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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 김병로

한인섭 저 | 박영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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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30329543 / 934쪽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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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독자여러분께 법률가로서의 행적에 초점을 둔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애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지 십년을 채웠습니다. 자료를 모으고 읽으면서 안개너머로부터 그의 자취가 조금씩 다가왔습니다. 여러 방학을 그의 시대와 생애 공간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정리된 부분은 논문과 저술로 가공하면서 동학들의 비평을 받을 기회를 가졌고, 그것들이 본서로 집결되기까지의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가인 선생은 참으로 떳떳하고 담담한 삶을 살았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거처할 곳도 없이 방황하는 거리의 사람(街人)으로 자처했습니다. 탁류와 더불어 싸우면... 독자여러분께 법률가로서의 행적에 초점을 둔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애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지 십년을 채웠습니다. 자료를 모으고 읽으면서 안개너머로부터 그의 자취가 조금씩 다가왔습니다. 여러 방학을 그의 시대와 생애 공간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정리된 부분은 논문과 저술로 가공하면서 동학들의 비평을 받을 기회를 가졌고, 그것들이 본서로 집결되기까지의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가인 선생은 참으로 떳떳하고 담담한 삶을 살았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거처할 곳도 없이 방황하는 거리의 사람(街人)으로 자처했습니다. 탁류와 더불어 싸우면서도 혼탁해지지 않았고, 지조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압박을 맞으면 동지들과 은거하여 미래를 기다렸습니다. 진퇴가 분명했고, 명분이 확실했습니다. 사회와 국가의 중책을 거듭 맡았지만, 애써 자리를 추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시대적 부름에 성실히 응했을 뿐입니다. 김병로 선생은 무엇보다 법률가였습니다. 식민지하에서는 법학도를 가르친 교수였고, 항일애국자들에 대해 무료변론을 도맡았던 변호사였습니다. 미군정기에는 법무-사법의 기틀을 만들어낸 사법부장으로 소임을 다했습니다. 정부수립 이후엔 첫 대법원장으로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놓았고, 청렴강직한 법관상을 구현했습니다. 그를 일러 한국 사법의 ‘창조주’라는 평도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민주독립국가에 어울리는 기본법률의 초안들은 그의 불식지공의 정성으로 빚어낸 것입니다. 이렇듯 그는 대한민국의 법제-사법-입법-윤리의 네 기둥을 세웠고, 그 영향이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저는 법률가 김병로가 남긴 업적을 성실히 정리하고, 그 정신과 의미를 파고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의 성취와 아울러, 미완성과 한계도 주목했습니다. 가인 선생은 강직불굴의 민족지사이자 사회개혁가였습니다. 청년기에는 의병항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일제하에서는 항일지사와 투사들은 물론 소작인과 화전민까지 핍박받는 민중을 대변했습니다. 그는 법정을 떠나갈 만치 열렬하게 변론투쟁을 했고, 다른 변호사들을 항일변론의 대의에 끌어들였습니다. 그의 변론은 좌우와 지역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엄혹한 일제 말기에도 민족지사로서 구심점 역할까지 해냈습니다. 해방 후 그는 토지개혁과 좌우합작, 친일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충실하고자 애썼습니다. 가인 선생은 민주주의자였습니다. 대통령이 정권연장을 위하여 법을 유린할 때 김병로 대법원장은 민주주의와 헌법의 기준으로 맞섰습니다. 재야 법조인이 되어서는 정권의 권력남용에 대해 매서운 법률비평을 쏟아냈습니다. 생애 말년엔 군정에 반대하는 민간정부의 수립을 위해 야권통합에 매진했습니다. 이렇듯 그는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는 법률가의 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공인이었습니다. 공직자로서 사적 이익을 탐한 적이 전혀 없기에, 그에게는 선공후사보다도 지공무사至公無私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공직활동 내내 근검절약의 모범을 보였고, 청탁이나 사사로움을 일체 배격했습니다. 공직자 부패와 권력남용이 만연했던 시절에 그는 청렴강직의 표상이었습니다. 저는 가인 선생의 여러 면모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습니다. 2차 가공자료보다는 원자료에 충실하고자 애썼습니다. 섣불리 비평하려 하지 않았기에 ‘평전’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위인전 스타일을 취하지 않고, 때로는 거리감을 두고 객관화하려 했습니다. 그 이름만으로 존재감이 확실하기에 부제를 달지 않고, 담백하게 [가인 김병로]를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시류에 맞춰 분량을 조정하지 않고, 디테일을 최대한 살려내고자 했습니다. 충실한 독자는 분량보다는 내용의 풍부함을 선호할 것이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저는 가인 선생과 동행, 대화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안개 저편에 어렴풋이 계시던 분과 친숙해지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1차자료는 대화를 불러오는 매개체였습니다. 가인 선생의 뒤에서, 옆에서, 앞에서 계속 말을 걸었고 들었습니다. 궁금하면 거듭 질문했습니다. 때로는 저도 동행취재를 하는 기자가 된 기분으로 곁에 바짝 붙었습니다. 도와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거명할 수 없어 송구스럽습니다만, 몇 분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인 생전의 만남을 증언해주고 도움주신 김진배, 김종인 두 분과 법조인의 활동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 홍성우, 한승헌 변호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신동운, 김재형 두 분의 김병로 논문들로부터 받은 지적과 도움을 감사히 기억합니다. 김현숙, 김영중, 김광수 등 여러 제자들과 김나영 사서의 도움에도 감사합니다. 동아ㆍ조선ㆍ경향 등 여러 언론사의 과거 기사들, 여러 대학도서관 및 법원도서관,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의 자료들이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가인 선생과의 대화를 진지하게 진행했으면 합니다. 가끔은 자문해볼 일입니다.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는 어떤 고민과 어떤 선택을 했을까? 현재 우리의 얽혀있는 여러 법적, 현실적 문제를 대하면서, 가인 선생이라면 어떤 기준을 갖고, 어떻게 결단했을까? 그가 남긴 법적 유산을 가장 김병로 식으로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 독자가 그 시대에 들어가 느껴보고, 그를 현재의 동반자로 불러내 대화하고, 이런 대화의 소재이자 가교로서 이 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7년 10월 관악에서 한인섭 씀

저자 소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저서로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 「인권변론 한 시대」, 「형벌과 사회통제」, 「5.18재판과 사회정의」, 「배심제와 시민의 사법참여」, 「권위주의 형사법을 넘어서」 등이 있다. 편저로 「한국의 공익인권소송」, 「법조윤리」, 「재심·시효·인권」, 「국민의 사법참여」,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인권변론 자료집: 1970년대」 등이 있다.
법과사회이론학회, 한국형사정책학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사법개혁위원회, 법학교육위원회, 양형위원회, 공직자윤리위원회(대법원), 법무·검찰개혁위원회 등에서 사법-법무개혁의 제도화에 열정을 쏟았다. 서울대 인권센터장, 공익인권법센터장 등을 역임하면서 공익·인권·성평등의 정착을 꾀하고 있다.



 

머리말

법률가로서의 행적에 초점을 둔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애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지 십년을 채웠습니다. 자료를 모으고 읽으면서 안개너머로부터 그의 자취가 조금씩 다가왔습니다. 여러 방학을 그의 시대와 생애 공간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정리된 부분은 논문과 저술로 가공하면서 동학들의 비평을 받을 기회를 가졌고, 그것들이 본서로 집결되기까지의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가인 선생은 참으로 떳떳하고 담담한 삶을 살았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거처할 곳도 없이 방황하는 거리의 사람(街人)으로 자처했습니다. 탁류와 더불어 싸우면서도 혼탁해지지 않았고, 지조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압박을 맞으면 동지들과 은거하여 미래를 기다렸습니다. 진퇴가 분명했고, 명분이 확실했습니다. 사회와 국가의 중책을 거듭 맡았지만, 애써 자리를 추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시대적 부름에 성실히 응했을 뿐입니다.
김병로 선생은 무엇보다 법률가였습니다. 식민지하에서는 법학도를 가르친 교수였고, 항일애국자들에 대해 무료변론을 도맡았던 변호사였습니다. 미군정기에는 법무-사법의 기틀을 만들어낸 사법부장으로 소임을 다했습니다. 정부수립 이후엔 첫 대법원장으로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놓았고, 청렴강직한 법관상을 구현했습니다. 그를 일러 한국 사법의 ‘창조주’라는 평도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민주독립국가에 어울리는 기본법률의 초안들은 그의 불식지공의 정성으로 빚어낸 것입니다. 이렇듯 그는 대한민국의 법제-사법-입법-윤리의 네 기둥을 세웠고, 그 영향이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저는 법률가 김병로가 남긴 업적을 성실히 정리하고, 그 정신과 의미를 파고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의 성취와 아울러, 미완성과 한계도 주목했습니다.
가인 선생은 강직불굴의 민족지사이자 사회개혁가였습니다. 청년기에는 의병항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일제하에서는 항일지사와 투사들은 물론 소작인과 화전민까지 핍박받는 민중을 대변했습니다. 그는 법정을 떠나갈 만치 열렬하게 변론투쟁을 했고, 다른 변호사들을 항일변론의 대의에 끌어들였습니다. 그의 변론은 좌우와 지역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엄혹한 일제 말기에도 민족지사로서 구심점 역할까지 해냈습니다. 해방 후 그는 토지개혁과 좌우합작, 친일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충실하고자 애썼습니다.
가인 선생은 민주주의자였습니다. 대통령이 정권연장을 위하여 법을 유린할 때 김병로 대법원장은 민주주의와 헌법의 기준으로 맞섰습니다. 재야 법조인이 되어서는 정권의 권력남용에 대해 매서운 법률비평을 쏟아냈습니다. 생애 말년엔 군정에 반대하는 민간정부의 수립을 위해 야권통합에 매진했습니다. 이렇듯 그는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는 법률가의 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공인이었습니다. 공직자로서 사적 이익을 탐한 적이 전혀 없기에, 그에게는 선공후사보다도 지공무사至公無私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공직활동 내내 근검절약의 모범을 보였고, 청탁이나 사사로움을 일체 배격했습니다. 공직자 부패와 권력남용이 만연했던 시절에 그는 청렴강직의 표상이었습니다.
저는 가인 선생의 여러 면모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습니다. 2차 가공자료보다는 원자료에 충실하고자 애썼습니다. 섣불리 비평하려 하지 않았기에 ‘평전’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위인전 스타일을 취하지 않고, 때로는 거리감을 두고 객관화하려 했습니다. 그 이름만으로 존재감이 확실하기에 부제를 달지 않고, 담백하게 <가인 김병로>를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시류에 맞춰 분량을 조정하지 않고, 디테일을 최대한 살려내고자 했습니다. 충실한 독자는 분량보다는 내용의 풍부함을 선호할 것이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저는 가인 선생과 동행, 대화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안개 저편에 어렴풋이 계시던 분과 친숙해지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1차자료는 대화를 불러오는 매개체였습니다. 가인 선생의 뒤에서, 옆에서, 앞에서 계속 말을 걸었고 들었습니다. 궁금하면 거듭 질문했습니다. 때로는 저도 동행취재를 하는 기자가 된 기분으로 곁에 바짝 붙었습니다.
도와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거명할 수 없어 송구스럽습니다만, 몇 분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인 생전의 만남을 증언해주고 도움주신 김진배, 김종인 두 분과 법조인의 활동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 홍성우, 한승헌 변호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신동운, 김재형 두 분의 김병로 논문들로부터 받은 지적과 도움을 감사히 기억합니다. 김현숙, 김영중, 김광수 등 여러 제자들과 김나영 사서의 도움에도 감사합니다. 동아․조선․경향 등 여러 언론사의 과거 기사들, 여러 대학도서관 및 법원도서관,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의 자료들이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가인 선생과의 대화를 진지하게 진행했으면 합니다. 가끔은 자문해볼 일입니다.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는 어떤 고민과 어떤 선택을 했을까? 현재 우리의 얽혀있는 여러 법적, 현실적 문제를 대하면서, 가인 선생이라면 어떤 기준을 갖고, 어떻게 결단했을까? 그가 남긴 법적 유산을 가장 김병로 식으로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 독자가 그 시대에 들어가 느껴보고, 그를 현재의 동반자로 불러내 대화하고, 이런 대화의 소재이자 가교로서 이 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7년 10월
관악에서 한인섭 씀

목차

독자 여러분께i
책머리에1
제1장 불우한 소년, 질풍모색의 청년9
1. 불우한 소년9
2. 의병항쟁에 관여14
3. 창흥학교 창설과 신학문 섭취18
제2장 일본 유학과 법률 전공23
1. 망국 직전의 일본 유학23
2. 명치대학 법과 및 고등연구과 졸업26
3. 유학생 자치활동과 발간32
4. 첫 논설: 이상적 형법학의 구상 40
5. 맺음말 45
제3장 법학교수로 강의와 연구51
1. 경성전수학교의 교수, 보성전문의 강사51
2. 1910년대 김병로의 법학연구58
3. 고려대 ‘명예법학박사’ 제1호를 수여 65
제4장 판사를 거쳐 변호사의 길로69
1. 만 1년간의 판사 생활69
2. 항일 변호사로서 첫 사건들: 대동단, 보합단, 이춘숙 사건75
제5장 “유조리 최열렬”한 항일변호사(1920년대)83
1. 김상옥 관련사건에서 김병로: “유조리 최열렬의 변론”85
2. 김시현 등 암살음모사건: “3인” 변호사의 첫 공동변론96
3. 평북 희천사건: 경찰고문의 진상을 폭로해내다108
제6장 변호사들의 조직적 활동123
1. 경성조선인변호사회의 출범124
2. 조선인변호사협회 창립과 국제변호사대회 참가126
3. 평북 희천사건의 고문사실 조사131
4. 각파유지연맹 박춘금의 폭행에 대한 대처134
5. 암태도 소작쟁의에 관여137
6. 옥구 소작쟁의의 변론139
7. 언론집회압박탄핵운동에 관여 145
8. 항일변론의 구심점: 형사공동연구회153
제7장 법정에서 사회로: 신간회 운동과 실지조사161
1. 신간회 간부로서의 활동: 허헌과 김병로163
2. 변호사의 실지조사179
3. 광주의 학생들에 대한 재판 194
4. 경성여학생, 만세운동사건으로 검거-처벌되다.199
제8장  대형 사상사건에 대한 연대변론투쟁209
1. 조선공산당사건과 변호사들의 공판투쟁209
2. 고려혁명당사건: 피고인의 법정투쟁과 ‘불온한’ 변론249
제9장  변호사 징계처분265
제10장 사회적 평판과 자기인식273
1. ‘가인’이란 호273
2. 변호사의 사명은 ‘민중의 권익옹호’275
3. ‘조선 좌경변호사’로 첫 사람285
4. 독립운동과 변호사의 관계290
5. 조선의 ‘대심원장’감301
제11장 1930년대의 항일변론307
1. 김병로-이인의 합동법률사무소 시대308
2. 해외 지도자의 체포와 재판: 여운형, 안창호, 조용하, 박헌영의 변론312
3. 경성제대 반제동맹사건 변론356
4. 이재유와 공산당재건운동사건 변론359
5. 사상변호사와 공산주의자의 관계369
제12장 동우회사건, 사상변론의 봉쇄381
1. 고문과 악형, 예심의 지연382
2. 전향의 강요389
3. 제1심 무죄와 항소심 유죄392
4. 조선고등법원: 무죄판결393
5. 사상사건에 대한 변론권을 박탈당하다404
제13장 창동시절: 일제 말 퇴경과 수절411
1. 창동으로 이사하여 농촌생활411
2. 민족지사들의 구심점으로서 창동418
3. 일제 말의 김병로429
제14장 해방과 미군정기: 사법부장 김병로433
1. 미군정기 사법부장 김병로 433
2. 미군정기 헌법 및 법전의 편찬작업443
제15장 초대 대법원장 취임 전후463
제16장 반민특위 특별재판부장 김병로479
1.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의 경과479
2. 반민족행위 특별재판부 부장 김병로483
3. 반민특위의 활동과 방해486
4. 반민특위의 와해500
5. 반민특위와 개인 김병로506
6. 맺음말510
제17장 청렴강직ㆍ지공무사의 대법원장515
1. 정부수립부터 6ㆍ25전란 전후한 시기515
2. 전시하의 법전편찬: 불식지공의 의지로525
3. 법관윤리의 정립과 실천527
4. 성실한 재판, 박람강기의 지식 532
5. 청렴강직, 지공무사한 법관상540
제18장 기본법률을 기초한 법전편찬위원장555
1. 법전편찬위원회의 구성556
2. 형법 초안의 확정단계559
3. 형법초안(1949년)의 내용 검토563
4. 국회의 입법과정과 형법의 공포575
5. 형사소송법 제정의 경과581
6. 김병로의 형사소송법 구상590
7. 민법의 제정과정과 한국민법의 특색616
제19장 대통령의 헌법파괴에 맞선 대법원장651
1. 글머리에651
2. 1952년 발췌개헌을 전후한 대법원장의 언행652
3. 헌법위원회에서 최초의 위헌 선고(1952년)665
4. 4사5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672
5. 이승만의 국회 메시지에 대한 정면 반박(1956년)677
6. 의연하고 당당한 기개684
제20장 대법원장 퇴임 전후: 사법권독립의 지원자691
1. 대법원장의 정년퇴임, “사법의 창조주” 691
2. 제2대 대법원장 임명을 둘러싼 갈등과 김병로697
3. 법관 연임파동과 김병로의 비판711
4. 사법부 독립의 수호자 김병로721
제21장 민주수호자로서 대쪽 비평729
1. 국가보안법 파동(2ㆍ4파동)과 김병로732
2. 경향신문 폐간처분에 대한 김병로의 비판751
3. 맺음말767
제22장 4ㆍ19 전후의 정치격랑에 뛰어들다775
1. 부정선거는 “천추의 한”이 될 것775
2. 4ㆍ19를 맞아 이승만 하야를 촉구하다781
3. 자유법조단 결성과 7ㆍ29총선에서 낙선792
제23장 반군정 야권통합의 최전선에서807
1. 1963년 정치의 재개807
2. 1963년 초반 정당활동: 대동단결의 씨뿌리기810
3. 군정에 대항한 ‘민정당’의 창당821
4. 야당 대통합: ‘국민의당’ 결성을 향하여842
5. 맺음말851
제24장 맺음말855
본서에 통합된 필자의 선행 연구863
가인 김병로 연보865
김병로의 집필기고873
참고문헌876
주요 사진 출처905
인물색인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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