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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6007324 / 224쪽 119 x 183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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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아도르노의 저 유명한 명제는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 이후
이렇게 수정된다.
“고문당한 자가 비명 지를 권한을 지니듯이, 끊임없는 괴로움은 표현의 권리를 지닌다. 따라서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를 쓸 수 없으리라고 한 말은 잘못이었을 것이다.”
(『부정변증법』, 1966)
첼란 시의 아픈 ‘비의(秘義)’ 속을 걷다
단지 아우슈비츠를 대표하는 시인을 넘어 시적 언어의 가능성을 현대시에
남겨두었다고 평가받는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
거부할 수 없는 매혹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몰이해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허위의 세계에 대한 거부를 분명히 보여주었던
영원한 이방인.
몇 권의 시 선집으로만 알려진 그와 그의 시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을 이제
비로소 우리는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출판사 리뷰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아도르노의 저 유명한 명제는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 이후 이렇게 수정된다. “고문당한 자가 비명 지를 권한을 지니듯이, 끊임없는 괴로움은 표현의 권리를 지닌다. 따라서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를 쓸 수 없으리라고 한 말은 잘못이었을 것이다.”(『부정변증법』, 1966) 첼란 시의 아픈 ‘비의(秘義)’ 속을 걷다 단지 아우슈비츠를 대표하는 시인을 넘어 시적 언어의 가능성을 현대시에 남겨두었다고 평가받는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 거부할 수...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아도르노의 저 유명한 명제는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 이후 이렇게 수정된다. “고문당한 자가 비명 지를 권한을 지니듯이, 끊임없는 괴로움은 표현의 권리를 지닌다. 따라서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를 쓸 수 없으리라고 한 말은 잘못이었을 것이다.”(『부정변증법』, 1966) 첼란 시의 아픈 ‘비의(秘義)’ 속을 걷다 단지 아우슈비츠를 대표하는 시인을 넘어 시적 언어의 가능성을 현대시에 남겨두었다고 평가받는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 거부할 수 없는 매혹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몰이해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허위의 세계에 대한 거부를 분명히 보여주었던 영원한 이방인. 몇 권의 시 선집으로만 알려진 그와 그의 시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을 이제 비로소 우리는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책소개 1945년 이후 독일 문단은 물론이고 전후 시 문학에서 가장 주목받고 지금까지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인 파울 첼란(1920-1970). 루마니아 태생 유대인으로 나치에 의해 부모가 죽임을 당하고 그 자신 또한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였지만, 모어(母語)인 동시에 살인자의 언어인 독일어로 시를 썼던 모순된 운명을 받아들였던 시인. 하지만 전후 유럽 사회에도 정착할 수 없었던 ‘영원한 이방인’. 그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던 센느 강에 몸을 던진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와 삶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더불어 여기에 우리 속에 해소되지 않은 채 맴돌기만 하던 한 가지 물음이 있다. 그렇다면 적지 않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문학 가운데서 유독 그의 시 문학이 끊이지 않고 회자되고 연구되는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그의 비극적 삶과 죽음 때문에?(어찌 그만 그러했으랴.) 그의 시가 지닌 감출 수 없는 매혹 때문에? 그렇다면 어떤? 매혹이라 했으나, 그런데 그가 살았던 동시대에 그가 쓴 시들이 위대함에 대한 찬사와 함께, 어쩌면 찬사보다도 더한 몰이해에 부딪혀야 했다면 문제는 간단치 않게 된다. 더구나, 프리모 레비의 말마따나, 그의 시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독자는 물론 비평가에게도 ‘절망적인 시도’라는 상황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지 않은가.(하물며 시 선집 외에 제대로 된 비평서 하나 없는 한국적 현실에선 말할 것도 없다.) 오늘에 와서 그의 시의 난해함을 불러온 미학적 절대주의와 사회참여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없다고 인정되고 있으나 전후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는 아도르노의 명제에 대한 오독을 한편으로, 전후 독일 문단을 지배하는 ‘리얼리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파리에 거주하며, 독일어로 시를 쓰는, 동유럽 출신의 망명자 유대인 시인이 쓴 ‘초현실주의’에 물든 시가 아우슈비츠의 ‘진실’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리라. 이는 또한 홀로코스트의 재현을 둘러싼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논란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파울 첼란 시 문학 연구의 최고 권위라고 인정받는 장 볼락의 강연 텍스트 『파울 첼란 / 유대화된 독일인들 사이에서』가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그간 이 시인에게 매력을 느끼고 관심을 가져온 독자들에게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텍스트는 곧장 첼란 시의 ‘이해하기 어려움’이라는 통설을 문제 삼는다. 저자에 따르면, 시 문학이 갖는 비의(秘義)성은 이해될 수 있으며, 또한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복합적인 언어적 연관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라는 매체에서 역사적 사실들의 복원이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전제에서 책은 첼란의 삶과 시 문학을 이해하는 하나의 총체적 사유-세계를 펼쳐 보인다. 함축적이고 신중하게 선택된 저자의 해석의 언어들을 따라잡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겉보기에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전기적 사실―개인적인 삶과 정신의 궤적, 이를테면 그것에서 비롯된 ‘특수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읽어낼 수 있다면 어렵기만 한 숙제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말미에 덧붙여진 길게 작성된 ‘파울 첼란 연보’도 도움이 될 것이다. 파울 첼란을 말하다 「죽음의 푸가」의 거친 명료함부터 마지막 작품들의 미광조차 없는 끔찍한 혼돈까지, 그의 시는 더없이 차가운 냉혹한 악처럼 독자를 사로잡는다. 이 암흑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마지막의 알아들을 수 없는 횡설수설이 죽어가는 인간의 가르랑거리는 소리처럼 간담을 서늘하게 할 때까지 점점 더 짙어진다. ―프리모 레비 파울 첼란의 시는 침묵을 통해 극도의 경악을 말하고자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어떠한 서정시도 쓰일 수 없다는 말은 잘못이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 첼란은 자신의 모든 시들에 날짜를 적었다. 날짜로서의 시, ‘쉬볼렛’으로서의 시는 잊힐 운명에 처한 것을 기념한다. ‘단 한 번’ 일어난 것, 반복하지 않은 것에 어떻게 날짜를 적을 수 있을까. 하지만 반복하지 않은 것 말고 도대체 어떤 것에 날짜를 적을 수 있단 말인가. “되풀이할 수 없는 것을 뒤쫓아” 자신의 길을 간 그의 시에서 철학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학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결코 헛된 노력이 아닐 것이다. ―자크 데리다 “이집트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기억이 없다”라고 했던 파울 첼란. 이 말과 함께 그의 또 하나의 비밀스러운 이름인 ‘페자흐(유월절)’을 떠올리면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다름 아닌 이집트에서 보내야 하는 모순된 운명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의 언어, 독일어로 시를 쓰면서. …… 독일어에 대해 첼란이 성취한 특별한 언어조작은 그의 독자들을 매료시킨 것이었다. ―조르조 아감벤 파울 첼란을 읽어보자. 시란 ‘유리병 통신’이라고 말했던 첼란을. 비슷하게 재해 ‘이후’를 살고 있다지만 그와 우리의 차이는 바다처럼 크다. 하지만 그가 말한 대로 그 유리병에는 시인의 이름이, 운명이, 의지가, 날짜가 밀봉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 당도한 것이다. 이 대양을 횡단하는 고난을 헤치고 도래한 것이다. 그의 유리병이 당신 앞에. 당신에게. 이렇게. 그러니 파울 첼란을 읽어보자. 지금이야말로. ―사사키 아타루 왔네, 왔네. 말 하나가 왔네, 왔네, 밤을 가로질러 와, 빛나고자 했네, 빛나고자 했네. ―파울 첼란, 「스트레토(Engf?hrung)」 중에서 말(詩) 하나가 왔(었)다. 밤을 가로질러. 그 말이 어떤 밤을 가로질러 왔는지, 그 어떤 밤에 대해, 우리는 어렴풋이 알 뿐이다. 그런데, 대체 여기서 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며,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파울 첼란과 그의 시를 두고 던져보는 말이다. 그의 시는 한 번 접하면 기묘한 울림으로 매혹시키되 동시에 짙은 안개 속에 우리를 가둔다. 그 밤-안개 속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늪에서 올라온 그 말은 리듬을 타고 오다가 뚝 끊어지고, 말이면서 말이 아닌, 침묵 직전의, ‘나머지 없는 나머지’만 남기고 사라진다. 그리하여 그 사라짐에 대해, 우리에게 생각하도록 한다. 우리는 그의 시가 아름답다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그가 가로질러 온 밤(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가혹한 운명)에 대해 아름답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시는 지독한 난해함과 더불어, 아름답지 않다. 프리모 레비가 말했듯이, 이미 죽어 있는,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의 마지막
첼란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자신의 운명과 깊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언어[독일어] 속에 살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시각 역시 하이데거와 가다머에 대한 거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첼란이 자신의 집으로 여긴 것은 차라리 보들레르, 랭보, 말라르메 그리고 아폴리네르의 도시인 파리였습니다. 그런데 첼란은 이들의 전통을 단순히 이어받거나 이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동화된 독일 유대인들의 전통을 단순히 이어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첼란은 독일어 속에, 릴케와 호프만스탈의 언어 안에, 유대인의 전통을 위한 장소를, 아포리아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19쪽)
첼란은 ‘독일적인 유대인의 언어’에 대비되는 ‘유대인의 독일어’를 제시합니다. 이런 점에서 첼란에게는 독일적이지 않은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독일적인 것이 되며, 이는 자신의 사로잡혀있음으로부터 해방되는 역사적 행보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그러한 의미에서 유대인으로 이해하며, 수호자로 이해합니다. 어떤 ‘존재’의 수호자가 아니라, 그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어떤 ‘정신성’의 수호자 말입니다. 어떤 ‘지성성’의 수호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첼란에게서 우선 지성인을 보고, 그 다음에 작가를 보고, 작가와는 다시금 구별하여 마지막에 비로소 시인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47-48쪽)
첼란의 시 문학은 일종의 사유양식입니다. 첼란은 그것을 기억과 동일시합니다. 이처럼 응축된 사유형태는 철학으로도 신학으로도 분류될 수 없습니다. …… 첼란의 시에는 항상 같은 의미를 갖고 재등장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 첼란은 어떤 시각을 논박하기만 하지 않고, 카발라나 프로이트로부터 따온 텍스트들을 재수용한 경우에서와 같이, 주어진 단어들의 독법에 서슴없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거리를 두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에 따르는 원문 구절의 변형은 바꿔쓰기가 이루어졌음이 훤히 드러나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51-52쪽)
첼란은 자신을 무엇에 귀속시킨 것일까요? 그것은 선인들과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두 가지 측면에서 ‘대항하는 유대주의’였습니다. 자신의 진실을 말하며, 나아가 역사적 진실도 말할 수 있는 문학의 역사와 자유가 중요했습니다. 그가 청년 시절부터 결코 내려놓은 적이 없는 넓은 의미에서 마르크스적이라 할 수 있는 정치적 입장이나, 스스로 쫓겨난 자로서 아니라 의식적으로 하이네와 보들레르의 파리에 자리 잡았다는 상황도 그와 같은 역사적 지평에 속합니다. 이는 중요한 요소들임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비평가들의 주목을 충분히 받지 못했습니다. (111쪽)
독자는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물론, 텍스트 안쪽에서 질문을 끄집어내야 하는 것이지만, 자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질문해야 합니다. …… 첼란의 작품을 읽을 때에는 문헌학적이고 해석학적인 해독 후에 자신의 입장을 잃지 않는 것이 결국 중요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지성적인 논쟁과 관련된 입장표명일 경우, 독자의 입장은 글을 읽은 후에도 고려되어 있습니다. 이때 여기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흔히 생각하듯이, 읽는 것으로 인하여 새롭게 해방되는 텍스트 자체의 창조적 힘이 아니라, 간혹 경구처럼 응축된 형태로 전달되는 조망에 대하여 감상 후 스스로 고민해 보라는 텍스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요구입니다. (154쪽)
저녁의 초대―강연을 열며 라이너 바르닝
파울 첼란 / 유대화된 독일인들 사이에서 장 볼락
1. 근원으로서의 역사성
2. 비판적 차이의 중요성
3. 유대인의 독일어
4. 출정으로서의 시 문학: 시 「생각해 보라」
5. 프네우마의 차이
6. 비인간성의 할례: 시 「문 앞에 서 있던 어떤 이에게」
7. 발견한 자유
8. 몰이해와 표절 의혹 제기: ‘골-사건(Goll-Aff?re)’
9. 문화적 유대감의 결과
10. 어떤 인간성: 시 「만돌라」
11. 입장 정립
저자에 대하여
옮긴이 해설
파울 첼란 연보
작품 연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