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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유럽 경제사 서양 문명의 변경에서 떠오르는 경제의 심장으로

양동휴, 김영완 저 | 미지북스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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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142548 / 380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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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중부 유럽은 어떻게 태어나고 발전했는가?
신성로마제국에서 유럽연합까지
경제로 살펴본 독일과 중부 유럽의 1000년 역사
우리가 유럽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거의 대부분이 서유럽이다. 그러나 지금의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은 ‘중부 유럽’으로 구분되는 지역으로 서유럽과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른 기원과 정체성을 갖는 ‘또 하나의 유럽’이다. 중부 유럽은 중세 말 이래 서유럽의 팽창과 함께 역사 무대에 들어왔고, 서유럽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점차 독자적인 경제 세력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근대에 들어와서 중부 유럽은 제국들의 본산이자 혁명과 전쟁의 무대였으며, 산업혁명과 대공황, 냉전의 성립과 해체, 유럽연합 결성 등 근현대사의 주요 장면을 장식했다. 오늘날 중부 유럽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경제의 새로운 심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사의 권위자인 양동휴 서울대 교수가 서양사 전공자인 김영완 선생과 함께 쓴 이 책은, 역동적인 중부 유럽의 1000년 역사와 경제를 큰 시야로 조망하며, 대중적인 언어로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신성로마제국에서 유럽연합까지 경제로 살펴본 독일과 중부 유럽의 1000년 역사 서유럽과는 다른 ‘또 하나의 유럽’ 19세기 말에 서방 세계에는 독일제국의 형성(1871년)과 함께 중부 유럽의 성장을 경계하는 경향이 생겨나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크게 충돌하기도 했다. 즉 유럽에는 개인의 자유 개념에 입각한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제주의 등을 꽃피운 서유럽 외에도 그런 역사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이를 대체하려는 다양한 유럽이 존재해왔다. 그런데도 그동안 우리말로 된 서양 경제사 서술은 주로 서유럽, 정확히는 ... 신성로마제국에서 유럽연합까지 경제로 살펴본 독일과 중부 유럽의 1000년 역사 서유럽과는 다른 ‘또 하나의 유럽’ 19세기 말에 서방 세계에는 독일제국의 형성(1871년)과 함께 중부 유럽의 성장을 경계하는 경향이 생겨나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크게 충돌하기도 했다. 즉 유럽에는 개인의 자유 개념에 입각한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제주의 등을 꽃피운 서유럽 외에도 그런 역사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이를 대체하려는 다양한 유럽이 존재해왔다. 그런데도 그동안 우리말로 된 서양 경제사 서술은 주로 서유럽, 정확히는 영국 남부, 프랑스 북부, 라인 강 서쪽 독일 지역에 국한시켜 봉건제와 장원제, 과학혁명, 계몽주의, 공업화만 교과서적으로 다루었다. 중부 유럽에서는 이런 현상이 많이 달랐거나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에 서유럽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지역별 경제사적 결과도 많이 달랐으므로 이를 별도로 구분하여 비교사적 관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유럽 각 지역의 공통점과 차이점, 지역별 독자성을 이해하고 나아가 유럽 전체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중부 유럽의 경제사를 별도로 조망하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중부 유럽은 무엇인가? 중부 유럽은 오늘날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중부 유럽을 서유럽, 동유럽, 남동 유럽과 구분 짓는 기준은 첫째, 종교와 문화적 전통이다. 중부 유럽 대부분은 로마가톨릭을 수용한데 비해 동유럽은 그리스정교이다. 남동 유럽은 오랫동안 이슬람의 오스만제국 지배를 경험했다. 두 번째 기준은 중세 제국과 왕국의 경계다. 이 경계는 서쪽으로는 1500년경 신성로마제국, 남동쪽으로는 헝가리왕국, 동쪽으로는 폴란드-리투아니아를 포함하며, 시간적, 공간적으로 숱한 변천을 겪었다. 세 번째 특징은 오랜 세월에 걸친 다국적 제국과 다인종, 언어, 전통의 혼합 경험이다. 중부 유럽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서유럽보다 성장이 느렸으나 19세기 말부터 그 속도가 빨라졌다. 이 책은 중부 유럽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독일을 중심으로 다루며, 그 밖의 여러 나라들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역사를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소개한다. 서유럽의 팽창과 중부 유럽의 등장 서유럽이 팽창하기 시작한 10세기부터 서유럽인들은 엘베 강 동쪽의 빈 땅이나 기존 원주민 지역을 개척, 이주하며 서유럽 문화를 이식하거나 원주민을 흡수, 동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유산이나 서유럽에 고유한 역사적 경험이 부분적으로 이식되었다. 그러나 중, 동부 유럽에는 도시가 별로 발달하지 못했다. 즉 도시 부르주아가 성장하지 못했다. 오히려 15~16세기에 농민의 이동 금지와 도주 농민에 대한 추적과 체벌 강화, 부역 증대 등, 서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농노제가 강화되었다. 상업도시의 성장이 미미하여 도시 부르주아적 요소나 고대 문화유산이 부활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서유럽의 군사적 압박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절대왕정이 중부 유럽에서 뒤늦게 형성되었다. 서유럽에서는 상업도시가 창출한 엄청난 부가 왕들이 근대적인 정치권력을 세우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서부와 동부의 중간인 독일 지역의 발전 양상은 서유럽 쪽과 같은 듯 달랐고 동유럽과도 닮았지만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절대왕정 시대에 들어서자 독일 지역 내에서도 후진적이었던 브란덴부르그-프로이센이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했다. 프로이센은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독일 통일을 주도하고 거대한 산업자본주의 국가를 창출했다. 그 이후 중부 유럽은 독일과 다른 제국들이 경합하는 역동적인 정치적 공간이 되었고, 산업적 에너지가 분출하는 시대를 맞게 된다. 독일 도시의 성장과 독일인 개척자들의 중부 유럽 속지화 서부 독일도 일찍부터 상업도시가 발달한 지역에 속했다. 이들은 이탈리아식 도시국가 형태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으나 16세기까지 국제 금융과 교역 등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자동맹이다. 그러나 네덜란드가 해상 진출을 시작하면서 한자 도시들의 쇠락이 시작되었다. 신대륙 발견과 대서양 시대의 개막으로 내륙 교역의 입지가 불안해졌고, 남동쪽 교역로는 오스만제국이 봉쇄해버렸기 때문이다. 독일 서부 지역 상업도시들이 지닌 힘과 다양성 때문에 이곳에서는 근대 초까지도 귀족 중심의 강력한 절대왕정이 성장할 공간이 없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오랫동안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11~13세기, 서유럽이 팽창하던 시기에 서부 지역의 독일인들은 엘베 강 동쪽과 발트 해 쪽으로 진출하여 토지를 개간하고 도시를 건설했다. 독일인이 이주하기 시작한 이 지역(오늘날의 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리투아니아에 해당)은 10세기 이전까지는 주로 슬라브족이 수렵과 채집, 원시적 농업기술로 살던 곳으로 인구도 희박했다. 독일인 선교사들이 이곳에 와서 헝가리인, 슬라브인을 로마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독일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엘베 강을 건너 주인 없는 땅에 들어가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민을 이주시켜 속지화했다. 개척자들은 원주민을 정복하거나 쫓아내면서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해갔다. 쫓겨난 마자르족은 도나우 강 유역에 정착하고 기독교 세계에 편입되었다. 헝가리, 폴란드의 지배자들은 독일 농민과 기사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많은 수의 독일 농민이 활발하게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독일인들은 원주민과 동화되었다. 그러나 14세기 흑사병의 타격으로 서부로부터 인구 유입이 급감하고 도시가 쇠퇴했으며 봉건적 억압이 강화되었다. 그로 인해 서유럽과는 전혀 다른 경로로 역사의 방향이 전개되었다. 흑사병이 잦아들자 중부 유럽은 인구가 다시 증가했으며, 가격혁명과 상업혁명으로 다시 활기가 돌았다. 상업조직이 발전했으며, 푸거 가문과 같은 강력한 무역, 금융 그룹이 생겨났다. 30년 전쟁의 복구 시기인 17~18세기에는 농업과 수공업이 발달했다. 척박한 독일 변방에서 유럽의 강대국으로 중부 유럽 역사의 가장 큰 전환점은 브란덴부르그-프로이센의 부상과 1871년의 독일 통일이었다. 베를린 주변의 브란덴부르그는 척박한 땅으로 예로부터 그곳은 ‘신성로마제국의 모래상자’라 불릴 정도였다. 현재의 폴란드 영토인 프로이센도 독일기사단이 토착 슬라브인과 싸워 정복한 곳으로 문명의 변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독일 변경에서 군인왕 프리드리히 1세가 등장하여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창출했으며, 뒤이어 프리드리히 2세가 제조업이 발전한 슐레지엔을 정복함으로써, 프로이센은 독일 지역 내 최강국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에 참패한 프로이센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토지 개혁과 영업의 자유화, 대학 설립과 의무교육 시행 등을 단행했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들로 프로이센은 프랑스로부터 라인란트를 획득하고 독일 공업화의 제도적, 물질적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산업혁명과 독일제국 성립, 그리고 1차 대전 독일의 눈부신 공업화 과정은 프로이센의 통일 과업과 동행하며 이루어졌다. 19세기 초부터 1834년 관세동맹 도입 시점까지 독일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이 유럽을 재편하는 과정의 제도적, 문화적 영향을 받았고, 그 충격에 대응하면서 근대적 산업 질서로 이행할 법적, 지적 조건을 창출했다. 이후 독일제국 성립 무렵까지 근대적 공업, 운송, 금융을 위한 물질적 토대가 형성되었다. 또한 외국자본, 기술, 기업이 독일 지역에 활발히 유입되었다. 그 이후 독일은 외국시장으로 활발히 진출하면서 대대적인 공업 성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비스마르크 사임 이후 독일의 외교는 매우 서툴고 시대착오적으로 변해갔고, 결국

저자 소개

서울대학교(학사), 메릴랜드대학교(석사), 하버드대학교(경제학 박사)에서 수학했으며, 런던정경대학(LSE), 베를린자유대학교, 캔자스대학교 등지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85년부터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미국경제사 탐구』(1994), Antebellum Agriculture and Other Essays(2003), 『20세기 경제사』(2006), 『양동휴의 경제사 산책』(2007), 『대공황 시대』(2009), 역서로 『대공황 전후세계경제』(2008), 『대공황: 1929-1933년』(2010) 등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서양사 전공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에서 가르쳤으며 다수의 논문을 집필했다. 『미완의 천국 하버드』(2003), 『제이콥의 손』(2008) 등 여러 번역서가 있다.

책 속에서

중부 유럽은 10세기 이래 이어진 서유럽의 팽창, 식민화, 문화적 이식을 경험했다. 지정학적으로 서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경제사적, 정치적 결과는 서유럽과 많이 달랐다. 하층민의 생활만 비교해도 농노의 실질적 해방이 약 500년이나 차이 난다. 자본제 작동의 필수 요건인 법적 사유재산권 확립도 네덜란드나 영국은 17세기 후반인데, 중부 유럽은 19세기까지 지체되었다. 러시아는 사유재산권 개념 없이 서유럽의 특정 사상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겪었다. 뒤늦게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중이다. (13쪽)

도시의 부가 증가하여 유사시에 장비를 잘 갖춘 수천 명의 남자들을 전장에 내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왕(혹은 대제후)과 도시인 간에 정치적 유대가 생겼다. 처음에 봉건 질서의 수호자들은 그 같은 ‘도시 군대’라는 구상에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런 풋내기들이 레냐노전투 등에서 거둔 승리를 보면서 왕의 생각이 달라졌다. (44쪽)

“얘야, 키 좀 그만 자라렴. 더 크면 관리들이 너를 (군대에 집어넣으려고) 뽑아갈 거야.” ‘군인 왕’이라고도 불리는 프리드리히 1세가 프로이센을 통치하던 시절, 그곳의 엄마들은 아들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왕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군대를 창설하여 프로이센에 진정한 절대왕정을 세우고 사회 구석구석에 엄격한 프로이센 특유의 군사적 문화가 침투하게 했다. 이후 브란덴부르그-프로이센은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하여 19세기에 독일 통일을 주도할 초석을 놓고 독일제국의 탄생을 주도했다. (95쪽)

독일사회민주당은 의회에서 수백만 노동자의 지지를 확보하여 다수당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들에서도 사회주의정당이 탄생했다. 이 가운데 러시아 사회주는 특이하다. 공업 발전은 미미했으나 마르크스주의가 가장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곳이 러시아였다. 러시아 지식인들은 유별나게도 마르크스주의에 열광했다. (177쪽)

케인스에 따르면, 1914년 이전에 유럽 번영의 대부분은 독일의 경제성장에 의존한 것이었으므로 독일을 경제적 장애자로 만드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다. ‘독일에 천문학적 규모의 전쟁배상금을 부과한 조항이 경제 대국인 독일 경제를 몰락시키고 결국 주변 나라를 모두 가난에 빠뜨릴 것’이기 때문에 베르사유조약은 어리석은 것이었다. (208쪽)

왜 1차 대전 후에 급진 우파가 급격히 부상했는가? 그것은 1차 대전으로 사회구조가 붕괴되는 가운데 그 붕괴된 사회의 일원이던 중간 계층과 소시민층 출신 민족주의 청년들이 파시즘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사실상 현실로 받아들여졌던 사회혁명과 노동계급의 위력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지배계급의 권력, 영향력 등이 무사한 곳에서는 파시즘이 성장하지 못했다. (223쪽)

흔히 서독 ‘라인 강의 기적’이 마셜플랜 덕분인 양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서독 경제의 재건에 투자하는 것이 마셜플랜의 주목적은 아니었다. 당시 독일 경제가 회복되는 데는 이 원조보다 독일 본래의 잠재력이 훨씬 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독일의 1948년 불변가격 자본 스톡은 전시의 파괴를 제하고도 1936년보다 10퍼센트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독일 내에서 1930년대 말 이래 있은 투자 덕분이었다. (240쪽)

목차

목차
책머리에
1장 서유럽 문화적 요소들: 그리스-로마의 유산, 서유럽 봉건제, 절대왕정
2장 독일의 중세와 근대 초기
3장 독일 지역의 농촌과 도시
4장 프로이센의 독일 통일 운동
5장 19세기 독일의 공업화
6장 제국 통일의 완성
7장 두 차례의 세계 대전
8장 2차 대전 이후의 독일
9장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 가문의 재산으로 출발하다
10장 헝가리: 전투적이며 좀처럼 굴하지 않는 민족의 나라
11장 체코: 강대국 그늘에서 천 년을 버티다
12장 폴란드: 우여곡절의 나라
13장 러시아: 공룡 같은 차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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