다. 그리고 변함없이 작품을 썼다. 이번 시집은 귀촌 이후의 작품들로 엮는다. 아래 글은 그 귀촌의 후일담이다.

“그 외진 산골에 들어가 어떻게 살어?”
“괜찮습니다. 대학 선생 오래 한 덕 보는 건 혼자서도 잘 논다는 거지요. 아마 저 혼자서도 잘 놀 겁니다.”
얼마 전 집안 형님 한 분을 만나 여러 얘기 끝에 이런 수작을 나누었다. 선대(先代) 조고(祖考)의 묘하(墓下)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귀촌을 한 다음이었다. 동탄 신도시에서 쫓겨 나올 때 우리 집안은 이곳 산골로 선대 조고들을 모시고 내려왔다. 그리고 십 수년을 지나 나는 학교 일을 접었고 백수 노릇도 그만 지겨워진 끝에 이 마을로 낙향한 것이었다. 덩달아 학교 일할 때 보던 각종 자료와 책, 잡지들도 여기에 와 비로소 제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여기저기 끌고 다녔던 책짐들인데 역시 나를 따라와 정착을 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지금껏 막연하게 무엇엔가 쫓긴다는 도시적 삶의 강박도 이곳에 와 나는 내려놓게 되었다. 대신 하루의 긴 시간 대부분을 혼자서 놀며 사는 팔자가 되었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 시간들에 제임스 조이스, 헤르만 헷세, 마루야마 겐지와 같은 작가들을 만나 논다. 그도 아니면 유실수를 비롯한 나무들 가꾸기나 터앝 일구는 일로 메운다. 그 탓일까. 나는 새삼 이곳의 새와 짐승, 나무들을 각별하게 상면하게끔 되었다. 뿐만인가. 아침저녁 놀과 달, 별들의 전에 몰랐던 품새와 움직임과도 만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들, 자연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작품들 속에 두루 자리 잡는다. 겸해서 졸시에다 “앞산 하늘 끝 뜬 노을 아내 삼고 뒷산 고라니 자식 삼네” 하는 허황한 수작까지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일찍이 송나라 때 시와 그림만을 그렸던 전업 시인 임포(林逋)는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했다. 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은거지의 매화를 아내로 삼고 두루미를 자식 삼아 살았다고 한다. 또 죽을 때는 생평에 썼던 시와 그림을 모두 불살랐다고도 한다. 그렇다. 저 철저한 은일의 삶을, 그 흥취를 내 어찌 감히 흉내라도 낼 터인가. 그렇긴 해도 마지막 생을 위해 들어온 이 산골 자연 공간이야말로 내 말년 와유(臥遊)의 창작 산실이 아닐 것인가 싶다.
―「산골 자연과 보내는 한 시절」

2018년 이른 봄 오류헌(五柳軒)에서

책 속에서



합덕장 길에서

아침나절 읍내 버스에 어김없이 장짐을 올려 주곤 했다
차 안으로 하루같이 그가 올려 준 짐들은
보따리 보따리 어떤 세월들이었나
저자에 내다 팔 채소와 곡식 등속의 낡은 보퉁이들을
외팔로 거뿐거뿐 들어 올리는
그의 또 다른 팔 없는 빈 소매는 헐렁한 6.25였다
그 시절 앞이 안 보이던 것은 뒤에 선 절량 탓일까
버스가 출발하면
뒤에 남은 그의 숱 듬성한 뒷머리가 희끗거렸다

그 사내가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깻박치듯 생활 밑바닥을 통째 뒤집어엎었는지
아니면 생활이 앞니 빠지듯 불쑥 뽑혀 나갔는지
늙은 아낙과 대처로 간 자식들 올려놓기를
그만 이제 내려놓았는지
아침 녘 버스가 그냥 지나친 휑한 정류장엔
차에 올리지 못한
보따리처럼 그가 없는 세상이 멍하니 버려져 있다

읍내 쪽 그동안 그는 거기 가 올려놓았나
극지방 유빙들처럼 드문드문 깨진 구름장들 틈새에
웬 장짐들로
푸른 하늘이 무진장 얹혀 있다 ***


늦깎이 공부

무너진 축대 위 양귀비 붉은 꽃이 스스로 피었다 저절로 진다.

그 자리 해진 구멍이라도 남았나
살펴보면 세제로 씻은 듯 흘린 거 묻은 거 없는 허공이 천연덕스레 깊은데
내 가고 난 뒷자리는……

경전 한 페이지 사적(私的)으로 펴든 한해살이 저 풀에게도
이제 한 무릎 꺾고
방과 후 뒤늦은 나머지 공부
졸업인 듯 해야 하리. ***


물도 때로는 불길이다

서울 아파트 거실서 지내던 난 화분들을
시골집으로 데려와 마당에 내놓는다.
어리둥절 며칠 뒤 난 잎에 거뭇거뭇 흑반이 끼기 시작한다.
하나둘 예외가 없다.
긴 잎은 가운데가 갈라지고 이내 잎끝부터 마른다.
결국 실내에서 컸던 난 잎들
모두 말라 떨어진다. 지난날 강직함을 털썩털썩 내려놓는다.
자디잔 난석 틈에는 새 촉들이 솟는다.
품새의 크기와 색깔을 바꿔 밀어 올린 저 민낯들
낯선 바람과 햇볕에 근성 바꿔 어울리는
단순 적응인가 방어인가
머잖아 죽을 자리 잡는 짐승인 듯
여기 으늑한 산골 마을을 골라 나는 왔다.
귀촌은 도연명(陶淵明)이 원조지만 이 구석진 동네 아무개로 와
새참에 몇 잔 털어 넣는 막소주가
허기진 내 내벽에 홧홧한 불길로 치붙어 오르는데
저는 무엇에 허기졌는가 자질한 고랑물이 터앝의 두둑마다
흙을 머금고 위로 위로 치솟는 걸 본다.
보고 있으면 꼭 절정까지 솟구치는 불길이다.
퇴경(退京) 전 달래고 쓰다듬던 서울을 내려놓고
적응인지 방어인지
본색을 바꿔 가며 이즘 나도 새 촉들을
절정까지 푸른 불길들로 밀어 올린다. ***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가을비 13
우두커니 14
직박구리의 봄노래 15
봄꽃 적막 16
귀촌 18
폭염 20
합덕장 길에서 22
늦깎이 공부 24
한 고전주의자의 독백 25
뭘 허공에 쓰나 26
닷새 장날 28
달개비 30
별똥 31
물도 때로는 불길이다 32
할 34

제2부
생활 37
경칩 38
먼 길 40
입춘 근방 42
동화 44
왕벚나무 꽃 45
헌책방 46
왕소금 점심 47
새우젓 육젓 48
강, 하구에 와서는 49
단비(斷臂) 50
어느 건곤이 있어 51
만사(輓詞) 52
가을 햇살 54
겨울 미니어처 55

제3부
아, 그 나라 59
Please, Non Die 60
만화경 62
그날이 오면 64
카톡질 한참 65
말에 관한 명상 68
호접몽 70
이즘 내 마음에는 71
겨울나무 72
싸락눈 치는 날 73
왜 솔은 늘 푸른가 74
이런, 나도 어치과인가 76
건망증 78

제4부
선물 81
문장 노동 82
비염 84
동혼 85
밥 한 그릇 86
어머니, 엄마, 맘…… 88
나사 90
바로 그런 아침 91
엘니뇨 이상기후 92
바퀴 없는 생 94
전동차 안에서 96
우리 동네 작황 98
이건 아니지 그럼 99
활인심방, 예대로 102
상강 104
겨울 상수리나무 106
의두암에서 107

해설
한용국 무위의 빛, 허공의 시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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