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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373285 / 308쪽 149 x 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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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박정희 신드롬이 있는 한 한국에 미래가 없다!” 유신 쿠데타-철권, 강권, 폭압 정치의 시작 왜 일으켰나? 왜 막지 못했나? 그 배경과 뿌리는 무엇인가? 일제의 무단 통치에 비견할 만한 암흑의 시대 유신 체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시대 1972년 10월 17일 유신 쿠데타가 일어났다. 박정희는 그날 쿠데타를 일으키고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거머쥔 유신 체제를 탄생시켰다. 유신 쿠데타가 일어난 지 45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1979년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면서 유신 체제는 막을 내... “박정희 신드롬이 있는 한 한국에 미래가 없다!” 유신 쿠데타-철권, 강권, 폭압 정치의 시작 왜 일으켰나? 왜 막지 못했나? 그 배경과 뿌리는 무엇인가? 일제의 무단 통치에 비견할 만한 암흑의 시대 유신 체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시대 1972년 10월 17일 유신 쿠데타가 일어났다. 박정희는 그날 쿠데타를 일으키고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거머쥔 유신 체제를 탄생시켰다. 유신 쿠데타가 일어난 지 45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1979년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면서 유신 체제는 막을 내렸지만, 이어서 등장한 전두환·신군부 체제 또한 유신 체제의 연장이었다. 곧 한국 사회는 1987년 6월항쟁이 일어날 때까지 유신 체제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한 번도 펼쳐보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개인의 판단과 비판, 선택권을 가질 수 없었다. 체제를 비판하기만 해도 소리 소문 없이 잡혀가던 시기였고,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서중석 교수는 1972~1987년까지의 15년을 “철권, 강권, 폭압, 그리고 민주공화국 헌법을 유린한 통치”기라고 말하고 있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 쿠데타가 일어난 후 그 아류 내지 유신 체제의 서자라고 볼 수 있는 전두환·신군부 체제가 1987년 6월항쟁으로 크게 바뀔 때까지 15년 걸렸다. 15년은 우리 현대사에서 엄청나게 긴 기간이다. 1945년부터 1987년까지를 놓고 보면 더더욱 긴 기간이다. 그 15년간 철권, 강권, 폭압, 그리고 민주공화국 헌법을 유린한 통치가 이뤄졌다. 전두환·신군부 통치는 유신 쿠데타의 연장 아닌가.” 한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의 9~11권의 주제는 ‘유신 쿠데타’이다. 서중석 교수는 3권에 걸쳐 ‘유신 쿠데타 왜 일으켰나’, ‘유신 쿠데타 왜 막지 못했나’, ‘유신 쿠데타의 배경과 뿌리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1910년대 일제의 무단 통치에 비견할 만한 암흑의 15년”의 시작점, 그렇게 지독한 폭압 정치가 있게 된 배경과 성립 과정을 자세히 살펴야 지금의 한국 사회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부터 퍼져 나가기 시작해 박근혜 정부에서 정점에 다다른 박정희 신드롬의 폐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 폐해 중 하나가 ‘성장 제일주의’이다. 민주주의와 인권보다는 경제 성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한국 사회에 횡행했다는 것이다. 또 유신 체제를 떠받쳤고 나중에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린 그 세력들이 아직도 살아남아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실도 지적하고 있다. 민주주의, 인권, 자유, 한반도 평화 등 어느 면에서 보나 박정희는 한국 사회의 걸림돌이지 영웅으로 떠받들어야 할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서중석 교수는 “박정희 신드롬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에 미래가 있을 수 있겠나?” 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한국 사회를 배회하는 ‘박정희 망령’을 하루속히 없애려면 박정희를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박정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유신 쿠데타가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그 배경까지 쭉 훑어보는 것이 각별히 필요하다. 9~11권은 그 박정희의 맨 얼굴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책이다. 유신 체제는 흘러간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 자세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취지이다. 모든 권력을 1인이 거머쥔 ‘총통제 국가’ 유신 쿠데타는 어떻게 일어났나? 1972년 10월 17일 오후 6시경 탱크 부대가 중앙청으로 가고 계엄군이 태평로, 중앙청 일대에 포진했다. 동아일보사, 조선일보사를 접수한 계엄군은 곧 공화당사도 접수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7시 박정희는 라디오를 통해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 활동의 중지 등 현행 헌법의 일부 조항 효력을 정지시킨다. 일부 효력이 정지된 헌법 조항의 기능은 비상국무회의에 의하여 수행되며 비상국무회의의 기능은 현행 헌법의 국무회의가 수행한다”고 특별 선언을 발표했다.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유신 헌법은 1972년 11월 21일 국민 투표를 거쳐 확정되었다. 국민 투표에서 투표율은 91.9퍼센트였고 찬성이 91.5퍼센트, 반대가 7.6퍼센트로 압도적인 찬성률을 기록한 것으로 발표됐다. 계엄을 선포한 10월 17일부터 국민 투표일이던 11월 21일까지 계엄하의 살벌한 분위기에서 모든 매체가 ‘유신만이 살길이다. 유신 아니면 우리나라는 이제 안 된다’고 역설한 결과였다. 12월 27일 박정희는 드디어 통일주체국민회의 99.9퍼센트의 지지로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모든 권력을 한 사람이 거머쥔 유신 체제가 탄생했다. 9권에서는 박정희가 왜 그 시점에 유신 쿠데타를 일으켰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에 대한 연구자들의 견해는 굉장히 엇갈리는데, 유신 쿠데타를 국제 정세 변화와 연결해 파악하는 사람도 있고, 1968년과 1969년에 북한이 펼친 잇단 무력 공세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다. 또 중화학 공업화를 비롯한 경제 문제와 연결해 설명하는 연구자도 있고, 노동 문제 때문에 유신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서중석 교수는 이런 여러 의견들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하나씩 반박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시는 유신 쿠데타를 초래할 만큼 심각한 경제 위기도, 노동 운동도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곧 쿠데타가 일어날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중앙정보부의 대다수 고위 간부들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중석 교수는 다른 연구자들과는 달리 박정희가 유신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를 ‘영구 집권욕’과 ‘한국적 민주주의의 구현’에서 찾고 있다. 박정희는 5?16쿠데타를 일으킬 때부터 민간인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정권을 이양할 의사가 전혀 없었고, 지도자가 강권 통치 또는 강력 통치를 해야 한다는 정치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초지일관 ‘한국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신 체제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현재처럼 비생산적이인 정치, 야당의 구태 같은 것이 계속 나타나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되고 능률을 극대화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적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한국적 민주주의는 서구적 민주주의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것이지만, 서구적 민주주의가 한국인에게 적합치 않다는 논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에는 일제가 주장한 식민주의 사관이 깔려 있다. 서중석 교수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포함해 박정희의 정치 이념의 뿌리는 일본 군국주의와 연결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격동의 1971년, 한국 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나? 왜 아무도 유신 쿠데타를 막지 못하고, 저항하지 못했나? 10권의 주제는 ‘유신 쿠데타를 왜 못 막았나’이다. 당시 사법부, 정치권, 군부, 언론, 대학가 등은 어떤 상태에 있었기에 쿠데타를 막지 못했을까? 그리고 유신 쿠데타가 일어난 뒤 한동안 왜 저항하는 움직임이 없었을까? 10권에서는 그 궁금증을 하나씩 파헤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유신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해인 ‘격동의 1971년’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1971년에는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총선, 언론 자유 운동, 사법부 파동, 광주 대단지 사건, 실미도 사건, 163명이 사망한 대연각 호텔 화재 등 굵직굵직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1971년에 일어난 이런 일련의 큰 사건들이 유신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로 작용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즉 1970년에 일어난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필두로 해서, 1970년과 1971년의 노동 운동과 노사 분규, 그리고 여러 사회적 갈등과 민주
박정희가 장기 집권 의지를 드러내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길로 가는 데 3선 개헌은 분수령과 같은 역할을 했다. ‘3선 개헌에서 박정희는 루비콘강을 건넜다’, 나도 그런 말을 쓰고 있고 다른 사람도 쓴 경우가 있다. 그랬을 경우 이 루비콘강이 뭐냐 하는 건데, 난 ‘3선 개헌은 강권 체제, 장기 집권을 위한 박정희의 권력 의지가 구체화되는 데 징검다리였다. 그걸 루비콘강을 건넌 것으로 봐야 한다’고 이해한다. 3선 개헌으로 박정희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다. -21쪽
바로 식민주의 사관이다. 앞에서 말한 두 저서, 《우리 민족의 나갈 길》하고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박정희는 서구 민주주의가 한국에 부적합하다고 얘기했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식민 사관에 대해서도 자신의 역사관이자 철학으로 굉장히 중요하게 역설했다. 박정희에게 한국적 민주주의를 뒷받침해주고 그 바탕이 된 것이 한국사와 한국 민족을 부정적으로 사고하는 식민 사관이었다. 다시 말해 왜 민주주의가 한국에는 맞지 않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해야 하느냐에 대해 박정희의 두 저서에 담긴 내용을 살펴보면, 거기에 식
민 사관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5쪽
2·26쿠데타를 일으킨 청년 장교들의 군국주의 파시즘 또는 천황제 파시즘은 이념성이 강한 조선인 청년이나 군인에게도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박정희는 2·26쿠데타를 일으킨 청년 장교들이야말로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고 개조하려는 사명감이 투철한, 올바른 군인 정신의 소유자들이었다고 본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2·26사건에 대한 강한 공감을 5·16쿠데타를 전후해서도 피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99쪽
책머리에
연표
유신 쿠데타의 배경
첫 번째 마당
5·16쿠데타 때부터 비상대권 지향,
독재 추진할 때만 드골 찾은 박정희
두 번째 마당
1967년 대선은 동서 선거,
야당이 지리멸렬인데도 서쪽에선 승리
세 번째 마당
3선 개헌 포석,
국민 양심 마비시킨 6·8 망국 선거
네 번째 마당
곳곳에서 투·개표도 부정,
전국 각지에서 분노한 학생 시위
다섯 번째 마당
한국이 낳은 예술 거장들을
고문실로 보낸 동백림 사건
여섯 번째 마당
3선 개헌에 대한 김종필계의 저항
박정희, 당내 반대 세력 가차 없이 숙청
일곱 번째 마당
장기 집권 반대는 정부 불신임?
박정희의 기묘한 7·25 특별 담화
여덟 번째 마당
일요일 새벽 3선 개헌안 전격 날치기,
장기 집권의 문 열어젖힌 박정희
유신 쿠데타의 뿌리
첫 번째 마당
《우리 민족의 나갈 길》에서 역설한
박정희의 식민 사관
두 번째 마당
유신 체제의 기본 골조,
5·16쿠데타 때 이미 세워져 있었다
세 번째 마당
일본 국수주의 장교에게
심취한 박정희
네 번째 마당
유신 체제에 짙게 드리운
일본 2·26쿠데타의 그림자
나가는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