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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60180 / 392쪽 154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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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영국 근대의 시작에 튜더 왕조가 있었다!
근대 초기 영국의 정치·경제·사회를 다각적으로 조명한 개설서
이 책 근대 초기의 영국은 그동안 ≪서양사론≫과 ≪영국연구≫에 발표되었던 논문들을 수정·보완해 엮은 것이다. 제1부 ‘통치의 기술’에서는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왕권과 의회 운영을 주로 다루었다. 조세권, 관료제도, 상비군 등 통치에 필요한 물리적 수단을 가지지 못했던 근대 초기의 군주들이 상징적 권력을 창출해 신민들의 내부적 복종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분석했으며, 의회를 어떻게 자신들의 통치 목적에 맞게 운영했는지에 관해 기술했다. 이와는 별도로 튜더 의회의 독자적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헨리 8세 시대의 명재상이었던 토머스 울지, 토머스 모어, 그리고 토머스 크롬웰에 대한 두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와 <천 일의 앤Anne Of the Thousand Days>의 역사 인식을 살펴보고 영화와 역사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제2부 ‘경제와 사회’에서는 근대적인 복지 정책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는 ‘튜더 빈민법’이 제정된 배경을 경제적·사회적 조건에 따라 위기 입법과 정상 입법으로 분리해 두 범주의 입법이 내용 면에서 서로 어떠한 차이가 있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보다 큰 흐름 속에서 빈민법의 역사적 의미를 찾고자 시도했다. 또한 튜더 사회의 지식인들이 빈곤과 부의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자利子는 근대 초기의 영국이 물질적 기반을 확립하고 자본주의적 체제를 수용하기 위해서 해결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였는데, 1571년 의회는 이자를 부정하는 절대적 도덕론과 경제적 효용론 사이에서 절묘한 타협안을 이끌어냄으로써 실질적으로 이자를 허용했다. 반反악덕대출법의 입법 과정을 분석한 부분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당시 영국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영국에서 어떠한 차별적 대우를 받았는지, 그 차별이 지역적으로는 얼마만큼의 편차가 있었는지를 분석했는데, 다문화 시대를 맞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제3부 ‘연구 동향’에서는 20세기 튜더사 연구에서 찬란한 금자탑을 세운 제프리 엘턴Geoffrey Elton의 업적을 중심으로, 그가 이루어낸 성과와 학계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의 유산을 살펴보았다. 그중 의회사에 대한 부분은 따로 떼어내어 어니스트 닐John Ernest Neale에 대한 엘턴과 그의 제자들에 의한 수정주의적 도전, 그리고 수정주의에 대한 재수정 요구 등을 추려서 연구 동향을 소개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영국 근대의 시작에 튜더 왕조가 있었다! 근대 초기 영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를 다각적으로 조명한 개설서 이 책 『근대 초기의 영국』은 그동안 ≪서양사론≫과 ≪영국연구≫에 발표되었던 논문들을 수정ㆍ보완해 엮은 것이다. 제1부 ‘통치의 기술’에서는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왕권과 의회 운영을 주로 다루었다. 조세권, 관료제도, 상비군 등 통치에 필요한 물리적 수단을 가지지 못했던 근대 초기의 군주들이 상징적 권력을 창출해 신민들의 내부적 복종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분석했으며, 의회를 어떻게 자신들의 통치 목적에 맞게 운영했는지... 영국 근대의 시작에 튜더 왕조가 있었다! 근대 초기 영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를 다각적으로 조명한 개설서 이 책 『근대 초기의 영국』은 그동안 ≪서양사론≫과 ≪영국연구≫에 발표되었던 논문들을 수정ㆍ보완해 엮은 것이다. 제1부 ‘통치의 기술’에서는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왕권과 의회 운영을 주로 다루었다. 조세권, 관료제도, 상비군 등 통치에 필요한 물리적 수단을 가지지 못했던 근대 초기의 군주들이 상징적 권력을 창출해 신민들의 내부적 복종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분석했으며, 의회를 어떻게 자신들의 통치 목적에 맞게 운영했는지에 관해 기술했다. 이와는 별도로 튜더 의회의 독자적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헨리 8세 시대의 명재상이었던 토머스 울지, 토머스 모어, 그리고 토머스 크롬웰에 대한 두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와 〈천 일의 앤Anne Of the Thousand Days〉의 역사 인식을 살펴보고 영화와 역사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제2부 ‘경제와 사회’에서는 근대적인 복지 정책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는 ‘튜더 빈민법’이 제정된 배경을 경제적ㆍ사회적 조건에 따라 위기 입법과 정상 입법으로 분리해 두 범주의 입법이 내용 면에서 서로 어떠한 차이가 있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보다 큰 흐름 속에서 빈민법의 역사적 의미를 찾고자 시도했다. 또한 튜더 사회의 지식인들이 빈곤과 부의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자利子는 근대 초기의 영국이 물질적 기반을 확립하고 자본주의적 체제를 수용하기 위해서 해결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였는데, 1571년 의회는 이자를 부정하는 절대적 도덕론과 경제적 효용론 사이에서 절묘한 타협안을 이끌어냄으로써 실질적으로 이자를 허용했다. 반反악덕대출법의 입법 과정을 분석한 부분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당시 영국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영국에서 어떠한 차별적 대우를 받았는지, 그 차별이 지역적으로는 얼마만큼의 편차가 있었는지를 분석했는데, 다문화 시대를 맞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제3부 ‘연구 동향’에서는 20세기 튜더사 연구에서 찬란한 금자탑을 세운 제프리 엘턴Geoffrey Elton의 업적을 중심으로, 그가 이루어낸 성과와 학계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의 유산을 살펴보았다. 그중 의회사에 대한 부분은 따로 떼어내어 어니스트 닐John Ernest Neale에 대한 엘턴과 그의 제자들에 의한 수정주의적 도전, 그리고 수정주의에 대한 재수정 요구 등을 추려서 연구 동향을 소개했다. ∥출판사 서평 군주의 초상화로 16세기 영국을 들여다보다 서양사는 편의상 고대, 중세, 근대로 삼분한다. 언제 근대가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르네상스를, 어떤 사람들은 프랑스혁명을 그 기점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영국사에서는 대체로 튜더 왕조(1485~1603)를 근대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니까 근대 문명modern civilization은 어림잡아 지난 400~500년간 서양이 이루어온 문명을 말하며, 지성사적 측면에서는 합리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의회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국민국가가 그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초기early modern period는 근대사의 전반부로서 근대 문명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단계에 해당된다. 영국사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튜더와 스튜어트Stuart 시대, 즉 16세기와 17세기를 지칭한다. 근대 초기는 영국사를 전공하는 학자들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매달려 있는 시기이며, 한국에서의 영국사 연구도 이 시기에 관해서 가장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근대의 모습이 이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국정과 왕실 살림이 분리된 근대적 정부가 출현하고, 의회가 국정 운영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게 되며, 자본 집약적인 농업을 중심으로 자본 축적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이 바로 이때이다. 또한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과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 주도하는 과학혁명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아직 이 시기 영국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서적이 많지 않다. 이 책은 근대 초기 영국사에 대해 개설적인 지식을 원하는 관련 전공자에게는 밑거름이 되고, 영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에게는 훌륭한 지식 교양서가 될 것이다. 특히 이 책의 제2장 ‘엘리자베스 초상화의 비밀’은 엘리자베스 1세와 부왕인 헨리 8세의 초상화에 얽힌 이야기들을 매우 흥미롭게 풀어낸다. 초상화가 단순히 군주를 그린 것이 아니라 복종의 내부화를 위해 상징적 권력을 창출해가는 과정이었음을 밝히고, 재위 기간이 45년이나 되는 엘리자베스 1세가 초상화에서는 늘 30대였다거나, 엘리자베스의 초상을 독점적으로 제작할 화가를 국왕이 직접 임명하고 그가 그린 초상화를 표준으로 정하여 본뜨게 하는 방법으로 정부가 초상화의 생산과 유통을 직접 관리하는 등의 내용이 엘리자베스 초상화 그림과 함께 담겨 있다. 2장의 자세한 내용은 도서출판 한울 블로그(http://blog.naver.com/hanulnew/220408912466)에 연재 중이다. 책속으로 추가 근대 초기의 영국: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국가 만들기 크롬웰이 1535년 6월 3일 모어를 심문한 기록을 바탕으로 둘 사이의 대화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크롬웰:국왕께서는 자신이 영국 교회의 수장인지 아닌지 당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것을 명령하셨다. 모어:……. (크롬웰 재차 묻는다.) 모어:그런 물음은 검의 양날 같은 것이다. 크롬웰:무슨 뜻인가? 모어:만약 어떤 사람이 국왕이 교회의 수장임을 마음속으로는 믿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국왕의 수장권을 인정한다면 그의 영혼을 속이는 것이 되고, 그렇다고 양심에 따라 국왕의 수장권을 인정하는 선서를 거부하면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크롬웰:대법관 시절에 당신도 이단 혐의자들을 심문할 때 그들에게 교황이 교회의 수장인지 아닌지 의견을 밝히라고 강요하지 않았나? 그들도 지금의 당신과 마찬가지 상황에 있었다. 그렇다고 답변하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이 되고, 아니라고 답변하면 화형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나? 모어:두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내가 이단 혐의자들을 심문할 때에는 모든 기독교 국가에서 교황이 교회의 우두머리임을 법률로 인정하고 있었지만, 지금 영국 국왕이 영국 교회의 수장이라는 법률은 오직 영국 한 나라에만 인정되고 있을 뿐, 다른 나라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161쪽)
엘리자베스 초상화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중세 말기부터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온 왕권의 이상을 형상화한다면, 초상화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엘리자베스 정부의 당면 과제인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여성 군주로서의 약점을 극복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52쪽)
이자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중세적 개념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토머스 아퀴나스는 로마법의 개념을 차용했다. 로마법의 개념에 따르면 사물은 사용 후 원래의 상태대로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것들non-fungible goods이 있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소비·마모·수축되어 원상태로 돌려줄 수 없는 것들fungible goods이 있는데 집이나 토지 등은 전자에 속하고 음식이나 돈은 후자의 범주에 속했다. 아퀴나스는 전자의 경우에는 사용료rent를 받을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원래의 상태대로 돌려줄 수 없으므로 빌려주고 받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남에게 돈을 준다는 것은 곧 그것의 사용권(소비권)을 포함하는 소유권 자체를 넘기는 행위이며 따라서 금전 대출은 곧 화폐의 판매와 같다. 그러므로 이 경우 원금의 상환으로 쌍방 간의 거래는 종결되며 그 이외의 것, 즉 이자의 요구는 하나의 물건에 대해 두 번의 지불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아퀴나스는 이를 사기와 절도에 해당되는 범죄로 규정했다. (265쪽)
엘턴은 튜더 의회가 중앙(국왕, 중앙정부)과 지방(지방 귀족, 젠트리, 법률가, 시읍borough 정부, 지방 상인 등)의 기대와 야망이 충족되고 이해가 조정되는 ‘접점point of contact’이었으며, 이는 통치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했다고 주장했다. 종교개혁과 가격혁명 등이 야기한 여러 가지로 힘든 시대 상황 속에서 전문적인 직업 관료도, 정책의 집행을 물리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경찰이나 상비군도 없었던 튜더 정부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통치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의회의 접점으로서의 기능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132쪽)
토머스 울지(1472~1530), 토머스 모어(1477~1535), 토머스 크롬웰(1485?~ 1540) 세 사람은 영국 역사의 격동기라 불리는 16세기 전반부에 헨리 8세 치하에서 재상을 지낸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하층 계급 출신이었다. 울지의 할아버지는 평범한 농부였고, 아버지는 가업을 이어받은 중농이었다가 1466년 입스위치Ipswich로 옮겨 푸줏간을 열었다. 울지보다 5년 정도 늦게 태어난 모어의 할아버지는 런던의 링컨 법학원Lincoln’s Inn 구내식당의 와인 관리인butler이었고 아버지 존 모어는 이 직업을 물려받았다가 법학원의 평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해서 법학원 학생이 되었다. 그는 말년에 고위 법관직에 오르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는데, 모어가 태어났을 당시 그의 직업이 여전히 식당의 와인 관리인이었는지, 아니면 법률가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이후인지는 알 수 없다. 한편, 크롬웰의 아버지는 대장장이로 알려졌다. (148쪽)
세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대역죄로 참수당하거나 참수될 처지에 놓였었다는 점이다. 모어는 1535년, 크롬웰은 1540년에 각각 대역죄로 참수되었고, 울지는 대역죄 다음으로 중대한 교황 존신죄praemunire(교황이 국왕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죄)로 유죄를 선고받아 지위와 재산을 모두 잃었으며 1530년에는 대역죄 혐의로 체포되었다. 런던으로 압송되는 길에 병으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참수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실각이 국왕의 이혼 내지 재혼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150쪽) 근대 초기의 영국: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국가 만들기
편집: 조인순(031-95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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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http://blog.naver.com/hanulnew
크롬웰이 1535년 6월 3일 모어를 심문한 기록을 바탕으로 둘 사이의 대화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크롬웰: 국왕께서는 자신이 영국 교회의 수장인지 아닌지 당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것을 명령하셨다.
모어: …….
(크롬웰 재차 묻는다.)
모어: 그런 물음은 검의 양날 같은 것이다.
크롬웰: 무슨 뜻인가?
모어: 만약 어떤 사람이 국왕이 교회의 수장임을 마음속으로는 믿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국왕의 수장권을 인정한다면 그의 영혼을 속이는 것이 되고, 그렇다고 양심에 따라 국왕의 수장권을 인정하는 선서를 거부하면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크롬웰: 대법관 시절에 당신도 이단 혐의자들을 심문할 때 그들에게 교황이 교회의 수장인지 아닌지 의견을 밝히라고 강요하지 않았나? 그들도 지금의 당신과 마찬가지 상황에 있었다. 그렇다고 답변하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이 되고, 아니라고 답변하면 화형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나?
모어: 두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내가 이단 혐의자들을 심문할 때에는 모든 기독교 국가에서 교황이 교회의 우두머리임을 법률로 인정하고 있었지만, 지금 영국 국왕이 영국 교회의 수장이라는 법률은 오직 영국 한 나라에만 인정되고 있을 뿐, 다른 나라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161쪽)
목차
책머리에
제1부 통치의 기술
제1장 헨리 8세의 전쟁과 금란의 들판
1. 르네상스 군주의 덕성|2. 헨리의 전쟁|3. 금란의 들판|4. 튜더 왕권의 시각적 이미지
제2장 엘리자베스 초상화의 비밀
1. 군?주의 초상화|2. “왕은 죽지 않는다”|3. 종교적 메시아|4. 미래로, 제국으로|5. 이미지와 권력
제3장 개회 및 폐회 연설을 통해 본 군주와 의회
1. 엘리자베스와 의회|2. 개회 연설|3. 폐회 연설|4. 유기체적 공동체, 그리고 사랑의 연대
제4장 전쟁과 의회
1. 누구의 전쟁인가?|2. 엘리자베스의 전쟁|3. 전쟁과 재정|4. 전쟁과 의회|5. 의회 주전론의 배경
제5장 튜더 의회: 중앙과 지방의 접점?
1. 튜더 시대 영국의 중앙은 어디인가?|2. 튜더 시대의 행정 및 자치도시|3. 의회의 역할: 중앙과 지방의 접점?|4. 지방과 의회: 1584~1585년과 1593년 의회를 중심으로|5. 후속 연구의 필요성
제6장 세 사람의 토머스
: 영화〈사계절의 사나이〉와 〈천 일의 앤〉의 역사 인식
1. 울지, 모어, 그리고 크롬웰|2. 역사적 평가|3.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4. 영화 〈천 일의 앤〉|5. 영화와 역사 사이
제2부 경제와 사회
제7장 튜더 빈민법: 위기의 산물?
1. 튜더 빈민법의 역사적 의의|2. 빈곤의 정도|3. 정상 입법의 경우|4. 위기 입법의 경우|5. 정상 입법과 위기 입법은 무엇이 달랐나?
제8장 휴머니즘과 빈곤의 문제
1. 튜더 빈민법과 정책 사상|2. 영국의 휴머니즘과 사회 개혁|3. 도덕론적 휴머니즘과 실용적 휴머니즘|4. 스타키와 모리슨의 휴머니즘과 빈곤의 문제|5. 휴머니즘과 빈민법
제9장 헨리 브링클로우의 사회 개혁론
1. 커먼웰스 사상과 헨리 브링클로우|2. 종교개혁과 사회적ㆍ경제적 문제|3.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과 처방|4. 종교 재산의 처분과 사회정의|5. 브링클로우 개혁론의 의미
제10장 반反악덕대출법과 이자의 허용
1. 고리대금과 악덕 대출|2. 기독교 전통과 이자|3. 16세기 영국의 경제적 현실|4. 영국의 반反악덕대출 입법: 1487~1571|5. 1571년 반反악덕대출법의 성격|6. 종교인가? 경제인가?
제11장 엘리자베스 시대의 외국인 차별
1. 영국과 이주민의 역사|2. 네덜란드 이민자들과 외국인의 법적 지위|3.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법 동향: 1570년대와 1580년대|4. 1593년의 의회 논쟁|5. ‘야비한 개들’ 대 ‘종교적 동반자’
제3부 연구 동향
제12장 제프리 엘턴과 튜더 혁명론
1. 제프리 엘턴의 생애|2. 전통적 역사의 옹호자|3. 엘턴과 토머스 크롬웰|4. 수정주의자 엘턴과 튜더 의회의 성격|5. 엘턴의 유산
제13장 닐을 넘어, 엘턴을 넘어: 튜더 의회사 연구 동향
1. 닐과 하원의 정치적 성장|2. 수정주의의 도전|3. 상원은 살아나고, 청교도 ‘영웅들’은 없었다|4. 튜더 의회의 역동성|5. 튜더 의회사 관련 사료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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