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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의 조건 유럽은 어떻게 세계 패권을 손에 넣었는가

원제 : Why Did Europe Conquer the World?

T. 호프먼 저 | 이재만 역 | 책과함께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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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293638 / 360쪽 153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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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선정 2015년 올해의 책┃ 전 세계 대부분을 지배했던 유럽, 무엇이 그 남다른 발전과 성공을 이끌었나 1492년부터 1914년까지 유럽은 전 세계 영토의 84퍼센트를 정복했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끄트머리에서 외침을 방어하기에 급급한 처지였다. 비잔티움 제국은 천년 고도 콘스탄티노플을 1453년에 오스만 제국에 빼앗겼고, 에스파냐는 1492년에 이르러서야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가까스로 몰아낼 수 있었다. 15세기 말까지 유럽은 어떤 잣대로 보아도 세계의 중...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선정 2015년 올해의 책┃ 전 세계 대부분을 지배했던 유럽, 무엇이 그 남다른 발전과 성공을 이끌었나 1492년부터 1914년까지 유럽은 전 세계 영토의 84퍼센트를 정복했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끄트머리에서 외침을 방어하기에 급급한 처지였다. 비잔티움 제국은 천년 고도 콘스탄티노플을 1453년에 오스만 제국에 빼앗겼고, 에스파냐는 1492년에 이르러서야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가까스로 몰아낼 수 있었다. 15세기 말까지 유럽은 어떤 잣대로 보아도 세계의 중심이 아닌 변방이었다. 그러던 유럽이 근대 들어 흥기하여 세계의 패권을 잡았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수백 년간 유럽을 앞서갔으며 강력한 문명을 가졌음을 자부했고, 유럽인과 동일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중국인, 일본인, 중동의 오스만 인, 남아시아인은 왜 우위를 점하지 못했을까? 그동안 역사학이 천착해온 이 커다란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지리적 특성이나 질병, 산업혁명 등이 거론되었지만,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기업경제학 석좌교수 겸 역사학 교수인 필립 호프먼은 종래의 요인들로는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유럽인이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태평양의 섬들에 도착한 뒤 천연두와 홍역 같은 전염병이 발병해 토착민이 떼죽음을 당했고 이는 제국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요인은 유럽인과 마찬가지로 면역력이 있었을 중국이나 일본, 남아시아의 침략자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더라도 같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산업혁명은 어떠한가? 200여 년 전인 1800년만 해도 산업혁명은 영국에서나 겨우 진행되고 있었을 뿐 나머지 유럽 지역에는 산업혁명이 도달하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유럽인은 당시 지표면의 35퍼센트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고, 그들의 선박은 저 멀리 동남아시아까지 이르는 해상 교역로에서 이미 300년 동안이나 이익을 짜내고 있었다. 유럽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모든 대양에서 무장선을 거느리고 인간이 거주하는 모든 대륙에 해외 요새와 식민지를 건설했던 것이다. 2천 년에 걸친 정치적ㆍ경제적ㆍ역사적 변화를 생생하고 상세하게 조명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하는 유럽 승리의 요인들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간결한 대답은 유럽이 가장 앞선 화약 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이 화약 기술을 발전시키고 계속 앞서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유라시아 대륙 가운데 유럽에서만 화약 기술의 발전에 필요한 특정한 조건, 즉 끊임없는 군사 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을까? 지리와 친족유대가 일견 그럴 듯해 보이는 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저명한 경제사가인 필립 호프먼은 각 나라들을 각기 다른 정치 지형과 재정 제도로 이끌었던 정치사(政治史), 즉 유라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저마다 독특한 정치적 경로를 열어젖힌 과거 사건들의 특수한 연쇄가 현재의 결과를 만들어낸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말한다. 동아시아에서 일찍이 강력한 중국 제국이 형성된 사건부터 로마 제국이 붕괴한 이후 전쟁으로 점철된 수백 년 동안, 서유럽에 전사들과 군사 지도자들은 있었으나 강한 국가라고 할 만한 정치체는 없었다. 그에 반해 중국은 진나라로 시작된 거대한 통일 제국이 명조와 청조로 이어졌고,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모두 오랜 기간 존속되었다. 이처럼 하나의 국가로서 외침을 막는 것에 집중했던 비유럽 국가들과 달리, 유럽의 각 국가들은 그리 크지 않은 교전국으로 조각난 채 서로 밀접해 있었다. 그리고 유럽의 통치자들은 재정적 이득, 영토 팽창, 신앙 수호, 승리의 영광 등의 상(賞)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군사 경쟁을 벌였다. 그렇다면 유럽의 통치자들이 선전포고를 하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로 화약 기술의 혁신을 가져오게 만든 필수적인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전쟁이 잦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전국 간의 규모와 정치적 비용이 비슷해야 하고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상(賞)의 가치가 커야 한다. 둘째, 전쟁에 소요되는 정치적 비용의 절대 수준이 낮아야 한다. 셋째, 전쟁에서 다른 기술이 아닌 화약 기술을 중점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넷째, 자체적으로 발전하든 남의 기술을 차용하는 것이든 화약 기술의 최신 혁신을 획득하는 데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서유럽은 화약 기술 발전에 필요한 네 조건 모두를, 그것도 1400년 이래 중단 없이 충족한 이례적인 지역이었다. 유라시아의 다른 지역들은 한두 가지 조건이 부족했거나, 조건이 모두 한동안 충족되더라도 그 후에는 조건이 누락되었다. 이를테면 적들을 토벌하고 동아시아의 패권국이 된 중국의 청나라나 전국 통일 이후의 일본이 그러했다. 중국에서 전쟁은 매우 빈번했는데 대부분 유목인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유목민과의 전투에는 화약 기술보다는 궁기병이 더 효과적이었고, 그들을 막아내기 위해 만리장성을 비롯한 방어 시설과 변경에 군사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에 더 주력하게 되었다. 만약 유럽이 중국처럼 커다란 단일 제국이었다면 몽골족과 타타르족이 각각 중세와 16세기에 동유럽을 침략하고 습격했을 때 유럽의 서쪽 가장자리에서 공격의 파장을 감지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서유럽의 통치자들은 화약 기술이 아니라 기병을 늘리거나 동쪽에 성벽을 축조하기 위해 자원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일본 역시 내전으로 인한 잦은 전쟁에서 화약 기술을 중점적으로 사용했지만, 전국 통일에 성공한 도쿠가와 막부는 전쟁을 멈추었다. 중국의 우월한 영토 크기는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의욕을 꺾었고, 중국보다 작은 적들과의 전쟁을 고려했더라도 해군을 확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대외 원정에 대한 관심은 점점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그 외의 국가들은 어떠했을까? 인도, 특히 18세기 인도는 끊이지 않은 전쟁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정치적 비용이 많이 들었고 목표로 한 왕위 내지 통치권의 계승을 얻기가 난망하였다. 즉, 투자해야 하는 정치적 비용을 생각하면 상의 가치가 충분히 크지 않았던 것이다. 근대 초기에 시종일관 교전하여 통치령을 각각 크게 넓힌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은 화약 기술을 사용하긴 했으나 후발 주자였기 때문에 혁신을 선도하지 못했고, 유럽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버렸다. 역사적 사실과 데이터, 경제 모델을 결합 서양의 발흥을 경제학의 관점으로 논증하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정치사의 결과로 파편화된 유럽은 중세 후기부터 끊임없는 군사 경쟁을 벌여왔다. 적절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상(賞)을 차지하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도록 경쟁자들을 몰아가는 이 특수한 형태의 ‘토너먼트’는 격렬하고 치열했으며 화약 기술의 혁신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유럽은 이 화약 기술을 토대로 아스텍 제국과 잉카 제국을 무너뜨리고, 인도양에 진출하여 바닷길을 가로막고 통행세를 받아냈으며, 아시아의 요새에서 엄청난 수적 열세를 극복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비유럽 국가들은 화약 기술을 이전받고 전문가를 고용하는 등 그 격차를 좁혀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간극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이 결과는 유럽인에게 전반적인 우위를 선사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전략적 상황에서의 의사 결정을 연구하는 경제학의 게임이론을 접목시켜, 근대 초기 유럽에서 통치자들이 어떤 이유로 개전을 결정하고 군사비를 지출했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럽 통치자들이 화약 기술을 발전시킨 이유와 나머지 비유럽 국가

저자 소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런던대학에서 재직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게임이론》, 《전략과 정보》, 《게임의 기술》, 《정치게임과 공공경제》 등이 있고,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수십 편의 학술논문 게재는 물론 정치경제, 산업조직, 공정거래, 경영전략과 관련된 정부 정책보고서와 기업 컨설팅보고서를 50여 편 출간하였다. 연구와 교육 그리고 현실경제에의 공헌을 인정받아 매경 이코노미스트상(2003), 초헌학술상(2005), 기획재정부장관 표창(2008), 매경 특별표창(2015) 등을 수상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인문사회과학부 기업경제학 석좌교수 겸 역사학 교수.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경제사학회 회장, 《경제사 저널》 공동편집인을 역임했고,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초빙교수, 파리 경제대학 초빙연구원, 홍콩 과학기술대학 초빙교수를 지냈다. 경제 이론과 역사적 증거를 결합하여 정치와 사회, 경제의 장기 변화를 설명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전통 사회의 성장Growth in a Traditional Society》, 《대손실 견디기Surviving Large Losses》, 《값을 매길 수 없는 시장Priceless Markets》 등이 있다.

역자 소개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고, 역사를 중심으로 인문 분야의 번역에 주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정복의 조건』 『세계제국사』 『철학』 『역사』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제국의 폐허에서』 『공부하는 삶』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유럽인은 어떻게 그런 수적 열세를 이겨낼 수 있었는가? 질병 하나만으로는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유럽인은 어떻게 뒤이어 1800년까지 세계의 35퍼센트를 정복하고 1차 세계대전에 이를 때까지 더 넓은 영토를 정복할 수 있었는가? 그들이 획득한 영토의 태반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영토였고, 아시아 인구는 집단성 질병에 면역되어 있었으며, 아프리카에서 유럽인은 열대병에 취약했는데도 말이다.
일부 군사사가(軍事史家)들은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 그저 유럽인의 기술이 더 뛰어났다는 것이다. (1장, 14쪽)

이 강력한 비유럽 국가들은 왜 산업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뒤처졌는가? 그리고 유럽인은 왜 19세기 내내 다른 누구보다도 화약 기술을 밀어붙였는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유럽인이 세계를 정복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이 물음들에 반드시 답해야 한다.
이제까지 최고의 답변은 유럽 내 군사 경쟁이 유럽인에게 우위를 선사했다는 것이다. 이 논증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정식화한 폴 케네디는 유럽의 경쟁 시장과 끊임없는 군사 경쟁을 지적한다. 케네디에 따르면, 군사 경쟁은 군비 경쟁을 유발하고 경쟁 시장은 군사 혁신을 촉진해, 어느 한 나라가 유럽 대륙을 장악하여 경쟁을 중단시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속적인 혁신이 유럽인에게 일찍이 기술 우위를 안겨주었고 결국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1장, 22~23쪽)

분쟁을 다루는 경제학 문헌에 나오는 단순 모델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 통치자가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은 그가 동원하는 자원에 비례한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두 통치자 모두 싸우기로 결정한다면, 한 통치자가 이길 확률은 그의 군사비에 비례하여 높아질 것이다. 두 통치자는 이길 확률, 상의 가치, 가변비용과 고정비용을 저울질하여 전쟁을 할지 말지 결정한다. 그런 다음 어떤 자원을 지출할지 선택한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거나 승리해서 얻을 기대 이익이 너무 적다면, 통치자는 굳이 전쟁을 할 가치가 없다고 결정할 것이다. 그럴 경우 18세기에 네덜란드가 여러 차례 전쟁을 관망한 것처럼(또는 적어도 관망하려 했던 것처럼), 통치자는 사태를 지켜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발을 빼는 통치자는 자원을 소비하지 않고 고정비용도 지불하지 않지만, 상을 얻을 기회도 갖지 못한다.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통치자는 일정한 대가를 치른다고 가정하더라도 고정비용만 낮아질 뿐 모델의 기본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2장, 42~43쪽)

자기보다 훨씬 큰 적수, 또는 낮은 비용으로 인력과 자원을 모을 수 있는 적수와 싸우려는 통치자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모델에나 예외가 있듯이, 현실에는 예외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두 통치자의 체급이 다를 때는 평화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통치자들은 언제 전쟁을 할까? 토너먼트 모델에 따르면, 몇 가지 조건이 성립할 때 전쟁을 한다. 우선 두 통치자가 자원을 동원할 때 드는 가변비용이 서로 비슷해야 하고, 그들이 싸워서 차지하려는 상의 가치가 재정 제도와 군사 기구를 수립하는 데 드는 고정비용보다 커야 한다. 또한 그들이 통치하는 나라나 경제가 규모 면에서 현저히 다르지 않아야 하며, 차입 능력의 차이가 크지 않아야 한다. 예외가 생길 여지가 조금 있기는 하다. 작은 나라의 통치자가 자금을 쉽게 빌릴 수 있다면, 국내 자원에 의존할 뿐 차입이 불가능한 더 큰 나라의 통치자와 싸울 수 있다. (2장, 43~44쪽)

그렇다면 혁신은 전쟁의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인 셈이다. 그런데 통치자들이 군사 기술을 의도적으로 개선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전비를 지출하는 과정에서 실행학습을 통해 혁신이 이루어진다면, 최고 혁신을 얻을 확률은 토너먼트 모델에서 승전할 확률과 정확히 같을 것이다. (2장, 56쪽)

토너먼트 모델은 그들의 고르지 않았던 속도 이면의 이유를 밝히고, 길게 보아 그들 모두가 서유럽인에게 뒤진 까닭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모델을 중국, 일본, 인도, 러시아, 오스만 제국에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 (3장, 82쪽)

알다시피 토너먼트 모델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전쟁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 말고도 추가 조건, 즉 전쟁에 거액을 지출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요구한다. 그러므로 전쟁이 제공할 상이 귀중해야 하고 자원 동원 총비용이 낮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지도자들은 각자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를 위해 싸워야 하고, 과세할 때, 혹은 사람이나 물자를 징발할 때 정치적 비용을 적게 치러야 한다. 이 마지막 조건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전쟁은 끊이지 않을지 몰라도 전쟁에 지출하는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고, 전투를 해도 실행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화약 기술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이 결과는 우리가 케네디와 다이아몬드의 논증에 근거하여 예측하는 상황과 현저히 대비된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조건은 18세기 인도에 적용되는가? 답은 아주 간단하다. 안 된다. (3장, 102쪽)

따라서 유럽이 기술 우위를 점한 궁극 원인들을 알기 위해 우리가 정말로 설명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왜 서유럽은 작은 교전국들로 조각났는가? 왜 지속적인 패권자―중국이나 무굴, 오스만의 황제들, 도쿠가와 쇼군들 같은 통치자―가 등장하지 않았는가? 둘째, 왜 서유럽 토너먼트의 외생 조건들, 바꾸어 말하면 모델 외부의 조건들은 그토록 달랐는가? 특히 유럽 통치자들은 어째서 영광과 같은 상을 소중히 여겼는가? 그리고 그들이 무겁게 과세하거나 자금을 차입함으로써 낮은 정치적 비용으로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왜 나머지 유라시아에서는 외생 조건들이 그토록 달랐는가? 특히 18세기 인도와 오스만 제국에서는 어째서 가변비용이 훨씬 더 높았는가? (4장, 125쪽)

정치사는 왜 유럽이 정치적으로 쪼개졌는지, 영광과 같은 상들을 차지하고자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 왜 서유럽 통치자들에게 매력적이었는지, 적어도 그들 중 일부는 어째서 낮은 정치적 비용으로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바로 그 시기에 군사적으로 유리하고 실행학습을 통해 개선하기에 알맞은 기술이 왜 하필 화약 기술이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오스만 제국에서는 왜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했는지도 드러낸다. (4장, 141쪽)

초기 정복자들은 대부분 장군이나 제독이 아닌 민간 모험가였다. 그들은 대체로 군주에게 일종의 연줄을 댔고, 대개 통치자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왕실의 대규모 침공군을 지휘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부하들 태반이 노련한 병사였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화약 기술을 손에 넣었을까? 어떻게 해외에서 권력을 잡고 자원을 갈취할 정도로 화약 기술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유럽의 왕들과 군주들은 막대한 병력을 거느리고도 어째서 민간 모험가들에게 의존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을 격려하기까지 했을까?
이 물음들의 답 또한 정치사에 달려 있으며, 그 답을 찾는다면 서양이 부상하여 세계를 정복한 역사 외에 다른 어떤 시나리오들이 가능했을지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81쪽, 5장)

그렇다면 서유럽 사업가들은 외국으로 가서 정복하도록 독려된 반면에 유라시아 사업가들이 똑같은 일을 시도했을 때 장벽에 부딪힌 이유는 무엇일까? 서유럽에서 그 일이 그토록 쉬웠던 이유는 뭘까? 그리고 나머지 유라시아에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진 않더라도 더 어려웠던 이유는 뭘까? 대체로 이 물음들의 답은 정치사의 결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치사로 인해 유럽 통치자들은 민간의 군사적 진취성에 의존할 확률이 높아졌다. 그들의 의존은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는데, 민간 이익과 외국 정복을 결합하여 세계를 장악할 강력한 유인과 화약 기술을 가일층 혁신할 이유를 유럽인에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5장, 188~189쪽)

이처럼 상반된 상황은 서유럽과 나머지 유라시아의 또 다른 차이점, 유럽인이 세계를 정복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일조하는 또 다른 요인이었다. 토너먼트 모델의 외생 조건들과 마찬가지로, 이 차이 또한 역사, 특히 정치사의 산물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정치사는 유라시아 지역들을 각기 다른 정치 지형과 재정 제도로 이끌었다. 정치사는 짧게는 정치적 학습을 통해 작용했고, 길게는 문화적 진화를 일으키고 엘리트층의 유인을 바꾸었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치사의 영향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해졌다. 정치사는 1800년경 서유럽인이 화약 기술에서 큰 격차로 앞섰던 궁극 원인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화약 기술의 격차는 유럽에서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크게 벌어졌으며, 따라서 이 격차는 유라시아인 가운데 바로 유럽인이 세계를 정복한 이유다. (5장, 201쪽)

목차

목차
1장 서론
질병 | 화약 기술 | 토너먼트
2장 근대 초기 유럽에서 토너먼트는 어떻게 정복을 가능하게 했는가
통치자들은 왜 싸웠는가? | 토너먼트 모델 | 토너먼트 모델에 의문 제기하기 | 토너먼트는 어떻게? 군사 기술을 발전시켰는가? | 근대 초기 서유럽에서 네 가지 조건은 유지되었는가? | 근대 초기 유럽에서의 토너먼트 모델 검증하기 | 정치사의 역할
3장 나머지 유라시아는 왜 뒤처졌는가
중국 | 일본 | 인도 |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 서유럽의 기술 우위 | 우위는 중요한가?
4장 궁극 원인들: 서유럽과 나머지 유라시아의 차이 설명하기
유럽은 왜 조각났는가? | 통치자들의 친족 유대는 유럽이 조각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 | 궁극 원인으로서 정치사: 서유럽의 문화적 진화 | 유럽의 통일을 저해한 서방 기독교 | 일부 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해서 낮은 정치적 비용으로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는가? | 중국 | 일본, 러시아, 오스만 제국, 18세기 인도 | 결론
5장 화약 기술에서 민간 원정으로
정복자들은 어떻게 화약 기술을 손에 넣었는가? | 유럽 통치자들은 왜 민간 사업가에게 의존했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 나머지 유라시아에서 민간 모험사업을 방해한 장애물 | 반사실적 시나리오들: 몽골족이 없었다면 상황이 달랐을까?
6장 19세기 유럽의 기술 변화와 무장평화
군사 기술의 연이은 개선 | 기술 변화와 무장평화에 관한 모델 | 19세기 군사 연구와 개발 | 혁신은 정복과 제국주의에 얼마나 중요했는가?
7장 결론: 정복의 대가
ㆍ 부록 A : 실행학습을 통한 전쟁과 기술 변화 모델
ㆍ 부록 B : 가격을 이용해 군사 부문의 생산성 증가 측정하기
ㆍ 부록 C : 정치적 학습 모델
ㆍ 부록 D : 〈표 4-1〉과 〈표 4-2〉의 데이터
ㆍ 부록 E : 무장평화와 연구를 통한 기술 변화 모델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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