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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984260 / 120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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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묘지는 공공 산책로이며 만남의 장소였다. 봉안당 옆에는 상점이 있었고 회랑에는 수상쩍은 여자들이 어슬렁거렸다. 축제도 여기에서 열렸다. 이렇게 묘지에서 전율을 느끼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의 묘사처럼, 중세 프랑스 파리에서 묘지는 매우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가장 생기가 넘치는 도시 한복판에 공동묘지가 자리했다. 묘지는 항상 상인과 호객 행위를 하는 매춘부로 떠들썩했고, 시민들은 그 주위를 자유롭게 활보하며 일상을 보냈다. 근대화가 진행되는 사이, 파리의 묘지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19세기 중반 오스만 남작은 파리를 전통 사회에서 근대 도시로 탈바꿈시키고자 묘지 개혁 계획을 수립했다. 파리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묘지를 옮기려는 의도였지만, 이는 시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시 당국은 죽은 자를 삶의 터전 가까이에 두고 그들과 긴밀하게 관계를 유지해나가고 싶어 하는 시민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 모습이 현재까지도 남아, 도심 속 묘지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 사회의 서울 역시 죽은 자를 경외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조상을 경외하며 숭배하는 태도는 제사, 성묘 등 더욱 관습화된 의례 문화로 발전해나갔다. 마을 인근에 공동묘지가 자리를 잡았고, 백성들은 수시로 챙겨야 하는 행사가 아니어도 일상적으로 이곳을 찾아들었다. 그러나 서울과 묘지의 거리는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급격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근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군사 시설, 광산 개발 시설 등을 이유로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던 묘지는 점차 서울 밖으로 밀려났다. 해방 이후에도 학교와 주택, 공장을 짓는 데 걸림돌로 인식되면서 유배를 떠나듯 멀리 도시 밖으로 옮겨졌다. 묘지는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그 결과 오늘날의 도시인들은 죽음을 피하고 꺼리며, 삶과 완전히 분리된 특별한 사건처럼 여긴다. 죽음이 추방당한 서울은 화려한 불빛과 즐거운 일들로 가득하지만, 망자의 곁에서 지난날을 돌아볼 공간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빛으로만 가득한 공간에선 오히려 빛의 존재를, 그 소중함을 알 수 없듯 우리도 죽음을 기억하지 않고서는 삶의 깊이를 온전히 느낄 수 없다. 현재 우리는 1년에 두어 번, 큰일이 있을 때만 묘지를 찾는다. 몇 시간이 넘게 달려 묘지를 방문하지만 머무는 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반면 파리의 공동묘지들은 ‘묘지투어’로 불릴 만큼 관광명소로 인기가 높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묘지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파리 사람들처럼 죽은 자 곁에서 조용히 삶을 성찰할 기회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가벼운 죽음, 쉽게 소비되는 가짜 죽음들이 범람하면서 가려지게 되는 진짜 죽음의 의미이다. 다양한 유사 죽음이 넘쳐나는 현상은 정작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실제 죽음을 몹시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죽음의 본래적 의미에 대해서는 몹시 터부시하면서도 편리하게 소비 가능한 죽음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감각하다.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연상 작용은 완벽하게 차단하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안전한, 반복 가능한 가짜 죽음에는 흥미를 느낀다. --- p.10
사람들은 한 발짝 떨어져 관조적 시선으로 익명의 죽음을 바라보며 삶을 성찰할 기회를 얻었다. 묘지는 가까이에서 죽음이 발생했을 때 그 강렬한 경험을 담아낼 그릇이자, 삶을 되돌아보고 죽음을 준비할 자양분이었다. --- p.21
“망자들은 어디에나 있으니 우리 기억 속에 살면서 우리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는 망자들의 이야기를 읽거나 말하고, 그들의 집에 살며, 그들이 만들어 내고 썼던 장소에서 일하고 논다. 우리가 망자의 유해를 어디에다 놓는지는 대개 그들을 기억하는 동시에 잊으려는 의도를 갖고 요모조모 따져 정한 결과이다. 우리는 그로써 죽음과 망자에 대한 태도, 나아가 장소와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확인하고 구축한다.” --- p.29
기묘한 탄생과 죽음의 배경이 되는 이노상 묘지라는 곳은 정말 묘지가 맞는가. 시체 썩는 냄새 위에 생선 썩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고 하니, 묘지 위에 시장이 들어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당시 이노상 묘지는 수백만의 유골이 묻혀 있는 초고밀도의 묘지인 동시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도시적 행위들이 벌어지던 삶의 터전 자체였다. 죽음의 밀도에 뒤지지 않는 삶의 밀도를 갖고 있었다. --- p.37
유럽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음에 직면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았다.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흑사병으로 죽었다는데, 그들은 단순히 죽음을 외면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부터 유행한 것이 ‘죽음의 무도’라 불린 일련의 그림들이다. --- p.40
시대의 징후를 앞서서 포착한 시인들은 기차로 촉발된 새로운 공간의 경험, 거리감의 변화를 지적했다. 공간의 살해를 외치는 하이네에 이어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é는 “극장에 속하는 무대처럼, 지방은 철도에 속하는 것이다. 파리의 역 입구에서 목적하는 지방으로 가는 길은 극장 입구에서 특별관람석에 이르는 길만큼 경향적으로 짧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 p.55
묘지가 쫓겨나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묘지는 더 이상 삶의 터전 곁에 머물지 못한다. 필요할 때에만 가끔 들르는 네트워크 위 하나의 결절점으로 전락한다. 파리와 서울뿐 아니라 근대화 시기 세계 여러 도시의 묘지 개혁은 기존의 묘지를 통폐합하여 외곽으로 밀어내는 작업이었다. --- p.64
그러나 정작 파리 시민들은 매우 강하게 반대했다. 앞서의 묘지 개혁에서도 그동안 특권을 누려 온 일부 계층으로부터 불만이 표출되긴 했지만 변화의 흐름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시민들은 계속해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 p.74
“글쎄 그러고 보니 말이오, 가만히 생각하면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얼마나 헛된 것이오? 이 몸이 땅에 파묻히면 여러 가지 원소로 해체되어 이 우주의 공간에 떠돌아다니다가 내 자식 내 손자 증손자의 콧구멍으로도 들어가고 입구멍으로도 들어가서 살이 되고, 뼈가 되고 피가 되다가 남으면 똥이 되어서 다시 밖으로 기어나가고 하는 동안에 (…후략…)” --- p.80
이처럼 큰 묘지가 도시 가운데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눈엔 몹시 낯설다. 한국이라 상상한다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엔 아파트가, 반대편엔 유골을 산골散骨하는 무덤과 추모 정원이 있는 셈이다. --- p.92
“죽은 사람에게 저렇게 큰돈이 청구된단 말이야” 나는 바보처럼 물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죽은 사람의 자손들에게 청구된 것이긴 하지만, 죽어서도 여전히 빚 독촉을 받아야 하다니, 죽었어도 죽은 것이 아니지요. --- p.98
유가족들은 미국으로 향했다. 자살자 유가족들이 참여하는 ‘비 더 보이스Be The Voice’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비 더 보이스’는 매년 자살 예방의 날인 9월 10일 개최되는 자살 예방 캠페인의 일환으로, 자살자 유가족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는 일종의 치유의 자리이다. 이곳에 참가한 유가족들은 죽은 이들의 상실에 단지 슬퍼하지만 않는다. --- p.101
1_ 죽음을 부정하다
유사 죽음의 시대
도시 묘지의 행방불명
불가분적 관계에 대하여
2_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다
두 번째 집
망자의 도시, 네크로폴리스
파리, 이노상, 향수
내 죽으니 그리 좋나!
3_ 묘지, 추방되다
공간은 살해당했다
조각난 도시
도시와 묘지의 적정 거리
죽음의 풍경이 사라진 도시
4_ 파리와 서울에서 죽다
파리의 묘지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서울, 추방당한 죽음
다시, 죽음에게 말 걸기
에필로그 ; 묘지에서 삶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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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죽음을 기억하는 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