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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에서의 항해 포스트-매체 조건 시대의 미술

로절린드 크라우스 저 | 김지훈 역 | 현실문화A | 201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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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5641940 / 136쪽 148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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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북해에서의 항해’를 통해
포스트-매체 시대의 예술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다.

‘북해에서의 항해’라는 메타포


섬세한 분석과 치밀한 글쓰기로 정평이 난 비평가 로절린드 크라우스의 『북해에서의 항해』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목전에 둔 1999년에 발표되어, 동시대의 미술이 당면한 상황을 진단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방편을 제시한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낭만주의적 정조가 물씬 풍기는 이 책의 제목은 벨기에의 개념미술가 마르셀 브로타스(Marcel Broodthaers)의 기념비적 작업인 <북해에서의 항해> 에서 따온 것으로, 크라우스는 브로타스의 이 작업에서 현대미술을 곤란에 빠트린 ‘매체’의 개념을 구원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런데 ‘북해에서의 항해’라는 말과 ‘벨기에’ 개념미술가라는 위상이 현대미술이 당면한 문제를 포착하는 데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모더니즘 이후의 현대미술은 ‘북해에서의 항해’가 환기하는 근대의 낭만주의적 분위기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고, 또한 개념미술은 철저하게 뉴욕 중심의 미국 편향으로 전개된 미술이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무대에서 벨기에는 너무 변방이지 않은가?
‘북해에서의 항해’라는 제목과 ‘벨기에’ 개념미술가라는 말에 다분히 도발적인(?) 이 책의 취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 독해해본다면 어떨까? 근대적인 변방에서 현대적인 뉴욕을 전복시키고 넘어서려 한다거나, 한물 간 것이라 간주된 것으로 가장 동시대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략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이 책이 역작으로 평가받는 이유의 하나도 쉽지 않은 이러한 전략을 성공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북해에서의 항해’라는 막막한 모험에 찬 여정, 이것이 현대미술이 감행하고 넘어서야 하는 하나의 메타포인 것이다.

현대미술의 가장 첨예한 쟁점을 치밀하게 논구한 역작!

“각 예술이 고유하고 그 스스로가 되는 것은 자체의 매체에 의해서다”라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말은 모더니즘 미술의 교리였다. 그렇기에 매체라는 개념은 모더니즘 미술이 존립할 수 있게 만든 존재론적 조건이었다. 매체에 부여된 이와 같은 과도한 의미부여 때문에 ‘매체’라는 말에는 담론적으로 너무 많은 거품이 낄 수밖에 없었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술의 죽음’ 혹은 ‘예술의 종언’과 관련된 모든 ‘죽음’의 수사학은 매체와의 관계에서 파생된 말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모더니즘은 매체의 순수성을 발전시켜오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 모더니즘이 상정한 바로 그 매체라는 개념 때문에 미술사 내적으로 파국을 맞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 전개되는 설치미술 등의 유행도 결과적으로 이 ‘매체’라는 개념에서 파생된 것이다.
물론 모더니즘을 떠받쳤던 ‘매체’ 혹은 ‘매체 특정성’이라는 관념을 산산조각낸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가볍고 저렴한 비디오카메라인 소니 포타펙(potapek)과 텔레비전이 그것이다. 텔레비전은 다른 매체들과 다르게 매체 특정성으로는 결코 규정할 수 없는, 히드라의 머리를 가진 이질성 그 자체였던 것이다. 텔레비전 시대에 이르러 미술은 마침내 매체 특정성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인터넷으로 표상되는 전자미디어 시대인 오늘날 매체의 ‘죽음’은 너무나 자명한,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포스트-매체 조건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브로타스는 ‘매체(medium)’라는 개념을 가로지르고 뒤흔들며 ‘포스트-매체’의 조건을 예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그는 설치미술과 장소 특정적 미술, 그리고 인터미디어 예술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실제로 그의 작업은 책, 실험영화, 설치미술, 허구의 미술관 등 다양한 매체를 종횡으로 가로지른다. 책과 영화로 만들어진 <북해에서의 항해> 는 매체라는 개념이 미술 안팎에서 근본적인 위기를 받고 있던 개념미술 시대(1960~1970년대)에 만들어진 작업이다. 크라우스가 보기에, 뉴욕의 개념미술은 모더니즘적 매체 개념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결국 문제적 후유증에 불과한 설치미술의 도래를 초래했다. 반면에 <북해에서의 항해> 는 모더니즘적 매체의 개념을 넘어서면서도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작업임을 크라우스는 치밀한 분석과 논구를 통해 밝혀낸다.

‘북해에서의 항해’를 위한 보론과 또 한 편의 매체/미디어론인 역자 해제

『북해에서의 항해』는 원래 강연에서 발표한 원고를 다듬어 소책자 형식으로 발간한 책이지만 볼륨에 비해 크라우스 특유의 매우 정치한 분석을 수행하고 있는 작업이다. 한국어판에서는 『북해에서의 항해』 이후 후속으로 발표된 크라우스의 또 다른 글 「매체의 재창안」을 번역하여 함께 수록하였다. 「매체의 재창안」이라는 글에서 크라우스는 『북해에서의 항해』에서 새로운 매체 개념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제시했던 매체의 쇠퇴에 대한 주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벤야민의 사진에 대한 글들을 꼼꼼히 읽어나가며 이를 상세하게 뒷받침한다. 아울러 크라우스는 이 논문에서 매체의 재창안을 예시하는 예술가의 동시대적 사례를 들어가며 분석하고 있어 자신의 주장이 단지 이론적 차원에 머문 것이 아님을 입증하고자 한다.
또한 이 책을 번역한 김지훈 교수는 한국어판 『북해에서의 항해』를 위해 꽤 긴 호흡의 해제 글을 수록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크라우스의 매체론이 등장하게 되는 미술사적, 영화사적 맥락과 정확한 논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이고 있다. 특히 크라우스의 비평적 시도가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와 같은 영향력 있는 비평가들의 담론과 어떻게 공명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 및 데이비드 조슬릿(David Joselit) 같은 미술비평가의 ‘포스트-매체’ 담론,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 및 피터 바이벨(Peter Weibel) 같은 이론가들의 ‘포스트-미디어’ 담론의 지형에서 크라우스의 매체론이 차지하는 의의를 밝혀내고 있어, 동시대 예술에서 매체/미디어를 둘러싼 이론적 지형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흔치 않는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김지훈 교수의 해제는 매체/미디어를 둘러싼 이론적 지평을 펼쳐 보이는 미덕 이외에도 현대미술과 뉴미디어 예술 사이에 적용되어 오고 있는 ‘매체 대 미디어’라는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어, 현대미술은 물론 영화 미디어 연구, 비판철학을 넘나들며 사유하는 독자들에게 생산적인 일독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 소개

 미술비평가 및 미술사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컬럼비아 대학교 ‘유니버시티’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76년에 동시대 미술비평 및 이론 저널인 «옥토버(October)»을 공동으로 창간했으며 편집위원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현대 조각의 흐름(Passages in Modern Sculpture)』(1977), 『아방가르드의 독창성과 다른 모더니즘 신화들(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 and Other Modernist Myths)』(1985), 『광적인 사랑(L'Amour fou)』(1986), 『사진(Le Photographique)』(1990), 『시각적 무의식(The Optical Unconscious)』(1993), 『북해에서의 항해(A Voyage on the North Sea)』(1999), 『총각들(Bachelors)』(2000), 『영구적인 재고 목록(Perpetual Inventory)』(2010), 『푸른 컵 아래에서(Under Blue Cup)』(2011) 등의 저서가 있다. 

역자 소개

중앙대학교 영화미디어연구 조교수, 뉴욕대학교 영화연구 박사. 저서로 Between Film, Video, and the Digital: Hybrid Moving Images in the Post-media Age(2016)가 있고, 번역서로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2005)가 있다. 실험영화 및 비디오, 갤러리 영상 설치작품, 디지털 영화 및 예술, 실험적 다큐멘터리, 현대영화이론 및 미디어연구 등에 대한 논문들을 Screen, Film Quarterly, Camera Obscura, Millennium Film Journal, Animation: An Interdisciplinary Journal 등의 저널들 및 Simultaneous Worlds: Global Science Fiction Cinema(2015), Global Art Cinema(2010) 등을 통해 발표했다. 현재 두 번째 저서인 Documentary's Expanded Fields: New Media, New Platforms, and the Documentary를 준비 중이다. 

책 속에서


“‘매체’라는 단어는 너무나 오염되어 있고, 너무 이데올로기적이고, 너무나 교조적이며, 담론적으로 너무 무거워 보였다.” (8쪽)


“매체라는 개념의 운명이 연대기적으로는 그 자체로 문제적 후유증(설치미술이라는 국제적 현상)을 결과적으로 낳았던 비판적 포스트모더니즘(제도 비평, 장소 특정성)의 부상에 속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오직 ‘매체’라는 단어만이 일련의 이러한 사태를 이끈 것처럼 여겨졌다.” (10쪽)

“브로타스가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 종언에 대한 한 가지 서사가 있다. 이 서사는 회화를 이 매체의 본질—즉 평면성—이라고 공표된 것으로 좁힘으로써 회화를 축소해버렸고, 그 결과 회화는 갑자기 이론의 프리즘에 굴절되어, 렌즈의 반대편에 단순히 뒤집어진 채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회화의 대립물로 변형되고 말았다는, 전투적으로 환원적인 모더니즘에 대한 이야기이다.” (14쪽)

“장치라는 관념은 필름의 매체 또는 지지체가 이미지들의 셀룰로이드 스트립도, 그것들을 촬영하는 카메라도, 이 이미지들에 운동의 활기를 불어넣는 영사기도, 그것들을 스크린에 전달하는 영사기의 광선도, 스크린 자체도 아니라는 점을 뜻한다. 대신 필름의 매체 또는 지지체는 이들 모두가 합쳐진 것으로, 여기에는 관객 뒤편의 빛의 원천과 그들의 눈앞에 영사되는 이미지 사이에 사로잡힌 관객의 위치도 포함된다.” (32쪽)

“포타펙의 텔레비전 효과는 모더니스트의 꿈을 산산조각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예술가들이 비디오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비디오를 현상학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관심에서 조직된 그 발화 양식을 지속시키는 최신 테크놀로지로서 사용했다. 비록 비디오가 취한 형식이 분명하게 나르시시즘적이었던 이유로—즉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말 하고 있기 때문에—비디오가 이러한 발화 양식의 도착적인 버전이었음에도 말이다.” (40쪽)

“그라마톨로지(grammatology) 이론에서 파레르곤(parergon) 이론에 이르기까지 자크 데리다(Jacqes Derrida)는 외면과 분리되거나 외면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내면이라는 관념이 키메라(chimera), 즉 형이상학적 허구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예시들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예술작품의 맥락과 대립되는 작품의 내면이든, 생생한 체험 순간을 기억이나 문자기호에 의한 그 순간의 반복과 대립시키는 것이든 간에, 해체가 걷어치우고자 한 것은 고유함(the proper)이라는 관념이었다.” (43쪽)

“벤야민이 예견했듯이, 하나의 테크놀로지 형식의 탄생기에 약호화된 약속의 실체를 그 마지막 단계의 쇠퇴만큼 효과적으로 잘 드러내는 것도 없다. 미국 독립영화를 살해한 텔레비전 포타펙은 필름의 쇠퇴에 대한 이와 같은 선언이었을 뿐이다.”(59쪽)

“사실 마술 환등기는 벤야민의 사유에서 입체환등기 슬라이드(변증법적 이미지에 대한 그의 모델)처럼 유행이 지난 광학 장치들 중 하나로 기능하는데, 이는 테크놀로지화된 공간의 총체성에 대한 바깥을 생산하기 위해 자신의 결을 거슬러 판타스마고리아적인 것을 스치듯 지나간다.”(98쪽)


목차

북해에서의 항해

<부록>
매체의 재창안


<해제>
매체를 넘어선 매체: 로절린드 크라우스의 ‘포스트-매체’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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