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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엘리너 와크텔, 조너선 밀러, 제인 구달 외
엘리너 와크텔(Eleanor Wachtel)
1947년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 맥길 대학에서 영문학을, 시라큐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후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대학에서 부교수로 여성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2015년에 <캐나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선정되었다.
1987년 문학평론가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이래 CBC 라디오 프로그램 를 1990년부터 30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다. 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작가 및 저명인사와의 인터뷰를 엮어 『작가라는 사람』(전3권)과, 본서 『오리지널 마인드』(Original Minds)가 출간되었으며, 2011년에는 뉴욕 페스티벌 어워드에서 ‘월드 베스트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선정되는 등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조너선 밀러
연극 및 오페라 감독, 배우, 작가, TV프로그램 진행자, 유머 작가, 의사로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제인 구달(Jane Goodall)
1934년 4월 3일 런던에서 태어나, 영국의 남부해안도시인 번머스에서 자랐다. 어린시절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고, 네 살 되던 해에는 닭이 달걀을 어떻게 낳는지 궁금하여 닭장 안에서 네 시간 동안 숨어 있다가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제인이 없어진 줄 알고 경찰까지 불렀지만, 나중에 제인이 잔뜩 들떠 닭이 달걀을 낳는 장면을 설명해주자 제인을 꾸짖는 대신 차분히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10살 되던 해에 제인은 아프리카에 가서 동물들과 함께 살기를 꿈꾸었고, 마침내 아프리카로 가는 배에 오른 것은 23세 때였다. 저명한 고생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루이스 리키 박사의 조수가 되어 올두바이 고지에서 화석을 캐며 3개월 동안의 탐사를 마친 뒤, 제인은 리키 박사와 탕가니카 호수 근처의 침팬지 무리를 연구하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물관에 남아 화석을 배우면서 고생물학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죽은 동물들보다 살아있는 동물들을 알고싶었던 그녀. 리키 박사는 침팬지 연구에 있어 제인이 적임자라는 결정을 내리고, 제인의 어머니 밴 구달이 동행한다는 조건하에 스물여섯의 제인은 곰비 계곡으로 떠난다. 제인은 침팬지들이 나뭇가지를 꺾고 나뭇잎을 떼어내어 흰개미굴 속에 집어넣은 뒤 빼내어 흰개미사냥을 하는 행동을 발견했다. 이것은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당시의 통념을 뒤바꾸어 놓는다.
1965년에 제인 구달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동물행동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뒤 탄자니아로 돌아가 곰비 유역 연구소를 설립하여 현재까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구달 박사는 동물들도 각각의 개성과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신념으로 개체를 번호로 부르는 과학계의 관습을 거부하고 곰비 계곡의 침팬지들에게 모두 이름을 붙여 연구하고 있다.
1977년에 구달 박사는 야생침팬지 연구를 계속하기 위하여 '야생동물 연구와 교육 및 보전을 위한 제인구달연구소'를 설립한다. 오늘날 제인구달연구소의 목표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좀더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역할을 담당할 각 개인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제인구달연구소는 침팬지와 그 서식처를 보호하는 데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내에서의 보존과 개발 프로그램, 그리고 70여 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루츠앤드슈츠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5년에는 침팬지에 관한 연구와 자연보호 교육에 대한 업적으로 영국 왕실로부터 영예로운 CBE 작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우리말로 번역된 『제인 구달의 생명 사랑 십계명』『인간의 그늘에서』『제인 구달』『희망의 이유』등을 비롯하여 60여 권이 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nardo Bertolucci)
이탈리아 파르마 출신인 베르톨루치 감독은 시인으로 활동하다 파졸리니 감독의 조감독이 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1968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upon a time in the west)>의 각본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연출을 맡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로1973년 상업적 흥행과 비평적 성과를 동시에 얻는다. 이후 중국 청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의 일대기를 그린 <마지막 황제>로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마지막 황제>는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 9개 부문을 수상하며 화제가 됐다.
‘프랑스어는 영화의 언어이다’라며 인터뷰 석상에서 불어를 즐겨 쓰는 것으로도 알려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2003년 <몽상가들>로 앞서 만들었던 작품들의 반응을 뛰어넘는 센세이션의 주인공이 된다. 관능으로 가득한 이 작품은 68혁명의 구호처럼 영화계의 금기에 도전하는 것이었지만 결국 전세계 무삭제 개봉되며 작품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 <몽상가들> 이후 휴식기에 들어선 그는 2012년 신작 <미 앤 유>를 내놓으며 거장의 건재함을 확인시킨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불편한 몸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있지만 현장에서의 그는 여전히 과감하고 대담하며 그의 작품 또한 신선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2011년 칸영화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에게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여하며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과 그가 이뤄낸 공로를 치하했다. 또한 그는 2013년 헐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며 이 시대의 진정한 거장으로서 끝이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조지 스타이너
<언어와 침묵>,<바벨탑 이후>, <하이데거>(지성의 샘)등 저자
데즈먼드 투투
남아프리카공화국 해방 운동의 영웅. 198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
소설가, 에세이스트, 예술.문화 평론가, 연극 연출가, 영화감독. 1933년 1월 미국 뉴욕의 유대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손택’은 계부에게서 물려받은 성이다.
열다섯 살에 버클리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이내 시카고대학교로 옮겨 철학과 고대사, 문학을 공부했다. 스물다섯 살에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파리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등에서 수학했으며 그 뒤 컬럼비아대학교, 뉴욕시립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1963년 첫 소설 『은인(The Benefactor)』을 출간했고, 이듬해 <파르티잔리뷰(Partisan Review)>에 「‘캠프’에 관한 단상」을 발표, 본격적으로 문단과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 예술 작품에 대한 과도한 해석 등에 반기를 든 이때의 글들은 뒤에 수전 손택이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하는 토대가 되었다. 다양한 문화 영역에 재능을 보였지만 스스로는 원칙적으로 소설가였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일 땐 전쟁과 미국의 허위를 고발했고 1987년부터 1989년 미국펜클럽(PEN American Center) 회장 역임 중에는 한국을 방문해 구속 문인 석방을 촉구하기도 했다. 1993년에는 내전 중이던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하는 등 실천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
주요 저서로 소설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1977), 『인 아메리카』(1999), 에세이 『해석에 반대한다』(1966), 『사진에 관하여』(1977), 『은유로서의 질병』(1978), 『타인의 고통』(2003) 등이 있다.
2004년 12월 골수성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인도의 지성(知聖)’이라 불리는 세계 최고의 사상가 중 한 명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경제학자이자 지식인이다.
1953년 콜카타 대학을 졸업한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미국 경제학회, 인도 경제학회, 국제 경제학회, 계량경제학회 등에서 회장을 역임했다.
저자는 사회적 선택 이론, 경제 이론, 윤리와 정치 철학, 복지 경제학, 측정 이론, 결정 이론, 개발 경제학, 공공 부문에 걸쳐 다양하게 연구해왔다. 특히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는 인도의 현실에 주목하여 빈곤과 불평등, 기아 문제에 관한 연구와 인간의 복지를 중심으로 한 경제학에 평생을 바쳤고, 1998년에는 후생경제학에 대한 연구를 인정받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사회복지와 경제학 이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인도의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Legion d'honneur), 미국의 국립 인문학 훈장(National Humanities Medal), 영국의 컴패니언 명예 훈장(Honorary Companion of Honour), 브라질의 과학 시술 훈장(Ordem Nacional do Merito Cientifico) 등을 받았다.
그의 저서들은 3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는데,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 『자유로서의 발전(Development as Freedom)』 『정체성과 폭력(Identity and Violence)』『센코노믹스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Beyond the crisis)』『살아있는 인도(The Argumentative Indian)』『불평등의 재검토(Inequality Reexamined)』등이 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
현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기수이자, 성별과 인종, 계층을 넘어선 시민운동가이면서 작가, 연사, 언론인, 편집자로 널리 알려졌다. 현대사에 획을 그은 수많은 시민운동·정치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손꼽힌다. 2010년 《타임Time》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인’ 중 한 명으로 글로리아를 선정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1934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주로 길 위에서 가족과 유랑하며 지냈고, 1956년 스미스대학을 파이 베타 카파로 졸업한 뒤, 체스터 볼스 장학금을 받고 2년간 인도에서 생활하면서 간디주의 조직의 영향을 받았다. 그 뒤로 뉴욕에 거주하면서 프리랜서 기자·작가로 다양한 잡지에 기사를 게재했다. 1968년 잡지 《뉴욕New York》의 창간을 도와 정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1969년 《뉴욕》에 기고한 <블랙 파워 이후 여성들의 자유After Black Power, Women’s Liberation>라는 칼럼으로 페미니스트 리더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72년에《미즈Ms.》를 공동 창간하여 15년간 편집자로 활동하고 현재 자문 편집위원으로 관여하고 있다. 1971년 벨라 앱저그·셜리 치즘·베티 프리단 등과 ‘전국 여성 정치 회의National Women’s Political Caucus’를 구성하여 대변인으로 활약했고, 제인 폰다·로빈 모건과 ‘여성 미디어 센터’를 창립했으며, ‘선택을 지지하는 사람들Voters for Choice’의 대표로서 25년간 여성의 재생산의 자유를 위해 매진했다. 또 ‘이제 평등을Equality Now’, ‘기부자 직접 행동Donor Direct Action’, ‘직접 영향 아프리카Direct Impact Africa’ 등 국내외 조직들의 창립을 지원했다.
스타이넘의 저술은 미국 교과서에 실렸고, 페니 미주리 언론상·특종상·클래리온상·전미 매거진상·기자협회 언론 부문 평생 공로상·UN 작가 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 저작인 『언어 너머로 이동하기Moving Beyond Words』, 『내부로부터의 혁명Revolution from Within』(한국에서 『셀프 혁명』으로 출간), 『발칙한 행동과 일상의 반란Outrageous Acts and Everyday Rebellions』(한국에서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과 『일상의 반란』으로 나뉘어 출간) 등이 미국과 그 밖의 나라에서 출간되었다. 1993년 아동 학대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에미상을 받았으며, 사형제와 낙태를 다룬 TV 영화를 공동 제작했다. 시몬스대학에서 인류 정의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던 캘리포니아의 미국 시민 자유 연맹에서 권리장전상을 수상했으며, 전국 동성애자 인권 변호상·UN 세레스 메달 외 수많은 명예 학위를 받았다. 스타이넘은 〈글로리아: 그녀만의 말로Gloria: In Her Own Words〉를 포함해 여러 TV 다큐멘터리에 소개되었고, 2013년엔 미국을 만든 여성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메이커들MAKERS〉이 스타이넘을 다루었다. 1996년 미국에서 출간된 전기는 『아름다운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으로 한국에 번역되었다.
스타이넘은 66세에 데이비드 베일과 결혼했으나 그의 이른 죽음으로 결혼생활은 삼 년에 그치고 만다.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시민의 최고 명예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여했다. 현재 소피아 스미스 컬렉션과 함께 미국 여성운동에 대한 기록 작업을 하고 있고, 체로키 추장 고 윌마 맨킬러에 헌정하는 조직가 센터 작업도 진행 중이다. 아울러 한국을 수차례 방문했고, 2015년 여성 평화운동가들과의 DMZ 횡단 프로젝트 추진 등 한반도 평화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엔 워싱턴 여성 행진을 함께 이끌었다. 그녀는 여전히 뉴욕에 살면서 절반의 시간을 미국과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사회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나이와 건강의 위협에도 흔들림 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SNS를 통해 사람들에게 길로 나서기를 촉구하면서.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이자 문명연구가. 현재 UCLA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37년 미국에서 출생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생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리학자로 출발하여 진화생물학과 생물지리학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갔으며, 과학 전문지〈네이처〉〈내추럴 히스토리〉〈디스커버〉등에 기고하는 저널리스트로도 활약하고 있다.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수개국어를 구사하며 2005년 영국의〈프로스펙트〉와 미국의〈포린 폴리시〉에서 공동 선정한 ‘세계를 이끄는 최고의 지식인’ 중 아홉 번째 인물이다. 전미과학상, 타일러 환경공로상, 일본 코스모스상, 록펠러대학이 시인이자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마스상을 수상했다. 대표적 저서로 퓰리처상을 받은《총, 균, 쇠》를 포함해,《어제까지의 세계》《문명의 붕괴》《제3의 침팬지》《왜 섹스는 즐거운가?》등이 있다.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대학 퀸스칼리지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와 UCLA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 1965년 뉴욕으로 옮겨 가 이듬해부터 베스에이브러햄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후 알베르트아인슈타인의과대학과 뉴욕대학을 거쳐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컬럼비아대학에서 신경정신과 임상 교수로 일했다. 2012년 록펠러대학이 탁월한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 상’을 수상했고, 모교인 옥스퍼드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여러 환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펴냈다. 인간의 뇌와 정신 활동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들려줘 수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이처럼 문학적인 글쓰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올리버 색스를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베스트셀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뮤지코필리아》 《환각》 《마음의 눈》 《목소리를 보았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깨어남》 《편두통》 《고맙습니다》등 10여 권이 있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자신의 삶과 연구, 저술 등을 담백한 어조로 서술한 자서전 《온 더 무브》를 남겨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제인 제이콥스
1916년 5월 4일에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다. 『스크랜턴트리뷴』의 기자로 일하다가 뉴욕으로 간 후, 1952년에 『건축포럼』의 부편집장이 되었다. 도시 재건축 프로젝트에 관한 글을 쓰던 중 이런 프로젝트가 운영된다 할지라도 도시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점차 도시계획의 전통적인 믿음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이후 도시계획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를 계속한 제이콥스는 1961년 출간과 동시에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책으로 인정받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외에도 『도시의 경제』(1969), 퀘벡의 주권 문제에 관해 고찰한 『분리주의의 문제』(1980), 세계경제에서 도시와 도시지역이 갖는 중요성에 관한 주요 연구서인 『도시와 국가의 부』(1984), 그리고 『생존의 체계』(1993) 등을 썼다.
1968년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한 뒤에도 도시계획과 주거정책 개혁에 관한 충실한 조언자로 일했던 제이콥스는 대규모 고속화도로 건설 반대 캠페인과 도심 근린 주거지역 해체 반대 캠페인에 앞장섰다. 도시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살리는 일에 평생을 헌신한 그는 2006년 4월 25일,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기호학자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1932년 이탈리아 서북부의 피에몬테주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변호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토리노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세 철학과 문학으로 전공을 선회, 1954년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학위논문을 발간함으로써 문학비평 및 기호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62년 토리노대학교와 밀라노대학교에서 미학 강의를 시작했으며, 최초의 주요 저서인 『열린 작품 Opera apertas』(1962)을 발간해 현대미학의 새로운 해석방법을 제시했다. 이어 『제임스 조이스의 시학 Le poetiche di James Joyce』(1965), 『예술의 정의 La definizione dell'arte』(1968) 등 새로운 이론서를 발표해 문학비평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66년 상파울루대학교와 피렌체대학교에서 시각커뮤니케이션을 강의했으며, 1967년 『시각커뮤니케이션 기호학을 위한 노트』를 출간했다.
1968년 인간의 사고와 문화행위, 이념구성 등에 다양하게 관련되어 있는 기호를 개념, 유형, 의미론, 이데올로기 등으로 명쾌하게 분석 정리한 『텅빈 구조 La struttura assente』를 발간했으며, 이어서 『내용의 형식 Le forme del contenuto』(1971)을 발간한 후 이 두 저서의 내용을 증보해 영문판 『기호학이론 A Theory of Semiotics』(1976)을 발간함으로써 세계적인 기호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Visio 문화, 즉 읽는 문화가 아니라 보는 문화의 전형적인 사례인 중세 미학과 러시아 형식주의, 그리고 아방가르드 문화로부터 출발했으며, 퍼스의 철학적 기호론을 통해 독특한 기호학 체계를 구축, 프랑스 중심의 언어학적 기호학이나 구조주의와 철저하게 맞대결하는 한편 프랑크푸르트 학파류의 마르크스주의와도 완연히 다른 예술 이해와 미학관을 보여주었다. 1971년 볼로냐대학교의 기호학 조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세계 최초의 국제기호학 잡지 『베르수스』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1974년 밀라노에서 제1회 국제기호학 회의를 주관했으며, 1975년 볼로냐대학교의 기호학 정교수 및 커뮤니케이션·연극학 연구소장으로 임명되었다.
기호학과 미학의 세계에 열중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당시 원자핵의 확산과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세기말적인 위기를 문학으로 표현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2년 반에 걸쳐 집필을 완료해 1980년 첫번째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을 발표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경험주의 철학과 자신의 기호학 이론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어 1988년 두 번째 장편소설 『푸코의 진자 Il pendolo di Foucauilt』를 발표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으며, 1994년 자전적 작품인 세 번째 장편소설 『전날의 섬 L'isola del giornoprima』을 발표해 작가로서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에코는 문학은 죽는 방법까지 가르쳐 준다고 말할 정도로 문학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는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 강의』라는 책에서 문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리고 문학이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학의 몇 가지 기능에 대해’에서 시작하여 마르크스, 단테, 네르발, 와일드, 조이스, 보르헤스 등의 작품에 대한 비평과 문체, 상징, 형식, 아이러니 등 문학 이론의 핵심적인 개념들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 등을 담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 퍼스널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기호학·철학·역사학·미학 등 다방면에 걸쳐 전문적 지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에스파냐어까지 통달한 언어의 천재이다. 이러한 이유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특히 파리 제4대학인 소르본에서의 강의활동과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 폴 드 만(Paul de Mann)과 함께 하는 예일학파로서의 학술활동은 유명하다. 그의 기호학이론은 오늘날 세계 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학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볼로냐대학교에서 건축학·기호학·미학 등을 강의했으며, 세계 명문대학의 객원교수 등으로 활동해오다 2016년 2월 향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으로 장편소설『장미의 이름』(1980) 과『푸코의 진자』(1988),『전날의 섬』(1994), 동화『폭탄과 장군』(1988),『세 우주 비행사』(1988), 이론서『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열린 작품』, 『대중의 슈퍼맨(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 『논문 잘 쓰는 방법』 등이 있다.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
현대의 가장 뛰어난 인류학자 중 한 명으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렐레족에 대한 현지 조사를 했다.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재직하였으며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 등에서도 강의하였다. 그녀는 에밀 뒤르케임의 이론적 노선을 계승하면서도 문화와 상징에 관한 개성 있고 통찰력 넘치는 글들을 발표하였다. 종교에 관련된 대표적인 저서로는 『순수와 위험』 과 『자연 상징』이 꼽히며, 『함축된 의미들』, 『상품의 세계』, 『제도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험과 책임』 등의 저서가 있다. 종교 연구에 특별한 조예를 보여서 말년에는 유대교 문헌을 인류학적으로 분석한 글들을 출판하기도 했다.
놈 촘스키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과 함께 SF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아서 C. 클라크는 1917년 12월 16일 영국 남부 서머싯 주 마인헤드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별 관측과 SF잡지 읽는 것을 좋아하던 소년기를 통해 우주에 대한 열정을 싹틔웠고, 1936년 런던으로 이주한 후 영국항성간협회에 입회, 협회회보에 글을 기고하면서 SF 집필에 첫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공군에 입대, 착륙 유도 관제 시스템을 위한 레이더 개발에 참여했다. 아서 클라크의 유일한 비SF 소설인 《활공경로(Glide Path)》는 이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하며 영국행성간협회 회장직을 역임했다.
1951년 전업 저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1999년까지 100편이 넘는 작품들을 발표했고, 독자적인 작업 외에도 《라이프》 지 편집진들과 함께 <인간과 우주 (Man and Space)>를,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 함께한 소설이자 영화 대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을 통해 다 방면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미국 우주계획과 밀접한 관련을 가져 NASA의 자문을 맡기도 한 그는 통신위성과 인터넷, 우주 정거장 등 현대 과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미래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77년에는 과학을 대중에게 이해시킨 데 대한 탁월한 공로로 브래드포드 워시번 상을 받았다.
1956년 스리랑카로 이주한 이후 2008년 90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며 별을 관측하고 바다 속을 탐험하고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 과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성찰을 통해 외계지성과 인류의 ‘최초의 접촉’과 ‘인류 진화의 비밀’을 이야기한 《유년기의 끝》을 비롯하여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라마> 시리즈, 《도시와 별》, 《낙원의 샘》 등의 걸작들을 남겼고 1986년 미국 SF작가협회로부터 그랜드마스터로 추대되었다.
해럴드 블룸(Harold Bloom)
1930년 뉴욕에서 태어난 유대계 미국 문학비평가이다. 1951년에 코넬 대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에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12년 현재 예일 대학교 인문대학 석좌교수로 셰익스피어와 영시 등을 가르치고 있다. 『셸리의 신화 만들기』 『예시적 친구들』 『탑 속의 종지기』 같은 초기 저작에서 낭만적 상상력의 자율성과 비전을 강조하며 영국 낭만주의 시를 새롭게 해석했다. 1973년 시 창작 과정을 선배 작가의 영향에 대한 투쟁의 과정으로 해석한 대표작 『영향에 대한 불안』을 출판했으며, 『오독의 지도』 『카발라와 비평』 『시와 억압』 『투쟁』에서 이 이론을 발전시켰다. 블룸은 소위 예일 학파라 불리는 폴 드 만, 제프리 하트만, 제임스 힐리스 밀러의 해체론과 일정한 거리를 취하며 정신분석과 그노시스교 등을 접목한 자신만의 독특한 이론을 전개했다.
1994년 저서 『서구 정전』에서는 셰익스피어를 위시한 서구의 고전문학을 옹호했고 페미니즘, 신역사주의, 마르크스주의 등 문학을 정치, 역사 등 문학 외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비평들을 모두 비판했다. 이후 『어떻게 왜 읽을 것인가』 등 대중 독자들을 위한 다수의 책을 저술했고, 최근에는 자신의 백조의 노래라 부른 『영향의 해부』를 출판했다. 1980년대부터 첼시아 하우스 출판사가 발행하는 서구 문학 작가와 작품에 대한 비평서 모음집의 책임편집인으로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을 편집했고 40권 이상의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그의 책은 4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허진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집 『작가라는 사람』(전3권),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 마틴 에이미스의 『런던 필즈』와 『누가 개를 들여놓았나』, 할레드 알하미시의 『택시』, 나기브 마푸즈의 『미라마르』, 아모스 오즈의 『지하실의 검은 표범』, 수잔 브릴랜드의 『델프트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