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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8963583 / 272쪽 136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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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일상을 선물로 뒤바꾸고, 오랜 머뭇거림을 선사하는 ‘시적 순간’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2014년 《시인동네》 겨울호부터 현재까지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시적 순간>이 《시는 어떻게 오는가》라는 제목으로 한데 묶여 나왔다. 김언, 함기석, 이영광, 위선환, 이홍섭, 박형준, 이민하, 김언희, 이재훈, 고진하, 오은, 박용하, 송재학, 신용목, 문혜진, 이윤학, 김신용, 손택수, 이규리, 윤의섭, 김안, 길상호 시인까지, 각자 자신의 개성 있는 시 세계를 구축하며 활동해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22人의 생생한 시적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시적이다’라는 감상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어떻게 비로소 ‘시’로 맺힐 수 있을까? 22人의 개성 넘치는 시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몰라서 지나쳐왔던 자신만의 ‘시적 순간’이 찾아들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며 나아가는 시 세계는 창작의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으나, 그 너머에 진실한 가치가 있음을 믿는 사람들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렇듯 쓰려는 자, 읽으려는 자, 사유하는 모두에게 ‘시적 순간’은 찾아온다.
‘시는 상실이 있어야 한다’(김언), ‘시는 늘 전심전력의 목소리를 뱉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영광), ‘시는 결핍의 산물’(이재훈), ‘시는 내가 내 진정성에 속는 작업’(이홍섭)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박형준) 등 각기 다르게 이야기되는 ‘시’의 정의와 시로 출발하는 다양한 ‘시동(詩動)’ 소리를 한꺼번에 들어볼 수 있다. 자신의 ‘시론’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이야기와 시인이 직접 경험했던 시보다 더 시 같은 순간들을 산문으로 만나볼 수 있다.
2013년 2월 22일
보는 순간 이미지가 된다. 이미지가 되는 순간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로 전이되거나 중첩된다. 이미지의 이동 혹은 겹침. 그것이 비유다. 따라서 보는 순간 비유는 만들어진다. 시선은 반드시 비유를 동반한다. 그리고 시선에는 어떤 식으로든 정서가 동반된다. 요컨대 정서가 비유를 만들어낸다. 인간에게 시선 없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듯이, 정서 없는 비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유 없는 시 쓰기는 그러므로 불가능하다. 비유 없는 시 쓰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선 그것의 불가능이고 뜻밖에도 한 가지를 더 확인할 수 있다. 스스로 어떤 정서에 강하게 기대어서 쓰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어떤 정서가 동반된 이미지에 강하게 기대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하는 일이다. 나는 거의 매번, 적어도 자주, 이런 정서에 기대어서, 그리고 이런 이미지에 붙들려서 시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 그 한 가지를 위해서 비유 없는 시 쓰기는 한동안 계속되어야 한다. 불가능하지만 지속될 필요가 있다.
(김언, 「그 여름에서 여름까지 짧은 기록 몇 개·3」p18~19)
시를 어떻게 쓰면 되냐고 여쭤보면, 나의 선생님들은 이런 알 듯 모를 듯한 말씀을 하셨다.“모를 때 써라. 알면 못 쓴다.”아마 지식과 개념이 들어찬 머리가 자유로운 상상, 직관의 움직임을 방해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영광, 「진실에 불과하지 않은」p51)
계단 하나를 오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대가리가 깨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 한다. 뒤에 얘기하겠지만 시는‘힘’이다. 수련하지 않으면 힘을 얻을 수 없다. 요즘 시들이 수다스러워진 것은 이 힘에 대한 수련이 없기 때문이다. 시는 이스트를 넣어 빵을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떡메를 쳐서 인절미를 만드는 것과 같다. 고물을 묻히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나는 시를 마치 빵 굽듯이 쓰는 것을, 또한 시단이 그렇게 가르치는 것을 싫어한다. 그건 테크닉의 문제이지 시의 본질, 시 쓰기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홍섭, 「시적 순간은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에 있다」p84)
우리의 영혼 속에는 저마다 악기가 한 대쯤 놓여 있게 마련이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기억 속에서 잊힌 채 먼지를 뒤집어쓴 그 악기를 꺼내어 연주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순간을 위하여 아직도 영혼의 근사한 이야기를 꿈꾼다면 자신의 마음속 악기를 깊은 밤에 혼자 튕겨 보는 연습을 하라. 시적 순간이란 악기를 다루듯 언제나 고독하게 자기 내면을 훈련하는 과정, 그 피나는 연습 속에서만 존재하니까.
(박형준, 「시적 순간은 의지의 꿈이고, 꿈꾸는 의지」p84)
시적인 순간은 없다. 그런 게 있다면 왜 굳이 시 속에서 헤매겠나. 시를 쓰는 순간이 시적인 순간이다. 시를 쓰는 순간은 마음을 쓰는 순간이다. 없으니까 쓴다. 재미가 없어서 쓰고 감동이 없어서 쓰고 침묵이 없어서 쓴다. 부끄러움을 쓰고 두려움을 쓰고 불안을 쓴다. 없애려고 쓴다. ‘없음’에서 시작한다. 시작(詩作)을 한다.
(이민하, 「수면의 떨림」p111)
나는 내 내면의 모습을 그려보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적대와 모순에 맞서 싸울 만큼 내 문장이 단련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꿈을 이야기함으로써 꿈을 존재케 하고 싶은 것도 아니며, 순결한 꿈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쓴다. 다만 나를, 지금 여기를, 나의 헛된 상상과 치욕의 물이 뚝뚝 흐르는 기억과 아무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사랑을 견디지 못해서. 그 견딜 수 없음을 조금은 견뎌보고자 하는 비겁함으로 쓴다.
(신용목, 「열세 번째 제자」p181)
● 그 여름에서 여름까지 짧은 기록 몇 개·3
_김언 11
● 파괴된 진공(眞空)
_함기석 27
● 진실에 불과하지 않은
_이영광 45
● 시, 사물, 언어, 그리고 빛
_위선환 67
● 시적 순간은‘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에 있다
_이홍섭 81
● 시적 순간은 의지의 꿈이고, 꿈꾸는 의지
_박형준 93
● 수면의 떨림
_이민하 105
● 맹인용 카메라
_김언희 115
● 단독자의 고백
_이재훈 125
● 고해(苦海) 속의 고해(告解)
_고진하 135
● 푸는 순간들
_오은 145
● 파도의 숨소리가 바위섬의 이마를 때리는 시간
_박용하 155
● 내부의 세계사들
_송재학 165
● 열세 번째 제자
_신용목 175
● 정지 비행하는 매
_문혜진 185
● 스파크와 포옹
_이윤학 195
● 물방울 변주 3
_김신용 205
● 소년이여, 오라
_손택수 219
● 부끄러움
_이규리 231
● 시의 탄생
_윤의섭 243
● 비겁한 침묵
_김안 255
● 이제 겨울이 녹기 시작했다
_길상호 2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