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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영어는 없었다 영어와 프랑스어의 언어전쟁

김동섭 저 | 책미래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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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5134314 / 224쪽 153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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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1066년부터 1399년까지 영국 왕의 모국어는 프랑스어였고, 영국의 법원에서는 17세기 중반까지 프랑스어가 사용되었다. 영어는 어떻게 프랑스어의 영향에서 벗어나 국제어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는가? 영어와 프랑스어가 제국의 운명을 걸고 격돌한 언어 전쟁 이야기

왜 영국 왕들은 300년 이상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을까?
왜 영국의 법원에서는 17세기 중반까지 프랑스어가 통용되었을까?
이 책은 중세 영국과 프랑스를 배경으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을 언어 전쟁의 관점에서 풀어쓴 인문학 책이다. 영어가 프랑스어의 지배에서 어떻게 벗어나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지 그 과정을 다루고 있다.

중세 서양사에서 간단히 언급되는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 하지만 그는 영국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정복 왕이었다. 이민족의 정복은 정복자의 언어가 들어오면서 시작되고, 피정복민의 언어가 다시 살아날 때 끝이 난다. 중세 영국에서 정복자의 언어는 프랑스어였고, 피정복자의 언어는 영어였다. 영어에서 ‘얼굴’을 의미하는 face가 순수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 차용어라는 사실은 두 언어의 지배 관계가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이다. 또한 이 책은 왜 영어에는 기르는 가축 이름과 먹는 고기의 이름이 다른지 그 이유를 알려준다.

언어의 교류만큼 문화적인 사건은 없다. 그런 점에서 중세 영국 왕들이 300년 이상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큰 문화적 사건이었다. 이 책은 영어가 지금처럼 국제 공용어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 어떤 질곡의 순간들을 지나왔는지 주요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 그리고 영어에 들어간 수많은 프랑스어 어휘들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저자 소개

김동섭(金東燮)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나와 프랑스 Limoges 대학에서 석사, Paris 5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 이래 수원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에서 프랑스어학, 신화학, 문화학, 라틴어 등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까지 펴낸 책으로는 《신화의 이해》, 《언어를 통해 본 문화 이야기》, 《불어사》, 《서양 중세의 삶과 생활》, 《이름을 갖고 싶어》, 《베이비부머의 추억일기》 등이 있고, <노르망 방언이 영어에 미친 언어학적 영향들에 관한 연구>(프랑스문화예술연구, 2015년, 봄호, 51집)를 비롯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왜 영국 왕들은 300년 이상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을까? 왜 영국의 법원에서는 17세기 중반까지 프랑스어가 통용되었을까? 이 책은 중세 영국과 프랑스를 배경으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을 언어 전쟁의 관점에서 풀어쓴 인문학 책이다. 영어가 프랑스어의 지배에서 어떻게 벗어나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지 그 과정을 다루고 있다. 중세 서양사에서 간단히 언급되는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 하지만 그는 영국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정복 왕이었다. 이민족의 정복은 정복자의 언어가 들어오면서 시작되고, 피정복민의 언어가 다시 살아날 때 ... 왜 영국 왕들은 300년 이상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을까? 왜 영국의 법원에서는 17세기 중반까지 프랑스어가 통용되었을까? 이 책은 중세 영국과 프랑스를 배경으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을 언어 전쟁의 관점에서 풀어쓴 인문학 책이다. 영어가 프랑스어의 지배에서 어떻게 벗어나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지 그 과정을 다루고 있다. 중세 서양사에서 간단히 언급되는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 하지만 그는 영국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정복 왕이었다. 이민족의 정복은 정복자의 언어가 들어오면서 시작되고, 피정복민의 언어가 다시 살아날 때 끝이 난다. 중세 영국에서 정복자의 언어는 프랑스어였고, 피정복자의 언어는 영어였다. 영어에서 ‘얼굴’을 의미하는 face가 순수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 차용어라는 사실은 두 언어의 지배 관계가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이다. 또한 이 책은 왜 영어에는 기르는 가축 이름과 먹는 고기의 이름이 다른지 그 이유를 알려준다. 언어의 교류만큼 문화적인 사건은 없다. 그런 점에서 중세 영국 왕들이 300년 이상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큰 문화적 사건이었다. 이 책은 영어가 지금처럼 국제 공용어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 어떤 질곡의 순간들을 지나왔는지 주요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 그리고 영어에 들어간 수많은 프랑스어 어휘들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출판사 서평 역사 여행은 흥미롭다. 특히 유럽의 중세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서유럽 역사의 전면에 자주 등장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의 패자 자리를 놓고 자주 충돌했는데, 그 경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이 1066년에 잉글랜드를 정복하는 역사적 사건에서 두 나라의 경쟁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경쟁 관계를 언어 전쟁이라는 돋보기로 보고 있다.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지금부터 1,000년 전 브리튼 섬에서 고작 100만 명밖에 사용되지 않았던 영어가 어떻게 지금처럼 무려 15억 이상의 언어 사용자를 가진 국제 공용어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어떻게 영원한 라이벌 프랑스어의 영향에서 벗어났는지 여러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양국의 복잡한 관계가 11세기 중반에 있었던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에서 비롯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당시 영국에는 앵글로-색슨 왕조가 들어서 있었는데, 윌리엄 공의 침략을 받아 프랑스 계통의 왕조가 들어서게 된다. 저자는 이 사건이 정치적인 사건인 동시에 문화적인 침략을 알리는 시발점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노르만 정복 이후 영국 왕들이 무려 333년 동안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사용하는 영국 왕실의 문장이 프랑스어로 쓰여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영어와 프랑스어의 애증 관계는 신선한 충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의 정통성을 대변하는 얼굴이자, 그 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보물창고이다. 이 책은 영어에 차용된 많은 프랑스 어휘들이 양국 간에 있었던 역사적·문화적 교류의 증거라고 독자들에게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언어의 운명도 개인의 인생처럼 위기의 순간과 몰락의 순간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어는 위기의 순간을 기회의 순간으로 바꾸었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영국 왕들이 333년 동안 프랑스어를 사용하던 시기에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영어가 지금처럼 국제 공용어가 되기까지 겪은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저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프랑스어의 매력에 푹 빠져 대학 시절을 보내고 프랑스 리모주Limoges대학에서 석사를 마쳤으며, 파리5대학(파리 데카르트대학)에서 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수원대학교 프랑스어과에서 프랑스언어학, 문화인류학, 신화학, 라틴어 등을 강의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중세 영국사와 프랑스사에 관심이 많아져, 프랑스어와 영어의 역사 연구에 매진하며 역사를 언어 교류의 시각으로 조망한 책을 쓰고 있다. 언어의 역사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된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를 비롯해 《신화의 이해》, 《언어를 통해 본 문화 이야기》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불어사》, 《서양중세의 삶과 생활》이 있다.

책 속에서

영국은 입헌군주국이다. 여왕이 국가의 원수이며 왕실에는 왕실을 상징하는 공식 문장(The Coat of Royal Arms)이 있다. 이 왕실 문장에서 우리는 이 책에서 다루려는 영국과 프랑스의 각별한 언어적 인연에 대한 단초를 찾으려고 한다.
- p,20

윌리엄의 영국 정복은 문화적으로는 프랑스 문화의 유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정치적으로는 노르망디의 법률과 행정 제도가 영국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어로 의회를 의미하는 Parliament는 고대 프랑스어로 ‘말’, ‘연설’을 의미하는 Parlement에서 만들어졌으며, 법원과 감옥을 의미하는 Justice와 Prison은 두 언어에서 철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 p.45

그는 아버지에게 칼을 들이댄 ‘나쁜 자식’, 형제의 왕위를 탐냈던 ‘나쁜 형제’, 아내보다는 남자들에게 관심이 더 많았던 ‘나쁜 남편’, 그리고 영국보다 프랑스와 성전에 더 관심이 많았던 ‘나쁜 국왕’이라는 평을 듣고 있지만 생전에 리처드의 인기는 대단했다.
- p.93

현대 프랑스어에는 “Comment allez-vous?”라는 인사말이 있다. 영어로 직역하면 “How do you go?”인데, 사실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다. 이 인사말은 고대 프랑스어 시기에 “Comment faites-vous?”로 사용되었다. 이 말을 영어로 옮기면 바로 “How do you do?”가 된다. 수세기 동안 프랑스어의 지배를 받은 영어에 지금도 프랑스식 인사말이 남아 있다.
- p.102

목차

목차
들어가면서
1. 윌리엄 공 영국을 정복하다
영국 왕실의 문장, ‘신과 나의 권리’
1035년, 서자 윌리엄 노르망디 공이 되다
1066년, 윌리엄 공 영국 정벌에 나서다
비운의 왕 헤롤드, 헤이스팅스에서 생을 마감하다
윌리엄의 정복, 바이외의 태피스트리에 남다
최후 심판의 날, 둠즈데이북
노르망디의 제도, 영국에 수입되다
2. 프랑스어, 영국 왕들의 모국어가 되다
영어, 4백년간 긴 동면에 들어가다
중세 영국은 이중 언어의 사회였는가?
가축을 기르는 자와 먹는 자
정복 이전의 영어, 룬 문자
윌리엄의 정복, 영어의 철자 체계를 바꾸어 놓다
현대 영어와 프랑스어, 철자는 같지만 발음이 다르다
헨리 2세, 광활한 플랜태저넷 제국을 건설하다
알리에노르, 프랑스의 왕비에서 영국의 왕비로
영국 왕실의 왕비들
헨리 2세의 왕자들
“버터로 되어 있어도 지킬 수 있다!”
1215년, 존 왕 대헌장에 서명하다
대헌장, 800년을 맞이하다
3. 백년전쟁, 영어와 프랑스어의 전쟁
에드워드 1 세, 영국을 깨우다
에드워드 3세, 백년전쟁을 일으키다
적국의 언어, 프랑스어를 배워라
1340년, 에드워드 3세 프랑스어 서한을 필립 6세에게 보내다
“사념(邪念)을 품은 자에게 화가 있으라!”
백년전쟁 중 언어의 변화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적군의 언어를 배워라
에드워드 3세, 칼레 시민에게 영어로 연설을 하다
리처드 2세,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마지막 왕
헨리 4세,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최초의 왕
프랑스어의 몰락
Law French , 17세기까지 존속하다
4. 영어, 동면에서 깨어나다
백년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했다면?
영국, 칼레를 잃고 대양으로 나아가다
왜 프랑스에는 여왕이 없을까?
엘리자베스 1세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다
영어, 셰익스피어의 언어로 재탄생하다
영어, 국제 공용어의 틀을 잡아가다
숙명의 라이벌 프랑스를 제압하다
빅토리아 여왕, 영어를 국제 공용어에 올려놓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아직도 노르망디 공
다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
5. 프랑스어의 흔적들
프랑스, 영국에 졌지만 영어에 프랑스어를 남기다
영어에 남아 있는 프랑스어
영국의 대학은 프랑스의 중학교?
프랑스어를 알면 영어를 이해할 수 있다
영어에서 사라진 고유어
영어에 차용된 프랑스 어휘들
글을 마치면서
중세 영국과 프랑스 왕가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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