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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 명군, 폭군 사마천, 반고, 사마광은 한무제를 각각 완벽히 다르게 평가했다!

강붕 저 | 김영진 역 | 왕의서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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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중국의 최대 방송사 의 인문 강연 프로그램인 <백가강단>에서 일약 화제가 된 한무제에 관한 30개 강연이 책으로 정리됐다. 한무제는 이제껏 알던 제왕이 아니다. 저간의 사건은 재구성된다. 사마천, 반고, 사마광의 기록을 분석하여 종합하면 한무제는 혼군(昏君)이자 명군(名君)이며 폭군(暴君)의 얼굴을 모두 하고 있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 MD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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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615188 / 520쪽 162 x 233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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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강성한 대국과 온 백성의 행복 중 어느 쪽이 더 급박했고, 중요했던가?” ▶ 책 소개 당대 최고의 역사가 3인을 한자리로 불러 오늘날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받는 한나라 무제의 본모습을 따져 밝히다! 중국의 최대 방송사(중국중앙텔레비전, CCTV)의 인문 강연 프로그램인 [백가강단]에서 일약 화제가 된 한무제에 관한 30개 강연이 책으로 정리됐다.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치르는 이중톈, 왕리췬 등의 학자 출신 스타도 이 프로그램 출신이다. 강연을 맡은 젊은 역사학자는 정설로 되어 있던 한나라 무제의 역사 평가를 ... “강성한 대국과 온 백성의 행복 중 어느 쪽이 더 급박했고, 중요했던가?” ▶ 책 소개 당대 최고의 역사가 3인을 한자리로 불러 오늘날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받는 한나라 무제의 본모습을 따져 밝히다! 중국의 최대 방송사(중국중앙텔레비전, CCTV)의 인문 강연 프로그램인 [백가강단]에서 일약 화제가 된 한무제에 관한 30개 강연이 책으로 정리됐다.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치르는 이중톈, 왕리췬 등의 학자 출신 스타도 이 프로그램 출신이다. 강연을 맡은 젊은 역사학자는 정설로 되어 있던 한나라 무제의 역사 평가를 원점에서 다시 해석하는 기염을 토한다. 왜 하필 한무제인가? 한무제는 중국에서 ‘진황한무’로 불리며, 진시황과 함께 불세출의 인물로 평가받는 제왕이자, 중화제국의 기초를 닦은 영웅이기 때문이다. 한무제의 업적과 일생은 16글자로 압축 정리할 수 있다. ‘내강황권內强皇權(안으로 황권을 강화하고), 외복사이外服四夷(밖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복종시켰다), 미신신선迷信神仙(미신과 신선을 숭배하며), 만년개철晩年改轍(만년에 종래의 정책을 철회했다)’이 그것이다. 16자로 요약된 한무제의 행보는 많은 사람에게 익히 알려졌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하나하나 되묻는다. 먼저 한무제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저자가 취한 방법은 사마천, 반고, 사마광을 한자리로 불러모은 것. 당대 최고의 사가인 그들이 쓴 《사기》, 《한서》, 《자치통감》을 단서로 삼았다. 단편적인 사건과 기록 뒤에 숨겨진 배경을 살펴보고, 생략되고 빠진 사실을 이어붙여 맥락을 찾는다. 여정은 흥미진진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이 책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한무제는 이제껏 알던 제왕이 아니다. 저간의 사건은 재구성된다. 사마천, 반고, 사마광의 기록을 분석하여 종합하면 한무제는 혼군(昏君)이자 명군(名君)이며 폭군(暴君)의 얼굴을 모두 하고 있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 안으로 황권을 강화했다는 업적에 관해 한무제 원수 원년(BC. 112)에 [회남자]의 저자인 회남왕 유안이 모반죄로 고발돼 자살하고 만다. 한데 이 사건의 성격에 관한 의견은 분분하다. 진실은 뭘까? 유안의 모반 사건은 원통한 일이다.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한무제인 것. 유안은 단지 희생양이었다. 《사기》에는 유안의 심성을 알아볼 수 있는 글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회남왕 유안은 사람됨이 독서와 거문고 연주를 좋아하고 활을 쏘며 사냥하거나 말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한, 음덕을 행해 백성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며 자기 이름이 천하에 퍼뜨리려고 했다. 이렇게 심성이 착하고 백성을 사랑한 제후왕은 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해야 했을까? 제후왕으로서 격조가 드높고 평가가 후한 것은 당시에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쉽게 황제의 질투를 일으키고 중앙정부를 불안하게 할 요소로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무제의 질투심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무제가 질투를 일으킨 것은 유안 한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한무제의 이복형인 유덕은 당시 하간왕으로 봉해졌는데, 이 유덕 또한 평판이 아주 좋았다. 문화 사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진시황의 분서갱유 이후에 단절된 유학의 경전을 새로 정리하는 큰 공로를 세웠다. 그러나 유덕은 이 때문에 한무제에게 질투를 받았다. 한번은 한무제가 유덕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탕湯은 70리의 땅에서 왕자가 됐고, 문왕文王은 백 리의 땅에서 왕자가 됐다.” 이 말은 한무제가 유덕에게 백성에게 인의를 베풀고 나중에 백성의 인기를 얻으면 내 황위까지 넘볼 것이냐는 뜻이었다. 이 말을 들은 유덕은 다시는 문화 사업을 하지 않고 백성에게 인의를 베풀지 않았으며 주색에 빠져서 미친 사람처럼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위기후 두영과 무안군 전분은 모두 한무제 초기에 승상 직을 맡은 인물들인데, 회남왕 유안처럼 문객을 양성하는 것을 좋아해 주위에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 세력이 강대해지자 한무제는 큰 위협을 느끼고 안정감을 찾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무제는 이를 갈 정도로 몹시 분개했으며.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했다. 위청과 곽거병 같은 대장군은 한무제 곁에서 늘 그런 모습을 보아온 터라 자신들에게 화근이 될 문객을 양성하지 않았다. 한무제는 유안을 비롯한 제후들과 승상뿐만 아니라 당시 대표적 유협이던 곽해 같은 유협들까지도 황권을 강화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판단에 무차별하게 제거했다. 유학자들과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한무제를 위대한 영웅으로 떠받는 데 주저할 사람은 없다. 바로 한무제가 즉위 초에 저명한 유학자인 동중서의 의견에 따라 기타 학파의 학설을 버리고, 오직 유학의 학설만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무제 시대에 통치 사상의 하나로 선택돼 발전한 유학을 두고 세 사학자는 견해를 서로 달리했다. 사마천은 먼저 한무제가 유가의 표준을 따른 군주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지금 천자(한무제)가 즉위하자마자 더욱 공손히 귀신에게 지내고 받들었다.”고 교묘하게 써내려갔다. 더불어 《사기》〈봉선서〉에도 한무제가 신선과 미신을 신봉했다는 사적을 많이 기록했다. 《사기》〈유림열전〉에서 사마천은 이상하게도 오직 관직명만을 나열했을 뿐이다. 일종의 우려였다. 그는 아마도 “유학이 권력의 유혹에 빠져있을 때도 순수하고 올바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유학자로서 자기 소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의 다른 곳에서 “진정한 유학자는 어떻게 자기 인생의 고난을 극복하고, 유학의 가치관은 어땠는가?”에 관해 기술했다. 바로 《사기》의 〈공자세가〉다. 사마천의 붓 아래에 공자는 자기만의 사상을 전파하려고 천하를 주유하며 온갖 풍상고초를 겪었고, 어떤 통치자를 맞닥뜨리거나 어떤 시련이 닥쳐도 자기 소신을 꺾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매진했다. 그 제자들도 비록 서로 다른 성격과 처세관을 지녔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세속의 공명, 벼슬, 그리고 재물 앞에서 자기 소신을 꺾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기》에서 묘사된 진정한 유학자들의 모습이다. 이런 유학자들의 표준에서 당시 승상이었던 공손홍을 재보면 그는 바른 학문과 양심을 지니지 못했고, 단지 권력에 눈이 어두워 힘껏 아부해 운이 좋게 벼락출세한 사례에 해당한다. 반고는 사마천과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정통적인 유가 학자로서 한무제를 치켜세웠고, 유학을 수호하려는 견해를 밝혔다. 반고는 “효무제孝武帝(한무제)는 즉위하자마자 탁월하게 백가百家를 폐출하고, 육경六經을 드러냈다.”고 찬미하며, 한무제를 유학을 보호하는 영명한 군주로 그렸다. 사마광의 태도는 두 사학자와 또 달랐다. 사마광은 《자치통감》에서 동중서를 한무제 시대에 등장하는 첫 번째 인물로 안배한 뒤 동중서의 입을 빌려 유학의 정치강령을 수립하고, 그 뒤에 한무제가 저지른 행동은 유학의 표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려 했다. 한마디로 한무제가 유가의 관념에 부합하는 군주가 아니라는 것에 방점을 찍었던 것이다. 사마광은 그저 한무제를 유학을 정치무대나 역사무대로 끌어올린 인도자 정도로 인식했다. 한편 한무제 통치하의 승상은 무능한 인물 일색이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무제는 공손홍, 석경같이 황권에 절대복종하는 귀속된 승상을 필요로 했다. 이들은 유사시에는 희생양이나 정적의 희생물이 됐다. 한무제에게 승상은 황권 강화를 위해 미리 계획된 과정 일부에 불과했을 뿐이다. ▷ 사방의 오랑캐를 복종시켰다는 업적에 관해 《한서》에는

저자 소개

姜鵬
1978년생, 한족漢族, 절강浙江 영해寧海 사람이다. 역사학 박사로 현재 복단대학復旦大學 역사과에서 강의를 하고, 중국고대학술사, 사상문화사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대표저술로 《북송경연여송학적흥기北宋經筵與宋學的興起》, 《난설적설유공안難說的說儒公案》, 《삼국전사三国前史: 일개괴뢰적역량一个傀儡的力量》 등이 있다. 2012년에 중국 CCTV 백가강단百家講壇 프로그램에 최연소 청년 학자로 출연해 《한무제적삼장면공汉武帝的三张面孔》을 주제로 강연을 펼치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역사학자로 중국 학계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역자 소개

金英鎭
동국대학교 중문과 및 동 교육대학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중국 사천대학교 중문과 고전문헌학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광운대, 한성대, 강남대 강사 및 한신대 연구교수, 동방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대표저술로 《치도治道》, 《한 권으로 읽는 도교道敎》, 《중국어 이야기》, 《중국인을 위한 한국어 첫걸음》, 《청소년 명심보감》, 《청소년 논어》 등 다수가 있다. 현재 동양 고전번역과 중국문화사, 중국어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책 속에서

한무제의 일생을 필자는 16글자로 총정리했다. 즉 내강황권內强皇權(안으로 황권을 강화하고), 외복사이外服四夷(밖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복종시켰다.), 미신신선迷信神仙(미신과 신선을 숭배하며), 만년개철晩年改轍(만년에 종래의 정책을 철회했다.)이다.
5쪽, 저자 서언

《한서》의 중요 편찬목적은 서한 왕조의 위대함과 정통성을 알리 는 것이었고, 가장 적합한 시대가 한무제 때였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한무제의 형상은 이를 논증하려는 목적의식이 강하게 투영됐다고 할 수 있다.
37쪽, 제왕의 면모

기실 그 비평의 중심은 한무제가 아니라 신종에게 빗대어 경고한 것으로 신종에게 한무제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고 권유한 것이다.
39쪽, 제왕의 면모

먼저 이 원통한 사건은 서한 중앙정부에서 제후왕 세력을 약화하려는 일관된 방책의 일환이고, 유장과 유안은 그 방침의 희생양이라는 데 방점을 찍을 수 있다.
77쪽, 회남의 원통한 사건

한무제가 전분을 승상으로 삼고, 유학을 장려해 통치 사상으로 삼으려 했던 것은 자기 통치를 공고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122쪽, 진짜와 거짓 유학

이전에 공손홍에게 승상을 맡겼던 일을 참고하면 한무제는 인재가 아니라 노예가 필요할 뿐이었다.
146쪽, 승상의 운명

이 일을 통해 장탕과 한무제 의 관계를 추측할 수 있다. 한무제는 자신이 직접 나설 수 없는 문제 들이 생기면 장탕을 앞세워 악랄한 수법으로 해결했던 것이다.
162쪽, 장탕의 승진과 좌천

한무제 통치의 본질은 사마천이 일찍이 치밀하게 고려한 한마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유술로써 꾸며 관리를 다스리다.”는 것이다.
164쪽, 장탕의 승진과 좌천

관건은 한무제다. 그는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총 책임자로서 언제나 문제가 생기면 희생양을 찾았고, 이번 경우에는 왕회가 그 희생양이었다.
212쪽, 마읍의 계책이 실패하다

사마천이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사기》의 끝으로 삼았다면 이는 한무제에 대한 항의라고 할 수 있고, 이릉의 굴욕을 자기 굴욕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454쪽, 사마천, 절필하다

한무제는 태자와의 성격 차이로 태자를 바꾸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태자 자리를 넘보는 다 른 세력들이 최종적으로 무고의 사건을 일으켜서 태자를 제거해버리고, 또 그의 외척들도 동시에 제거해 버린 것이다.
463쪽, 사마천, 절필하다

한무제가 만년에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했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고 대국적이면서 정치적인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한무제 결단은 매우 분명하고 지혜로운 것으로 만약에 그가 이 문제 를 개선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의 미래는 암울하게 됐을 것이다.
476쪽, 자신을 책망하는 조서

태자 쟁탈전에서 위씨와 이씨가 서로 대립하는 바람에 최후에는 수도가 피바다가 됐다. 기실 유거와 유박이 죽은 것은 모두가 모친 일가의 세력이 화를 부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87쪽, 임종 때 어린 자식을 부탁하다

목차

목차
저자 서언
무엇 때문에 한무제는 세 얼굴의 제왕으로 그려지나? 4
제1강 제왕帝王의 면모 25
한무제漢武帝에 관한 서로 다른 평가 / 하나의 스토리, 세 가지 견해
《사기》, 《한서》 그리고 《자치통감》과 한무제 / 왜 한무제인가?
제2강 제후諸侯를 정리하다 43
분봉과 군현제의 모순 / 7국의 난이 한무제의 통치에 남긴 영향
한무제 통치 초기, 제후국에 관한 처리 / 회남왕淮南王 모반 사건
제3강 회남淮南의 원통한 사건 61
유안劉安의 모반 / 앞뒤가 안 맞는 하나의 내막 / 유안의 모반 동기
《자치통감》의 건원 6년 / 유안을 타격한 진짜 이유
제4강 대협大俠의 죽음 83
《자치통감》에 있는 하나의 기현상 / 유협 무리와 그 특징
한무제 안중의 곽해 / 역사가들의 유협에 대한 다른 의견
제5강 오직 유술儒術을 숭상하다(독존유술) 101
한 가지 상식에 관한 논쟁 / 통치 사상과 궁정정치
유학과 황로학파의 첫 번째 교전 / 한무제가 친정親政한 후의 선택
세 역사학자의 ‘독존유술獨尊儒術’에 대한 의견
제6강 진짜와 거짓 유학 117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인재 선발 / 한무제가 공손홍을 임용한 이유
진짜와 거짓 유학 / 세 사학자의 다른 견해
제7강 승상의 운명 133
공손하公孫夏, 승상을 거절하다 / 석경石經과 원봉元封 연간에 발생한 유민
유민 사건의 책임 / 세 사학자의 다른 표현 / 한무제 통치하의 승상
제8강 장탕張湯의 승진과 좌천 149
도굴사건이 부른 정치투쟁 / 장탕과 장청적의 죽음 / 장탕의 정해진 배역
장탕과 한무제 / 황권의 도구, 혹리
제9강 혹리, 요직을 차지하다 167
피비린내 나는 태평성대 / 혹리酷吏 풍조의 출현 / 혹리들의 특징
순리循吏의 공석 / 내정과 외교
제10강 사방으로 출격하다 185
한무제 때의 급격한 변화 / 한무제 초기의 대외활동 / 한무제의 영토 확장
한무제 업적에 관한 세 사학자의 다른 견해
제11강 마읍馬邑의 계책이 실패하다 203
평성平城의 포위와 한나라의 굴욕 / 마읍馬邑의 계략 / 왕회王恢의 죽음
누가 총사령관이었던가?
제12강 위청과 곽거병의 전공과 업적 215
위청衛靑의 전기 / 대장군의 탄생 / 표기장군驃騎將軍 / 장군 별의 추락
제13강 외숙과 생질의 색다른 취향 231
위청과 곽거병의 성격 차이 / 위청과 곽거병의 공통점 / 위청과 곽거병이 중용된 이유
제14강 제후로 봉해지지 못한 이광李廣 245
‘비장군飛將軍’ 이광 / 이광의 죽음 / 이광과 위청의 비교
이광이 제후로 봉해지기 어려웠던 까닭
제15강 서역에 사신을 보내다 261
머나먼 서역 / 장건張騫, 서역에 사신으로 가다
서역에 다시 사신으로 가다 / 한무제의 서역 경영 / 역사가들의 다른 평론
제16강 한혈보마汗血寶馬를 얻다 277
신마神馬가 서북쪽으로부터 오리라 / 사신을 보내 말을 구하다
이사貳師 장군 / 다시 대완을 정벌하다 / 사학자들의 대완 정벌 평가
제17강 재정위기 293
재정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다 / 재정정책의 선회
정책이 시행된 후 / 사학가들의 다른 서술
제18강 복식卜式, 한무제의 꼭두각시 309
복식卜式, 한무제를 지지하다 / 총애를 잃다
복식과 한무제 관계에 대한 세 가지 서술 / 한무제, 공사公私 재정을 혼동하다
제19강 사공史公, 굴욕적인 형벌을 받다 325
이릉 사건과 사마천의 형벌 / 이릉 사건이 《사기》 편찬에 준 영향
세 역사서에 묘사된 이릉 사건의 차별점 / 세 역사가의 견해를 어떻게 생각하나?
제20강 인재의 모집과 등용 341
‘골계滑稽’ 동방삭東方朔 / 동방삭과 한무제의 용인 책략 / 세 역사서에 기록된 동방삭 / 한무제가 등용한 사람들 / 사마천의 직접 체험담 / 사마광, 두 측면에서 관찰하고 생각하다
제21강 신선을 찾아 나서다 359
이소군李少君 이야기 / 한무제의 방사方士들 / 세 사학자의 다른 견해 /
제22강 봉선封禪의 전주 375
상서로운 조짐이 잇달아 출현하다 / 연호年號의 탄생 / 상서로운 징조와 봉선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유서遺書 / 세 사학자의 평론
제23강 봉선대전封禪大典 389
진시황과 한무제가 거행한 봉선封禪 의식 / 황제黃帝가 신선이 된 전설 / 태산에서 봉선 의식을 거행하다 / 사마담司馬談의 죽음 / 세 사학자의 다른 서술
제24강 무고巫蠱의 화가 일어나다 407
무당의 활약 / 진황후陳皇后 사건 / 두 공손씨公孫氏의 죽음 / 이들 사건의 본질에 대한 세 사학자의 다른 견해
제25강 부자지간 421
유거劉据의 탄생 / 한무제와 위자부 / 한무제와 유거 / ‘요모문堯母門’ 사건
세 사학자의 다른 서술
제26강 예견된 분쟁 437
부자지간의 틈 / 강충江充의 모함 / 태자, 반란을 일으키다 / 세 사학자의 다른 기록
제27강 사마천, 절필絶筆하다 449
무고지화의 후속 / 사공史公의 절필絶筆 / 《자치통감》의 단서
《한서》의 특징 / 무고의 사건에 대한 총 결말
제28장 자신을 책망하는 조서詔書 465
한무제 만년에 닥친 문제 / 윤대輪臺에서 자기 죄를 책망하다 태자를 잘못 판결한 것을 시정하다 / 국책의 개정과 태자 사건의 관계 역사학자들의 다른 분석
제29강 임종 때 어린 자식을 부탁하다 481
새로운 태자 / 유불릉을 태자로 선택한 이유 / 태자의 생모를 죽이다
고명대신顧命大臣 / 사학자들의 평가
제30강 공적과 과실에 대한 시비是非 495
무엇 때문에 한무제는 세 가지 면모를 가졌다고 하는가? / 한무제의 내정內政 성적
한무제가 중국 판도에 끼친 공헌 / 세 사학자에 비친 미신과 신선 숭배
역자의 글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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