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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4974727 / 688쪽 152 x 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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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박지원이 풍자의 인파이터였다면 나쓰메 소세키는 아웃복서였다!
풍자의 글쓰기에서 기궤첨신의 글쓰기까지 동서양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비결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에게 배우는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18세기 조선을 강타한 동심의 글쓰기는 무엇이었는가? 신세계를 향해 떠난 미친 선비 서하객의 60만자 일기에는 어떤 욕망과 포부가 담겨 있었는가? 조닌 계급의 애욕과 삶을 대변한 이하라 사이카쿠의 소설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태어났는가? 풍자의 글쓰기가 유행했던 18세기 영국과 19세기 일본의 제국주의 사회는 어떻게 서로 닮아 있었는가? 서양의 마르코폴로에서 중국의 이탁오와 공안파, 그리고 조선 호모 스크립투스 심노숭에 이르기까지 39인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에게 배우는 글쓰기의 모든 것.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박지원이 풍자의 인파이터였다면 나쓰메 소세키는 아웃복서였다! 풍자의 글쓰기에서 기궤첨신의 글쓰기까지 동서양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비결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에게 배우는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18세기 조선을 강타한 동심의 글쓰기는 무엇이었는가? 신세계를 향해 떠난 미친 선비 서하객의 60만자 일기에는 어떤 욕망과 포부가 담겨 있었는가? 조닌 계급의 애욕과 삶을 대변한 이하라 사이카쿠의 소설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태어났는가? 풍자의 글쓰기가 유행했던 18세기 영국과 19세기 일본의 제국주의 사회는 어떻게 서로 닮아 있... 박지원이 풍자의 인파이터였다면 나쓰메 소세키는 아웃복서였다! 풍자의 글쓰기에서 기궤첨신의 글쓰기까지 동서양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비결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에게 배우는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18세기 조선을 강타한 동심의 글쓰기는 무엇이었는가? 신세계를 향해 떠난 미친 선비 서하객의 60만자 일기에는 어떤 욕망과 포부가 담겨 있었는가? 조닌 계급의 애욕과 삶을 대변한 이하라 사이카쿠의 소설은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서 태어났는가? 풍자의 글쓰기가 유행했던 18세기 영국과 19세기 일본의 제국주의 사회는 어떻게 서로 닮아 있었는가? 서양의 마르코폴로에서 중국의 이탁오와 공안파, 그리고 조선 호모 스크립투스 심노숭에 이르기까지 39인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에게 배우는 글쓰기의 모든 것. 박지원이 풍자의 인파이터였다면 나쓰메 소세키는 아웃복서였다! 풍자의 글쓰기에서 기궤첨신의 글쓰기까지 동서양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비결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더불어 읽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시공간의 차이를 떠나 그 유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비자가 진시황이라는 군주를 통해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상을 통일하려 했다면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라는 군주를 모델로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정치철학을 제시하려 했다. 그 시공간적 차이를 고려할 때 《한비자》와 《군주론》의 유사성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18세기를 전후한 동서양의 지성사를 살펴보면 어린아이의 발견, 백과사전식 저술의 발흥, 소품문의 등장 등 똑같은 흐름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 《글쓰기 동서대전》의 지은이 한정주는 일국사와 민족사의 한계를 넘어선 지역사(아시아사) 연구와 더불어 동서양 문명과 지식의 차이점을 교차, 비교하는 작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고전 연구가이자 역사 평론가다. 글쓰기에는 글 이전에 반드시 철학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이 책에서는 18세기를 중심으로 14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동서양 최고 문장가 39인의 핵심 비결을 동심에서 자득까지 아홉 가지로 정리했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용휴, 이옥, 조희룡 등 조선 작가와 중국 작가 오경재, 장대, 서하객 그리고 일본 작가 요시다 겐코, 이하라 사이카쿠 등을 소개한다. 물론 박지원, 노신, 바쇼, 볼테르 등 잘 알려진 대가들도 당연히 등장한다. 풍자의 글쓰기가 유행했던 18세기 영국과 19세기 일본 제국주의 사회의 유사성을 비교하고 조선의 영정조 대와 중국의 강희제·건륭제 시대를 함께 위선의 시대로 규정짓는다. 또한 일본 문화를 동아시아의 갈라파고스로 묘사하는 등 동아시아 문화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하면서 동서양 최고 문장가들의 글과 삶에 녹아 있는 인문학을 풀어낸다. 이덕무에서 루소까지, 새로운 인간 어린아이의 발견 18세기를 전후해 동서양의 글쓰기에서는 공통적으로 ‘동심’과 ‘어린아이’가 새삼 발견되고 강조됐다. 동양과 서양에서는 전통적인 권력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동양에서는 성리학의 정치-문화 권력이, 서양에서는 기독교의 정치-문화 권력이 쇠퇴했다. 그리고 낡은 사상과 문장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지식인 집단들이 출현했다. 조선에서는 성호학파와 북학파가, 중국에서는 이탁오와 공안파가, 서양에서는 루소, 볼테르, 디드로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전통적인 권력에 길들여지기 이전의 인간에서 시작해 철학과 사상을 새롭게 세우려 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권력에 길들여지기 이전의 순수한 인간을 어린아이와 동심에서 발견하고 ‘동심의 글쓰기’를 역설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이해했을 때, 왜 18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무목적성·일상성·다원성·개방성·기궤성·불온성·혁신성 등이 봇물 터지듯이 등장했는지 알 수 있다. 조선에서 동심의 글쓰기를 대표할 만한 인물은 청장관 이덕무다. 이덕무는 자신의 첫 시문집의 제목을 ‘영처고?處稿’라고 지었다. 어린아이 영?에 처녀 처處자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치듯이, 처녀가 부끄러워하듯이 글을 썼다는 뜻이다. 이덕무는 글쓰기는 “어린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천진’ 그대로이며, 처녀가 부끄러워하듯 감추는 ‘순수한 진정’ 그대로인데, 어찌 억지로 힘쓴다고 되는 것인가?”라고 묻는다. 18세기 이전 조선 문사들의 글쓰기는 ‘목적이 있는 글쓰기’였다. 그들에게는 성현과 같은 삶을 살겠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고 글쓰기 역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덕무의 글쓰기는 순수하게 자신의 동심에 따르는 글쓰기, 즉 무목적의 글쓰기였다. 동아시아 지성사상 가장 문제적 인물인 이탁오 역시 동심의 글쓰기를 주창했다. 자신의 책을 ‘감추고 불살라야 할 책’, 즉 《장서藏書》와 《분서焚書》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탁오는 “천하의 지극한 문장은 동심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며 “만약 사람이 항상 동심을 보존할 수 있다면 도리가 행해지지 않고 견문이 행세하지 못하게 되므로, 아무 때나 글을 지어도 훌륭한 문장이 되고, 아무나 글을 지어도 훌륭한 문장이 되고, 어떤 양식과 문체와 격식과 문자를 창제한다고 해도 훌륭한 문장이 아닌 것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자 성리학의 이데올로기를 혁명적으로 전복했던 유교반도儒敎叛徒 이탁오는 결국 간수에게서 머리를 깎는 면도칼을 빼앗아 스스로 목을 베어 죽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18세기 서양에서도 ‘어린아이의 발견’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이전까지 서양에는 ‘어린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는 그저 작은 어른, 축소된 어른일 뿐이어서 어른들과 노동과 놀이를 공유했다. 이러한 시기에 루소는 저작 《에밀Emile》을 통해 어린아이를 “자연 그대로의 본성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자 본원적 가치”로 자리매김한다. 루소는 “모든 것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완전하지만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변질되고 만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 완전하다는 것은 곧 인간은 어린아이였을 때 가장 완전한 존재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 말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지닌 악한 존재라는 기독교-신학의 인간관에 대한 전면 부정이었다. 군림에서 향유로, 소품문과 백과사전의 탄생 조선 문장사에서 주목해야 하는 소품문은 성호 이익의 《관물편》이다. 대표작인 《성호사설》에서 이익은 《성호사설》은 ‘성호 노인의 희필戱筆’이라며 자질구레한 글이라는 뜻의 ‘사설僿說’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겸손과 겸양의 의미에서 썼다고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기호에 따른 글쓰기, 즉 놀이와 무목적의 글쓰기에서 나온 결과였다. 《관물편》은 개미, 누에, 이, 두더지, 거위, 뻐꾸기, 모란, 작약, 국화, 가시나무, 뽕나무, 감나무 등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자질구레한 존재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깊다. 이익은 생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동물과 식물들을 통해 천하 만물의 이치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세태까지 깨우칠 수 있다고 여겼다. 특히 《관물편》 속의 우언 소품들을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북》 속 ‘동물과 식물들에 대한 우화’와 비교해 읽어보면,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250여 년의 시간과 수만 리의 공간을 뛰어넘어 그 함축하고 있는 의미의 유사성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일본의 소품문을 살펴보려면 ‘찰나의 미학’을 공유하고 있는 하이쿠에 주목해야 한다.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울음소리.”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쇼의 하이쿠는 일본의 상인계급이었던 조닌町人들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오사카의 상인 목홍
소인국은 전통적으로 계란의 큰 쪽 끝부터 먼저 깨는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현 황제의 할아버지가 어릴 적 관습대로 계란의 ‘큰 쪽 끝’을 먼저 깨다 손가락을 다치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계란의 ‘작은 쪽 끝’을 먼저 깨야 한다는 새로운 법령을 만들어 시행한다. 그리고 이 법령을 위반한 사람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했다. 그러자 전통적인 관습에 충실한 사람들이 수차례에 걸쳐 반란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어떤 황제는 목숨을 잃고 어떤 황제는 왕위를 잃었다. 그런데 이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들이 모두 이웃한 제국 블레프스큐의 황제들이다. 그들은 반란을 지휘하다가 진압되거나 실패하면 자기 제국으로 몸을 피했다가 다시 소인국에 나타나 반란을 일으키곤 했다. 이 때문에 걸리버가 소인국에 갔을 때, 이 나라는 블레프스큐 제국과 36개월 동안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영국의 종교 분쟁, 즉 구교와 신교 간의 논쟁과 다툼을 풍자한 것이다.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계란의 ‘큰 쪽 끝’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 측은 구교를, 새로운 법령에 따라 계란의 ‘작은 쪽 끝’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 측은 신교를 비유한 것이다. 스위프트가 계란의 어느 쪽 끝을 깨느냐를 두고 다투는 소인국의 이야기에 빗대 신교와 구교의 종교 분쟁을 풍자한 것은 곧 이 종교 논쟁과 다툼이 별반 중요하지 않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를 두고 싸우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조롱과 비웃음이다. 여기에서 현 황제의 할아버지는 종교개혁을 주도한 헨리 8세를, 반란 도중 목숨을 잃은 황제는 청교도혁명 때 처형당한 찰스 1세를, 왕위를 잃은 황제는 명예혁명 때 프랑스로 망명한 제임스 2세를, 그리고 블레프스큐 제국은 영국의 신구교 종교 분쟁과 왕위 계승에 개입한 프랑스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소인국의 나라’ 속 풍자는 현실 세계에 대한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다.
-3장 <풍자의 글쓰기 : 성인이 되느니 차라리 광대로 살고자 한다> 중에서
사이카쿠의 소설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배경에는 “조닌들의 성격과 당대 도시의 풍경을 사실적이고 생생하며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는 데 특출난 문학적 재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두 사이카쿠 자신이 상인 계급, 곧 조닌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호색일대남》에 묘사되고 있는 오사카, 교토, 에도 등 대도시 유곽의 주요 향유자는 조닌들이었기 때문에, 유곽의 풍경과 그곳에서 일어난 온갖 사건들은 곧 상인 계급의 생활 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조닌 문화 중 하나였다. 오사카의 유곽 문화와 뒷골목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그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린 다음과 같은 대목은 일찍이 존재했던 그 어떤 문학작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호색일대남》이 호색 소설 혹은 풍속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리얼리즘 문학의 원형이라는 찬사를 받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사카에 도착한 요노스케는 오사카 동남부, 다니마치 거리의 후지노다나에 집을 얻어 귀이개 등을 만들며 덧없는 나날을 보냈다. 여전히 연애질은 계속되었고, 고타니나 후다노쓰지의 사창, 월정 계약의 첩, 남자를 좋아하는 식모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찾아다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본디 이 길에 몸 바쳐왔던 터라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기생들의 기둥서방을 하기도 했다. 이런 유의 일에 종사하는 여자들은 호적 조사가 두려워 한 남자를 지아비로 가장하고 자신은 매춘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관례이기도 했다. 나카데라초나 오바시 등 절이 많은 동네의 중을 상대로 하는 사창이 있긴 하나 기둥서방들은 연말에 유곽 부근은 얼씬도 못하는 노인네들 돈을 등쳐먹는 일을 하기도 한다. 오, 파파노인이 되어도 색의 번뇌는 어찌할 수 없나니.”
-4장 <기궤첨신의 글쓰기 :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중에서
박제가는 여기에서 정조에게 음식과 맛에 비유해 사물의 천성은 제각각 달라서 어느 한 가지로 귀결시킬 수 없는 것처럼, 문장이란 다양한 것, 곧 시대에 따라 변하고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 본성이기 때문에 “문장의 도는 한 가지로 일괄해서 말할 수가 없다”라고까지 주장했다. 정조의 문체반정을 반박하는 박제가의 논리는 이렇다. 짠맛, 신맛, 매운맛, 쓴맛, 단맛 등 음식의 맛이란 차이와 다양성이 본질이며 천성이다. 그런데 짠맛이 나는 소금과 매운맛이 나는 겨자와 쓴맛이 나는 찻잎을 두고 매실과 같은 신맛이 나지 않는다면서 나무라거나 처벌한다면, 그것은 소금과 겨자와 찻잎의 본성을 무시하는 것일뿐더러 사물이 지니는 천성을 폐기하려는 것에 다름없다. 만약 이렇게 세상의 모든 맛을 매실의 신맛에 맞추라고 한다면 온 천하의 맛은 반드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정조의 명령대로 세상의 모든 문장을 순정한 고문에 맞추라고 한다면 이로 인해 온 천하의 문장은 반드시 없어지고 말 것이다.
-6장 <차이와 다양성의 글쓰기 : 수천의 존재가 탄생하는 수천 겹의 주름> 중에서
상추쌈을 예찬하며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듯이 세밀하고 생동감 넘치게 상추쌈을 먹는 방법을 묘사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음식인 용미봉탕龍味鳳湯이나 팔진고량八珍膏粱과 같은 음식보다 더 맛있다고 한 글 역시 일상의 하찮은 일을 소재로 삼아 맛깔나게 지어낸 한 편의 희작이다. 특히 상추쌈을 먹는 중에 우스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번 크게 웃기라도 하면 밥알과 상추 잎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사방에 흩뿌려질 것이니 조심하라는 경고 아닌 경고 앞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서 식사나 회식 중에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 단비가 처음 지나가고 나면 상추 잎이 아주 잘 자라서 마치 푸른 비단 치마처럼 싱싱해 보인다. 커다란 동이의 물에 한참 동안 상추를 담갔다가 깨끗하게 씻어낸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받아 두 손을 정갈하게 씻는다. 왼손을 크게 펼쳐서 하늘에서 내리는 장생불사의 감로수를 받아먹기 위해 만들었다는 승로반承露盤처럼 손 모양을 만든 다음 오른손으로 두텁고 커다란 상추를 골라서 두 장을 뒤집어엎고 손바닥 위에 펼쳐놓는다. 이때 비로소 흰밥을 취해 큰 숟가락으로 두드려서 마치 거위 알처럼 둥글게 모양을 만들고 상추 위에 얹어놓는다. 그리고 흰밥의 가장 윗부분을 약간 평평하게 다져놓고 다시 젓가락을 들고 얇게 회를 뜬 소어蘇魚(송어)를 집은 다음 황개장黃芥醬에 담갔다가 흰밥 위에 올려놓는다. … 처음 상추쌈을 씹을 때에는 옆 사람과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삼가 그렇게 하지 않고 한 번 깔깔거리며 웃기라도 하면, 입에서 내뿜은 하얀 밥알이 이리저리 튀고 파란 상추 잎이 이곳저곳으로 흩뿌려질 것이다. 반드시 입에 든 모든 것을 다 뱉어내고 난 다음에야 멈추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10여 차례 상추쌈을 목구멍 아래로 삼키고 나면, 나는 진실로 천하의 진기한 맛인 용미봉탕과 천하의 진귀한 맛인 팔진고량과 같은 허다한 음식조차 알지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만다.”
-이옥, 《백운필》, <담채>
특히 상추쌈을 즐겨 먹었던 우리의 음식 문화를 호방하고 유쾌한 필치로 묘사한 이 글을 보고 있으면, 이옥이 글감의 선택에서 얼마나 얽매임이 없이 자유로웠는가, 표현의 기법에서 얼마나 개성적이고 자유분방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 세태기 혹은 풍속기를 즐겨 썼던 이옥의 글을 통해, 필자는 다시 한 번 일상생활 속 신변잡기와 잡감을 기꺼이 글로 옮겼던 18세기 특유의 미학 의식, 즉 일상성을 접하게 된다.
-7장 <일상의 글쓰기 : 수숫대 속 벌레가 노니는 소요유> 중에서
‘자득’에 관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첫째 독서, 둘째 사색, 셋째 글쓰기 등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쇼펜하우어의 독서에 관한 자득의 철학부터 알아보자. 독서는 분명 글쓰기에 필수불가결한 주춧돌이다. 그러나 모든 독서가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로운 독서도 있다. 그렇다면 해로운 독서란 어떤 독서인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독서, 생각을 마비시키는 독서가 바로 해로운 독서이다. 쇼펜하우어는 “너무 많이 책을 읽는 사람, 거의 종일토록 독서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마치 “말만 타고 다니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을 점차 잊어버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대개 학자라는 사람들의 독서라는 게 그렇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독서에 대해 매우 근본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독서는 무용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일 만큼 그의 견해는 급진적이다.
“독서란 자기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대신하여 생각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 사람 마음속의 과정을 반복하는 데에 그친다. … 많은 학자의 경우가 이러하다. 그들은 독서를 함으로써 바보가 되었다. 여가가 생기면 곧 책을 손에 쥐는 것처럼 쉬지 않고 독서를 계속하는 것은 쉬지 않고 손을 놀리는 일 이상으로 정신을 불구로 만든다. … 스프링이 계속 다른 물체의 압력을 받으면 탄력을 잃는 것처럼 정신 또한 다른 사람의 사상을 받으면 탄력을 잃게 된다. 영양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위를 해치고, 그 때문에 몸 전체를 해치는 것처럼 정신의 영양도 너무 많이 섭취하게 되면 정신은 질식해버린다.”
-쇼펜하우어, 《인생론Aphorismen zur Lebensweisheit》
-9장 <자득의 글쓰기 : 한 자루의 비를 들고 온 땅의 덤불을 쓸어버리다> 중에서
목차
들어가는 글
1. 동심의 글쓰기 : 천하의 명문은 반드시 동심에서 나온다
· 18세기 조선을 강타한 무목적의 글쓰기 _이덕무
· 유교반도의 운명, “내 책을 불사르고 감추어라” _이탁오
· 작은 어른에?서 완벽한 인간으로, 어린이의 발견 _루소
· 낙타의 굴종, 사자의 투쟁, 아이의 창조 _니체
2. 소품의 글쓰기 : 반 페니 은화처럼 작고 반짝거리는 글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벼룩과 성호의 이 _이익
· 찰나의 미학에 사로잡힌 패트론 상인들 _바쇼
· 인간 장사에 대한 노여움에서 서호의 몽환적 풍경까지 _장대
· 모든 혁신은 갓 태어난 흉한 새끼이다 _프란시스 베이컨
3. 풍자의 글쓰기 : 성인이 되느니 차라리 광대로 살고자 한다
· 시대와 불화했던 최고 문장가의 풍자 전략 _박지원
· 유자들의 외전에 청나라 지식인의 타락상을 담다 _오경재
· 고양이의 눈으로 본 학벌과 금전의 야합 _나쓰메 소세키
· 인류 전체의 탐욕을 폭로한 최초의 문학 _조너선 스위프트
4. 기궤첨신의 글쓰기 :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 스승 이익을 넘어 문단을 지배한 권력 _이용휴와 이가환
· 조닌 계급의 애욕과 삶의 철학을 대변하다 _이하라 사이카쿠
· 이탁오의 후예들, 조선 선비들을 매료시키다 _공안파
· 앙시앙 레짐에 던져진 최초의 폭탄 _볼테르
5. 웅혼의 글쓰기 : 사마천의 문장은 광활한 세상으로부터 나왔다
· 천애지기의 만남과 북벌에서 북학으로의 대전환 _홍대용
· 신세계를 향해 떠난 광사狂士의 60만 자 일기 _서하객
· 대항해시대의 시작점이 된 뜨거운 욕망과 심원한 포부 _마르코폴로
· 대문호의 재생을 이끌어낸 고대 로마와의 조우 _괴테
6. 차이와 다양성의 글쓰기 : 수천의 존재가 탄생하는 수천 겹의 주름
· 붉을 홍 한 글자로 꽃을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_박제가
· 조선을 사랑한 유일한 17세기 일본 지식인 _아메노모리 호슈
· 암흑과 절망의 목도, “하지만 절망은 희망처럼 허망하다” _노신
· 천 개의 눈으로 좇은 천 개의 주름과 창조 _니체
7. 일상의 글쓰기 : 수숫대 속 벌레가 노니는 소요유
· 문체반정이 지워버린 19세기 조선의 문학 천재 _이옥
· 불교적 무상과 생에 대한 애정의 잔잔한 충돌 _요시다 겐코
· 책과 글과 꽃과 나비와 구름과 바람과 물소리의 글 _장조
· 평범하고 소박하고 단순한 것 속의 조화로운 삶 _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8. 자의식의 글쓰기 :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 조선 호모 스크립투스의 참된 자아 찾기 _심노숭
· 문화대혁명으로 사그라진 계급 혁명의 뜨거운 불꽃 _곽말약
· 근대 문명국가 일본의 뒤틀리고 일그러진 자화상 _후쿠자와 유키치
· 자유를 향한 여정 끝에 만난 그리스인 조르바 _니코스 카잔차키스
9. 자득의 글쓰기 : 한 자루의 비를 들고 온 땅의 덤불을 쓸어버리다
· 수만 권의 독서가 온축된 살아 숨 쉬는 문장 _홍길주
· 옛사람을 업신여긴 한 은둔자의 적자지심赤子之心 _원매
· 문장에서 한학까지를 통섭한 대방가의 깨달음 _사토 잇사이
· 인간은 언제 돌에서 별이 되어 빛나는가? _쇼펜하우어
미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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