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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본 일본의 한국 이천 년 한일 교류의 현장을 가다

허문명 외 저 | 은행나무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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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6609980 / 380쪽 / 388g / 154 x 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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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일 교류 이천 년의 시간 여행 일본 열도에 숨어 있는 한반도인의 흔적을 찾다 ★2015 서재필 언론문화상·2016 일한문화교류기금상 수상★ 고대로부터 이어진 우리와 일본 간의 교류의 역사를 말해?주는 일본의 유적들을 탐사한 책 《한국의 일본, 일본의 한국》(은행나무 刊)이 출간되었다. 지난 2015년 한일 수교 50년을 맞아 기획된 이 책은 지난해 하반기 〈동아일보〉에 연재된 “수교 50년, 교류 2000년-한일, 새로운 이웃을 향해” 시리즈를 수정하여 엮은 것으로,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교류한 2,000년의 세월을 톺... 한일 교류 이천 년의 시간 여행 일본 열도에 숨어 있는 한반도인의 흔적을 찾다 ★2015 서재필 언론문화상·2016 일한문화교류기금상 수상★ 고대로부터 이어진 우리와 일본 간의 교류의 역사를 말해주는 일본의 유적들을 탐사한 책 《한국의 일본, 일본의 한국》(은행나무 刊)이 출간되었다. 지난 2015년 한일 수교 50년을 맞아 기획된 이 책은 지난해 하반기 〈동아일보〉에 연재된 “수교 50년, 교류 2000년-한일, 새로운 이웃을 향해” 시리즈를 수정하여 엮은 것으로,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교류한 2,000년의 세월을 톺아본다. 청동기와 벼농사를 전수한 고대로부터 불교, 건축 기술, 공예 등 다양한 선진 문물을 전파한 삼국시대, 고구려?백제 유민들이 대거 건너간 통일신라 시대, 조선 도공들이 일본 도자 산업을 싹틔우고 통신사가 최초의 한류를 일궈낸 조선시대까지, 우리 조상들이 일본과 긴밀하게 교류해온 역사는 유구하다. 그 교류의 흔적들은 일본의 역사, 여러 절과 신사, 유물들 등에 오롯이 남아 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으로 구성된 14인의 저자들은 한반도 도래인들과 조선 통신사의 발길을 좇아 일본의 유명한 관광지부터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산속 깊은 곳과 섬마을까지 탐사하였다. 저자들은 취재를 하면서 일본 곳곳에 스며 있는 우리 조상들의 향취에, 그리고 그것들을 살뜰히 보존해온 일본인들의 성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왜와 긴밀히 교류한 백제, 다방면의 기술을 전수한 고구려?신라… 일본 열도에 남겨진 한반도 도래인들의 숨결을 찾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부에서는 일본에 대한 한반도 문물 전파를 이야기할 때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언급되는 백제의 활약을 이야기한다. 현 일왕인 아키히토 왕은 일본 고대 문화의 전성기인 헤이안 시대를 연 간무 왕이 백제인의 후손이라는 《속일본기》의 기록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일본 왕족 또한 무령왕릉을 참배할 정도로, 현재 일본인에 백제계 도래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일본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백제가 혈통뿐 아니라 국가 기틀을 다지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음이 자명하다. 그 흔적을 찾아 백제계 도래인들이 완성한 도시 오사카, 백제 무령왕이 출생한 가카라시마 섬, 백제계 간무 왕이 세운 교토, 삼국 통일 이후 백제계 유민들이 정착한 히라카타 시 등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나는 백제의 것과 빼닮은 유물들이나 여전히 남아 있는 ‘백제(구다라)’와 연관된 지명들에서 백제가 일본에 진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2부에서는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와 신라인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불교와 의복 등 다양한 문물을 전수한 백제인을 비롯한 한반도 도래인들은 선진 문물을 갖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구려인은 절이나 신사 등을 축조하는 건축 기술을 전수하였고, 신라인은 제철, 도자, 직물 등 다양한 선진 기술들을 일본으로 가지고 건너갔다. 한반도 도래인들의 공으로 일본의 고도(苦都) 교토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번성할 수 있었으며, 일본의 다양한 산업이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에 정착함으로써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도자 산업의 기틀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이에 저자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교토, 오사카, 나라 등 한반도 도래인들이 발전시킨 도시들과 그곳에 영향을 끼친 유적들, 조선 도공들이 정착한 도자기 마을 등을 방문하였다. 한반도 도래인 후예들의 활약상이나 원효?의상대사, 장보고와 같은 위인들과 일본이 교류한 흔적들을 함께 담았다. 최초의 한류를 일으킨 조선 통신사들의 자취를 좇다 마지막 3부는 조선 통신사의 이야기로 꾸렸다. 임진왜란 이후 국교가 단절되면서, 한반도를 통해 대륙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던 일본은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조선과의 교류로 번영하던 쓰시마 섬의 번주는 섬의 명운이 흔들리게 되자 양국의 국서를 위조해가면서까지 조선 통신사를 다시 유치하는 데 열성이었다. 그 각고의 노력으로 임진왜란 이후 19세기까지 열두 차례에 걸쳐 조선 통신사가 방문하였는데, 그때마다 일본인들은 천금을 들여 통신사들을 맞이하고 통신사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운집한 민중들의 모습은 마치 요즘 내한한 셀러브리티를 환영하는 인파와도 같았다고 한다. 에도(도쿄)로 향하는 통신사들이 머물렀던 일본의 작은 마을과 소도시는 하나같이 통신사들과 연관된 유적이나 유물들을 고이 지키고 있다. 통신사들이 머물렀던 객관 터나 일본 지식인들과 교류한 흔적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 등을 살피면 근대 초까지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형제의 나라로 안내하는 ‘성신교린(誠信交隣)’의 역사 기행서 일본에 대한 민족 감정과 별개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덕에 일본은 우리에게 친숙한 여행 국가다. 우리가 관광하며 흔히 찾는 도다이사(동대사), 기요미즈사(청수사) 같은 유명한 유적지가 알고 보면 우리 조상과 긴밀히 연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일본을 다녀온 적이 있거나 다녀올 독자들에게 일종의 안내서가 될 수 있도록 저자들이 취재하며 직접 찍은 현장감 있는 사진들과 방문한 도시들을 표시한 지도를 함께 꾸렸다. DNA 분석 결과 한국인과 일본인은 유전학상으로 굉장히 닮아 있다고 한다. 이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의 2003년 개정증보판에서 한일 양국을 ‘쌍둥이 국가’로까지 묘사하였다. 하지만 현대사의 아픔을 따지면 일본과 우리가 친밀했음을 인정하기란 쉽지가 않다. 일본이 치밀하고 꼼꼼하게 우리와 연관된 유물들을 고이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냉랭한 국제 관계와는 별개로 역사적인 사실들을 살펴야 함을 느끼게 된다. 근현대의 알력 때문에 국가 간의 관계는 순탄치 못하나 일본이 우리 선조들의 피를 이은 아우의 나라, 과거 가장 가까웠던 이웃임을 기억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때 최초의 일본인 통역관 아메노모리 호슈가 한일 양국을 오가며 강조한 ‘성신교린(誠信交隣)’ 정신은 아직 유효한 나침반이지 않을까. 사회가 국가 단위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화 시대에 같은 동북아의 일원으로서 형제 의식을 갖는 데에 이 책이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저자 소개

정치부에서 일하고 있다. 북한 김일성대를 졸업하고 2002년 탈북해 한국에 왔다. 2003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국제부를 거쳐 현재 통일부를 출입하고 있다.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 등 10권의 저서를 펴냈다.

테니스를 즐기는 어머니를 따라 테니스코트를 밟으면서 스포츠와 연을 맺었다. 어느 종목 하나 변변하게 잘하지 못하는 ‘몸치’이지만 종목을 막론하고 스포츠 경기 관람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특히 테니스, 야구, 골프 중계 보는 일을 즐긴다. 2001년 이데일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경제부, 산업부, 국제부를 거쳐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여기자 최초로 뉴욕특파원을 지냈다. 뉴욕특파원을 지낼 당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뉴욕 플러싱 메도우에서 열린 US오픈 테니스대회를 2년 연속 관람한 일이다. 동아일보로 적을 옮겨 미래전략연구소에서 국내 최초의 경영전문지인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창간에 기여했고 이때 스포츠와 기업 경영의 공통점을 파헤치는 일에 끌렸다. 이후 경제부를 거쳐 현재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로 재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KDI 정책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쳤다. 라파엘 나달, 안드레 아가시, 아니카 소렌스탐, 현주엽, 류현진, 노경은의 팬이다. 

1990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하고 2013년 현재 오피니언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아일보에 '허문명의 사람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맡아 4년 동안 진행해오고 있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6년 대학을 입학해 전경들이 캠퍼스를 점령하고 캠퍼스에서 선배들이 ‘독재타도’를 외치며 분신하는 시대를 살았다. ‘왜 나는 이런 시대에 태어났나’ 자괴감도 들곤 했지만 그 와중에도 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거운 질문을 안고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상’과 다른 현실을 맞닥뜨리며 점점 현실의 엄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젊을 때 가졌던 생각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자책이 없지 않았다. 괴로웠다. 지식인들에게는 ‘내가 믿었던 신념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일’이 정신적 자살과도 같은 괴로운 일이라고 한다. 지난 삶과 현재의 실존에 대한 끝없는 흔들림은 의외의 곳에서 해결되었다. 역사에 대한 정밀한 대면이 그것이었다. 

《김지하와 그의 시대》는 2013년 1월 당시 대통령 후보로 나선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김지하 인터뷰를 계기로 시작됐다. 한국 민주화의 상징적인 인물로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모진 고초를 당한 그의 격정토로는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알고 싶다는 요청도 많았다. 김 시인과 대화를 나누며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삶은 '시대사'였다. 

사실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대립하고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져 잘 통합되지 않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분단(전쟁을 포함해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통일 한국’을 향해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 통합된 역사관을 정립해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절실함이 있다. 그런 때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김지하와 그의 시대》를 집필했다. 불교에 관심이 많아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삶의 나침반 1,2》를 펴냈으며, 번역서로 《선의 나침반》 등이 있다. 
국제부 차장급 기자. 국제부 기자로 출발해 사회부, 문화부 등을 거쳤다. 삶과 앎의 숨바꼭질에서 늘 술래로 살고 있다. 《곰을 피하는 방법》 《21세기 新천재들》 《스타가 말하는 스타》 등을 펴냈다.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정치부, 국제부, 문화부 등에서 일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미국인들이 일본 문화에 매료되는 것을 보고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오피니언팀 차장. 사회부 경찰·법조, 경제부에서 일했다. 모스크바 특파원, 정책사회부와 국제부 차장을 거쳤다. 독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오피니언팀에서 일하고 있다.
국제부 차장. 사회부, 정치부, 산업부 등을 거쳐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다. 인물과 안보 이슈에 관심이 많다. 현재 국제부에서 담당하고 있는 지역은 중국과 일본이다.
산업부 차장. 1997년 기자가 된 이후 다방면의 관심사를 쫓아 경제부,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국제부 등을 경험했다. 동북아시아가 세계 번영의 중심지가 되도록 한중일의 조화를 꾀하는 방안에 관심이 많다.
채널A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다. 정치부, 사회부, 국제부를 거쳐 미국 CSIS 퍼시픽 포럼 펠로우로도 활동했다. 현재 한일 관계는 물론 지구촌 다양한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다. 정치부와 사회부를 거쳤다. 2003년 초부터 국회·국무총리실·감사원·행정자치부·서울시 등을 담당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공기업·국제기구의 경영 혁신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정책사회부 교육팀장. 초중고교와 대학을 망라한 교육과 관련한 기사를 쓰고 있다. 우리의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일조하고 싶다.
여행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한일 교류 시리즈를 연재한 2015년 봄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동아일보에서 11년을 재직하고 지금은 KBS로 옮겨 일하고 있다.

편집국 사회부와 국제부, 출판국 〈신동아〉 〈주간동아〉 〈여성동아〉, 채널A 정치부와 시사다큐팀을 두루 거쳤다. 국제부에서 일하다가 현재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 중이다.

사회부에서 일하고 있다. 문화부에서 대중문화·공연·미술 분야를, 정책사회부에서 교육부·서울시교육청을 출입하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국제부를 거쳐 현재 사건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책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서로 피 튀기는 각축전을 벌이는 와중에 일본과는 각자 긴밀한 정치 경제적 교류를 했다는 사실은 생소하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가장 활발히 교류한 나라는 백제였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항로상으로도 제일 유리했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 수준이 높았던 백제는 점차 기울어가는 국가적 운명 앞에 일본에 문명과 기술을 전해주고 군사적 지원을 받으며 상생을 도모했다.
일본에서 백제의 흔적이 두드러지는 곳으로 일본 제2의 도시이자 항구도시인 오사카가 꼽힌다. 이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일본 열도를 이루는 네 개의 큰 섬 중에서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규슈에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라는 내해를 거치면 열도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의 오사카 항에 닿게 된다. 오사카를 초입으로 삼는 혼슈 간사이 일대에는 이코마[生駒] 산을 경계로 두 개의 큰 평야(오사카 평야, 나라 평야)가 자리 잡고 있다. 생활환경이 우리와 비슷하고 물산도 풍부해 백제인들이 생활의 터전으로 정착하기에 안성맞춤인 땅이었다.
_p44 〈5장 오사카를 완성한 백제 도래인들〉 중에서


백제왕실과 닌토쿠 왕실의 관계는 닌토쿠 왕릉에서 발견된 각종 유물들이 백제 무령왕릉 고분에서 발견된 유물들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이 나오면서 더욱 확신을 갖게 했다. 대표적인 것이 청동거울이었다. 1872년 닌토쿠 왕릉에서 출토된 것이 1971년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것과 거의 비슷해 한일 역사학자들로부터 ‘쌍둥이’ ‘복제품’ 소리를 들었을 정도였다. 한국 삼국시대나 고대 일본 왕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청동거울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부장품으로 알려져 있다. 쌍둥이 유물은 또 있었으니 바로 두 무덤에서 각각 나온 환두대도(環頭大刀)였다. 고리 안에 세 발 달린 새가 한 마리씩 들어가 있는 것이 똑같았다. 이런 양식은 중국에서는 볼 수 없어 한반도에서 전래됐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_p57 〈6장 닌토쿠 왕가의 비밀〉 중에서


도래인의 숨결이 묻어 있어서 그런지 교토 고쇼는 근엄하고 웅장하다기보다 경주의 안압지처럼 소박하고 절제된 신라 유적지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와를 얹어 만든 흙담은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정도여서 위압감을 주지 않았고 왕의 집무실이나 침소는 노송의 껍데기를 짜 얹어 강원도의 너와집을 떠올리게 했다.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을 건너온 신라의 건축가들은 수도 경주와 닮은 분지에 자리 잡은 교토에 또 하나의 신라를 세우려고 애썼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간무 왕의 교토 천도가 도래인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고 왕궁과 부속 건물인 교토 고쇼를 짓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1,000년을 이어간 고도(古都) 교토의 첫 출발은 백제인의 핏줄, 신라인의 기술, 고구려인의 신앙이 모두 어우러진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비록 후대에 복원됐지만 당시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본뜬 헤이안 신궁에서는 헤이안 시대 초기 도래인들의 열정과 고뇌, 고국을 향한 향수가 함께 느껴졌다. 이들은 이런 복잡한 감정을 섬세한 건축술로 승화시켰고 지금은 양국 간 우정의 상징이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다.
_p86 〈10장 백제계를 중용한 ‘교토의 신’ 간무 왕〉 중에서


수성이 있는 다자이후는 바다로 향하는 서쪽만 벌판으로 열려 있고 동, 남, 북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수성은 이 서쪽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다. 길이 1.2킬로미터, 높이 10미터, 하단 폭 77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한 성을 불과 1년 만에 쌓았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이 나당 연합군의 추격에 얼마나 공포를 느끼고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이런 역사를 알고 보면 바람에 설레는 대나무 숲 사이에서 적군이 쳐들어오기 전에 빨리 성을 쌓으라고 독려하는 백제 장수의 목 쉰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수성 아래 누런 황토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밤낮으로 흙을 메고 날랐을 백제 유민들의 땀방울이 배어 있으리라. 수성은 얼핏 3~4세기에 건설된 서울의 몽촌토성과 흡사하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몽촌토성보다 진일보한 기술이 숨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_p103 〈13장 백제 유민들의 마지막 방어선〉 중에서


이 가람배치는 사찰 건립 26년 전인 567년에 창건된 부여 능산리 절터나 군수리 절터, 정림사 터와 동일하다. 게다가 시텐노사는 군수리 절터 탑과 금당 간의 거리를 비롯해 각 건물 비례까지 일치하고 있다. 기와도 똑같다. 이곳에서 만난 스님은 모두 백제 건축물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이곳 건물들은 한눈에 봐도 한옥을 닮았다. 일본은 건축물을 지을 때 일반적으로 각이 진 서까래를 사용하는데 이곳의 서까래는 한옥처럼 둥글었다. 못을 쓰지 않고 나무 결을 짜서 맞춘 방식도 한옥과 비슷했다. 금당 안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상도 가부좌한 모습이나 옷 주름이 흘러내리는 모습, 온화한 미소가 우리나라 국보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똑같았다.
_p205 〈25장 불교가 승리한 일본에 지어진 첫 관영 사찰〉 중에서


불상은 등신대로 의자에 편안히 앉아 있는 반가부좌 자세다.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인 채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에 올려놓고는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에 얹고 있었다. 오른쪽 뺨 아래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는 가볍게 원을 그리고 있는데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깊은 사유에 들어간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이 묘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불상은 우리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너무도 비슷하다. 우리 반가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데 비해 고류사 반가상은 지그시 감고 있다는 것, 모두 미소를 짓고 있지만 입 모양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_p211 〈26장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빼닮은 일본 국보 1호〉 중에서


바둑은 백제에서 유행하던 놀이로, 왕, 귀족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의자왕이 일본 최고 권력자에게 보낸 바둑판 세트가 당시 일본 조정에서 화제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의자왕의 아들 풍장은 바둑을 통해 왕실과 활발한 친교를 했을 것이니 바둑판 세트는 백제의 대일 외교 상징물이라고 덧붙였다.
_p244 〈29장 한반도의 선물을 간직한 나라 문화의 타임캡슐〉 중에서


아메노모리는 접대와 문서를 관리하는 진문역(眞文役) 자격으로 1711년과 1719년 두 차례 통신사를 에도까지 안내한다. 1719년에 아메노모리와 사행을 함께하며 우정을 쌓았던 신유한은 사행록 《해유록》에서 “한어(漢語)에 능통하고 시문에 밝은 일본에서 제일가는 학자”라고 그를 평했다. 아메노모리의 성신 정신은 1728년에 쓴 대조선 외교 지침서 《교린제성(交隣提醒)》에 집약되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조선의 독자적인 문화와 풍습을 무시하고 일본 문화로 사고하게 되면 편견과 독단이 생겨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라며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존중과 배려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세운 ‘지켜야 할 54가지 항목’ 중 마지막 항목에서 ‘성신’을 내세우며 “진실한 마음을 갖고 서로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진실을 가지고 교제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_p320 〈38장 성신교린을 강조한 아메노모리 호슈〉 중에서

목차

목차
서문
1부 | 일본 안의 백제에 가다
1. 한일 관계, 길고 깊은 우애의 역사
2. 일본에 벼농사를 가르치다
3. 일본에 청동과 토기를 전하다
4. 일본 문화의 아버지, 백제인 왕인
5. 오사카를 완성한 백제 도?래인들
6. 닌토쿠 왕가의 비밀
7. 일본에서 태어난 백제 무령왕
8. 무령왕 출생지를 가다
9. 일본 왕실에 흐르는 백제인의 피
10. 백제계를 중용한 ‘교토의 신’ 간무 왕
11. 칠지도에 담긴 고대 한일 교류사
12. 한반도와 일본의 역사를 뒤바꾼 백강 전투
13. 백제 유민들의 마지막 방어선
14. ‘리틀 백제’ 신도시 히라카타
15. 백제 마을 난고손
2부 | 일본에 뿌리 내린 한반도 문화를 찾아
16. 일본 문화의 거름이 된 철, 말, 토기를 전하다
17. 고구려인의 흔적들
18. 교토 번영의 씨앗을 뿌린 신라인들의 흔적
19. 백제왕족을 모시는 일본의 신사들
20. 일본 문화를 눈부시게 발전시킨 백제의 테크노크라트
21. 또 하나의 백제 오사카
22.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불교를 전수하다
23. 한반도의 최첨단 종합 예술이 집약된 건축물
24. 한일 화공들이 합작한 호류사 금당 벽화
25. 불교가 승리한 일본에 지어진 첫 관영 사찰
26.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빼닮은 일본 국보 1호
27. 도래인의 기술로 꽃핀 일본 독자 문화의 상징
28. 민중의 구제자 교키 스님
29. 한반도의 선물을 간직한 나라 문화 타임캡슐
30. 한일 교류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일본의 사찰들
31. 해상왕 장보고와 일본 불교의 인연
32. 일본 도자 산업의 조상 이삼평
33. 일본 도자의 비밀을 간직한 조선 도공들의 넋을 기리다
34. 일본에서 틔운 조선 도자의 씨앗, 심수관 가문
3부 | 조선 통신사의 길
35. 통신사는 왜 일본으로 갔을까
36. 쓰시마 섬의 명운을 건 국서 위조 사건
37. 통신사의 숙소로 애용된 세 번째 섬
38. 성신교린을 강조한 아메노모리 호슈
39. 상차림에서 나타난 극진한 예우
40. 한일 관계의 관문 시모노세키
41. 객지에서 눈 감은 조선 통신사의 혼을 달래다
42. 통신사들이 존경했던 벳슈 소엔 스님
43. 통신사가 가는 곳마다 몰려든 사람들
44. 한일 우호를 향한 2,000킬로미터의 여정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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