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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들판의 꿈

홍은전 저 | 봄날의책 | 201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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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372050 / 308쪽 220 x 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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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노들’(노들장애인야학)은 대학로에 있는 장애 성인들의 교육 공간으로, 차별과 억압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 인간 존엄성과 평등이 넘쳐나는 노란들판을 꿈꿉니다. 배움에 답이 있고 투쟁만이 살 길임을 믿기에 적응보다 저항을 공부합니다.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자”를 교훈(校訓)으로 삼고 장애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들의 배움, 그들의 투쟁, 그들의 일상에 대한 정직한 기록입니다. 여섯 장면을 통해 본 〈노란들판의 꿈〉 # 장면 1 잠시 후 다음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신호음이 역... ‘노들’(노들장애인야학)은 대학로에 있는 장애 성인들의 교육 공간으로, 차별과 억압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 인간 존엄성과 평등이 넘쳐나는 노란들판을 꿈꿉니다. 배움에 답이 있고 투쟁만이 살 길임을 믿기에 적응보다 저항을 공부합니다.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자”를 교훈(校訓)으로 삼고 장애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들의 배움, 그들의 투쟁, 그들의 일상에 대한 정직한 기록입니다. 여섯 장면을 통해 본 〈노란들판의 꿈〉 # 장면 1 잠시 후 다음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신호음이 역내에 울려 퍼졌다. 지켜보던 이들의 심장은 세차게 벌렁거렸고, 누군가는 벌써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점거한 곳은 열차가 평상시에 정차하는 곳보다 조금 앞선 지점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열차에 치일 염려는 없었다. 그리고 점거가 시작되었을 때 한 사람이 역무실로 달려가 이 사실을 전달했기 때문에 다음 지하철의 기관사도 이미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 곧이어 열차가 역사 안으로 진입했다. 열차는 경적을 울리며 선로 위에 버티고 있는 사람들 앞에 서서히 멈춰 섰다.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두운 선로에 드러누워 있는 그들을 비추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플랫폼 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선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날 지하철 1호선이 30분간 운행을 멈추었고 32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그리고 …… 30년 동안 방구석에 갇혀 있던 장애인들의 분노와 절망도 세상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마치 낮달 같은 존재들이었다. 존재하고 있으나 보이지 않았던 삶. 뒷방에 밀쳐지고 산골짜기에 버려졌던 사람들. 차가운 레일 위에 누워 자신들이 멈춰 세운 지하철을 바라보는 그들의 머릿속에는 지난 시절의 서러웠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엄마 등에 업혀 찾아간 학교에서 입학을 거부당하고 돌아오던 길, 동생들이 모두 학교에 간 후 혼자 남았던 무수한 아침, 정규방송이 끝났음을 알리는 TV의 소음으로 시작되었던 유년의 오후,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 스스로 들어간 시설에서 숨죽여 울었던 밤, 초대받지 못한 언니의 결혼식 …… 손을 뻗어 닿는 곳에 죽음이 있었다면 미련 없이 놓아버렸을 형벌 같은 삶이었다. 그들이 목놓아 외쳤다. “장애인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이 사건은 이후 장애인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었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야만적 속도에 제동을 걸어 사회를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바꾸어낸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결정적 불씨가 되었다. TV에서 ‘불쌍한’ 장애인을 보면서는 혀를 차고 지갑을 열던 사람들이 눈앞에서 자신의 길을 막고 그 길을 함께 가자고 외치는 장애인들에게는 ‘병신’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때 박경석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좋습니다, 우리는 병신입니다. 그러나 당당한 병신으로 살고 싶습니다. 30년 동안 집구석에서 갇혀 지냈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주더니, 자신들이 당장 30분 늦으니까 저렇게 욕을 하는군요. 이제 그 병신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줍시다. 당당한 병신으로 살아봅시다!” # 장면 2 “형은 뭐하고 싶어요?” 한 번도 흐드러지게 피어 보지 못한 청춘들이었으므로 그것은 씹어도씹어도 씹을 것이 나오는 그런 안주거리였다. “나? 일하고 싶어.” “음 …… 무슨 일이요” “아무거나. 할 수 있는 거……” 술자리는 금세 “나도! 나도!”를 외치는 학생들의 호응으로 소란스러워졌지만 그걸 듣는 교사들은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술자리는 무겁게 가라앉곤 했다. 상근 활동가 이알찬은 학생들의 이런 고민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혔다. 그는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 일하는 기쁨을 최고로 치는 사람이었다. 학생들의 욕구가 자신의 것보다 가벼울 리 없는데 그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쓸모없는 인간’ 혹은 ‘가족의 짐’이라는 자괴감에 빠져 살고 있는 학생들을 접할 때마다 그는 꼭 자기가 그렇게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환경만 갖추어진다면 당장이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학생들이 야학을 졸업하고도 이후의 삶을 꿈꿀 수 있는 공간, 노동을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장애인 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자립 공장을 만들고 싶었다. (……) 이알찬과 퇴임한 교사들, 그리고 야학 학생 몇 명이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 배움을 주고받던 관계와 직장 동료가 되어 함께 일을 하는 관계는 몹시 달랐다. 수업은 쉬웠지만 함께 일하기는 어려웠다. 현수막 주문을 받기로 한 노동자 J는 길이를 재는 단위인 미터(m)와 센티미터(cm)를 변환할 줄 몰랐다. 출력기를 다루어야 하는 노동자 Y는 기계가 표시하는 영어를 읽지 못했다. 버려지는 현수막이 속출했다. 그러나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학교가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고 야학이 그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을! 작업 지시서를 앞에 두고 즉석에서 수학 수업이 벌어지고 출력기 옆에서 알파벳 특강이 이루어졌다. 배움의 속도는 마음과 달리 속 터지게 더뎠다. (……) ‘이알찬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빴다. “장애인의 속도를 인정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던 그들이었지만 정작 자신들은 기계가 되고 총알이 되어야 했던 나날이었다. 늦은 밤 현수막을 ‘디자인’해서 ‘출력’을 걸어놓은 후, 기계 아래서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자다가, 출력이 끝나면 그것을 ‘마감’하여, 새벽이 되면 사다리를 들고 ‘시공’을 하러 나갔다. 수업 마치고 소주잔을 부딪치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장애인도 일하고 싶다’는 정당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인간은 경쟁과 효율의 논리가 아니라 협력과 연대의 정신으로도 살 수 있고, 또 살아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노란들판은 살아남았다. # 장면 3 보통 ‘일상’이라는 말은 ‘흘러가는 시간 속의 그렇고 그런 날들 중 하루’를 뜻하지만 노들에서 말하는 일상은 그 의미가 전혀 달랐다. 중증장애인에게 일상이란 가져본 적 없는 어떤 하루들, 그러니까 그들의 빼앗긴 인생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외출을 하고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 그저 평범한 일상이지만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제 몸을 던져 싸워야 겨우 얻을까 말까 한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이었다. 노들의 가장 중요한 투쟁은 바로 이 일상을 만들고 지키는 일이었다. 이 작고 사소한 일상이 우리들의 인생을 이끌고 나간다. 노들의 일상을 이끌었던 것은 바로 수업이었다. 수업이 우리를 만나게 했고 거기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수업이 아니었다면 30년간 서울 노유동의 작은 방과 창동 작은 집이 각자의 우주 전체였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장애 문제라면 한 사람에게 기역니은을 가르치기 위해 때로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필요하다. 명왕성만큼이나 멀리 있는 것으로 알았던 나 같은 사람이 그들과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차산 기슭 작은 교실에서 만난 우리는 아득하게 달랐고 서로에게 모두 처음인 존재들이었다. 2003년 한글 기초반에서 만난 우리들의 수업은 사투와 같았다. 우리는 사용하는 언어조차 달랐다. 어떤 이는 손을 쓰지 못했고 어떤 이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교사들은 말하고 쓰는 것 외에 어떤 의사소통 방법도 배운 적이 없었다. 우리들은 몰랐다. 우리가 얼마나 긴 레이스의 시작점에 서 있는지. 1년이 지나도 크게 진전되지 않는

저자 소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노란 들판의 꿈》을 썼다. 문제 그 자체보다는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차별받는 사람이 저항하는 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인권의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등을 함께 썼다.

책 속에서

누군가의 인생이 기대어지는 순간 그 존재는 숭고해진다. 노들은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나 몰아내야 할 세상의 어두운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 그리하여 우리가 살고 싶은 삶 그 자체가 되기 시작했다. (60쪽)

“작은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이것이 모래 위에 디딘 것인지 반석 위에 디딘 것인지 지금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애써 기억하지 않으면 그것은 흔적도 없이 바람에 날려 사라질지 모른다. 기억해야 한다. 조금씩 눌러주지 않으면 또다시 잊혀져버릴 흔적들을. 기억하자. 우리에겐 세상 모든 길을 갈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있다.” 노들바람 (75쪽)

아무도 욕심내지 않았던 공간, 가진 거라곤 공짜로 얻어 쓰는 교실 두 칸이 전부였던 곳. 그러나 노들에는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온몸으로 증언하는 학생들과 계산 없이 열정적인 교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노들의 힘을 믿었고 그 힘을 기반으로 다시 무언가를 일으키고자 했다. (77쪽)

‘부정’의 표지를 ‘자긍심’의 표지로 바꿀 수 있는 힘, 그것은 오직 싸우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전복적 힘이다. 수만 명을 태우고 달리는 서울의 동맥을 잠시 끊어버리는 용기는 진짜 ‘병신’이 아니고는 부릴 수 없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가장 중요한 불씨는 그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세상은 이제 그날의 사건이 있기 전과 후로 나누어졌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모든 게 변했다. 어쩌면 다른 삶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잠시 세상을 멈추고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힘이 바로 그들 자신 안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을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89쪽)

누군들 충돌이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시기 몇몇 교사들에게는 고통을 견디며 끝까지 밀고나가는 어떤 힘이 있었다. 두려움보다 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충돌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일상 속에서 묵묵히 실천으로 증명했다. 어떤 교육파 교사는 어떤 운동파 학생과 함께 살며 그의 자립생활을 지원했고, 어떤 운동파 교사는 연극 수업에 들어가 ‘데모’라면 기겁을 하는 학생의 삶에 오랫동안 귀 기울였다. 운동파가 교육파에게, 교육파가 운동파에게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교육이 절대 눈감지 말아야 할 것과 운동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서.
(102쪽)

“내가 만든 현수막이 거리에서 펄럭이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이따금씩 ‘장애여성의 독립적인 삶을 보장하라!’ 같은 현수막을 디자인할 때는 나의 활동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안도한다. 노란들판은 중증장애인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이 되기 위해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하고 있어서 거기에 동참한다는 기쁨도 크다. 기존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장애인과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비장애인이 모여서 단순히 노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배우고 있다. 우리는 누구 하나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인식하면서 조금씩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고달픔에 지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들과 함께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 (121쪽)

노들야학은 들판 위에 세워진 학교였다. 들판 위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평균에 미치지 못해 내쳐진 삶이었다. 애초부터 평균이라는 것이 그들 같은 삶을 버리고 얻은 값이었다. 그러니 들판에는 평균이 주는 안정감 따위가 있을 수 없었다. 밥을 먹다가도 비구름이 몰려오면 천막을 쳐야 했고, 볕이 좋아 빨래를 널 때에도 언제든지 걷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혼란스러움과 변화무쌍함, 그것이 들판의 속성이었다. 노들은 바로 그곳에서 탄생했다.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노들의 구성원들이 합의하는 단 하나의 가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함께’였다. 양극단의 값을 도려내고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불변의 튼튼한 집을 세워 혼란스러움을 원천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들판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존재들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근육이 필요했다. 지루한 반복을 통해 근력을 키우는 시간, 그것이 바로 노들의 수업이었다. (149-150쪽)

낮아지고 넓어진 노들의 새 공간은 선한 기운들이 모이고 꿈틀거릴 수 있는 땅이 되어주었다. 딛고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주기도 했고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되어주기도 했다. 오래전 정립회관의 탁구장이 그랬고 2001년 대학로의 사무국이 그랬다. 만나고 손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는 공간. 장애인의 삶에는 그 작은 한 평의 공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꿈조차 디딜 땅이 필요했다. 허공에서 몽글몽글 피었다 사라지고 말았던 그 꿈들이 이제 디디고 설 공간을 만나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그리하여 아픈 사람이 치료를 받고, 시설에 갇혀 있던 장애인들이 시설을 뛰쳐나올 준비에 들어갔으며, 중증장애인들이 무대 위에 올라 그들의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74쪽)

익숙한 사고의 회로를 거꾸로 돌리고 결속의 방식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할 수 없는’ 것들이 ‘할 수 있게’ 되고 ‘비정상’의 것들이 ‘정상’이 된다. 약자를 배려하고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은 익숙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 관계를 깨야 한다. 약자에게 주어야 할 것은 권력이고 주변인에게 필요한 것은 중심의 자리, 자기 울음을 우는 주체의 자리이다.
오래전 밀려나고 사라진 것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조합은 낯설다. 그것을 기획하는 것은 상상력이지만 현실로 만드는 것은 용기 있는 실천이다. 낯선 조합은 그래서 아름답다. 그것이 말보다 더 크게 말하는 인권의 힘이다. (257쪽)

에스키모의 언어에 ‘눈(雪)’을 가리키는 단어가 수십 가지로 발달해 있듯이, 노들에는 ‘몸’이나 ‘고통’을 표현하는 언어와 몸짓이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그것은 이 문화권에 ‘말할 수 없는 고통’ 혹은 ‘몸으로 말하는 고통’을 읽고 듣는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이 학교가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스물세 살의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장애인이 처한 열악한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을 표현하고 바라보는 그들의 풍부한 어휘와 섬세한 태도였다. 그것은 낯설고 아름답고 강렬했다. (289-290쪽)

모든 건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내가 너를 믿어도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내가 나를 믿어보기로 결심했을 때, 그래서 그 아름다움에 나를 던져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런 존재는 누구도 말릴 수가 없다. 사랑과 믿음과 중독의 속성이 그러하듯이. (293쪽)


목차

목차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프롤로그
1교시 배움
들판 위의 학교
거의 모든 것의 시작
멀리 볼 사람이 필요하다
홀로서기
달려라 봉고
위대한 첫걸음
저항의 가치로 살아남기 위하여
2교시 투쟁
인간답게 살고 싶다
흔들리며 피는 꽃
해방은 우리 자신의 행동으로
어떤 하루
꿈꾸는 현수막
활동보조서비스를 제도화하라
차별에 저항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3교시 일상
길바닥에 나앉아도 수업은 계속된다
대학로에 노들이 있다
판을 벌이다
복도가 불편해
그들이 온다
천천히, 즐겁게, 함께
4교시 다시, 일상
타전
분열의 추억
‘9’를 위한 변명
인권 강사 K는 힘이 세다
당신에게 이 사회는 언제나 참사였구나
2014년 겨울 광화문에서
25만 원의 노역일기
5교시 뒤풀이
우리는 왜 노들에 간도 쓸개도 다 빼줄 듯이 굴었나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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