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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봄의 들판에서 ‘81 전국민주노동자연맹 전국민주학생연맹(일명 학림) 사건 자료집

동녘편집부 저 | 동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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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2978558 / 652쪽 191 x 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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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혼돈의 시대, 학림사건을 돌아보다 학림사건(學林事件)은 군사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학생들을 반국가단체 조직범으로 몰아 처벌한 1980년대 대?표적 공안 사건이다. ‘학림(學林)’이라는 명칭은 전민학련 첫 모임을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가진 데 착안해 ‘숲(林)처럼 무성한 학생운동 조직을 일망타진했다’는 뜻으로 당시 경찰이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은 1979년 신군부 세력이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자 민주화운동을... 혼돈의 시대, 학림사건을 돌아보다 학림사건(學林事件)은 군사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학생들을 반국가단체 조직범으로 몰아 처벌한 1980년대 대표적 공안 사건이다. ‘학림(學林)’이라는 명칭은 전민학련 첫 모임을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가진 데 착안해 ‘숲(林)처럼 무성한 학생운동 조직을 일망타진했다’는 뜻으로 당시 경찰이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은 1979년 신군부 세력이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자 민주화운동을 모색하던 과정에서 결성된 운동권 단체였다. 당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이들 단체에 속한 회원들과 모임을 주도한 관련자들을 영장 없이 불법 감금한 상태에서 수사하고 전기 고문이나 발바닥 고문 등으로 공산주의자라는 자백을 강요했다. 이 사건으로 총책 이태복 씨가 무기징역을 언도받는 등 관련자 25명에게 실형이 선고되었으나, 이태복(1988년 10월 가석방)을 제외한 전원은 83년 8월까지 모두 석방되었다. 이 사건은 노동 현장에서의 지식인과 노동자의 결합,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의 조직적 결합 등 ’80년대 운동 방식의 선구적 형태가 되었다. 2009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장기간의 불법 구금과 고문을 통하여 사건이 조작”되었고, “서울지방경찰청이 이와 같은 불법행위가 있었음을 알고도 수사하지 않았으며, 법원 역시 피고인들의 법정 진술을 통해 밝혀진 내용을 심리하지 않고 유죄를 선고하였음”을 발표하고,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재심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에 재심이 청구, 진행되어, 2010년 12월, 서울고법 형사 5부는 동 사건 피고인들에게 무죄 및 면소 판결을 내리고, “사법부의 과오로 인해 피고인들이 고초를 겪은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 이 판결이 조그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해당 재심 판결은 2012년 6월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학림사건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역사적 자료집 학림사건 과거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집을 내기로 한 첫 번째 계기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화위)’가 재심을 권고하고 재심 법정의 고법 재판장이 “선배 사법부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지 못한 점을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판결이었다. 그 뒤 대법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고 난 뒤에 학림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의견이 모아졌다. 이런 필요성에 부응해 고민 끝에 학림사건 자료편집위원회는 사건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자료집을 발간하기로 했다. 새삼 무슨 논쟁이나 주장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것이 지금 이 시기에 심각한 의미를 갖기도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림사건 자료편집위원회는 단지 우리의 기록이 역사 속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염원했다. 학림사건을 총체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깊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자료집이다. 그것도 경찰과 검찰, 법원, 교도소 등 당시의 공식 기관 자료나 사건 관련하여 공식적으로 제출되거나 확인된 자료 중심으로 편집됐다. 따라서 거의 모든 글이나 내용은 특정한 입장이나 의견을 담고 있지 않은 자료 및 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어떤 입장이나 의미를 부여하여 첨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책이다. 비록 자료 중의 많은 진술, 특히 공소장에 나와 있는 내용들은 당시로서도 구속 당사자들의 정서에 용납하기 어려운 용어와 표현이 나와 있고 그것이 당시 활동의 실체를 왜곡하거나, 같이 운동했던 많은 분들의 자발적인 의지를 모욕할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 당시의 현 주소였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어서 나와 있는 그대로 옮겼다. 또한 사건으로 인해 직간접적인 피해 내지는 영향을 받은 많은 분들의 진실도 여기에서는 담을 수도 기록할 수도 없었다. 기록도 분명치 않거니와 있어도 연관성이 분명치 않은 경우도 많으며, 언급된 분들이 특히 당시 사건 당사자들에게 호의적인지도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관들 말로는 무려 몇 천 명을 조사했다고 하던데 사실인지도 명확치 않고, 그 기록조차 제대로 있는지 의문이다. 또 하나는 감옥 생활 기록이다. 아쉽게도 법무부 교정국에 남아 있는 자료조차 다 입수하지 못하고 입수한 것조차 다 정리하지 못했다. 물론 이 부분은 사건 전체의 큰 틀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아쉬움을 달랠 겸 당시 교도소 상황을 어느 정도는 보여줄 수 있게 기록들의 이미지를 더불어 실었다. 국가의 잔혹한 폭력에 쓰러져간 사람들 이야기 이 책을 만들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사실 당사자들이 구금된 이후 가족들과 어머님들이 하신 가족 활동의 기록이 거의 대부분 유실되었다는 점이다. 가족들, 특히 어머님들은 그저 자식들에 대한 믿음 하나로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편견과 맞서 싸우면서 용감하게 뒷바라지하셨다. 그 활동의 증거들은 아직도 일부 남아 있는 유인물들 속에 풍부하게 살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자료들의 정황을 구성하는 상황 기록들(활동 기록이나 사진 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어머님들이 작고하시거나 노환으로 대화를 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 그 후 또 많은 공안 정국을 겪으면서 기록들이 유실된 게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몇몇 분만 모시고 대화 형식으로 당시의 기억들을 부분적으로 재생하는 시도를 해야 했고 거기에 유인물들의 이미지와 간단한 설명을 실어 상황을 짐작하게 한 게 학림사건 자료편집위원회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언론보도는 당시의 보도 통제로 실제로 존재하는 게 몇 건 없지만 남아 있는 것들 중심으로 실었다. 에는 당사자들의 사건 후 살아온 과정을 어느 정도는 담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 분은 충실하게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고, 어느 분은 그저 몇 줄의 이력을 보내온 게 다였다. 어떤 분은 심지어 전혀 싣고 싶지 않다면서 보내오지 않은 분도 있다. 그것들은 그것들대로 당사자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저 입수된 자료만 실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당사자들이 겪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에 대한 소회를 담았다. 거기서 당사자들이 구금된 날짜가 모두 합해서 926일이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더불어 당사자 중 엄주웅이 최근에 쓴 한 편의 글()도 실었다. 마지막에는 학림 당사자들 전체의 마음을 담은 사과의 글을 실었다. 당사자들은 본의 아니게 또는 부족해서 당시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을 조사받게 했고, 그것이 평생의 부담으로 남았던 것 같다. 이 책의 편집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당사자들의 이런 미안함이 ‘자료집’의 가장 중요한 ‘기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편집자들은 이런 측면에서 몇 가지 부족하고 아쉬운 점을 제외하면 자료집으로서의 객관적 가치를 어느 정도는 담았다. 이 자료집이 지금 이 시대에 무슨 의미나 가치가 있을지 머리 굴려 고민하지 않았다. 역사적 가치를 생각하기 전에 이제는 유실되어버릴지도 모르는 기록들을 일단 살린다는 생각만으로도 이 작업의 동기로서는 충분했다. 당사자들도 이미 상당한 나이에 접어들어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들이 더 유실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우리의 노력이 작은 보탬이라도 되기를 기원해본다.

저자 소개

생각의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던 1980년 봄,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될 것을 자임하며 도서출판 동녘이 탄생했다. 1980년대에 펴낸 《철학 에세이》, 《아리랑》, 《껍데기를 벗고서》 등이 독자들의 폭발적인 호응과 공감을 얻어 동녘은 당시 손꼽히는 진보 출판사가 되었다. 1990년대에는 《역사 에세이》, 《지식의 세계》, 《동양철학 에세이》, 《삶과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교양서, 《여성학 강의》, 《섹슈얼리티 강의》 등 여성학 도서, 《수학은 아름다워》, 《보름간의 문학여행》 등 재미있고 유익한 청소년 책을 내는 데 힘쓰는 한편,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시리즈를 새롭게 펴냈다. 동녘편집부는 독자와 시대의 요구에 귀 기울이며,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책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책 속에서

그런데 진실과 화해의 문제에 대한 얘기를 한마디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감옥에 있을 때 나를 고문했던 이근안을 비롯한 남영동 수사관계자들, 사형을 구형했던 안강민·박순용·임휘윤·김경한 등 기소를 담당한 검사들, 최종영·황우여·이강국·이영애 등 무기징역을 판결한 판사들 모두에 대해 무조건 용서와 화해를 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유신 회귀의 흐름을 보면서 개인적인 용서와 화해와 별개로 역사의 정의와 전진을 위해서는 인권유린의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잣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7쪽

정회원들이 운영했던 조직은 대개 예비회원들로 구성된 조직이었다. 이들 조직에서는 현장문제와 노동이론, 소모임 조직과 노조결성 및 운영에 관한 학습과 토론, 실천 점검 등의 활동을 주로 했다. 이 과정을 거친 예비회원들은 입회 문답을 거쳐 입회식에서 선서를 한 뒤 조직원의 10대 수칙을 맹세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10대 수칙은 조직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길 것, 조직 보안을 사수할 것, 시간 준수, 동지 사랑 등이었다.
이 문답을 거쳐 조직원으로 들어온 동지들이 송영인, 송병춘, 노숙영, 김광섭, 최규엽 등이었고 각기 예비그룹을 조직해 운영해나갔다. 그러다가 사건이 일어났다. -19쪽

전민학련은 정치적 입장과 이념적 지향에서는 학생운동의 선도적 역할과 선명한 투쟁성을 내걸고 이를 실천에 옮겼지만 조직적으로는 별다른 기반 없이 형식적 틀 구축을 무리하게 서두르는 과정에서 상부로부터의 하향식 보안에 극히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학내 조직 및 투쟁 활동을 본격 시작한 지 채 한 학기도 지나지 않은 1981년 6월 노동현장과의 연결을 맡았던 상부 조직이 먼저 드러나 중앙 지도부로부터 하향식으로 각 대학의 주요 구성원이 영문도 모르게 일거에 검거 구속되면서 활동을 중단하고 말았다. -26쪽

목차

목차
머리말
편집의 글
자료집 발간에 부쳐
- 전민노련 사건의 배경과 의의
- 전민학련 활동의 배경과 의의
서장 : 구속 이후 사건의 흐름
1. 1심 재판
자료 1-1) 1심 검사 논고문
자료 1-2) 1심 최후진술서? 박문식
자료 1-3) 1심 최후진술서 이덕희
2. 2심 재판
자료 2-1) 이태복 항소이유서
자료 2-2) 2심 판결문 전문
3. 상고심
자료 3-1) 이돈명, 황인철 변호인 상고이유서
자료 3-2) 국선변호인 문영극 상고이유서
자료 3-3) 대법판결문 전문
(참고자료) 학림 사건 관련 법조인 명부
4. 감옥 생활
5. 가족 활동
(참고자료) 가족 활동에 애쓰신 어머니, 부인들
(참고자료) 학림사건에 도움을 주신 분들과 단체
6. 언론 보도
7. 재심
자료 7-1) 진화위 재심 권고 결정문 전문
(참고자료) 재심 관련 법조인 명부
8. 사건 이후
남영동 926일 이야기
내가 겪은 학림사건
마음에 새겨진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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