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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원제 : 沈默

엔도 슈사쿠 저 | 공문혜 역 | 홍성사 | 200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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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6506391 / 312쪽 / 437g /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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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1587년, 일본의 태수 히데요시는 가톨릭을 박해하여, 수많은 가톨릭 사제들과 신도들이 고문받고 박해받고, 처형되었다. 1614년 도쿠가와 장군도 히데요시와 마찬가지로 가톨릭을 박해하여, 일본에서는 가톨릭의 선교가 어렵게 되어 있었다. 이 소설은,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순교자들의 이야기와 그를 지켜보는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의 종교적 고뇌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하나님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시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는 작품이다.

출판사 리뷰

일본이 낳은 최고 현대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대표 작품.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상황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재미를 곁들여 진지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서술하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얻고 있던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신부 페레이라의 선교와 곧 이은 배교(背敎) 소식, 그 배교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잠복한 제자 신부 로드리고가 겪는 고난과 갈등.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죽어 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침묵하고만 계신 하나님! 신학적으로 해결하기 난해한 문제―“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를, 신앙을 부인해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내면 묘사를 통해 조용하지만 가슴 뜨겁게 그리고 있다. 특별히 이번에 펴내는《침묵》개정증보판은 국내 유일의 정식 저작권 계약본으로서, 한국어판 출간 20주년을 기념하여 양장본과 보급판을 동시에 내 놓았다. 양장본과 보급판의 내용은 동일하며, 가볍게 들고 다니며 읽고자 하는 독자는 보급판을, 선물이나 소장을 목적으로 하는 독자는 양장본을 선택하면 된다. 또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저자 후기와 해설을 수록, 우리말 표기법에 따라 인지명도 통일하였다.

저자 소개

(遠藤周作, 1923~1996.)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가톨릭 신자로서 일생 동안 신(神)의 문제를 탐구한 작가이다. 토오꾜오에서 태어나 세살 때 아버지의 전근으로 중국 다롄으로 이주해 열살 때까지 살다가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귀국했다. 1943년 케이오오기주꾸 대학 문학부 예과와 불문학과에서 수학하면서 가톨릭 문학에 관심을 가진다. 1947년 평론 《신들과 신과》 《가톨릭 작가의 문제》 등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했고, 1950년에 전후 최초의 일본 유학생으로 리옹 대학에서 프랑스 현대 가톨릭 문학을 연구한다. 유학 도중 폐결핵이 악화되어 1953년에 귀국하고 이듬해에 단편소설 《아덴까지》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 1955년 《백색인》으로 아꾸따가와상을 받았다. 1957년에는 큐우슈우 대학 생체해부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바다와 독약》으로 마이니찌 출판문화상, 신쪼오샤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침묵》 《깊은 강》 등이 있으며, 타니자끼 준이찌로오 상, 요리우리 문학상 등 일본 내 문학상을 다수 수상했을 뿐 아니라, 교황청 기사 훈장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도 높이 평가받았다. 1977년 《그리스도교 문학의 세계》(전22권)를 편집하기도 했다. 1996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역자 소개

  • 역자 : 공문혜

 

머리말

 

책 속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두 종류가 있습니다. 즉 강한 자와 약한 자, 성자와 평범한 인간, 영웅과 용렬한 자. 그래서 강한 자는 이와 같이 박해받는 시대에도 신앙 때문에 불에 태워지고 바다에 던져져도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약자는 이 기치지로처럼 산속을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어느 쪽 인간이냐? 만약 사제라는 자존심이나 의무감이 없다면 저 또한 기치지로와 똑같이 성화를 밟았을지도 모릅니다. -122~123쪽


“저는 신부님을 전부터 쭉 속여 왔습니다. 들어 주시는 겁니까? 신부님이 저를 경멸하셨다면…… 저 역시, 신부님도 동료 신도들도 미워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성화도 밟았습니다. 네, 밟고말고요. 모기치나 이치소우는 강하지요. 나는 그렇게 강하지 못한 걸 어쩝니까?”
파수꾼이 견디다 못해 몽둥이를 쥔 채 밖으로 나오자 기치지로는 도망가면서 계속 소리쳤다.
“그렇지만 제게도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밟은 자에게도 밟은 자로서의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제가 즐거워서 밟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밟은 이 발은 아픕니다, 아파요. 나를 약한 자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 강한 자 흉내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건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건 억지이고말고요.” -177쪽


그는 인간들을 위해 죽으려고 이 나라에 왔던 것인데, 사실은 일본인 신도들이 자기 때문에 잇달아 죽어 갔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행위란 오늘까지 교리에서 배워 온 것처럼, 이것이 옳고 이것이 나쁘고 이것이 선하고 이것이 악하다는 식으로 정확히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8쪽


신부는 발을 들었다. 발에 저린 듯한 무거운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형식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것, 가장 맑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 인간의 이상과 꿈이 담긴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그때, 밟아도 좋다고, 동판에 새겨진 그분은 신부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닭이 멀리서 울었다. -267쪽


그 성화 위에 나도 발을 놓았다. 그때 이 발도 움푹 들어간 그분의 얼굴 위에 있었다. 내가 수없이 생각한 얼굴 위에. 산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옥사에서 언제나 생각해 내며 따뜻한 위로를 받았던 그분의 얼굴 위에, 인간이 생존해 있는 한 선과 아름다움 그 자체인 얼굴 위에. 그리고 평생을 사랑만을 베풀려고 했던 그분의 얼굴 위에. 그 얼굴은 지금 성화판의 나무판자 속에서 닳고 패어 버린, 그리고 슬픈 듯한 눈을 하고 이쪽을 보고 있다. “밟아도 좋다”라고 슬픈 듯한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오늘까지 내 얼굴을 밟았던 인간들과 똑같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 -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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