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심생전·최생원전 - 논술대비 한국고전문학

시리즈 : 한국톨스토이 논술대비 한국고전문학 [20]

신현배 저 | 한국톨스토이 | 2016년 09월

북트리

정가
$24.00
판매가
$13.2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26 (2%P)

품절된 상품입니다.

이 책을 꼭 원하시는 고객님께서는 아래 "상품문의"를 클릭 후 구매의사를
알려주세요. 책이 확보 될 경우 연락 드리겠습니다.

북카트 바로구매 위시리스트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54805902 / 84쪽 / 647g / 227 x 288 (㎜) / 양장본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내가 믿으면 이루어지리니 우리는 종종 일을 시작하고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 속으로 ‘저건 어려워, 내가 하기 힘들거야.’라고 먼저 생각해 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더 하기 싫고 귀찮아져서 포기하고 맙니다. 이젠 이렇게 마음먹는 습관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난 할 수 있어.’라고 말입니다.

저자 소개

  • 저자 : 신현배
이옥 (원작)

자(字)가 기상(其相)이고, 본관은(本貫)은 전주(全州)며, 본가는 경기도 남양(南陽)이다. 그는 젊은 시절 성균 유생으로 한양에서 활동했다. 조부 이동윤(李東胤)은 서족(庶族) 무반(武班) 출신이고, 부친 이상오(李常五)는 1754년에 진사에 급제했으며, 이옥은 성균 유생 시절인 1790년에 생원시에 급제했다. 슬하에는 1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의 초명은 우태(友泰)다.
그의 성장을 알려 주는 연보가 없어 생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저술 등을 통해서 추적해 보면, 그는 30세를 전후해 한양에서 성균 유생의 신분으로 활동했다. 1792년에 임금이 성균 유생들에게 열흘에 한 번씩 내려 준 글제에 따라 지은 그의 글이 순전히 소설문체로 작성되었다고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선비들은 이런 소설문체를 유행처럼 답습했는데 정조는 당시 성균 유생들로 하여금 매일 사륙문(四六文) 50수를 채우게 해 문체를 바르게 한 후에 과거 시험에 나아가도록 명했다. 정조의 문체반정은 바로 이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의 문집 <봉성문여(鳳城文餘)>의 <추기남정시말(追記南征始末)>에 의하면, 그가 성균 유생으로 있던 1796년(36세)에 정조가 그의 문체를 보고 괴이하다고 과거를 보지 못하게 했다가 충청도 정산현에 충군(充軍)하게 했다. 그해 9월에 다시 돌아와 과거 시험에 응시했으나, 문체를 고치지 못해 다시 영남 삼가현(三嘉縣)으로 이충(移充) 편적(編籍)되었다가 사흘 후에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다. 1797년(37세)에 별시(別試) 초시(初試)에서 장원을 차지했으나, 그의 책문이 근래의 격식에 어긋났다 해서 방말(榜末)에 붙여졌다. 방말이었지만 과거에 급제를 했으므로 문체로 인한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는데도 그는 충군에 대한 청원을 하지 않은 채 고향으로 돌아갔다. 1798년(38세)이 되던 봄에 삼가현에서 소환 독촉이 심해지자, 형부, 병부, 예부에 들러서 청원을 했지만 허락을 받지 못했다. 결국 1800년(40세) 10월에 다시 삼가현에 내려가 118일 동안을 그곳에 머물고 이듬해 2월에 귀향했다.
그 뒤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신유옥사(辛酉獄事)가 일어났던 1801년(41세, 순조 1년)에 그는 잠시 귀경했지만, 성균 유생 시절에 교분을 나누었던 김려(金?)와 그의 아우 김선(金?) 그리고 강이천(姜彛天) 등과 헤어져서 다시 본가에 돌아와 은둔자적하며 일생을 마칠 때까지 저작 활동에 몰두했다.

 

목차

목차
심생전
마주친 눈동자
처녀의 고백
슬픈 이별
최생원전
귀신은 있다?
귀신은 없다?
귀신을 업신여긴 최 생원
작품 해설
논술 교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