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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딜리전트

이해민 저 | 한국경제신문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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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7542340 / 392쪽 152 x 225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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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레인지 등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한 제품을 생산 및 판매하는 생활가전시장은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구 업체들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현재는 후발주자였던 삼성을 비롯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전 세계 생활가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최초, 최대, 최고 사양의 제품을 연이어 출시해 이목을 사로잡고 있는 것. 단순 조립 생산으로 시작했던 우리의 생활가전이 열악한 환경과 여건을 극복하고 불과 20~30년 만에 글로벌시장에서 최고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수많은 가전업계 종사자들이 밤낮없이 흘린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였다. 특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 가전업계 종사자들 중에서도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이사를 네 번이나 역임한, 뛰어난 경영자이자 본인이 뛰어난 기술자였던 이해민 회장의 이름 석 자는 결코 빠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호모 딜리전트》는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역임한 이해민 회장의 발자취를 통해 대한민국 생활가전의 생생한 역사뿐만 아니라, 가난한 고학생의 신분에서 세계적 기업 삼성전자의 정상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한 개인의 불굴의 도전 정신과 근면함을 통해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큰 용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럭비를 통해 익힌, 후퇴 없는 도전 정신
이해민 회장은 일제 시대에 태어나 초등학교 때 6.25 동란을 겪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 중학생 시절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며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으며, 고등학교와 대학생 시절에도 본인의 학업과 학비를 마련하기 위한 아르바이트 이외에는 여자 친구 한 명 사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빠듯한 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노력한 결과, 상위권 성적을 놓친 적이 없었다.
특히 그의 학창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럭비’다. 이 회장은 서울사대 부중 부고 6년 재학 시절 동안 럭비팀에서 스크럼 센터 역할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팀의 한가운데 자리해 날카로운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아군 공격의 시발점이 되는 역할을 몸으로 익히고 배웠던 것. 학교 동창이었던 친구 삼성전자 이건회 회장을 럭비팀에 끌어들인 것도 바로 그였다.
무엇보다 후퇴가 없는,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인 럭비의 규칙은 이후 그의 인생의 신조가 되었다. 이러한 불굴의 정신과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와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는 격언을 가슴에 품고 이 회장은 가난한 고학생의 어려움과, 직장 생활에서의 수많은 난관을 뚫고 부지런히 도전하고 열심히 실천한 결과, 성공적인 삶을 이룰 수 있었다.

금성에서 삼성으로, 대한민국 생활가전의 역사를 쓰다
이해민 회장은 인하대학교를 졸업하며 당시 최고 연봉을 자랑하던 칼텍스 입사를 포기하고 금성에 입사했다. 첫 직장이었던 금성에서 이 회장은 몰드 금형 설계부서부터 시작해 현장 공장과 본사 기획팀을 두루 거치며 국내 최초로 냉장고 문에 붙이는 개스킷의 국산화를 성공시킨 것을 비롯해, 지금도 플라스틱 금형을 사용하는 선풍기 스탠드를 만들어 내는 등 수많은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그리고 1974년, 이 회장을 눈여겨보던 동창 이건희 회장의 거듭된 권유에 결국 삼성전자 기획실 신규 사업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전자로 이직한 이 회장은 곧바로 냉장고의 핵심 부품인 컴프레서를 국산화시켰다.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삼성을 망하게 하려고 왔다며 손가락질까지 받았지만, 이 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사업을 밀어붙였다. 기술이 없어 일본과 미국 등의 선진 업체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받은 설움을 잊지 않고, 제품의 핵심 기술과 핵심 부품은 반드시 국산화를 해야 한다는 철칙을 세우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였다. 기술 없는 나라, 회사의 직원이 받는 설움을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독기로 이를 악물고 수많은 선진국 공장을 찾아다녔다. 심지어는 공장 앞에 텐트를 치고 며칠을 노숙하며 해외 담당자를 만날 정도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수많은 새로운 기술 개발과 제품 경쟁력으로 이어졌는데, 특히 냉장실과 냉동실을 독립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독립문 냉장고’의 대히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회장이 직접 개발한 독립문 냉장고의 핵심 기술인 HM 사이클은 현재도 삼성 대형 냉장고에 적용되고 있을 정도다.

삼성전자 최초 미주 법인장과 패밀리즘(Familism)의 마법
1983년 삼성전자 최초의 해외법인인 미국 제조법인(S.I.I.)의 법인장으로 발령받은 이 회장은 가전으로 세계에 집권하겠다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열정에 불타올랐다. 물론 문화가 전혀 다른 현지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를 미국에 맞게 고친 패밀리즘으로 역경을 돌파했다. 직원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병문안을 가고, 주말이 되면 직원들과 함께 야유회와 체육대회를 열며 개인주의적인 미국 문화에 한국식 가족주의를 접목한 것이다. 실제로 스틸 웍스 노조와 이뤄진 법인 노조 설립 찬반 투표에서 이 회장은 90퍼센트 이상의 반대표로 회사를 지켜낼 수 있었다. 90퍼센트 이상의 미국 직원들이 이 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런 놀라운 결과는 미국의 일간지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이종 문화 간 융화능력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자료로 활용될 정도였다.
이후 미주법인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 회장은 멕시코 현지에 최대 규모의 생산 공장(SAMEX)을 설립하고,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가 진출한 해외 법인의 거의 대부분을 그가 설계했을 정도로 그의 프론티어 정신은 삼성전자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기업과 인재의 가교 역할 헤드헌팅 사업과 중소, 중견업체를 위한 지식 봉사 활동
삼성전자에서 퇴임했다고 이 회장 평생의 부지런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회사에 얽매여 마음껏 하지 못했던 그만의 꿈을 좇기 시작했다. 바로 전 세계를 누비며 맺은 탄탄한 인력 풀을 이용해 국내외 기업들에게 최상의 인재를 찾아주는 헤드헌팅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마침 이 회장이 창업을 한 때는 IMF 체제 하에서 구조조정이 한창일 무렵이었다.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도 조직 축소 등의 이유로 직장을 잃는 경우가 많았던 것. 이 회장은 그동안 자신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준 수백 명의 고급 인력들을 생각할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이 회장은 한국단자공업, 아모텍 등을 비롯한 국내의 다양한 제조업체를 위한 지식 봉사 활동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발전 가능성은 높으나 실제 공장 건립부터 투자 및 기술 개발에 디테일한 노하우가 필요한 중소, 중견업체가 찾아오면 그동안 현장에서 갈고닦은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전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민 회장의 삶은 기술을 향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찾아내고, 기술을 적용해 제품을 개발하고, 제품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때론 좌절도 했고, 때론 실패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전진했다. 후진은 없고 전진만 있는 럭비처럼 신기술을 향한 도전 정신으로 앞으로만 전진했다.
이 회장의 지난 흔적들을 가감 없이 풀어낸 《호모 딜리전트》가 도전을 꿈꾸는 젊은이에겐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창의에 목마른 개발자에겐 다시 시작할 용기를, 그리고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들에겐 조직을 이끌고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혜안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 소개


그는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럭비 선수 출신이다. 
서울사대부중과 부고 6년 동안 럭비 스크럼 센터로 활동하며 후진 없는 돌파와 팀워크를 몸으로 익혔다. 인하공대 기계과를 졸업한 후 금성사와 삼성전자의 가전맨으로 활동했다. 

그는 기술을 향해 도전해온 엔지니어다. 
냉장고 핵심 부품인 컴프레서 국산화와 80년대 최고의 히트 제품인 ‘독립문 냉장고’ 개발을 이뤄내며 우리나라 가전 역사를 새롭게 개척했다. 기술로 세상을 혁신한다는 신념으로 냉장고와 에어컨, 세탁기 등 생활가전제품의 발전을 주도했으며, 그가 개발한 HM 사이클은 지금도 삼성전자 대형 냉장고에 적용되고 있다. 

그는 사람을 지향하는 경영인이다. 
가전으로 세계에 집권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삼성전자 미주법인(S. I. I.)과 멕시코 법인(약칭 SAMEX)을 패밀리즘(Familism)을 통해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삼성전자 가전부문을 네 차례나 맡았으며 정보가전(멀티미디어)부문 대표이사로 퇴임한 후에는 ㈜에이치앰어소시에이츠 대표이사로 활동하며 기업과 인재의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경영자문을 통해 한국단자공업㈜과 아모텍 등 중견기업들의 혁신을 이끌기도 했다. 부지런 하나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철학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는 현재 글로벌 IoT 필수 매개체인 Cloud와 호스팅 전문기업인 호스트웨이코리아와 ㈜베스핀글로벌 회장으로서 변함없이 부지런하게 살아가고 있다. 

책 속에서

중국 속담인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와 예수의 말씀인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이 두 가지 말씀은 국민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지내오면서 내 몸과 마음에 자연스럽게 배어든 나의 철학이자 여러 어려움을 뚫고 학교를 마치면서 터득한 생활의 신조다. 실제로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도전하고 열심히 실천한 결과 지금까지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 p16

이렇게 전국을 돌며 함께 합숙하고 뒹굴며 다치면 둘러업고 병원으로 뛰면서 뭉치니 사나이의 의리와 팀워크가 저절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현재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나와 함께 사대부중을 다녔는데 내 권유로 럭비반에 들어와 함께 연습하기도 했다. 몇 개월 후 이 회장은 럭비를 그만두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꾸준하게 레슬링을 했다. 그 외 몇몇 친구들도 함께 럭비공을 들고 후보 생활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같은 러거(Rugger)로서 우의를 나누고 있다.
-p90~91

내가 고학을 하다시피 하며 사당오락 정신으로 매일 네 시간만 자면서 역경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럭비의 힘이었다고 자부한다. 럭비를 통해 몸으로 익힌 것들을 생활에서도 그대로 발휘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부터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럭비를 통해 얻은 강인한 정신력 덕분이다.
-p98

드디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사회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금성사에 입사한 것이다. 나는 부산 동래에서 금성사 사원으로서 첫 생활을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서울과 경기도를 벗어나 먼 타지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6개월에 걸쳐 오리엔테이션과 교육을 마친 후 금형 부서로 발령받아 몰드(Mould) 설계를 하게 되었다.
-p141

몰드 금형 설계부서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는 국내 최초로 냉장고 문에 붙이는 개스킷(Gasket)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전까지는 일본에서 수입해 쓰던 부품을 내가 압출금형에 성공해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선풍기 스탠드도 알루미늄 다이캐스팅 금형을 만들어 생산하다가 플라스틱 금형 제작에 성공하였다. 지금도 선풍기는 플라스틱 스탠드를 쓰고 있다. 당시는 몰드 금형 설계를 위해 필요한 재료별 데이터가 전혀 없어서 하나하나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만들어 이용해야 했다. 어떤 데이터들은 일본 기업을 통해 습득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148~149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온 인생 여정을 통해 나는 어느 시기에는 반드시 스스로를 희생해야만 남들에게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부모 덕에 재산을 물려받거나 처음부터 높은 직책을 물려받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사회에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헛된 꿈을 꾸거나 남이 잘된 것만 보면서 시기하고 좌절하며 스스로 파멸을 유도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정말 한 푼도 없이 아내와 함께 노력하여 인정받는 조직의 리더가 될 수 있었다. 나 역시 나이 쉰이 되기 전까진 모든 게 불안했다. 그러나 30~40대 시기를 이를 악물고 이겨내자 조직에서는 물론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나름대로 안정을 이룰 수 있었고 문화생활도 영위할 수 있었다. 젊은 날의 희생은 반드시 훗날의 인정과 안정으로 되돌아온다.
국내 가전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올라가자 회사에서는 글로벌 사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나는 상무 진급과 함께 미국 초대 법인장이 되었다. 미국에 공장을 세워 미국과 멕시코를 대상으로 사업을 벌이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중국 진출까지 준비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중국과 국교가 이뤄지기 전이었기에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 법인이 필요했다. 나는 10여 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통해 목표로 세웠던 공장 설립, 북미시장 개척, 중국시장 진출 준비를 어느 정도 이룬 후 본사로 귀임할 수 있었다.
-p183~184

금성사에서 삼성전자로 회사를 옮기게 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1973년 10월, 나는 삼성그룹 이건희 이사의 요청에 당시 동양방송 기술이사였던 강진구 이사를 만났다. 옛 중앙일보 빌딩 건너편에 있는 일식집에서 만나자 강 이사가 컴프레서 추진을 위해 내게 삼성전자 입사를 제안했다. 그러나 여러 여건을 이유로 미루어오던 차였는데 강진구 이사의 상무 진급 및 삼성전자 대표이사 취임이 내정되자, 다시 한 번 나에게 프러포절(Proposal)을 한 거였다.
드디어 거듭되는 요청을 받아들인 나는 삼성전자 기획부서의 뉴 프로젝트 담당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준비는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먼저 좋은 사람들을 모으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p188~189

돌이켜보면 나는 국내 정밀 주조와 정밀 가공에 있어 창시자인 셈이다. 또한 일본 파낙(Funnuc)에서 설비를 들여와 최초로 수치제어 가공을 시작했고, 표준공구실 및 표준계기실을 처음으로 만들어 가공 품질을 균일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성과들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뤄냈다는 사실에 더욱 큰 자부심을 느낀다.
-p211~212

나 역시 아이디어를 찾지 못해 고심은 깊어졌고 뇌리에는 항상 이 문제가 맴돌았다. 제품과 관련된 꿈을 꾸면 꿈결에 본 내용들을 회사에 와서 시현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후텁지근한 장맛날이었다. 출근하던 차의 에어컨이 약해 운전기사에게 바람 방향을 나에게 돌려달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에어컨은 댐퍼(Damper)로 바람 방향을 조절한다. 그런데 에어컨 댐퍼나 간냉식 냉장고의 냉기 조절 댐퍼나 원리는 같았다. 나는 이에 착안해 냉동실 운전을 조정할 수 있는 다목적 냉장고를 구상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모든 설계원들에게 이 원리를 설명했다. 제조기술담당 백시야 씨에게 새로운 댐퍼 샘플을 일주일 안에 만들도록 지시했고 컴프레서팀에겐 컴프레서의 효율을 높이면서 양쪽 사이클을 매칭하는 작업을 지시했다. 나의 기대에 부응해 백시야 씨는 가능성이 충분히 입증된 샘플을 재빨리 만들어냈다. 그러자 훌륭한 신제품의 가능성이 서광처럼 비추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을 최성순 설계실장에게 보여주며 다목적 냉장고를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그 후 1년 만에 최 실장은 다목적 냉장고 개발을 완료해냈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지체하지 말고 실천해 결과물을 얻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것저것 검토하며 시간을 지체하기보다 직접 실천하면서 문제점을 찾고 보완해가야 성공에 더 쉽고 빠르게 이를 수 있는 것이다.
-p233~234

미국에서 한국적 스타일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미국식 방법으로 하면 능률이 떨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인 패밀리즘을 도입한 것이다. 패밀리즘은 미국식과 한국식의 혼합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가족이란 단위에서는 상호 신뢰와 존경이 바탕을 이룬다. 서로 신뢰하고 존경하는 풍토가 자연스럽게 조성되면 상호 간에 원활한 소통(Communication)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내가 표방하는 가족주의의 모체다. 나는 노조가 없는 경영을 펼쳤다. 가족 간의 대화에 왜 제3자(The Third Party)가 필요한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조회 때, 나는 정신 훈화처럼 사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종용하는 한국식과 달리 지난달 실적을 소개하고 회사 경영에 대한 의문사항에 대답했다. 조회가 끝난 후에는 직원들의 생일파티를 열었는데 회사 식당에서 사장부터 일선 직원까지 똑같은 식사를 했다. 식당 안에 다이렉트 라인(Direct Line) 건의함을 설치해 직원들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접수한 후 조회 때마다 그에 대한 회신을 발표하기도 했다.
-p256~257

귀양지계는《손자병법》에 나오는 말로‘양(陽)을 귀하게 돋보여 음(陰)을 제거한다’는 이 동양 철학을 서구식 경영 방법에 적절히 혼합시킨 것이 나의 가족주의라고 볼 수 있다. 한번은 선대 회장님께서 이건희 회장과 함께 공장을 순시하신 후“내가 수많은 공장들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이곳 직원들처럼 진심 어린 환영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는 선대 회장님 말씀이 인사치레의 괜한 말씀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의 환영은 이곳 가족주의 경영이 완전히 성공했다는 징표였다. 노조 결성 투표에서 직원들이 무노조 프리 유니온(Free Union)을 위해 회사 편에 서서 90퍼센트 이상의 찬성투표를 해준 것 역시 가족주의 경영의 성과라고 확신한다. 이런 결과는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투표 결과를 평생의 자부심으로 삼고 있다.
-p260

1990년 나는 미국에서 돌아와 신규 프로젝트인 에너지 사업을 관장하게 되었다. 사업을 위해 먼저 매탄동 단지 입구에 있는 창고 건물을 개조해 태양광 사업과 배터리 사업을 위한 파일럿(Pilot) 공장을 만들었다. 그 후 배터리 시작 라인을 약 1년에 걸쳐 건설했고, 경력 기술자들을 채용해 함께 신제품을 연구했다.
-p290

전관에서 전자로 복귀한 직후에 나는 직전에 담당했던 태양광과 배터리 신규 사업을 다시 맡았다. 이때도 기술자 확보에 전념하면서 임시로 만든 공장에 배터리 프로젝트를 위한 시작 생산라인을 구축해 원통형 2차 배터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 사업은 전관에서 이름을 바꾼 삼성SDI로 이관된 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게 된 시초가 되었다. 그렇게 1년 동안 신규 프로젝트 사업을 론칭시킨 후에는 세 번째로 가전본부장으로 발령을 받아 다시 생활가전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대표이사로 승진하면서 냉기사업부, 에어컨 사업부, 세탁기 사업부, 컴프레서 사업부, 모터 사업부를 모두 관장하게 되었다
-p306

목차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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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 기술뿐인 삶, 후진 없는 삶

솜틀집 막내, 몰입의 책상다리를 틀다
무서운 할아버지를 이겨낸 어머니의 집안 개혁
전찻길 옆 솜틀집 골목대장 개똥이
우리 엄마 과일 발로 차지 마!
혜화동 로터리에서 미아가 될 뻔하다
6. 25 동란 발발과 낙산 움막
피난길의 꿀맛 누룽지와 큰집에서의 피난살이
포탄 속에 피어오른 학업의 불꽃
서울 복귀 1년 만에 따낸 중학교 합격통지서
큰형수의 죽음과 아버지의 위암 발견
양복점 큰형님을 스파이크 킥으로 구해내다
형님들과 누님들 이야기

젊음으로 Break through, 열정으로 정면 돌파
럭비를 통해 익힌 무조건 전진
건희와의 세 차례 주먹다짐
사대부고에 입학하다
15 대 7로 싸우다 패배한 경기 아닌 쌈박질
영화 관람을 허용하라고 외친 규율반장
대학 입학과 입대 후 실감한 미숫가루의 위력
빛 좋은 개살구 같은 통역요원
가난한 나날의 풍요로운 낭만
수입이 아닌 비전을 위해 선택한 첫 직장 금성사
가불로 마련한 큰형님 댁의 20인치 TV
언제나 우회 대신 돌격 앞으로

가정을 이루고, 뜻을 일으키다
서울역 그릴에서 만난 일생의 그리움
007 작전 같았던 약혼식
세 번이나 나눠 찍은 결혼식 사진
저축의 위력과 두 아들의 출산
박석고개 모퉁이 나의 첫 집
가수왕 금성사에서 신인가수 삼성전자로
희생은 성공의 씨앗
냉장고용 컴프레서 사업 프로젝트
라이선스 찾아 3만 리
굴러온 돌이란 눈초리를 이겨내며 만든 부품사업부

삼성전자 냉기사업부장, 뜨거운 열정을 뿜어내다
품의서 한 장 없이 설립한 삼성그룹 최초의 기계공장
핵심 부품 기술력을 높여 제품의 경쟁력을 높여라
작업과 품질의 표준화는 공구의 표준화로부터
의식주인 생활가전을 통해 삶의 질을 높여라
럭비반 10년 선배를 피해 달아난 사연
이병철 회장의 안목으로
집념과 열정의 냉기사업부장
활짝 열어젖힌 고효율 다목적 냉장고 시대

패밀리즘 전도사, 미국 현지에 삼성전자를 안착시키다
삼성그룹 최초의 해외 제조법인장
첨단기술 심장부에 꽂은 대한민국 삼성 깃발
나의 된장 냄새는 당신의 치즈 냄새보다 강하다
어머니와의 슬픈 이별과 2킬로미터 상여 행렬
귀양지계의 전략, 패밀리즘(Familism)
미국 직원들도 감동시킨 패밀리즘의 마법
사장은 자꾸 바뀌어도 가야 할 길은 반드시 간다
친구를 회장님으로 모시고 일하는 방법
SAMEX를 설립하다
만만디보다 무서운 멕시칸의 마냐나(Maiana)

나는 영원한 삼성 생활가전맨
귀국 후 다시 가전사업을 맡다
삼성전관 부산공장 고질병 퇴치 작전
우리나라 교육 문화에 관한 고언
초심과 학습으로 신경영 적임자로 거듭나다
절체절명 위기에서 구한 삼성의 에어컨 사업
세 번째로 맡게 된 가전사업부
또 한 번의 변신, 멀티미디어 사업본부장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이야기
Physical Exercise와 Mental Exercise의 밸런스
‘기업은 사람’을 설파한 10년간의 Recruiting 사업
기업과 인재의 가교 역할에서 보람을 찾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식봉사
중소기업과 중견업체 경영자를 위한 조언
사람이 없다는 한탄 대신 방법을 찾아라
타이틀보다 중요한 건 기술이다
게으른 부지런함이 아닌 진정한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가정이란 버팀목, 가족이란 비타민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에필로그 _ 부지런함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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