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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신종석 저 | 청어 | 201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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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8603762 / 272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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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일연의 삼국유사 후 700년, 춘원의 원효대사 후 70년, 2016 새해 환생한 원효! 삶과 죽음을 벗어난 영원한 자유인 원효가 환생한 까닭은? 그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았는가? 왜 중국의 역대 선지식들은 원효에게 칭송을 아끼지 않았는가?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평범하면서도 엄청난 진리를 일깨워준 고승대덕 원효. 전생(前生)과 이생(生)을 넘나들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그의 인간적 진실! 어릴 때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늦깎이 소설가 신종석은 등단 후 무엇을 쓸 것인가를 갈망하다.... 일연의 삼국유사 후 700년, 춘원의 원효대사 후 70년, 2016 새해 환생한 원효! 삶과 죽음을 벗어난 영원한 자유인 원효가 환생한 까닭은? 그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았는가? 왜 중국의 역대 선지식들은 원효에게 칭송을 아끼지 않았는가?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평범하면서도 엄청난 진리를 일깨워준 고승대덕 원효. 전생(前生)과 이생(生)을 넘나들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그의 인간적 진실! 어릴 때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늦깎이 소설가 신종석은 등단 후 무엇을 쓸 것인가를 갈망하다. 꼭 무엇에 홀린 듯 꼭두새벽 금정산 좌선바위(미륵봉)에 올라갔다. 국내 최대의 금정산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언제? 누가? 어떻게? 왜 쌓았을까? 청소년시절부터 50년 동안 품었던 의문이 마치 알라딘이 마법의 램프를 열듯 천삼백 년 전 상황들이 연기처럼 피어올랐고, 작가는 눈앞에 펼쳐진 역사를 좌선바위에 앉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 그럼, 소설의 서술을 한번 보자. 원효와 의상은 왜구(倭寇) 십만이 황산강(黃山江 낙동강)을 타고 총공격을 준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금정산성호국대법회(金井山城護國大法會)를 열어, 50리 산성을 쌓고 인력과 자금을 조달할 계획을 세운다. 거량산(居梁山)이란 이름을 금정산(金井山)이라 바꾸고 산의 지기부터 다졌다. 금정산성호국대법회에 참석하여 자금이나 노동력을 기부하는 사람에게는 극락을 보장한다고 선언한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구름같이 몰려왔다. 해동원효척반구중(海東元曉擲盤求衆)이라 적은 소반을 던져 당나라 대중의 목숨을 구하고, 이를 목격한 천명의 대중이 원효에게 가르침을 받아 삽량주 천성산(千聖山)에서 992명이 일시에 성불하고, 여덟 명은 달구벌 팔공산(八公山)에서 득도하지 않았는가. 그런 해동원효가 극락을 보장한다면 신라뿐만 아니고 당나라에서도 돈을 싸들고 올 일이 분명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좌선바위 꼭대기에 지금도 뚜렷이 남아있는 장대(將臺)의 흔적과 구전으로 전해오는 원효 스님의 영웅담. 범어삼기(梵魚三奇) 중 하나인 원효석대(元曉石臺와 자웅석계(雌雄石鷄). 청룡동의 지명과 마을 노인들이 지칭하는 용바위(일명 無名岩.) 작가는 금정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금샘과 원효 스님의 영웅담을 열변을 토해 설명했지만, 모두들 황당무계한 호랑이 담배 먹던 이바구로 치부했다. 마침 기회가 있어 신문에 범어사 창건 신화 금샘을 발표했다. 금정산성을 쌓고 백성을 구한 것뿐만 아니고 한발 더 나아가,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엄청난 진리를 일깨워준 천삼백 년 전 원효 스님의 인간적 이야기들을 꾸며 독자에게 들려주기로 마음먹었단다. 소설에서는 끊임없이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을 통한 원효의 삶을 불교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삼국시대, 내로라는 학자들과 고승대덕들은 앞다투어 당나라에 유학했지만, 원효는 이 땅에서 깨달음을 얻어 당(唐)의 선지식(善知識)에게 큰 영양을 주었고, 해동원효(海東元曉)란 칭송을 받았다. 그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곳에서 하심(下心)으로 마음의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단 여섯 글자 “나무아미타불”이란 절대 진리를 대중에게 일깨워주었고, 소통과 나눔으로 화합이란 어우러짐을 만들어냈다. 잘 알다시피 이는 민족통일의 큰 밑거름이 된다. 끊임없이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며 소통과 나눔으로 화합이란 조화를 일깨워준 한 성인(聖人)의 오랜 이야기들을 인간적 진실의 개연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다한 흔적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저자 소개

1954년 겨울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산을 좋아했고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
젊은 시절 백련암에서 철야정진 삼천 배를 하자,
성철 스님께서 법명 佛照를 주셨다.
2004년 가을이 끝날 무렵,
신춘문예 공고를 보고 불현듯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소설가는 쉰 살 늦깎이에겐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2009년 여름 밀양 정각산으로 들어가
벼랑 끝 움막에서 소설을 쓰고 또 썼다.
천우신조로 2010년 《부산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중복」(필명 신선)이 당선되었다.
소설가가 되고 무엇을 쓸 것인가를 갈망하다
금정산 곳곳에 묻힌 천삼백 년 전 원효 스님의 발자취를 발견하고,
장편소설 『원효』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중 일부를 2012년 《부산일보》에
범어사 창건 신화 「금샘」으로 발표했다.

E-mail: bshin108@hanmail.net 

머리말

‘작가의 말’

나는 어릴 때부터 산을 좋아해, 지금도 시간만 나면 산을 찾는다. 꼭두새벽, 좌선바위(미륵봉) 꼭대기에 턱을 괴고 앉아 어슴푸레한 금정산을 내려다본다. 국내 최대의 금정산성이 새벽하늘에 둘레 18.8km의 마루금을 그리기 시작하자, 바다 건너 대마도도 한눈에 들어온다.
백두산 천지 둘레 14.4km보다 더 긴 이 산성을 언제, 누가, 왜 쌓았을까? 청소년 시절부터 나에겐 엄청난 화두였다. 역사책과 대백과사전을 뒤적여 봐도, 삼국시대 쌓았던 것으로 추정하며, 임진왜란 후 숙종 29년에 무너진 산성을 복원했다는 기록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 땅에서 대마도까지는 마라톤 거리보다 조금 긴 49.5km에 불과하다.
소설가가 되고 찾은 금정산은 할 말이 많았다는 듯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알라딘이 마법의 램프를 열 듯 천삼백 년 전 상황들이 연기처럼 피어올랐고, 나는 눈앞에 펼쳐진 역사를 좌선바위에 앉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
그럼, 소설의 서술을 한번 보자.
원효와 의상은 왜구(倭寇) 십만이 황산강(黃山江, 낙동강)을 타고 총 공격을 준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금정산성호국대법회(金井山城護國大法會)를 열어, 50리 산성을 쌓고 인력과 자금을 조달할 계획을 세운다.
거량산(居梁山)이란 이름을 금정산(金井山)이라 바꾸고 산의 지기부터 다졌다. 지네 형국인 왜(倭)를 쪼는 듯한 남쪽 봉우리를 닭 한 쌍의 쌍계봉(雙鷄峰)으로, 동쪽 봉우리는 닭이 운다고 계명봉(鷄鳴峰)이라 명명하고, 꼭대기에 자웅석계(雌雄石鷄)란 암수 닭 모양의 바위를 깎아 왜의 지기를 다시 한 번 더 쪼았다. 그리고 금정산성호국대법회에 참석하여 자금이나 노동력을 기부하는 사람에게는 극락을 보장한다고 선언한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구름같이 몰려왔다.
해동원효척반구중(海東元曉擲盤求衆)이라 적은 소반을 던져 당나라 대중의 목숨을 구하고, 이를 목격한 천 명의 대중이 원효에게 가르침을 받아 삽량주 천성산(千聖山)에서 992명이 일시에 성불하고, 여덟 명은 달구벌 팔공산(八公山)에서 득도하지 않았는가. 그런 해동원효가 극락을 보장한다면 신라뿐만 아니고 당나라에서도 돈을 싸들고 올 일이 분명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좌선바위 꼭대기에 지금도 뚜렷이 남아있는 장대(將臺)의 흔적과 구전으로 전해오는 원효 스님의 영웅담. 범어삼기(梵魚三奇) 중 하나인 원효석대(元曉石臺)와 자웅석계(雌雄石鷄). 청룡동의 지명과 마을 노인들이 지칭하는 용바위.
나는 금정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금샘과 원효 스님의 영웅담을 열변을 토해 설명했지만, 모두들 황당무계한 호랑이 담배 먹던 이바구로 치부했다. 오히려 외국관광객들은 흥미를 가지고 아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작가는 고뇌했다. 바다 건너 일본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란 역사부터 왜곡하기 시작했고, 집요하게 우리 땅을 괴롭히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역사의 진실(眞實)을 알릴 수 있을까?
마침 기회가 있어 《부산일보》에 범어사 창건 신화 「금샘」을 발표했다. 금정산성을 쌓고 백성을 구한 것뿐만 아니고 한발 더 나아가,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엄청난 진리를 일깨워준 천삼백 년 전 원효(元曉) 스님의 인간적 이야기들을 모아 독자에게 들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소설에서는 끊임없이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을 통한 원효의 삶을 불교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이는 널리 사람과 만물을 이롭게 하는 단군의 홍익인간 이념과도 뜻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내로라는 학자들과 고승대덕들은 앞다투어 당나라에 유학했지만, 원효는 이 땅에서 깨달음을 얻어 당(唐)의 선지식(善知識)에게 큰 영양을 주었고, 해동원효(海東元曉)란 칭송을 받았다. 그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곳에서 하심(下心)으로 마음의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단 여섯 글자 ‘나무아미타불’이란 절대 진리를 대중에게 일깨워주었고, 소통과 나눔으로 화합이란 어우러짐을 만들어냈다. 잘 알다시피 이는 민족통일의 큰 밑거름이 된다.
부정할 수없는 이 사실들. 소설에서는 원효의 전생과 이생을 넘나들며 흥미진진하게 전개해나간다. 원효의 전생을 알면 요석 공주와 사랑, 설총의 아버지 원효를 쉽게 수긍하고 이해할 것이다.

끊임없이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며 소통과 나눔으로 화합이란 조화를 일깨워준 한 성인의 오랜 이야기들을 인간적 진실의 개연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다했다.
한때 삼천 배를 많이 한 공덕일까? 글쓰기를 갈망한 결과일까? 역사적 진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슬쩍 끼워 넣어 리얼하고 재미있게, 보다 친숙한 새밝이 원효 스님의 이바구들을 꾸며 독자에게 들려주게 되어 매우 기쁘다.
장편소설 원효를 탈고하고, 성철 스님께서 왜? 저에게 佛照란 법명을 주셨는지를 깨닫고 환희심 났다.

늦깎이 글쓰기에 격려와 조언을 주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 드린다.

목차

목차
작가의 말
1. 자유
2. 언약
3. 하심(下心)
4. 생사고(生死苦)
5. 대야성 탈환
6.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7. 신라의 영웅들
8. 사법계(四法界)
9. 금샘
10.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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