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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마라 을해생 해방 전후 광주 이야기

최이산 저 | 푸른역사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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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6121060 / 224쪽 205 x 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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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창씨개명에서 해방공간의 혼란을 거쳐 한국전쟁까지 소년의 눈에 비친 한국 현대사 격동의 현장 왜 ‘묻지 마라 을해생’인가 한국 근현대사가 숨가쁘게, 굴곡지게 흘러온 탓에 저마다 세대는 자기들이 가장 불운한 세대라고, 가장 호된 시련을 겪었다고 자탄하곤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묻지 마라 갑자생’. 본래는 역사적으로 육십 간지의 맨 앞을 가리키는 갑자년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 재주가 빼어난 인물이 많다 해서 ‘똑똑한 갑사생은 이미 알고 있다’란 뜻으로 쓰였다는데 일제 강점기인 1924년생들을 두고서는 뜻이 바뀌었다. 일제의 징병제가 시작된 것이 이들부터였고, 해방이 되는가 싶었더니만 한국전쟁으로 동족상잔의 참화를 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세대여서다. 해서 도도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스러져간 이들을 위한 일종의 추모사였던 셈이다. ‘묻지 마라 갑자생’은. 그러나 ‘갑자생’뿐이랴. 이들로부터 꼭 12년 뒤인 1935년 을해년에 태어난 세대도 못지않게 기구했다. 세상에 막 눈뜰 무렵인 보통학교에 들어갈 즈음부터 창씨개명, 한글 사용금지, 황궁요배 등 황민화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정체성이 뒤흔들렸다. 해방 이후인 중학교 시절엔 좌우 이념 갈등이 격화하면서 학내에서도 친탁 반탁으로 갈려 혼란을 겪어야 했고, 곧이어 한국전쟁으로 가까운 피붙이들을 잃은 기구한 세대이다. 그런 만큼 이들 을해생의 무구한 눈에 비친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 현장에 새삼 주목할 이유와 가치가 있다. 척박한 자서전 풍토에서 역사의 갈피에 묻힌 보통사람의 구술사口述史 역사의 주역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뛰어난 발자취를 남긴 ‘위인’들이다. 역사가들은 대체로 이들이 어떤 업적을 이뤘는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중심으로 과거를 구성해낸다. 과거를 온전히 복원해낼 수 없기에 당연하다. 하지만 이 같은 정사正史는 역사의 흐름을 짚어내기는 하지만 성글다. 보통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서다. 실제 당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고, 어찌 살았는지는 잊힌다. 이른바 역사의 여백이다. 이를 채워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자서전이다. 하지만 우리의 자서전 풍토는 척박하다. 자기 삶을 털어놓는 사람들은 이른바 명사들이며 그것도 소수에 그친다. 그나마 그 내용은 자신의 무용담이거나 변명에 그치기 일쑤다. 치적과 사건 중심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일상의 삶은 드러내지 않는다. 이 책은 다르다. 높은 벼슬을 하거나 빛나는 업적을 쌓은 이가 아니다. 언론인 출신이기는 하지만 필명을 드날린 적도 없다. 대신 담담하고 진솔하게 어릴 적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칠십이 되도록 세상을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 기억 속에 앙금으로 가라앉은 내 나름의 사념과 사연들, 아내나 친구들에게도 내비치지 않았던 객쩍고 자질구레한 넋두리를” “헝겊 조각들을 맞춰 어엿한 조각보를 이뤄 내듯이.” 그러기에 책은 꾸미지 않아 흥미롭고, 쉬 만날 수 없어 값지다. 파스텔 톤으로 그려낸 광주, 그 시절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1940년대 광주 풍경은 파스텔화처럼 어슴푸레하지만 아련하다. “우리 집에서 두어 마장쯤 떨어진 곳에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옆에 돌미륵 한 쌍이 가슴께까지 흙 속에 묻혀 있는 반달 모양의 빈터가 있었네. …… 어느 여름날 아침에 등교하면서 그 고샅길을 지나다가 보니, 나팔꽃 덩굴이 그 두 쇠줄을 휘어감고 전봇대 꼭대기까지 뻗어 있었고 더 올라갈 데가 없자 하늘을 향해 흔들흔들 고갯짓을 하고 있었네.” 그런가 하면 싱가포르 함락에서 유래한 ‘예스까 노까’ 놀이를 비롯해 그 시절 광주 이야기를 생생하게 되살려내기도 한다. “나는 종이로 만든 작은 일장기를 손에 들고 흔들면서 ‘갓다소 닛뽄 단지데 갓다소’를 되풀이하여 부르면서, 행렬의 뒤꽁무니에 붙어 명치정 거리 역전 거리를 돌고 돌아 광주천 건너편의 귀정龜町 시장 앞길까지 행진했네.” 한편으로는 여느 역사책에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소노다 선생은 3학년 때 담임선생인 요꼬다니와는 달리 얼굴이 끼끗하고 성품도 너그러웠네. 그는 조선 사람을 동정이라도 하듯 우리에게 “너희는 식민지 소년이어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니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여 절대로 일본 소년에게 져서는 안 된다.” 그는 ‘져서는 안 된다’는 일본말인 ‘마께데와 나라나이’를 힘 줘 거듭 말했네.” 이러니 책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 광주 지역사 연구 자료로도 한몫을 할만하다. 방정하고 그윽한 문체의 미학 문체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지은이의 글은 만나기 힘든 한자어와 우리말을 적절히 섞어 글의 품격을 보여준다. 미문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접하기 힘든 글의 향취를 풍기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예컨대 이런 구절이 그렇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해찰하는 사이에 저절로 가 버린 날들을 뒤돌아보고 후회함은 대수로울 것도 없는 내 인생에 어쭙잖은 핑계를 대려는 마음의 뻔한 색책塞責거리 만들기가 아닐는지.” 이런 단정한 문체에 담긴 성찰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나는 다만 조국의 현실을 관조觀照했던 자일까. 좌우의 싸움을 벽상관壁上觀했던 자일까. …… 부끄럽게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네. 나는 왜 내가 옳다고 여기는 쪽을 위해 행동하지 못했던가. 용기가 없고 겁이 많아서 그랬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 확신을 갖지 못한 회색주의자였기에. 그러나 ‘모든 사상은 회색이다’라는 누군가의 주장을 수긍한다면 나의 그런 주의쯤은 용혹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네.” 이 같은 구절들이 책 곳곳에서 빛을 발하기에 다만 ‘글’을 보기 위해서라도 펼쳐들 만한 책이다. 지은이가 말하는 집필 배경 “잘잘못이야 뉘게나 분명한 것 아닌가. 또 저지른 잘못은 남에게 들킬세라 부끄럽게 여기며 얼른 고치고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 어차피 자네들에겐 윗세대의 유산을, 그것이 좋든 나쁘든 이어 받아 자네들 나름으로 다듬고 거른 뒤에 아래 세대에 물려줄 짐이 지워져 있네. 그것은 싫다고 벗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러니 따분하고 성에 차지 않더라도 참고 읽어 봐 주게나.”

저자 소개

1935년 출생. 한학자이며 함기회 회장이다. 4서5경, 제자백가, 사마천사기, 자치통감 등을 읽고 공부했다. 숙유노사, 조규철, 신호열, 이진영 선생에게서 한문을 배웠고 '고사성어 시나브로 산책'을 10년 넘게 '현대' 사보에 연재하였다

책 속에서

만담가 신불출은 창씨개명을 하라는 저들의 성화에 부아가 나서 이름을 강원야원江原野原 곧 ‘에하라 노하라’라고 신고했다는 것이네. 그것은 ‘에라 놓아라’라는 말에 빗대어 저들을
비야냥한 것이 아니겠는가(31쪽).

일인 병사들은 그들을 ‘조센삐’라고 부르며 성의 노리개쯤으로 여겨 마구 유린하고 능멸했는데도 저들은 그런 그들을 얼토당토않게 야마또 나데시꼬大和撫子라고 그 가족이나 조선 사람들에게 선전했다네. …… 야마또 나데시꼬는 나데시꼬, 곧 패랭이꽃의 한 종류인데 저들은 그것을 자기네 일본 여자를 추어올리는 말로 쓴다네(43쪽).

사직공원 동쪽 끝머리의 광주천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양파정楊坡亭이 서 있고, 공원의 산등성이 뒤쪽인 서남쪽으로 펼쳐진 넓은 산자락에 미국 남장로교회파 선교사들의 양옥 10여 채가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었네. 그 양옥들 가운데는 꽤나 큰 2층짜리 집도 있었네(90쪽).

일본 해군은 연중무휴로 1년 365일 함대 근무를 한다고 해서 ‘월월화수목금금’이란 군가를 만들어 유포시켰는데, 학생들에게도 그 노래를 가르치면서 쉬는 날 없이 일하도록 분위기를 잡았네. …… 조선의 국민학교 학생들이 했던 일들은 봄이면 ‘마구사가리’ 곧 군마들에게 먹일 마초 베기와 초여름인 6월이면 보리 베기와 모내기였고 가을철이면 벼 베기와 무 배추뽑기였네(105쪽).

매일처럼 근로동원에 내몰리게 되자 학생들은 아예 톱니낫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작은 휴대용 톱을 책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다녔다네. 틈이 나는 대로 야산에 올라가 톱으로 관솔을 잘라 가져 오거나 퇴비를 만들 풀을 낫으로 걷어 오기 위해서(105쪽).

자살 특공의 지원자들을 끌어모으려고 …… 학력學歷을 묻지 않으니 독학으로 국민학교 고학년 정도의 배움만 터득하면 되고, 마을 가까이에 있는 면사무소에 가기만 해도 지원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네. 기차 타고 연락선만 타면 대처에 나가 세상 구경을 하고 일본군 장교도 될 수 있다는 꾐에 빠져들 농어촌 소년이 어찌 한 둘뿐이겠는가(118쪽).

날마다 첫 시간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날 신사에 가서 일부인이 찍힌 고무도장을 받아 왔는가를 검사했으므로 나나 동무들이 신사참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이네(157쪽).

아오마쓰처럼 출석부의 이름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이름이 있을 때에는 그 학생에게 물어서 출석부의 이름을 고쳤네. 나나 동무들은 이제까지 선생이 이름을 부를 때면 ‘하이’라고 대답하다가 갑자기 ‘예’라고 하자니 어쩐지 쑥스러워, 대답을 하고 나서 웃음을 터뜨렸네(173쪽).

학련 간부인 상급생들은 수업 시간 중에도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교실로 거칠게 들어와 “운동장으로 집합”이라고 외치며 우리를 교실 밖으로 불러냈네. …… 그런 일은 하루에 거의 한 번꼴로 일어났네. 그들이 우리를 운동장에 집합시켜 놓고 한 일이라곤 반탁에 관한 열띤 주장을 늘어놓거나, 우리에게 정신이 빠졌다며 ‘엎드려 뻗쳐’ 따위 기합을 넣는 것이 고작이었네(185쪽).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여 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자 인민위원회와 인민군들이 광주에서 철수했네. 그들에 협조했던 사람들은 겁이 나서 산등성이를 하얗게 덮을 만큼 무리지어 산으로 올라갔네. 인공 치하에서 학교에 나갔던 내 동기생들 중 인민위원회 지시에 따라 행동했던 수십 명도 그 입산 대열에 끼어들었네(191쪽).

“인공 세상이 되자 경찰의 학살로 냄편과 자석을 잃은 집가족들이 나헌티도 와서 원수를 갚아야 헝께 함께 가서 그 사람들을 찾아내 죽여야 헌다고 허데만, 나는 따라나서지 않았네. 그런다고 내 자석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디 뭣허러 그런 끔찍헌 짓을 헌단 말인가. 지지리도 세상을 잘못 만난 탓으로나, 운수가 불길헌 탓으로나 돌려야제.”(197쪽)

생떼 같던 그들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은 동시대인인 우리 모두가 이제라도 그 원혼들 앞에 묘비를 세워야 한다고, 진혼의 나팔을 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네(201쪽).

목차

01_변언유치弁言有恥의 장章
02_창씨개명創氏改名의 장章
03_시몽하몽是夢何夢의 장章
04_근로동원勤勞動員의 장章
05_해방전야解放前夜의 장章
06_골육상잔骨肉相殘의 장章
07_가상세계假想世界의 장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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