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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요 선의 종착지로 가는 길

보조 지눌 저 | 원순 역 | 법공양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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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9602651 / 376쪽 / 656g / 161 x 231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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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고려 중기의 승려. 속성은 정씨이며 스스로 목우자(牧牛子)라 칭하길 좋아했다.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 고려의 수도 개경 서쪽 통주 지방(지금의 황해도 서흥군 동주)에서 국자감의 학정이었던 아버지 정광우(鄭光遇)와 어머니 조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불심이 매우 깊었던 분으로 어린 시절 병약했던 지눌이 병으로 고생하자 불보살께 완쾌되면 출가시키겠다는 서원을 세운다. 그리고 9세 무렵 병이 쾌차하자 출가시켰다고 전한다. 
25세 되던 1182년 개경 보제사(普濟寺)에서 담선법회 형식으로 치러진 승과에 합격했다. 이곳에서 이미 정혜결사(定慧結社)의 의지를 다지게 된다. 그러나 곧 남하해 창평(昌平) 청원사(淸源寺)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읽다가 첫 번째 깨달음을 얻는다. 1185년 가을에는 지금의 경북 예천에 있는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로 옮기는데 이곳에서 두 번째 전환기를 맞는다. 이에 대해서는 자신의 저서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 서문에서 “‘여래의 지혜도 이와 같아 모든 중생은 이미 갖추고 있다. 다만 어리석어 깨닫지 못할 뿐이다’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적고 있다. 1188년 노장 득재선백(得才禪伯)의 초청으로 공산(公山) 거조사(居祖寺) 에 합류하고 1190년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최초의 저술이며 불교계에 영원히 기록될 《권수정혜결사문》을 발표했다. 결사 공동체의 수행자가 늘어나자 1200년 길상사(지금의 송광사)로 자리를 옮기고 1205년 정혜사에서 수선사(修禪社)로 이름을 바꾸었다. 거조사를 떠나 길상사에 이르기 전 약 3년간 지리산의 상무주암(上無住庵)에 머무르며 선 수행을 깊이 했다. 이곳에서 대혜종고(大慧從?)선사에 의해 완성된 간화선을 만났고 이것이 지눌의 마지막 심기일전의 모습이다. 길상사는 1197년부터 1205년까지 중창불사를 했는데 1200년부터 지눌도 이 불사에 몸소 동참했다. 대중에 앞장서 몸을 아끼지 않는 울력에 동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의 왕이었던 희종(熙宗, 1204∼1211 재위)은 120일의 축일을 제정하기도 하고 친히 송광산에서 조계산으로, 길상사에서 수선사로 이름을 바꾸도록 명해 현판을 내리기도 했고, 금란가사를 만들어 지눌에게 선사했다. 불사가 끝난 1205년에는 불교에 입문한 초심자들이 익혀야 할 규범과 사상을 담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을 저술했다. 1210년, 모친을 천도하는 법연을 베풀고 수십 일이 지나 병이 들었다. 다시 8일 뒤 제자들과 법담을 나누고 평소처럼 고요히 앉아 좌탈입망했다. 희종은 그의 죽음을 애도해서 불일보조국사라는 시호와 탑에는 감로(甘露)라는 이름을 내렸다. 

역자 소개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
해인사, 송광사,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
현재 송광사 인월암에서 안거 중
저서로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 [마음 닦는 이를 위하여], [눈먼 거북이가 천년만에] 등이 있다. 

목차

목차
역자서문 절요를 펴내며
저자서문 보조 스님의 들어가는 글
1장 각 종파의 대의를 말하다
2장 종파들이 주장하는 법의 깊이와 그 득실
3장 돈오와 점수
4장 돈교와 점교
5장 오후점수
6장 삿된 소견을 다스리다
7장 모두 부정하거나 모두 긍정하는 수행문
8장 지름길조차도 끊긴 방편
9장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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