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큐레이셔니즘 선택은 어떻게 세상의 가치를 창조하게 되었는가?

원제 : Curationism: How Curating Took Over the Art World and Everything Else

데이비드 볼저 저 | 이홍관 역 | 연암서가 | 2017년 08월

북트리

정가
$30.00
판매가
$16.5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33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7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91160870121 / 228쪽 136 x 197 (㎜) / 양장본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9,800
  • 20,700
  • 22,500
  • 20,7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선택은 어떻게 세상의 가치를 창조하게 되었는가? 점심 메뉴까지도 ‘큐레이팅’하는 세상이다. 현대 문화에서 코너서connoisseur란 어떤 역할을 하는가? ‘큐레이팅’이라는 유행어는 뮤직 페스티벌에서 고급 수제 치즈에 이르기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게 되었다. 예술계에서 큐레이터는 고급 취향의 단체전이나 비엔날레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며 개인 작가의 기여는 그로 인해 가려지기도, 흡수되어버리기도 한다. 큐레이터학과 교육은 갈수록 번창하고, 비즈니스계에서는 큐레이션을 통한 콘텐츠 가치의 증대를 꾀한다. 누구나 큐레이터가 된 것 같은 ... 선택은 어떻게 세상의 가치를 창조하게 되었는가? 점심 메뉴까지도 ‘큐레이팅’하는 세상이다. 현대 문화에서 코너서connoisseur란 어떤 역할을 하는가? ‘큐레이팅’이라는 유행어는 뮤직 페스티벌에서 고급 수제 치즈에 이르기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게 되었다. 예술계에서 큐레이터는 고급 취향의 단체전이나 비엔날레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며 개인 작가의 기여는 그로 인해 가려지기도, 흡수되어버리기도 한다. 큐레이터학과 교육은 갈수록 번창하고, 비즈니스계에서는 큐레이션을 통한 콘텐츠 가치의 증대를 꾀한다. 누구나 큐레이터가 된 것 같은 세상이다. 하지만 도대체 큐레이터란 과연 누구인가? 큐레이팅에 모인 폭발적 관심이 시사하는 우리의 문화, 취향, 노동 그리고 아방가르드의 관계는 무엇일까? 데이비드 볼저는 강렬하고 예언적이며 독창적인 이 책을 통해 예술사부터 전 지구까지를 넘나들며, 잘 시간도 없는 큐레이터계의 슈퍼스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치열한 삶에서부터 지하철의 ‘샌드위치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큐레이션이라는 컬트적 문화를 탐구한다. 톰 울프의 『회화가 된 언어』와 존 버거의 『보기의 방식』 등 문화비평사의 명저들과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볼저의 『큐레이셔니즘』은 독자가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을, 그리고 나아가 스스로를 바라보던 시각을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추천사 “이 책은 독특한 예술사 서적이다. 이 책은 독자가 읽어야만 하고, 읽기에 편한 책이다. 볼저는 큐레이셔니즘의 역사와 오늘날의 헤게모니를 추적한다. 그것은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나 글을 모르는 대중에게 복음을 설파하는 목사처럼 행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행태이다. 알면 불편할 내용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읽어봐야 할 책이다.” -데이브 히키 [책 속으로 추가] 18~19세기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자유로운 행위자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전반까지 뉴욕 구겐하임 박물관의 겸임 큐레이터였던 에드워드 프라이Edward F. Fry는 원조 박물관 큐레이터를 국가의 도구로 묘사했다. 여러 박물관 컬렉션이, 특히 파리의 루브르가 그러하듯 정치적 혼란과 제국주의의 치세가 원인이 되어 발달했기 때문이다. 호기심의 방과 마찬가지로, 1793년에 개관한 루브르도 상징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체의 정치가 문자 그대로 시전된 곳이었었다. 프랑스 혁명 후에 개관한 이곳은 생겨난 초기에 새로 부상한 공화정의 지시적 목표를 과시하기 위한 발화점이 되었으며, 이후 나폴레옹의 치하에서는 전쟁의 잔해가 모인 프로파간다성 ‘보편박물관Universal Museum’으로 변했다. 그 당시 황제의 지명을 받은 큐레이터는 춘화春? 작가이기도 했던 도미니크 비방 드농Dominique Vivant Denon이었다. 학자이자 갤러리스트인 카르슈텐 슈베르트Karsten Schubert에 따르면 그는 “역사상 최대의 박물관 소장품”(물론 약탈한 것들) 위에 군림했다. 드농은 누가 봐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었지만 그가 관장한 업무는 카탈로그의 정리와 약탈물 관리였다. 워털루 전투가 끝난 후, 영국도 이 모델을 가져와 대영박물관에 적용했다. 전시실은 연대기 순으로 구성되었지만 명판이 없었고 정돈도 되지 않았다. 슈베르트는 “큐레이터가 혼자만의 방식으로 관람자를 상상했다”고 한다. 이 상상은 활기가 없고, 현학적이고,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것이었다. 이곳의 큐레이터는 도서관 사서나 학자와 더 비슷했다. “박물관은 정치 지도자를 세계 문화의 수호신처럼 내세웠다. 실상 박물관은 제국주의의 시녀가 되었다”고 슈베르트는 말한다. -55쪽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예술가들의 전시 전략은 이념가치와 상품가치 모두를 추구하였는데, 이는 아방가르드 개념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 용어는 군사 용어인 밴가드vanguard(돌격 부대의 전위 부대)로부터 파생되었으며, 1910년의 예술과 관련하여 런던의 우익 신문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예술사학자 폴 우드Paul Wood에 따르면, 1910년은 또한 예술가 겸 비평가이자 현대 큐레이터의 원조 격인 로저 프라이Roger Fry가 런던에서 고갱, 쇠라 등의 작가와 함께 런던에서 후기인상파전을 개최하여 논란을 점화한 해이다. “아방가르드”는 이런 전시들을 일컫는 용어였는데 그것은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었고, 특히 세기말-세기초의 영국은 더욱 그러했다고 우드는 이야기한다. 프랑스의 정치와 예술이 모두 여전히 “내란과 불안정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60쪽 큐레이터가 보편화되기에 앞서 먼저 일어난 일은 예술가의 증가였다. 이 일이 실질적으로 시작된 것은 1960년대와 1970년대였으며, 이 시기 아방가르드는 바쁘게 탄력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서구가 누린 전후의 경제호황 속에서 자라난 베이비붐 세대가 보헤미안주의와 실험성을 전례 없이 한껏 껴안았던 이유가 크다. 후기회화 추상, 컬러필드 회화, 옵아트, 팝아트, 액션아트, 행위예술, 대지예술, 비디오아트 등등 끝없이 장황한 예술 운동이 펼쳐졌는데, 만약 이들 모두를 바Barr 식의 흐름도로 표현하면 꽤나 촘촘할 것이다. 1975년 『회화가 된 언어The Painted Word』에서 톰 울프는 이런 운동을 비웃었는데, 20세기 초에는 발음도 괴상한 ‘이즘’들이(포비즘, 퓨처리즘, 큐비즘, 익스프레셔니즘, 오르피즘, 수프레마티즘, 볼티시즘) 줄줄이 탄생한 것도 물론 사실이지만 그들 모두는 ‘하나의 전제를 공유’했고, 그것은 바로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것이었다. 그와 달리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운동들 속에서 는 대체로 오늘날 개념주의로 알려진 방향으로 의식화된 분열이 일어났다. 울프는 아이디어(개념)가 오브젝트(형태)를 압도하면서 오브젝트들이 눈에 띄게 추해져 간 과정을 격하게 비난한다. -68쪽 큐레이터는 동시대를 규정하는 조건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루어진 아이디어와 작품 확산은 1980년대의 양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시기에 와서야 1960년대에 비평가 아서 단토Arthur Danto가 바로 “예술세계the artworld”라고 명명한 시기가 완전히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비평가 제드 펄Jed Perl은 1980년대의 뉴욕을 이렇게 표현했다. “예술현장의 규모가 굉장히 커졌다. (단, 규모가 확대되었다고 해서 질적 변화가 함께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1980년대에는 1950년대만큼이나 좋은 작품이 많이 탄생했지만, 개인적 신념을 좇아 열심히 작업하는 작가를 찾아내기란 어지간히 갤러리를 돌아다니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이를 연구한 브루스 알트슐러Bruce Altshuler에 따르면 1949년 미국에 현대미술 갤러리가 약 20개, ‘진보적 작품’에 투자하는 컬렉터의 수가 십수 명에 불과하던 것이 1984~1985 시즌엔 뉴욕에서만 1,900건에 육박하는 개인전이 열렸다. 해럴드 폴큰버그Harald Falckenberg의 2014년 『파이낸셜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1980년대에 매매된 예술품의 수는 “지금까지 모든 세기를 더한” 것보다 많았다. -83쪽 오늘날, 스타 큐레이터는 한 명의 작가처럼 자기만의 스타일을 보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 순전히 자기중심성이 라고 폄하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오브리스트의 사례를 보더라도, 스타 큐레이터들은 자신의 약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유명세 앞에서는 자신의 몸을 낮추는 모습도 갖춘다. 그럴 만도 하다. 기관 속에서 그들의 역할은 독보적이지만 애매하기도 해서이다. 그들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가? 외계인

저자 소개

데이비드 볼저는 『빌리버The Believer』, 『모던페인터Modern Painters』, 『아트포럼닷컴Artforum.com』, 『글로브앤메일Globe and Mail』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단편소설집 『컨트리번스Contrivances』의 작가이다. 현재 『커네디언아트』지의 부편집자이며, 위니펙에서 태어나 현재 토론토에서 활동한다. 비평가, 편집자, 그리고 교사로도 일하고 있다.

역자 소개

상명대학교에서 사진을, 시카고 대학교에서 예술사를 공부했다. 2015년까지 다양한 국공립 미술관과 전시 제작사에서 일하며 전시 기획, 큐레이팅, 지원 업무 등 문화기관의 실무를 경험하는 한편, 공공예술, 공연예술, 역사관, 체험관, 만화 등 폭넓은 문화 분야의 실무적 기획을 역임했고, 현재 참여 문화의 실천에 관한 현장과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참여적 박물관』(니나 사이먼, 2015), 『피드백, 노이즈, 바이러스』(데이비드 조슬릿, 2016), 『몰입과 극장성』(마이클 프리드, 출간 예정) 등을 번역하였다.

목차

여는 글
프롤로그 HUO라는 인물
제1부 가치value
제2부 작업work
감사의 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