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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강의 중용

우응순 저 | 북드라망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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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851463 / 408쪽 14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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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친절한 강의 중용』의 친절한 고전 안내자 우응순 인터뷰 1. 『중용』이, ‘사서삼경’ 중에 하나라는 사실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썼는지, 어떤 위상을 가진 책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사서’ 중에서도 가장 마이너한 느낌마저 듭니다. (단도진입적으로) 『중용』은 어떤 책인가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위대한 고전’이죠, 단, 우리가 아직까지 거기(『중용』)에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저는 『중용』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친절한 강의 중용』의 친절한 고전 안내자 우응순 인터뷰 1. 『중용』이, ‘사서삼경’ 중에 하나라는 사실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썼는지, 어떤 위상을 가진 책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사서’ 중에서도 가장 마이너한 느낌마저 듭니다. (단도진입적으로) 『중용』은 어떤 책인가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위대한 고전’이죠, 단, 우리가 아직까지 거기(『중용』)에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저는 『중용』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썼다고 전해집니다. 근래에 발굴되고 있는 문헌 자료를 보면 거의 확실합니다. 자사는 태어나서 네 살까지 할아버지인 공자에게서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공자의 학맥은 증자로 이어집니다. 자사는 증삼의 제자고요. 공자는 아들과 아들과 같았던 제자, 아내까지 모두 먼저 죽었기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자사는 『중용』 안에서 공자의 말씀을 많이 인용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인용하는 부분을 보면 『논어』, 증자가 쓴 『대학』인데, 『중용』에는 이 두 저작의 중요한 부분들이 수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중용』의 주제가 『맹자』로 확산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굉장히 중요한 책인 것이죠. 2. 이 책 『친절한 강의 중용』은 선생님의 강의 입말이 살아 있어서인지 강의 현장에 함께 있는 느낌이 듭니다. 그냥 쭉 읽다 보면 중용 해석은 물론이고, 한문 문형, 게다가 『논어』나 『맹자』처럼 다른 사서의 책과 통하는 이야기까지 넘나들어 『중용』 배우는 재미에 빠지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고전 원문 강의를 수십 년간 해오신 걸로 아는데요, 강의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어떤 점인지 궁금합니다. 강의를 여러분들이 들어주셔서 항상 고마운 마음이에요. 그런데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이 항상, 한자로 쓰인 텍스트라는, 그러니까 ‘원문’을 제가 강의 한다는 것을 일종의 ‘장벽’처럼 느끼시곤 합니다. 제가 강의를 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일단 강의에서 다루는 텍스트들이 2천년 전에 쓰여진 책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텍스트에 나오는 용어와 표현들이 그때 당시에는 어떤 의미였는가 하는 점을, 동시대의 텍스트를 통해서 설명해 드립니다. 그래서 『친절한 강의 중용』을 보시면 『맹자』, 『논어』 같은 텍스트들이 정신없이 튀어나온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당대의 ‘의미망’을 통과해서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신영복 선생님이 『담론』에도 쓰셨지만, ‘손때 묻은 그릇’과 같은 것이죠. 오래된 하나의 ‘틀’과 같은 겁니다. 그 ‘틀’을 읽는 이유는 무엇보다 좀 더 ‘나 답게’, ‘현명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죠. 그 점을 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단 강의를 할 때 저는 제가 가장 즐거워요. 그러니까 제가 느끼는 그 즐거움이 학인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고요. 저는 그래서 강의를 할 때, 부드럽게, 잘 ‘꾀는’ 그런 강의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3. 흔히 ‘중용을 지켜라’라는 말을, 이를테면 ‘편들지 말라’는 식으로 사용하곤 합니다. 선생님께서 ‘중용’은 그런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중용’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중용』이라는 책이 다루는 주제에 관한 질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중용’이라는 표현을 대체로, 양쪽의 극단을 피한 가운데, 그러니까 ‘중간’이요. ‘중도파’라거나, ‘중간지대’같은 말들을 씁니다. 그러나 『중용』에서 문제 삼는 것은 ‘절대적인 옳음’과 ‘절대적인 그름’과 같은 ‘시비’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선(善)의 실천에도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러한 각각의 선택지의 타당성은 어떻게 확보될까요? 『중용』은 ‘시간’에 따라 결정된다고 봅니다. 15세기에 살 때에 옳은 것과 21세기에 살 때에 옳은 것은 다르지요. 정도전의 길과 신채호의 길, 그리고 우리의 길이 다른 겁니다. 『중용』은 그것은 ‘시중’(時中)이라고 표현합니다. ‘적절성’, 당대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그러한 당대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저울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고요. 그래서 『중용』은 당대의 적절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지, 절대적인, 혹은 초역사적인 시비의 문제를 다루는 텍스트는 아닙니다. 『중용』에서 가장 배격하는 것은 오히려 중간, 중도 같은 어정쩡한 입장입니다. 양시, 양비론과는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4. 『중용』은 ‘유교의 경전’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이 책 강의 중에 유교에 대한 어떤 편견을 몇 번 언급하시며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시는 부분이 있는데요, 사실, 특히나 한국 사회에는 아직 ‘유교’나 ‘유학’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습니다. 이 시대에도 『중용』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조선 왕조가 쇠락하고 근대가 열리는 시기에, 특히 식민지가 된 제3세계 대부분의 지식인이나, 신민(臣民)에서 시민(市民)이 된 이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실패했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전통’을 부정하는 흐름이 생기게 된 것이죠. 예를 들면 춘원 이광수 같은 사람이죠. 우리에게는 물려받을 전통이 없다, 다 부정하자는 식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고아’로 새출발을 하게 된 것이죠. 그것은 그때의 ‘시대정신’이었다고 봅니다. 일단, 부정을 해야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 시기를 거친지 백 년이 넘었어요. 이제는 ‘모두 버리고 가자’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게 아닐까요? 이제는 우리가 버린 것 중에서 상당히 쓸모 있는 것들이 많죠. 그것을 다시 챙기기 위해서는 역시 고전(古典)을 읽어야 하는 것이고요. 더불어 조금 힘들지만, ‘원문’(原文)으로 읽는 것이 좋고요. 해설서만 읽으면, 다른 사람이 읽어 준 책, 그래서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책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천천히 시간을 두고 동양의 고전들과 새롭게 접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이 축적되어 간다면, ‘무조건 버린다’는 식의 태도는 상당히 바뀌지 않을까 싶고요. 5. 선생님께서 『중용』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시는 구절 하나와, 독자들이 꼭 익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구절 하나씩을 꼽아주세요. 아, 한 구절을 뽑으라니 정말 어렵네요.(웃음) 우선, 첫 문장…음…한 문장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은데요. 일단, 첫 문장을 말씀드릴게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사람은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여기서 성(性)은 ‘도덕성’이에요. 무언가, 선한 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죠.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백지 상태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이것이 맹자의 ‘성선설’로 가는 것이고요. 성(性)이라는 걸 현재적인 의미로 생각해 보면,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으로 연결됩니다. 이것을 『중용』에서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도’(道)는 ‘나다운’, ‘나를 배려하는’ 이러한 삶이 주변으로 확산, 확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중용』에서 가장 고민하는 것은 ‘나’와 공동체의 관계입니다. 이 공동체 속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게 사회나, 국가 같이 더 큰 단계로 가면 ‘교’(敎)라는 개념이 됩니다. 그런데

저자 소개

1958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문화학교 교장 역임. 2013년부터 ‘남산강학원’과 ‘감이당’에서 동양고전 강의도 하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세미나를 하며 발분하고 있다. ‘문탁네트워크’와 ‘규문’에서도 사서(四書)와 『주역』, 『노자』, 『장자』, 『사기』 등 다양한 원문 강좌를 진행해 오면서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이 원문 강좌들이 앞으로 계속 ‘친절한 강의’로 출간될 예정이다). 학인들과 어울려 책 읽고, 밥 먹는 지복을 맘껏 누리면서 나이 들어감을 잊고 사는 중이다.

머리말

연구실에서 원문 강좌를 개설하면 대부분의 학인들은 아는 한자가 별로 없다고 걱정하셔요.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그럴 때마다 제가 늘 하는 달콤한 유혹의 소리가 있죠. 300자 정도면 사서(四書)를 원문으로 읽는 데 충분하다고요. 또 한자를 전혀 모르더라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요. ‘한자’가 아니라 ‘한문’을 읽는 것이기 때문에 과감히 도전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이번 중용 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중용』을 보시면 사실 어려운 한자는 합쳐서 다섯 글자 정도이고, 그 외엔 다 중학교 1학년 한자예요. 문제는 한자가 아니라 한문이고, 그 내적 의미 맥락입니다. 일반적으로 쉬운 한자로 쓰여진 문장이 오히려 어렵답니다. 『중용』은 내용면에서는 『주역』보다 더 어려운 텍스트일 수도 있고 『대학』보다 『소학』보다 더 쉬운 텍스트일 수 있습니다. 해석의 깊이가 무궁무진한 텍스트이고, 그만큼 매력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이 강의가 여러분께 『중용』의 깊은 맛을 전달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머리말 중에서

책 속에서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이 문장에 딱히 어려운 글자는 없지요? 하지만 이것이 『중용』을 대표하는 문장으로, 『중용』의 중요한 개념이 여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천(天), 성(性), 도(道), 교(敎). 이 네 글자의 의미 내지는 이 글자들의 관계를 풀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지금부터 살펴볼 『중용』의 33장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 나온 키워드들, 그러니까 ‘하늘’이란 무엇인가, ‘성’이란 무엇인가, ‘도’란 무엇인가, ‘교’란 무엇인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중용』을 읽어 가야겠습니다.
(…중략…) 이 ‘도’ 자의 해석이 참 재미있습니다. 주자는 “道, 猶路也”(도, 유로야)라네요. ‘도’는 ‘로’(路), 즉 ‘길’이라고 합니다. 무슨 길인가? 사람과 만물이 각각 그 성의 자연, 저절로 그러함을 따라 살게 되면 일상생활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이 있게 된다는 겁니다. 길은 걸어가야 하는 ‘길’이자 행해야 할 ‘도리’인 거죠. ‘성’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 이게 우리 인생의 자연스러운 길이라는 겁니다. ‘성’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올바른 일생의 길이다, 이런 뜻이에요. 사람이든 만물이든 세상의 존재는 타고난 ‘성’의 이치를 따라 살면 잘 사는 것이라고 하네요. 여기 주석에서 “日用事物之間”(일용사물지간)이란 표현이 나오는데요, 많이 쓰이는 말입니다. 매일매일 쓰는 ‘사물지간’이라는 건데, 주자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일용사물지간’이라고 표현했어요.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일에 있어서 항상 ‘솔성’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중용』에서 도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길’이자, 우리가 지키고 살아가야 될, 지켜야 될 ‘도리’란 의미도 있어요. ‘도’에 두 가지 의미가 중첩되어 있는 거예요. 이렇게 일생 동안 도를 따라 도리를 지키고 살면 최고 수준은 어디까지 돼요? 뒤에 나오겠지만 ‘지성무식’(至誠無息)하는 성인까지 돼요. 그리고 그러한 성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인가? 네, ‘솔성’이죠. 다른 거 없습니다. 어디 딴 데 가서 찾지 마세요. 타고난 본성을 따라 살다 보면 ‘성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중용』의 주제입니다.(본문 「중용 제1장」 중에서)

고(故)로 지성무식(至誠無息)이라. 그러므로 ‘지성무식’이라. 이것도 사자성어로 쓰입니다. 여기서 ‘식’은 ‘쉴 식’ 자죠? 그러니까 ‘지성’은 쉼이 없다는 겁니다. 이거 쉬면 안 돼요. 이러면 우리를 포함해서 만물이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주석에 나오는 “自無間斷”(자무간단)의 ‘간단’에는 표시를 좀 해놓으세요. 『대학』에도 나오고, 주자 주에 계속 나오거든요. 스스로 ‘간단’이 없어야 돼요. ‘간’(間) 자는 ‘틈 간’ 자고, ‘단’(斷)은 ‘끊어질 단’ 자잖아요? 천도는 이러한 틈과 끊어짐이 없다는 거죠. 천도를 따라 ‘성’을 추구하는 우리도 수양과 수신에 있어서 1초도 틈이 생기거나 끊어지면 안 된다는 거고요. 『주자어류』(朱子語類)에도 이 단어가 많이 나와요. 공부가 잘 안 된다? 간단없이 하래요. 주자 공부법의 핵심 키워드, 바로 ‘간단없이’입니다. 꾸준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울할 때나 기쁠 때나, 꾸준히 하면 돼요. 그럼 우울증도 없어지면서 항심(恒心)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해야 되는가? 물으시면, ‘천도’와 ‘지도’가 쉼이 있더냐? 이렇게 얘기해요. 천지의 운행이 멈추더냐? 어제 뜬 해가 오늘 안 뜨더냐? 이러는 거죠. ‘항상’ 하잖아요. 그것처럼 우리에게도 항상성이 중요하다는 거죠. 천도의 ‘지성무식’이 인도로 가는 겁니다.(본문 「중용 제26장-1」 중에서)

시고(是故)로 군자독공이천하평(君子篤恭而天下平)이라. 여러분, 드디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평천하’까지 왔습니다. ‘천하평’으로 나오긴 했지만요. 아무튼 『중용』도 마지막엔 여기까지 오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대학』은 ‘격물치지’, ‘명명덕’ 해서 ‘수신제가’로 나갔고, 『중용』은 하늘이 명한[天命] ‘성’(性)부터 시작해서 솔성(率性)의 도(道), 수도(修道)의 교(敎)에 이르러 정치 이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대학』과 『중용』의 주제는 개인과 사회, 국가의 관계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같은 구도를 가지고 있는 거죠.
자, 이런 까닭에 ‘군자독공이천하평’(君子篤恭而天下平), 군자가 ‘공’(恭)을 돈독히 합니다. 여기서 ‘공’이란 무어냐? ‘공경하다’로 익숙하실 텐데, ‘경’(敬)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높이는 거고, ‘공’은 자기를 낮추는 겁니다. 그래서 이 ‘공’은 겸손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렇게 군자가 자기를 겸손하게 하는 것을 돈독하게, 진실되게 하면 천하가 안정된대요. 여기서 관련 검색어 하나 보고 갈까요?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고 『맹자』에 나오죠? 네, 어진 사람은 적이 없어요. 적
이 생길 수가 없는 거예요. 다 ‘심복’하니까요.(본문 「중용 제33장」 중에서)

목차

목차
머리말
제1장 ─ 원문|강의
제2장 ─ 원문|강의
제3장 ─ 원문|강의
제4장 ─ 원문|강의
제5장 ─ 원문|강의
제6장 ─ 원문|강의
제7장 ─ 원문|강의
제8장 ─ 원문|강의
제9장 ─ 원문|강의
제10장 ─ 원문|강의
제11장 ─ 원문|강의
제12장 ─ 원문|강의
제13장 ─ 원문|강의
제14장 ─ 원문|강의
제15장 ─ 원문|강의
제16장 ─ 원문|강의
제17장 ─ 원문|강의
제18장 ─ 원문|강의
제19장 ─ 원문|강의
제20장-1 ─ 원문|강의
제20장-2 ─ 원문|강의
제20장-3 ─ 원문|강의
제20장-4 ─ 원문|강의
제20장-5 ─ 원문|강의
제20장-6 ─ 원문|강의
제20장-7 ─ 원문|강의
제21장 ─ 원문|강의
제22장 ─ 원문|강의
제23장 ─ 원문|강의
제24장 ─ 원문|강의
제25장 ─ 원문|강의
제26장-1 ─ 원문|강의
제26장-2 ─ 원문|강의
제27장 ─ 원문|강의
제28장 ─ 원문|강의
제29장 ─ 원문|강의
제30장 ─ 원문|강의
제31장 ─ 원문|강의
제32장 ─ 원문|강의
제33장 ─ 원문|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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