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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천재화가 사임당의 예술혼과 불꽃같은 사랑!
그녀의 흔적을 찾아가다 보면 아름다운 여인을 오롯이 만나게 된다!
북평 마을 천재 소녀 신인선, 조선 여류 화가 신사임당.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 행적이 남아 있지 않다. 후대에 전하는 시 몇 편과 글씨 그리고 그림 몇 폭이 전부인데, 율곡 이이를 숭배하는 우암 송시열이 현모양처로 추앙하기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식을 잘 키운 여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임당은 현모양처라기보다 시인이며 화가인 예술가에 더 가깝다. 글씨나 그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까지 뒤흔들었다.
한 예로, 영조 때의 문신 조구명趙龜命은 사임당의 그림을 보고 하늘이 내린 천재라고 칭송했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집에 율곡 선생의 어머니가 그린 풀과 벌레의 그림 한 폭이 있었는데, 여름에 뜨락에서 햇볕을 쪼이다가 닭이 쪼는 바람에 종이가 마침내 뚫어졌다”라고 전하는 등 사임당의 예술가적인 면모를 칭송하였다. 더 나아가 사임당의 맑은 덕과 훌륭한 행실은 지금도 거론하는 자들이 규문의 최고 모범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사임당은 어떻게 해서 천재 시인이자 화가가 되었을까?
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는 어린 딸의 재주를 사랑하여 몽유도원도를 그린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인 안견의 그림을 구해주어 공부하게 했다. 다정다감한 부모의 영향으로 사임당은 일찍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집안이 부유하여 마음껏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여자가 시를 짓고 그림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사임당은 학문과 예술 활동이 제한되어 있던 시대에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겨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사임당이 세상을 떠난 지 5백 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시를 읽고 그림을 보면서 그녀의 흔적을 찾아가다가 보면 조선의 아름다운 여인을 오롯이 만날 수 있다. 비록 5백 년이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오죽헌에는 그녀의 부드러운 웃음소리, 그녀의 치맛자락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립다, 조선 여인. 사임당
출판사 리뷰
천재화가 사임당의 예술혼과 불꽃같은 사랑!
그녀의 흔적을 찾아가다 보면 아름다운 여인을 오롯이 만나게 된다!
북평 마을 천재 소녀 신인선, 조선 여류 화가 신사임당.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 행적이 남아 있지 않다. 후대에 전하는 시 몇 편과 글씨 그리고 그림 몇 폭이 전부인데, 율곡 이이를 숭배하는 우암 송시열이 현모양처로 추앙하기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식을 잘 키운 여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임당은 현모양처라기보다 시인이며 화가인 예술가에 더 가깝다. 글씨나 그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까지 뒤흔들었다.
한 예로, 영조 때의 문신 조구명趙龜命은 사임당의 그림을 보고 하늘이 내린 천재라고 칭송했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집에 율곡 선생의 어머니가 그린 풀과 벌레의 그림 한 폭이 있었는데, 여름에 뜨락에서 햇볕을 쪼이다가 닭이 쪼는 바람에 종이가 마침내 뚫어졌다”라고 전하는 등 사임당의 예술가적인 면모를 칭송하였다. 더 나아가 사임당의 맑은 덕과 훌륭한 행실은 지금도 거론하는 자들이 규문의 최고 모범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사임당은 어떻게 해서 천재 시인이자 화가가 되었을까?
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는 어린 딸의 재주를 사랑하여 몽유도원도를 그린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인 안견의 그림을 구해주어 공부하게 했다. 다정다감한 부모의 영향으로 사임당은 일찍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집안이 부유하여 마음껏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여자가 시를 짓고 그림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사임당은 학문과 예술 활동이 제한되어 있던 시대에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겨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사임당이 세상을 떠난 지 5백 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시를 읽고 그림을 보면서 그녀의 흔적을 찾아가다가 보면 조선의 아름다운 여인을 오롯이 만날 수 있다. 비록 5백 년이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오죽헌에는 그녀의 부드러운 웃음소리, 그녀의 치맛자락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립다, 조선 여인. 사임당
북평 마을 천재 소녀 신인선, 조선 여류 화가 신사임당
시와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여인‘사임당’
조선시대 여인 사임당의 예술혼과 사랑을 재해석하다
그리운 조선 여인, 사임당. 소설 속 5백 년 전으로 추억 여행을 했다. 강릉 오죽헌과 대관령, 화석정, 자운서원과 서원과 안에 있는 사임당의 묘소를 참배한 일이 있다. 그곳에 시와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한 여인이 있었다.
사임당의 일생은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마흔여덟 살을 일기로 생을 마쳤다. 그녀는 평생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던 강릉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시가의 선영 두운리 자운산 기슭에 묻혔다. 훗날 이이는 어머니 무덤 아래 자운서월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다.
사임당이 죽은 뒤 이이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가 되면서 그의 제자들이나 후인들이 이이를 떠받들기 위해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사임당을 숭배했다.
그러나 사임당은 그들의 숭배가 아니더라도 학문과 예술적 경지에서 조선시대 어떤 여인 못지않게 뛰어났다. 그림은 당대에 이미 국중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서체도 독특한 필체를 개발했을 정도로 우아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불과 두 편밖에 남지 않은 그녀의 시도 탁월하다.
사임당의 4남 3녀 중 이름을 남긴 사람으로는 이이, 금기서화에 뛰어나고 시인으로 명성이 높은 딸 매창, 그림으로 유명한 아들 우 등이 있다. 사임당의 흔적은 강릉 오죽헌, 파주 율곡리 등에 오롯이 남아 있다. 특히 오죽헌에는 조선 여인의 아름다운 향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당대를 뒤흔들고 현모양처로 추앙받는 사임당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사랑을 그리워하고 그녀의 눈물과 한숨이 가뭄하게 떠오른다.
한 남자를 사랑하고, 한 남자를 그리워하고, 한 남자 때문에 눈물짓던 조선 여인 사임당.
그리고 신사임당은 율곡이이를 포함 4남3녀의 자제들에게 항상 온화하면서도 엄숙한 태도로, 부모 섬기는 도리, 형제간에 우애하는 도리, 일을 부지런히 하는 도리,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도리, 친구 사귀는 도리, 남편 섬기는 도리, 시부모 섬기는 도리, 자식 기르는 도리, 손님 대접하는 도리, 재물을 아껴쓰는 도리 등 주의 깊게 가르쳤다.
그뿐 아니라 자녀 교육의 목표를 몸가짐에 두면서도 장차 나라에 충성하고 큰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에 힘썼다. 이처럼 신사임당의 자녀교육은 이론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이를 그 자녀들이 실천에 옮기기를 아주 돈독(敦篤)하게 했다.
그리하여 신사임당의 자녀들이 우리 역사에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道)를 완수한 사람이 된 것이고 율곡이이의 사상이 남아있는 것이다.
현모양처이자 자유로운 예술가의 영혼을 갖고 있는 조선 여인 사임당에게 이 책을 바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