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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회고 외교사료로 보는 한일관계 70년

이동준 저 | 삼인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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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4361184 / 292쪽 153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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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대한민국은 1948년 탄생 이래 단 한 차례도 일본에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도, 그 불법성을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해방’은 어디까지나 국내용 구호에 불과했다. 오히려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실질적으로 ‘해방’의 논리를 부인함으로써 미일이 주도하는 ‘전후’ 체제에 편승해왔다. 시라이의 ‘영속 패전’ 개념을 원용한다면 한국은 해방은커녕 ‘영속 식민’(永續植民)의 모순 구조 속에 스스로를 가둬왔다.” ― 본문에서 우리 안의 식민성을 들여다보다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 “대한민국은 1948년 탄생 이래 단 한 차례도 일본에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도, 그 불법성을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해방’은 어디까지나 국내용 구호에 불과했다. 오히려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실질적으로 ‘해방’의 논리를 부인함으로써 미일이 주도하는 ‘전후’ 체제에 편승해왔다. 시라이의 ‘영속 패전’ 개념을 원용한다면 한국은 해방은커녕 ‘영속 식민’(永續植民)의 모순 구조 속에 스스로를 가둬왔다.” ― 본문에서 우리 안의 식민성을 들여다보다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라 지난달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두고 연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이로써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며,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해결되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과거사를 지우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왔다. 1965년의 이른바 ‘청구권 협정’에서도 한일 정부는 양국 및 양국 국민 간의 모든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향후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반성이 필요한 국가는 일본만이 아니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일본에 있지만, 이런 일본을 묵인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한국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에 도서출판 삼인에서 나온 책『불편한 회고: 외교사료로 보는 한일관계 70년』은 일본만큼이나 안이한 한국 측의 역사 인식을 질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전후 한일 양국은 미국과 더불어 일제 식민지배라는 과거사를 봉인하고 한일관계 자체를 왜곡하는 데 사실상 협력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공범’(共犯) 관계였다. 이 책에서는 일본을 비판하는 동시에, 우리 안의 식민성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이동준 교수가 해방 70년을 맞은 2015년 1월부터 8월까지『한국일보』에「광복 70년·한일수교 50년의 재인식」이라는 제목으로 27회에 걸쳐 연재한 기사를 다시 엮은 것이다. 보다 객관적인 접근을 위해 양국의 외교사료 등 공문서에 입각해 해방 후 한일관계 70년을 조망했는데, 책에는 기사에서는 거의 밝히지 못한 출처까지 제시했다. 특히 그는 무려 1200쪽에 달하는 일본판 ‘한일회담 백서’『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도서출판 삼인, 2015년)을 편역했을 정도로, 엄청난 분량의 사료를 다루는 데 능통하다. 이 책에도 여기에 실린 외교문서를 적극 활용했다. 한국은 왜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는가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해방은 온전하지 않았다. 지금껏 일본은 1910년 한일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한 적이 없고,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또한 거부해왔다. 이상한 일은 1951년 이후의 대일 협상에서 한국 정부마저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을 일본에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는 사실이다. 왜 한국 정부는 일제 식민지배가 ‘처음부터’ 무효라고 주장하면서도 무효에 따른 피해 보상은 요구하지 않은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 패전 후 도래한 냉전의 영향으로 미국이 일본에 대해 배상보다는 전후 복구를 우선시한 점을 제일 먼저 지적한다. 미국은 냉전의 논리와 경제의 논리, 그리고 무엇보다 자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입각해 전후 한일관계를 재편성하고자 했다. 여기에 식민지배에서 연유하는 과거사 문제가 끼어들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은 한국의 독립이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종주국’ 일본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라는 시각을 견지했다. ‘분리’된 한국에 대해 ‘전후’ 일본이 배상하거나 사과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한국의 권력자들 또한 국민 개개인에 대한 피해 보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국 측은 징용노동자의 미수금 문제를 대신 책임지겠다며 일본 측에 ‘목돈’을 요구했다. 그 대가가 바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로 상징되는 이른바 ‘청구권 자금’이다. 결국 한일 청구권 협상은 구체적인 내용은 무시한 총액 논쟁과 정치 담판으로 귀결되고 만다. ‘청구권’을 두고도 한국 측은 그 돈이 “일본이 식민지배의 책임을 인정한다의 의미에서 준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 일본 측은 “한국의 독립 축하와 경제협력의 차원에서” 준 돈이라고 다르게 말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일관계의 ‘인계철선’은 한국이 끊어야 1990년대 이후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과는 결코 한반도 강점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한일병합은 정당했으나 그 후의 식민통치에 여러 문제가 드러나 미안하다는 수준의 언급이다. 그러면 한국 정부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왔는가.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앞에서도 아무런 반박조차 하지 못한다. 1965년 기본관계조약에 “이미 무효”라는 문구가 들어갔으니 병합조약과 식민지배가 원천적으로 무효화됐다는, 그야말로 한국만의 해석을 되풀이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해석 차이가 존재하는 한 ‘위안부’ 문제건, 강제징용 문제건 한일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여러 현안은 결코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 ‘비정상의 늪’에 빠진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일본이 자발적으로 병합조약과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한일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인계철선’은 결국 한국 스스로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역사 왜곡을 운운하며 ‘반성하지 않는’ 일본 탓만 하기 전에 한국 정부 스스로 과거를 부정해온 ‘궁색한’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불편한 회고: 외교사료로 보는 한일관계 70년』은 우리 안의 식민성을 들여다보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호쿠대 대학원법학연구과에서 한반도 문제를 중심으
로 한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전공했다(법학 박사). 이에 앞서 10여 년간『한국일보』 기자로 일했다. 현재 일본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한반도 정치외교 담당). 주요 저서로『未完の平和: 米中和解と朝鮮問題の變容, 1969-1975年』(2010년),『미완의 해방: 전후 한일관계의 기원과 전개』(2013년, 공편저),『歷史としての日韓國交正常化: 東アジア冷戰編』(2011년, 공저),『戰後日本の賠償問題と東アジア地域再編: 請求權と歷史認識問題の起源』(2013년, 공저),『日韓國交正常化問題資料』(2010년~, 공편저),『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2015년, 편역)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애초부터 잘못 꿰어진 한일관계는 ‘비정상의 늪’에 빠진 지 오래다. 한일 양국 정부는 한목소리로 ‘미래 지향’을 합창하지만, 한국 측은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과거 직시’(과거사를 잊지 않고 이를 미화하지 않는다는 취지)를 강조하는 반면, 일본 측은 한일회담에서 완결된 문제인 만큼 더 이상 과거사를 거론하지 말자며 딴소리를 한다. 그 결과는 매우 역설적이다. 한국은 과거를 잊고 앞만 바라보자는 일본에 자극되어 더욱더 과거를 잊지 못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과거 한일 양국의 권력자들이 봉인해놓았던 과거사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과거가 현재진행형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제 한일관계는 해방과 패전이라는 엇갈린 길목에 섰던 70년 전의 원점(原點)으로 다시 돌아왔다. (6쪽)

전후 한일 양국은 미국과 더불어 일제 식민지배라는 과거사를 봉인하고 한일관계 자체를 왜곡하는 데 사실상 협력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공범’ 관계였다. 어느 학자는 패전 이후에도 아시아에 대한 침략의 역사를 끊임없이 부정해온 일본을 ‘부인(否認) 선진국’이라 불렀는데, 한국 또한 오랫동안 이런 일본에 동조해온 ‘부인 공화국’이었다. ‘반성하지 않은’ 일본에 대한 묵인은 ‘반성하지 않은’ 한국과 같은 말인 셈이다. 당연히 일본에 ‘반성하라’고 목소리를 높여야겠지만, 이와 동시에 여전히 ‘우리 안의 식민성’에 갇혀 있는 한국이 보다 치열하게 반성해야 하는 이유다. (7쪽)

한국 정부 스스로 일제의 불법적인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 요구를 접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 패전 후 도래한 냉전의 영향으로 미국이 일본에 대해 배상보다는 전후 복구를 우선시한 점을 제일 먼저 지적한다. 실제로 대일 승전국이면서도 각각 식민지 보유국이기도 했던 미국 등 연합국은 일제의 과거 청산에 대해선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법학자로 대일 협상의 전면에서 활약한 유진오(兪鎭午)는 “해방국은 노예적 지위를 뚫고 일어선 만큼 승전국에 우선한다”면서 ‘해방의 논리’를 전개했지만, 미국은 한국에 전승국은커녕 ‘해방국’ 지위도 부여하지 않았다. 스스로 제국주의적 속성을 짙게 간직한 식민지 종주국들에 일제의 유산 청산을 기대한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23쪽)

결국 한일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인계철선’은 한국 스스로 끊어야 한다. 일본이 자발적으로 병합조약과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제로(0)에 가깝다. 이를 위해선 한국 정부는 먼저 1965년 이후 지금껏 유지해온 ‘이미 무효’에 대한 어설픈 해석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를 외교 문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물론 한국 정부로선 고통스러운 자기반성이자 일본과의 역사전쟁을 불사하는 모험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법부(특히 대법원)의 명령에 의해 마지못해 ‘인계철선’을 끊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역사 왜곡을 운운하며 ‘반성하지 않는’ 일본 탓만 하기 전에 한국 정부 스스로 과거를 부정해온 ‘궁색한’ 과거사를 직시하지 않는 한 한일관계의 진정한 ‘정상화’는 요원할 것이다. (272쪽)

해방을 짓눌러온 일본의 ‘전후’ 체제와 이에 기초한 한일관계의 앞날은 아슬아슬하다. 왜냐하면 어떻게든 ‘전후’에 남고 싶어 하는 일본의 인식이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특히 한국에는 거의 안하무인일 정도로 오만하기 때문이다. 아베 담화에서도 드러났듯이 일본의 ‘전후’ 세력은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해 기존의 ‘합법부당론’ 보다도 후퇴한 ‘합법정당론’을 노골적으로 표방하기 시작했다. 아베가 한국인 징용자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강제성’을 부인하는 것도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을 뿐 아니라 정당했다는 왜곡된 역사관을 드러낸 것이다. 이 같은 일본 ‘전후’ 세력의 인식은 어쨌든 끊임없이 해방을 지향해온 한국의 민족주의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289~290쪽)

목차

목차
들어가며
01. 미완의 해방
02. 지울 수 없는 일본의 전쟁: 국가 부채로 기록된 414억 엔의 정체
03.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
04. 한일 과거사 인식의 분기점: 병합조약 ‘이미’ 무효?
05. 식민지주의의 공범: 미일의 뿌리 깊은 ‘짬짜미’
06. ‘망언’의 정치경제학: “일본도 보상 요구권 있다”는 발언에 숨겨진 노림수
07. 농락당해온 개인청구권: 징용 미수금의 향방
08. 이승만과 한일회담: 실리 못 챙긴 ‘갈팡질팡 반일’
09. 조선은행 재일 자산의 행방: 중앙은행의 발권 준비조차 챙기지 못한 한국
10. 해방 후 첫 한일 정상회담: 박정희, “일본의 지도를 받고 싶다”
11. 청구권 ‘숫자놀음’: 청구권자에서 원조 수혜국으로 전락한 한국
12. 김종필-오히라 담판: 3+2+(1+α)\u003d6? … 묻지마 과거사
13. 수상한 ‘훈장 파티’: 일본 내 만주 인맥과의 ‘흑막 정치’
14. 친한파로 포장된 전범들: 박정희와 기시의 ‘검은 유착’
15. 청구권 자금의 기원: 미국의 대일 원조와 일본의 한국 원조
16. “미해결의 해결”: 독도가 분쟁지역이 된 경위
17. 한일 해양레짐 50년: 평화선, 전관수역, 중간수역 …
18. ‘반환’되지 못한 문화재: 청구권 급물살에 생색내기용 장식물로 전락
19. 다시 돌아오지 못한 북송 ‘귀국선’: “인도주의를 빙자한 비인도주의”
20. ‘한국 밀약’과 한일 안보관계: “미국을 매개로 한 유사 동맹”
21. 한일기본조약과 ‘유일합법성’ 문제: “북한은 백지로 남았다”
22.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한강의 기적’: 정경유착의 뒤안길
23. 전두환 정권과 한일 ‘안보경협’ 40억 달러: “안보 분담금 요구가 읍소로…”
24.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의 의미: “숲을 모두 불살라라”
25. 한일관계의 ‘인계철선’: 식민지배 합법/불법 논쟁
26. 일본이 공문서에 먹칠을 한 이유: “불리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
27. ‘전후’를 딛고 ‘해방’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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