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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열두 개의 달 시화집 7월

시리즈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6]

윤동주 외 15인 저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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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6324360 / 112쪽 / 125g / 110 x 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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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제임스 휘슬러의 음악 같은 그림과 함께
비를 머금은 여름, 7월의 시를 만난다

최고의 명화와 최고의 시(詩)가 만나, 계절을 이야기한 큐레이션 시화집이 출간되었다. 한국인이 오랫동안 사랑하고 간직해온 시와 명화 그리고 열두 달 계절의 느낌이 결합된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의 7월 편인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에는, 음악 같은 그림으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제임스 휘슬러의 그림과 윤동주, 백석, 정지용 등 총 16명이 여름을 노래한 시를 모았다.
제임스 휘슬러는 어떤 주의를 모방하지 않고, 자기만의 화풍을 만들어 갔는데, 그의 풍경화를 보면, 바람이 불어오는 기류를 포착하여 황량하고 불완전하지만 자연스러움을 색채만으로 예술적으로 표현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책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에 실린 그의 음악 같은 미술 작품은 시심(詩心)이 깊은 시와 어우러져 독특한 감상의 미를 만들어낸다. 교과서에서 한 번쯤 만났던 시인들의 시를, 다시 찬찬히 읽고 하나 하나 음미하다보면, 잠깐이나마 여유를 갖게 된다. 바쁜 하루를 보내며, 재미도 감동도 관념도 잊었던 당신도 감미한 생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제임스 휘슬러의 음악 같은 그림과 함께 비를 머금은 여름, 7월의 시를 만난다 최고의 명화와 최고의 시(詩)가 만나, 계절을 이야기한 큐레이션 시화집이 출간되었다. 한국인이 오랫동안 사랑하고 간직해온 시와 명화 그리고 열두 달 계절의 느낌이 결합된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의 7월 편인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에는, 음악 같은 그림으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제임스 휘슬러의 그림과 윤동주, 백석, 정지용 등 총 16명이 여름을 노래한 시를 모았다. 제임스 휘슬러는 어떤 주의를 모방하지 않고, 자기만의 화풍을 만들어 갔는데, 그의 풍경화를 보면, 바람이 불어오는 기류를 포착하여 황량하고 불완전하지만 자연스러움을 색채만으로 예술적으로 표현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책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에 실린 그의 음악 같은 미술 작품은 시심(詩心)이 깊은 시와 어우러져 독특한 감상의 미를 만들어낸다. 교과서에서 한 번쯤 만났던 시인들의 시를, 다시 찬찬히 읽고 하나 하나 음미하다보면, 잠깐이나마 여유를 갖게 된다. 바쁜 하루를 보내며, 재미도 감동도 관념도 잊었던 당신도 감미한 생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화가, 제임스 휘슬러의 음악 같은 그림과 함께 비를 머금은 여름, 7월의 시를 만난다 제임스 휘슬러(James Whistler)는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지만, 해외에서는 대학 미술학개론 수업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한 작품의 화가로 유명하다. 바로 ‘미국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그의 어머니를 그린 초상화이다. 검정색 드레스에 흰색 레이스 모자를 쓴 60대 여성을 그린 이 작품 <회색과 검정색의 조화, 1번-화가의 어머니>는 자애로운 어머니상으로 상징되기도 하지만, 사실 작가는 그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야기나 서사를 담은 그림이 아닌,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하며, 화면의 기하학적인 구도나, 색채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휘슬러의 풍경화를 보면, 그가 바람이 불어오는 기류를 포착하여, 황량하고 불완전하지만 자연스러움을 색채만으로 예술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미술과 음악이 공통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작품명에 심포니, 녹턴, 노트 등의 음악 용어를 사용했다. 감정의 순간과 기류를 포착하여 시어로 탄생시키는, 시의 창조 과정 역시 그러할 것이다. 미술은 미술 자체로, 시는 시 자체로 미학이다. 천둥소리가 저 멀리 들려오는 여름, 시와 함께 떠나는 마음의 휴가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 중 7월 편인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의 제목은, 만엽집의 단가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에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에 소개되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시가 되었다.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 구름이 끼어서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 그러면 널 붙잡을 수 있을 텐데 //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며 /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해도 / 당신이 붙잡아 주신다면” 천둥 번개가 몰려오는 여름날의 이별 장면이, 휘슬러의 구름이 잔뜩 낀 바다 풍경화와 잘 어우러진다. 윤동주의 <비 오는 밤>은 휘슬러의 <검정색과 금색의 녹턴 떨어지는 불꽃> 작품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밖에 이장희의 <하일소경(夏日小景)>, 이육사의 <청포도>, 정지용의 <바다 1>, 노천명의 <바다에의 향수> 백석의 <비> 등 총 16명 시인들의 현대 시들이 7월의 감성을 한껏 돋우고 있다. 손 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작은 시집을 펼치면, 시 한 편과 그림 한 점에 잠시 마음의 먹구름이 걷히는 듯 청명함을 느낄 수 있다. 교과서에서 한 번쯤 만났던 시인들의 시를, 다시 찬찬히 읽고 하나 하나 음미하다보면, 잠깐이나마 여유를 갖게 된다. 바쁜 하루를 보내며, 재미도 감동도 관념도 잊었던 당신도 감미한 생기를 느끼며 마음의 휴가를 떠나게 될 것이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 소개 달마다 느껴지는 계절의 감성을 고전 시와 명화로 큐레이션한 시화집. 총 80여 명의 위대한 시인들의 시 365+1편, 천재화가 12인이 그린 500여 점의 명화가 실려 있다. 1월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클로드 모네 / 윤동주 외 10명 (근간) 2월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에곤 실레 / 윤동주 외 15명 (근간) 3월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귀스타브 카유보트 / 윤동주 외 18명 4월 《산에는 꽃이 피네》 파울 클레 / 윤동주 외 18명 5월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차일드 하삼 / 윤동주 외 16명 6월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 에드워드 호퍼 / 윤동주 외 15명 7월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제임스 휘슬러 / 윤동주 외 15명 8월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앙리 마티스 / 윤동주 외 12명 (근간) 9월 《오늘도 가을바람은 그냥 붑니다》 피에르 보나르 / 윤동주 외 16명 (근간) 10월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 빈센트 반 고흐 / 윤동주 외 16명 (근간) 11월 《오래간만에 내 마음은》 모리스 위트릴로 / 윤동주 외 16명 (근간) 12월 《편편이 흩날리는 저 눈송이처럼》 칼 라르손 / 윤동주 외 13명 (근간)

저자 소개

  • 저자 : 윤동주 외 15인
김소월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고 그곳에서 성장하고 생활하고 사망했기 때문에 전기적 사실을 확인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회고담이나 신문 잡지에 난 관련 기사를 통해 그의 생애를 재구해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월의 본명은 정식(廷湜)으로 1902년 음력 8월 6일(양력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외가에서 태어났다. 남산학교를 졸업하고 14세 때 세 살 연상인 홍실단(원명은 홍상일)과 결혼했으며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3년간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1917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은사인 김억을 만나 시를 쓰게 되었다. 오산학교를 다니던 1919년 3월 3·1운동이 일어나자 동급생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해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오산학교도 임시 폐교되었다.
1920년 스승인 김억의 주선으로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의 시를 소월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이때 발표한 작품은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춘강(春崗)> 등 다섯 편이고 그 후 ≪학생계≫, ≪동아일보≫ 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나 소월은 이 초기의 작품들을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소월은 오산학교에 이어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서울로 이주해 1922년 4월에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편입했다. 1923년 3월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학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이 있고 9월 간토대지진이 일어나자 10월에 고향 정주로 돌아왔다.
1924년에 김동인, 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찬영, 전영택, 오천석 등과 함께 ≪영대≫의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25년 12월 26일 자로 시집 ≪진달래꽃≫을 간행했다. ≪진달래꽃≫은 상당히 판매가 되었는지 발행처는 같은 매문사로 되어 있지만 총판이 ‘중앙서림’으로 되어 있는 것과 ‘한성도서주식회사’로 되어 있는 것의 두 판본이 유통되었고 그 원본이 각기 현재 전해지고 있다.
1924년 이후에는 그의 처가가 있는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로 이주해 생활했으며 1926년 8월부터 동아일보 지국 일을 맡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1년에 한두 편씩 작품을 발표했고 1932년과 1933년에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1934년에 다시 몇 편의 시를 발표했으나 그의 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졌던 것 같다. 지국 경영은 일찍이 작파해 남에게 넘겼고 시대와 자신의 삶에 대한 울분이 겹쳐 거의 매일 술을 마셨으며 아내에게 살아 봐야 낙이 없으니 같이 죽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1934년 12월 23일 밤에도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남편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불을 켜 보니 아편 덩어리를 입가에 흘린 채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소월의 사망 일자를 1934년 12월 24일 아침으로 보고 있다.
소월의 사망이 알려지자 12월 30일 자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사망 관련 기사가 실리고 1935년 1월에 서울 종로 백합원에서 소월 추모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김억은 소월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하고 그것을 ≪조선중앙일보≫(1935. 1. 22~26)에 <요절한 박행의 시인 김소월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1939년 12월 김억이 소월의 시를 선정하고 다시 편찬해 박문출판사에서 ≪소월시초≫를 출간했다.

김영랑
전라남도 강진의 부유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김영랑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이다. 영랑永郞은 아호인데 《시문학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혼인했으나 불과 1년 반 만에 부인과 사별했다. 그 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후에 ‘사립휘문고등보통학교’로 개칭)에 입학하여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때 휘문의숙에는 홍사용, 안석주, 박종화 등의 선배와 정지용, 이태준 등의 후배, 그리고 동급반에 화백 이승만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우는데 직간접으로 도움을 받았다.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 학원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이 무렵 독립투사 박렬, 시인 박용철과도 친교를 맺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후 고향에 머물렀다. 1925년에 개성 출신 김귀련과 재혼했다.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했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했다.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으며,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 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와 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영위했다. 9·28수복 하루 전인 9월 27일 길에서 유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작품이 실린 《영랑시집永郞詩集》(1935)과 《영랑시선》(1949), 유고시집 《모란이 피기까지는》(1981) 등이 있다.

노천명
1911년 9월 1일 황해도(黃海道) 장연군(長淵郡) 전택면(專澤面) 비석리(碑石里)에서 출생한다. 본래 이름은 항렬자를 따른 기선(基善)이었으나, 여섯 살 때 홍역을 심하게 앓고 소생한 후 하늘의 명(天命)으로 살았다는 의미로 이름을 고쳐 올렸다고 한다. 아버지 노계일(盧啓一)은 무역업을 통해 상당한 재산을 모은 소지주였으며, 어머니 김홍기(金鴻基)는 서울 태생의 양반 가문 규수로 교양 있는 여성이었다.
1917년 일곱 살 때 장연에 있는 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다음 해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머니의 친정인 서울로 이주한다. 아버지의 죽음과 낯선 환경으로의 변화는 이후 노천명 문학에서 드러나는 ‘향수’의 근원이 된다. 1920년에 비로소 서울 생활의 근거지(창신동 81번지 2호)를 정하고 진명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5학년 때 검정고시에 합격해 1926년 진명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한다. 4년간의 여고보 생활 동안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고 이미 이 시절부터 시작(詩作)에 능했으며, 몸이 약한데도 달리기 선수로 활약했다. 성격은 예민한 편으로 특히 자존심이 강했으나, 평생 지우 이용희와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1930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영문과에 입학하게 되는데, 이 겨울 모친이 57세로 죽는다. 이화여전 재학 중에 김상용, 정지용, 변영로의 가르침 속에 시작(詩作)에 집중해 교지를 비롯해서 ≪신동아≫ 등 여러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한다.
1934년 이화여전을 졸업한 노천명은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한편, ≪시원≫ 창간호(1935. 2. 10)에 <내 청춘의 배는>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에 데뷔한다.
1937년 조선 중앙일보사를 사직하고 북간도의 용정, 연길 등을 여행했으며, 1938년 49편의 시를 수록한 ≪산호림(珊瑚林)≫을 자비 출판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공고히 한다. 이화여전 은사들인 김상용, 정지용, 변영로 등과 남산의 경성 호텔에서 화려한 출판 기념회를 열었으며, 진달래빛 옷을 곱게 입고 참석한 노천명은 ‘한국의 마리 로랑생’, ‘앨리스 메이넬’로 불린다. 이후, 다시 조선일보사에서 운영하는 ≪여성≫지의 편집 기자 생활을 하면서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1942년부터 총독부 정책에 호응하는 친일시를 창작하고 ‘조선문인협회’에 모윤숙, 최정희 등과 함께 간사로 참여한다. 1945년 29편의 시를 수록한 두 번째 시집 ≪창변(窓邊)≫이 매일신보 출판부에서 간행된다.
해방 후 총독부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가 서울신문으로 이어지면서 노천명은 문화부에 근무한다. 1947년 노천명의 형부 최두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에 이어 극진히 사랑하던 조카딸 최용자마저 맹장 수술 후 스물두 살 젊은 나이에 죽게 된다. 연이은 가족의 죽음, 특히 각별한 사이였던 최용자의 죽음은 깊은 슬픔과 허망함을 주는 사건이 된다. 이러한 면면들은 여러 편의 수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1948년 10월 38편의 수필이 수록된 첫 번째 수필집 ≪산딸기≫가 정음사에서 간행된다. 또한 같은 해 3월에는 동지사에서 출간한 ≪현대 시인 전집≫ 제2권에 55편의 <노천명집>이 수록된다.
한국 전쟁기는 노천명에게 큰 시련이었다. 미처 피난을 떠나지 못한 노천명의 부역 행위는 부역자 처벌 특별법에 의해 20년 형이 선고되어 노천명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부산으로 이감된다. 김광섭 등의 구출 운동으로 1951년 4월 출옥하게 되며, 가톨릭에 귀의하고 공보실 중앙 방송국 촉탁으로 일하게 된다. 이러한 시련은 노천명에게 일생의 굴욕으로 다가왔으며 옥중의 심정은 여러 시편으로 형상화된다. 1953년 3월 세 번째 시집 ≪별을 쳐다보며≫가 간행된다.
1954년 7월 두 번째 수필집 ≪나의 생활백서≫를 출간하고, 1955년 12월 ≪여성 서간문 독본≫을 출간한다. 서라벌 예술대학에 강사로 출강하는 한편, 1956년 5월 ≪이화 70년사≫를 간행하는데, 이 일에 몰두했던 노천명은 건강에 무리가 온다. 결국 1957년 3월 7일 오후 3시 거리에서 쓰러진 노천명은 청량리 위생병원 1호실에 입원한다. 재생 불능성 뇌빈혈 판정을 받고, 요양과 입원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되어 1957년 6월 16일 새벽 1시 30분에 종로구 누하동 225번지의 1호 자택에서 운명을 다한다. 노천명의 장례는 6월 18일 천주교 문화회관에서 최초의 문인장으로 치러졌다. 이헌구가 식사를, 오상순, 박종화, 이은상, 김말봉이 조사를, 최정희가 약력을 소개하고, 전숙희는 유작을 낭독했으며, 중곡동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후에 천주교 묘지 이전으로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으로 이장되었는데, 묘비는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하고, 서예가 김충현이 시 <고별>의 일부를 새겼다.
사후 1년에 42편이 수록된 유고 시집 ≪사슴의 노래≫가 한림사에서 간행되고, 1960년 12월 김광섭, 김활란, 모윤숙, 변영로, 이희승 등의 발행으로 노천명의 3주기를 기념한 ≪노천명 전집 시편≫이 간행된다. 또한 1973년 3월 시인의 유족이 주선하고 박화성이 서문을 쓴 수필집 ≪사슴과 고독의 대화≫가 서문당에서 간행되며, 1997년 7월 이화여자대학교 문인 동창회와 시인의 유족, 솔 출판사가 힘을 합해 노천명의 시와 산문(유고 포함)을 수록한 ≪노천명 전집≫1, 2권이 간행된다.

책 속에서

목차

1일 만엽집의 단가
2일 비 오는 밤 _윤동주
3일 저녁별 _노천명
4일 청포도 _이육사
5일 비 _백석
6일 장마 _고석규
7일 하이쿠 _시키
8일 빨래 _윤동주
9일 기왓장 내외 _윤동주
10일 나의 창(窓) _윤곤강
11일 눈물이 쉬루르 흘러납니다 _김소월
12일 수풀 아래 작은 샘 _김영랑
13일 비 갠 아침 _이상화
14일 할아버지 _정지용
15일 사과 _윤동주
16일 밤에 오는 비 _허민주
17일 하이쿠 _료칸
18일 맑은 물 _허민
19일 소녀 2 _노천명
20일 하일소경(夏日小景) _이장희
21일 옥수수 _노천명
22일 하이쿠 _사이교
23일 별바다의 기억(記憶) _윤곤강
24일 잠자리 _윤곤강
25일 외갓집 _윤곤강
26일 하이쿠 _잇사
27일 바다 1 _정지용
28일 바다에의 향수 _노천명
29일 하답 _백석
30일 선우사(膳友辭) - 함주시초(咸州詩抄) 4 _백석
31일 햇비 _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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