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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2934794 / 312쪽 153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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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1. 길보른 가족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E. A. 길보른은 동양선교회의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1907년 카우만부부, 김상준, 정빈과 함께 한국성결교회를 시작했다. 그의 아들 버드 길보른은 1920년대 동양선교회 한국 책임자였으며, 한국을 떠나 중국에 가서 사역을 할 때에도 동양선교회 부총리로서 한국성결교회를 실질적으로 감독했다. 버드 길보른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는 에드윈 길보른으로 서울신대 2대 학장을 지냈고, 그 다음에 쌍둥이인 어니 길보른은 오랫동안 일본선교사로 일했고, 엘마 길보른은 에드윈과 함께 한국교회를 위... 1. 길보른 가족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E. A. 길보른은 동양선교회의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1907년 카우만부부, 김상준, 정빈과 함께 한국성결교회를 시작했다. 그의 아들 버드 길보른은 1920년대 동양선교회 한국 책임자였으며, 한국을 떠나 중국에 가서 사역을 할 때에도 동양선교회 부총리로서 한국성결교회를 실질적으로 감독했다. 버드 길보른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는 에드윈 길보른으로 서울신대 2대 학장을 지냈고, 그 다음에 쌍둥이인 어니 길보른은 오랫동안 일본선교사로 일했고, 엘마 길보른은 에드윈과 함께 한국교회를 위해서 일했다. 논문들은 바로 엘마 길보른과3대에 걸친 그의 자손들이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의 선교활동과 복음의 역사를 다룬 연구들이다. 2. 엘마 길보른은 한국성결교회 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와 한국사회에도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해방 후 한국성결교회가 비약적인 발전을 했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엘마 길보른이 미국의 구호단체와 협의하여 한국성결교회를 구호물자 배분 기관으로 선정한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가 어려웠을 때 엘마 길보른은 동양선교회의 전통적인 구령중심으로 선교에서 벗어나서 “배고픈 위를 채워 줌으로서 심령의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선교방식을 채용하였다. 이것이 많은 문제를 가져오기도 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성결교회만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사회는 엘마 길보른의 사역에 많은 빚을 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것을 인정하여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훈장인 대통령훈장을 수여하였다. 3. 본 논문은 엘마 길보른의 성장 과정과 한국전쟁 이후 한국교회의 재건에 관한 사역을 살펴보려고 한다. 엘마 길보른의 이같은 사역을 살펴보기 위하여 우선 그의 성장 배경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엘마 길보른은 동양선교회의 창립자를 이은 2세대 선교사이며, 따라서 그의 선교사업은 그의 성장 배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가 한국전쟁과 이어지는 한국사회의 재건과정에서 그의 활동을 추적해 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많은 한국교회사가들은 초기 선교사들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해왔다. 하지만 해방 후 더욱 중요하게 한국전쟁 이후에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부족하다. 본 논문은 바로 이런 과정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유석성(서울신학대 총장)
길보른 연구 논총을 출간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길보른 가문은 우리 성결교회 및 서울 신학대학교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우만과 함께 동양선교회를 출범시킨 어니스트 A. 길보른은 1907년부터 빈번하게 방한하여 한국사역을 직접 지휘하였고, 1921년부터는 한국에 거주하며 감독 겸 성서학원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가 1924년 카우만의 뒤를 이어 제2대 동양선교회 총재로 일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그의 아들인 이 엘 길보른이 한국사역을 맡아 헌신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어니스트의 손자인 에드윈 길보른이 서울신대 학장으로 우리 대학의 발전을 위해 공헌하였습니다. 또 다른 손자인, 엘마 길보른은 한국성결교회 사회복지 사역의 개척자요 에큐메니칼 정신을 실현한 협력사역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평가될 만큼 각종 사회사업으로 한국성결교회를 도왔습니다. 이처럼 길보른 가문은 삼대에 걸쳐 한국성결교회 및 서울신학대학교와 밀접한 연관을 맺어왔고 두 기관의 발전에 공헌하였습니다. 한국교회가 외국의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의 빚을 지고 있지만 길보른 가문처럼 삼대에 걸쳐 다양한 방면에서 연관을 맺고 도움을 준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니스트 A. 길보른에 대한 관심이 제기된 것은 1990년, 「성결교회역사와 문학연구회」가 펴낸 『성결교회인물전』(제1집)에 「한국을 사랑한 동양선교회의 창립 기수, 어네스트 A. 길보른」이라는 글이 시초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주로 길보른의 자서전인 『일본선교이야기』와 동양선교회 회장 어니 부부의 『동양선교회 창립자들의 이야기』를 참고하여, “성장과 결혼, 회심과 증인의 삶, 선교사역으로의 부르심과 헌신”을 중심으로 어니스트 A. 길보른의 생애와 사역을 정리하였습니다.
금번에 펴낸 『길보른 연구 논총』은 어니스트 길보른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과 손자 등 삼대에 걸친 한국성결교회와 서울신학대학교와 관련된 길보른 가의 사역과 활동을 다양한 세부 전공의 시각에서 다룬 학술 연구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하겠습니다. 길보른 가(家)의 공헌과 영향 그리고 공과를 학문적으로 궁구하는 노력은 길보른 가문에 대한 우리의 예의이자 학자들의 보람과 의무이기도 합니다.
강의와 연구로 분주한 중에도 본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해 귀한 옥고를 제출해 주신 박명수, 박문수, 박창훈, 이용호, 정인교, 허명섭, 황덕형, 최인식 박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본 연구를 기점으로 해서 더 다양하고 풍부한 후속 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합니다.
목차
박명수, 엘마 길보른과 전후 한국 교회의 재건
박문수, 어니스트 A. 길보른의 생애와 선교사역
박창훈, 에드윈 길보른(Edwin Kilbourne, 1917-2015)과 해방 후 한국 성결교회의 재건: 서울신학대학교를 중심으로
이용호, E. A. 길보른의 삶의 자취를 따라 본 성서관
정인교, 一貫(일관)과 一致(일치): 선교사 E. A. 길보른의 신학과 신앙, 사역과 삶에 대한 소고
허명섭, 길보른 2세의 생애와 동양 사역
최인식, 어니스트 A. 길보른의 성령세례론: 「활천」의 글을 중심으로
황덕형, “길보른의 성결론: 초기 한국 성결 교회의 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