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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역사를 바꾼 영웅 윌리엄 호이
원제 : The William Hoy Story: How a Deaf Baseball Player Changed the Game (2016년)
ISBN : 9788991550889 / 40쪽 254 x 204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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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판정 수신호’를 만들다! 1862년 오하이오 주 후크타운에서 태어난 윌리엄 호이는 세 살 때 수막염을 앓고 나서 청각 기능을 잃었다. 청각장애인이 야구를 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호이는 좋아하는 야구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학생 시절에는 학업과 집안일이 끝나고 날마다 연습을 하고(오하이오 청각장애인 주립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에는 구두수선공으로 일하면서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1888년, 호이는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의 꿈을 이루고, 1902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기록들을 남겼다. 호이는 이 과정에서 많은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야만 했다. 키가 작아 트라이아웃 때 선수로 지명을 받지 못하는가 하면, 선수가 된 뒤에도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선수들보다 연봉을 적게 제시받고, 팀 동료들이 등 뒤에서 수군대기도 했다. 시합 중에 심판의 판정 소리를 듣지 못해 자신이 아웃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타석에 있다가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호이는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수신호로 모든 것을 말해주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영감을 떠올려 판정 수신호(手信號)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야구 선수로서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했던 수신호를 심판들과 연구하며 마침내 판정 수신호를 야구 경기에 정착시킨다. 예를 들면, 스트라이크일 때는 오른쪽 팔을 들고 볼일 때는 왼쪽 팔을 들어 표시하는 등 심판이 손짓으로 판정을 보여줌으로써 선수도 관중도 판정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소리가 아닌 심판의 판정 수신호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된 호이는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며 각종 기록을 깨고, 마침내 ‘중견수의 왕’이라고 불릴 만큼 위대한 선수로 우뚝 서게 된다. 학교 야구팀에도 들지 못했던 아이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야구 선수가 된다. 호이는 그 밖에 팀 동료들에게도 수신호를 가르쳐주어 다른 팀 선수들이 알아들을 수 없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심판의 판정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야구를 보는 데 불편함을 느꼈던 관중들도 심판들이 멀리서도 볼 수 있는 수신호를 사용하자 야구를 보는 게 훨씬 편해졌다고 열광했다. 윌리엄 호이의 판정 수신호는 호이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야구의 경기 방식, 더 나아가 야구의 역사를 새로 쓰는 계기가 되었다. 차별과 놀림을 받던 선수에서 야구의 영웅으로! 윌리엄 호이의 이름은 윌리엄 엘스워스 호이(William Ellsworth Hoy)지만 ‘더미 호이(Dummy Hoy)’라고도 불린다. 더미(Dummy)는 당시 청각과 언어장애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호이는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자기를 스스로 ‘더미’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는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 호텔에서 시끄러운 손님들 때문에 팀 동료들이 잠을 설쳤을 때 호이는 자기는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아주 푹 잤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호이가 청각장애인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영웅이었던 것과 달리 비청각장애인 세상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야구에서 수많은 기록들을 깨고, 1888~1902년까지 가장 유명한 야구 선수였는데도 말이다. 그런 윌리엄 호이가 1961년 신시내티 레즈와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자로 나서 관중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차별과 놀림을 받던 청각장애인 야구 선수에서 야구의 역사를 바꾼 영웅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호이는 그해 12월에 사망했지만, 그의 이름은 미국체육협회 청각장애인 명예의 전당(호이가 첫 번째 헌액자였다), 핸콕 스포츠 명예의 전당, 오하이오 청각장애인 주립학교 명예의 전당, 오하이오 야구 명예의 전당, 신시내티 레즈 명예의 전당, 베이스볼 렐리쿼리 불명의 전당 등 많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 윌리엄 호이 생애 연표 (1862년) 5월 23일, 오하이오 주 후크타운에서 태어나다. (1865년) 수막염을 앓고 청각과 언어 기능을 잃다. (1879년) 오하이오 청각장애인 주립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다. 후크타운에서 구두 수선 가게를 하면서 야구 연습을 계속하다. (1886~1887년) 윌리엄의 첫 번째 프로야구 팀인 위스콘신의 오슈코시(Oshkosh)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다. (1888~1889년) 워싱턴 내셔널스(Washington Nationals)에서 맞이한 메이저리그 첫해(루키 시즌)에 내셔널리그 도루 1위에 오르다. 이듬해에는 한 경기에서, 외야에서 홈플레이트로 공을 던져 주자 세 명을 아웃시키다. (1890~1091년) 버펄로 바이슨스(Buffalo Bisons), 세이트루이스 브라운스(St. Louis Browns), 워싱턴 세너터스(Washington Senators), 신시내티 레즈(Cincinnati Reds), 루이스빌 콜로넬스(Louisville Colonels), 시카고 화이트 스토킹스[Chicago White Stockings, 나중에 시카고 화이트 삭스(Chicago White Sox)가 됨]에서 선수로 뛰다. (1901년) 시카고 화이트 스토킹스에서 활약할 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Detroit Tigers)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치고, 소속 팀은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차지하다. (1902년)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면서 뉴욕 자이언츠(New York Giants)의 청각장애인 투수인 루서 ‘더미’ 테일러에게 포볼을 얻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경기에서 두 청각장애인 선수가 서로 마주하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1941년) 루이스빌 콜로넬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다. (1951년) 미국체육협회 청각장애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첫 선수가 되다. (1961년) 신시내티 레즈와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가 벌인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를 하다. 12월 15일, 9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다. * 인증유형 : 공급자 적합성 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