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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복수 조지 오웰은 틀렸다! 다시 쓴 조지 오웰의 1984 (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추천도서!)

피터 후버 저 | 박선주 역 | 구민사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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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8135843 / 480쪽 112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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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오웰의 문장으로 오웰을 긍정하는 동시에 부정하는 이중사고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 조지 오웰의 명작 <1984>는 출간 이후 지금까지 미래를 상상하는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는 책이다. 특히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연상되거나 그에 가까워진다는 불안감이 강해질 때 <1984>에 대한 관심은 더욱 치솟는다. 실제로, 2017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 아마존에서 <1984>의 판매량이 무려 9500% 급증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출처 : http://www.ytn.co.kr/_ln/0104_201702022247049250).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취임식 이후 역대 취임식 중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며 거짓말을 하여 논란이 일었고 이후 백악관 고문이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는 이상한 단어를 만들며 변명했는데, 이것이 마치 <1984>의 진리부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장 사랑받는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서 억압과 통제의 수단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텔레스크린의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는 당시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데 일조했지만 이것은 또한 정반대의 의견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피터 후버는 컴퓨터를 사용해 <1984>를 새롭게 써냈다. 오웰의 모든 저서를 자신의 개인용 컴퓨터로 스캔한 후 오웰의 언어를 사용하여 책을 완전히 다시 쓴 것이다. 그는 자유자재로 픽션과 논픽션 챕터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설명과 주장을 완벽하게 보완하면서 새로운 결론을 내리기 위해 오웰의 계획을 발전시킨다. 후버의 시각에서 새롭게 탄생한 세계는 끊임없이 증가하는 정보, 평등한 기회 및 선택의 자유가 있는 유토피아이다. 피터 후버는 <1984>에서의 오웰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꼬집는다. 특히 텔레스크린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과 자유 시장에 관해 조지 오웰이 크게 틀렸다고 역설한다. 오웰은 고도화 되는 기술이 오히려 ‘원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를 해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버는 그가 틀렸다고 말한다. 오웰은 기술이 특히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의 협력을 증진시키며 전 세계적으로 소통 가능해지는 네트워크로 인해 물건뿐만 아니라 아이디어까지 공유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으며,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누구와 협력 또는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 세계를 하나로 통하게 만드는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하거나 물건을 사고 팔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 또한 가지고 있다. 오웰은 자유 시장과 자본주의 경제가 매우 불평등한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가 예술가들의 자유마저 빼앗는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고 풍족하게 살기 위해선 남들이 살 만한, 팔 수 있는 물건 또는 작품을 생산해야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후버는 자유 시장이 사람들 간의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불평등’이라는 것은 늘 존재하는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지 않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림에 탁월한 소질을 보이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글을 쓰는 소질이 탁월하다. 자유시장이 저마다 다른 재능 혹은 약점을 평등하게 만들어줄 순 없지만,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자신이 가진 조건을 이용할 자유를 제공한다. 즉 기회의 평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오웰은 기술과 시장의 힘이 모두를 감시하는 통제 상태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후버는 그와 완전히 반대라고 생각한다. 그는 <오웰의 복수>에서 기계는 적이 아닌 친구이며, 선택의 자유는 평등보다 가치 있고, 전체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근거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텔레스크린 혹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사람과 그것 사이에 억압하는 자와 억압당하는 자의 관계가 아닌 누구나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가 보장받는 시대, 새로운 기술과 사람의 파트너십을 낳는다고 말한다. 조지 오웰의 <1984>와 피터 후버의 <오웰의 복수> 중 어떤 책에 고개를 끄덕일 것인가? 여전히 <1984>의 그늘 아래 영향력을 받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이 필독해야 할 도서임이 분명하다.

저자 소개

  • 저자 : 피터 후버
저자 피터 후버
맨해튼 정책연구소Manhattan Institute for Policy Research의 선임연구원이자 <갈릴레오의 복수>의 저자이다. M.I.T. 공학박사이고, 하버드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대법원 서기를 지냈다.

역자 박선주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번역과를 졸업하고 기독교 출판사와 아동문학 출판사 편집부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프랑스어와 영어로 된 책들을 소개하거나 번역하고 있으며, <프란츠와 클라라>, <동방의 항구들>, <세계를 읽다 독일>, <한밤의 위고>,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등을 번역했다.



역자 소개

  • 역자 : 박선주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번역과를 졸업하고 기독교 출판사와 아동문학 출판사 편집부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프랑스어와 영어로 된 책들을 소개하거나 번역하고 있으며, <프란츠와 클라라>, <동방의 항구들>, <세계를 읽다 독일>, <한밤의 위고>,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등을 번역했다.

책 속에서

[1]
나는 이 책을 쓸 때 글이 막혀 힘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웰의 인생을 그의 눈으로 그려볼 필요가 있을 때마다 그 자신이 직접 기록한 글들을 즉시 참고할 수 있었다. 내 목적에 맞으면 그의 글에서 개별 단어나 이미지, 구, 문장 들 때로는 단락 전체를 끌어다 썼다. 때로는 재배치하거나 덧붙이거나 잘라내거나 도치시키거나 뒤바꾸거나 변조했다.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그저 철저히 오웰식의 죄, 즉 컴퓨터상에서, 그리고 컴퓨터 자체가 범하는 표절과 위조, 예술적 파괴, 역사적 수정주의를 범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르다는 말인가? 사실 오웰도 저지른 범죄인데, 나만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내가 일을 끝내자, 이 책이 나왔다. 오웰의 이야기가 다시 써졌다. 그의 검은색이 흰색으로 변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손에서 그렇게 되었다. 거의 말이다.
- 19쪽


[2]
텔레스크린은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가? 무엇과 무엇이 연결되는가? 어디서 어떻게 모든 사람을 지켜보며, 누구를 지켜볼지 선별하는가? 오웰은 결코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그는 그의 책이 완전히 의존하고 있는 기술의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단 한 부분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내부 당원 중 극소수의 특권층만 자신들의 텔레스크린을 끌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을 볼지 관리할 수도 없다. 《1984》에서 ‘다이얼’(텔레스크린과 관련해서)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 그것도 우연인 것처럼 등장한다96). 진리부의 직원들은 텔레스크린 자료 요청 파일을 보관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 자료들은 기송관을 통해 배달된다. 기발하고 혁신적인 첨단 기술에 근거해서 책 전체를 통합하려면 그 기술적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독자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 40쪽

[3]
당은 텔레스크린을 보았고 굴종의 세계를 상상했다. 당은 이것, 오직 이 점에 대해서만 옳았다. 모든 의사소통은 항복하는 행위이고 사적 자유를 잃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한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자유는 정말로 굴종이다. 자유로울 때 우리는 비밀을 털어놓고 죄를 고백하며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이 된다는 것의 본질은, 친밀한 교류가 불가능할 정도까지 사적 자유를 강요하지 않고 결국에는 삶에 굴복할 준비가 되는 것인데, 이것이 다른 개인을 사랑하는 데에 따르는 불가피한 대가(代價)이다. 자유의 본질은 굴복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또한 패배가 사랑의 본질로서 기꺼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 262쪽

[4]
이제 우리는 이중사고가 이 말 자체를 만들어낸 오웰의 글 전체를 엮고 있다는 사실에 거의 놀라지도 않는다. 시장은 자신감이 넘쳐 자유롭게 시작해서 기생충 같은 독점으로 끝난다. 미국의 자유는 토마스 제퍼슨으로 시작해서 제1 활주로로 끝난다. 사랑은 줄리아와 함께 시작해서 쥐들로 끝이 난다. 인생은 우정으로 시작해서 패배로 끝난다. 빈곤과 사회주의, 영국, 미국, 오웰은 이 모든 것을 사랑하고 동시에 증오한다. 왜냐하면 모두 아름답게 시작해서 추하게 끝나기 때문이다. 또는 그 반대이기 때문일까? 흑(黑)은 백(白)이고, 전쟁은 평화이며, 자유는 굴종이고, 무지는 힘이다. 이중사고가 전부다.
그리고 이것이 더욱 헷갈리게 하는 커다란 퍼즐을 만든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모든 것의 양면을 그렇게 명백하게 본 사람이 기계 자체가 적이라고 왜 그렇게 분명히 믿었을까? 오웰은 왜 텔레스크린에 대해서는 결코 이중사고를 하지 않았을까?
- 362쪽

[5]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도 지배한다.”라고 오웰은 《1984》에 썼다. 어제 일어난 일을 우리가 바꿀 수 있든 없든, 우리는 어제의 문학 신사들이 오늘 일어나리라고 했던 말은 확실히 바꿀 수 있다. 오늘 일어날 일에 대한 어제의 예측을 긍정하거나 부인하는 일은 우리의 소관이다. 따라서 1984년은 그 시대를 사는 우리의 것이지, 그것을 쓴 그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1984》와 예측을 넘어서는 모든 책들도 역시 그래야 한다. 미래는 ‘그럴 것이다’도, ‘그래야 한다’도, ‘그렇게 될 것이다’도 아니다. 미래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들이 과거를 바꿀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을 만들어 나갈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382쪽

목차

서문

1부 기계

2부 시장

3부 자유

4부 이중사고

감사의 말

참고 도서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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