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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639248 / 400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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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신 없는 세계의 파국을 조망하는 웅숭깊은 시선 하나의 소우주로 창출된 텍스트를 통한 구원의 모색 길 없는 길을 따라 내딛는 어느 젊은 평론가의 사려 깊은 한 걸음… “나는 조형래를 사로잡고 있는 이 세대적 자의식에 압도되었다. (…) 이 순간 우리는 역사철학적 위기의식이 정신분석학과 몸을 섞는 장면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대담한 관능 앞에서 눈감지 않을 자신이 없다.” -신수정(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 조형래는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먹고 배설하는 신체로 회귀하라-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 신 없는 세계의 파국을 조망하는 웅숭깊은 시선 하나의 소우주로 창출된 텍스트를 통한 구원의 모색 길 없는 길을 따라 내딛는 어느 젊은 평론가의 사려 깊은 한 걸음… “나는 조형래를 사로잡고 있는 이 세대적 자의식에 압도되었다. (…) 이 순간 우리는 역사철학적 위기의식이 정신분석학과 몸을 섞는 장면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대담한 관능 앞에서 눈감지 않을 자신이 없다.” -신수정(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 조형래는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먹고 배설하는 신체로 회귀하라-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 자세히 보기」로 대중문화평론 부문에 당선, 이듬해 『문학동네』에 문학평론을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문학과 영화를 아우르며 다방면에 걸쳐 있는 관심사를 쉼 없이 좇아온 지 7년, 그의 첫 평론집을 묶어 낸다. 김훈과 김영하, 김연수, 박민규, 천명관, 김중혁에서부터 박솔뫼, 윤고은, 최진영에 이르기까지 가장 ‘동시대적’이라 할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 문학의 흐름과 그 안에서 새롭게 읽어야 할 문학의 지형을 담았다. ‘신 없는 세계의 비참’이라는 제목은 『팡세』의 제2장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이라는 소제목을 평론집의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변형한 것이다. “인간이 움켜잡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명제뿐”이며 “그러므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말한다. 삶과 죽음의 모든 원리를 포섭하는 우주 전체의 도저한 실재와 법칙 앞에 인간은 그 일부에 불과할 뿐 아무것도 아니다”라 말하는 저자는,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그 어떤 근거나 구원에 의지하거나 얽매일 수 없다는 것은 (…) 역설적인 의미에서 우리 스스로를 전례 없이 엄혹한 자유와 해방의 조건에 입지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파스칼이 말한 ‘비참’ 속에 ‘위대함’이 내포되어 있었듯, ‘비참’의 시각에서 인간을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위대함’의 흔적들을 읽어냈듯, 저자는 ‘비참’과 ‘위대함’이 맞물려 있는 세계의 이중적 구조를 직시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천착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그는 미로 속을 헤매는 가운데 각양각색의 텍스트, 특히 소설이 길잡이가 되어주었으며 “어떤 다른 언어로 환원되거나 치환될 수 없는 단독적인 사건이자 소우주로 창출된 텍스트”들의 인도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길을 만들어갈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1부 ‘파국과 파견 사이’에서는 정미경, 서하진, 정이현, 이홍, 최진영, 김영하, 김훈, 김애란, 김성중, 편혜영의 소설을 통해 탈-내면화된, 사이버네틱한 후기근대의 풍경과 파국의 부정성(否定性)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종말은 미래의 재해로부터 오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도래해 있거나 아직 미처 박두하지 않은 무엇이다. 그것은 시간성이 무효화된 현세의 미로 속에서 폭력이나 성장의 아이러니 등 갖가지 이유로 방황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주검을 사전에 목도하며두려움에 떠는 인간 자신의 모습 안에 선재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주검들을 애도하며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끝의 징후들을 언제나 간접적으로 예감하는 행위야말로, 파국 이후를 보고 또 대비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주검을 보는 일, 이것이 바로 아직 오지 않은 구원의 단초다. (「파국과 파견 사이」, 115~116쪽) 2부 ‘신 없는 세계의 비참’에서는 편혜영, 강영숙, 윤고은의 장편소설과 정용준의 장작품들을 통해 “어떤 실체도 없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인과에 의해 작용하지도 않는” 그림자의 실체에 다가가본다. 그것은 작품 속에서 보편성을 갖게 된 죄와 피가 빚어내는 파국의 모습으로, 벗어날 수 없는 ‘나 자신’의 모습으로, 지고의 사랑으로, 말해지지 않은/못한 말로 다루어진다.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령하는 밤」의 주인공들은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원위치로 회귀하는 것을 전제로 투어할 뿐 좀처럼 이주하거나 월경하지 않는다. 현전하는 무수한 외부의 이미지나 계기들과 조우하지만 자신의 원점으로 수렴되는 풍경으로 대할 뿐 그 핵심에 진입하는 것은 한없이 주저한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고 해서 그곳이 안주할 만한 중심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삶이라는 투어는 반복될 것이다. 자신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외부는 물론이거니와 내성으로 소행(溯行)하는 과정조차 종종 그 낯선 얼굴을 거듭 드러낼 것이다. 자신을 포함한 일체를 생소한 것으로 거리를 두고 대상화하는 자의식의 무한한 여정이 강영숙의 소설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렇게 완전한 대단원은 유예된다. 그렇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삶도,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도 우로보로스의 형상처럼 지속될 수 있다. (「투어의 파노라마」, 128~129쪽) 3부 ‘너의 얼굴로 돌아보라’는 천명관, 노희준, 정미경, 김중혁, 박민규, 김연수, 백영옥 등의 작품론을 모았다. 소설이라는 이야기의 미로 속에서 우리는 “고통과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전시하는 세태에 대한 거부 및 그에 대한 치유와 위로의 필요성”을 되새기거나, “스스로의 존재를 감당하는 자는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는 지극히 자명하고도 고독하기 그지없는 진실” 앞에서 어떤 삶의 방식을 가지고 갈 수 있을지 곱씹을 수 있다. 근대문학의 종언을 이야기하고 소설의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 관점이 지배적인 오늘날 “미학적 형식으로서의 소설 또는 이야기의 무한 증식이라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타진하는 일”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고찰 역시 소설이라는 장르가 어떤 비전을 제시해나갈 것인지 숙고해보게 한다. 그 이중삼중의 형해화된 형식들 속에서 “나는 누구이고 또한 무엇인가”에 대해 가능한 유일한 응답은 다름 아닌 “너의 얼굴로 돌아보라”는 것뿐이다. 물론 이에 응답한다고 해서 넘버의 무의미한 반복과 답습의 순환에 구애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응답하지 않을 수도 없다. 모든 개인은 너의 얼굴로 돌아보았을 때 비로소 자기가 되었다. 『넘버』의 너와 나를 추적하는 모험은 이와 같은 역설을 적나라하게 체현한다. (「너의 얼굴로 돌아보라」, 201쪽) ‘인타라망(因陀羅網)’을 인터로망(inter-roman)으로 오독해보자. 어떤 원인도 이유도 없이 닥친 당혹스러운 사태 앞에서 갑작스레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삶, 어떤 출구도 발견할 수 없을 그와 같은 악몽이 연쇄적으로 파급되어가는 인드라의 그물, 그것과 흡사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는 것일 터이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그물처럼 상호-교차하여 이루어지는 거대한 이야기의 우로보로스적 연쇄 속으로 밀어넣어진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난국에 봉착하게 되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바깥의 다시 또 그 이야기. 그 이야기의 그물망 사이의 무(無) 또는 아득한 간격 내부에서 헤매지 않을 수 없는, 시작과 끝이 도무지 구별되지 않는 이야기의 미로이다. 그렇다면 이 인터로망이야말로 박성원의 소설을 가리키는 가장 정확한 명명이 되지 않겠는가. (「소설이라는 이야기의 미로에 대처하는 세 가지 방법」, 233쪽) 4부 ‘기계의 이야기, 이야기의 기계’에서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과 [추격자]를 비롯해 시공과 차원의 월경, 텍스트 간 경계를 초월하는 소설 작품들을 분석한다. 월드와이드웹이라는 장치가 바꾸어놓은 이 시대 개개인의 감각과 일상이 손보미, 이상우, 김솔, 오한기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박민규 단편소설 「로드킬」과 이인화 장편소설 『지옥설계도』를 통해 세계의 형상의 감추어진 비의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엿볼 수 있다.
최진영 소설의 인물들은 그러한 자연이 환기하는 어떤 부분에 의존하여 일시적으로 행복하거나 또는 부지불식간에 불행과 죄를 나누어 가진다. 이러한 인간의 자연이 이 시대에 변경할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약육강식의 자연과 결정적으로 구별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최진영의 소설은 흔히 부정되지만 인간이 본유적으로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호부조의 자연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의 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행복과 불행을 나누어 갖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반사회적 상상력과 상호부조라는 간극」, 41쪽)
어떤 종언의 형식이 도래하더라도 삶은 계속된다. 이 점에서 기영의 ‘빛의 제국’, 그리고 남한산성에서의 농성이란 불요불급한 예외이다. 이와 같은 크로노스적인 시간, 유물론적 자연주의에 입각한 세계는 단지 오늘만을 허락한다. 그리고 그러한 예외조차 반복되는 오늘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들 모두가 회귀하게 될 종언 이후의 반복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은 역설적이다. 농성중의 임금도, 편력하는 기영도 실은 그와 같은 역설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시시각각 의식하고 있으므로, 방황한다. 하지만 어제, 내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의 전형적인 반복과 순환을 우리는 『빛의 제국』의 현미와 마리의 편력을 통해 비로소 발견할 수 있을 터이다. 그리고 『남한산성』의 무수한 개인들 또한 그러한 주박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주체’의 아이로니컬한 형상이 이 문제를 관통한다.
(「구명도생(苟命徒生)의 소설, 그 무상(無常)의 역설」, 45~46쪽)
오늘날 삶의 세목 하나하나에 구체적으로 반응하는 정념의 사람들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도 항상적으로 ‘파견 근무’의 계류 상태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이성적 인간들이 우세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태도가 「파견 근무」에 나타난 것과 같은 무기력, 무책임과 자기기만, 나아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단언컨대 남자에게 무죄의 확률을 박탈하거나 축소한 것은 바로 강과 마찬가지로 파견 근무의 계류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어하는 지금 여기의 압도적 다수이다.
(「휴양지에서 생긴 일」, 224쪽)
최근식도, 정수환도 이정에 관한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의 진실을 간직한 채 죽었으며 또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이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당사자는 그들 내부 비밀의 심연에 가닿을 수 없다. 나의 ‘이’와 너와 ‘이’ 간에 상쇄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했던 것처럼,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이정이라는 고유명사 사이에도 이미 죽음이 갈라놓은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벌어져 있다. 단지 그 주위를 돌며 애도하고 필사적으로 추측하는 것만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그 ‘가지 못한 길’, 가닿을 수 없는 아득한 거리를 초극하고자 하는 그들의 부질없을, 하지만 그토록 간절한 원무와 추측이야말로 살아남은 자들의 소관이다.
(「“우리는 원무(圓舞)를 추며 추측하지만, 비밀은 가운데 앉은 채 알고 있다”」, 351쪽)
그러므로 그저 희미한 가능성만이 중첩되면서 특별한 계기 없이 지속되기만 하는 크로노스적 시간 속에서 가능한 것은 텍스트의 내·외부를 넘나드는 영속적으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이며 또한 뭔가가 의외로 많고 동시에 없는 듯 있는 장소다. 내가 아는 누가 누구고 보고 싶은 무엇이 무엇인지, 결코 대답되지 못할 질문의 연쇄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과 텍스트의 구별 없이 부단히 이어지기만 하는 무작위적인 순환의 고리다. 저편 세계의 사태를 지금 여기의 ‘나’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분리하는 어떤 필연도 보장되지 않는 세계 속에서 ‘나’는 실로 편재하고 흘러가는 모든 사태에 연루되며 또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겨울의 눈빛」이라는 개별적 소설은 곧 세계의 전부 그 자체와 겹쳐지고 또 연결된다. 단지 그렇게 거듭 유위변전(有爲變轉)하는 세계 속에서 K시의 세 개의 극장 중 하나처럼 누군가에게는 부지불식간 그러나 반드시 구애되지 않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이 있을 뿐이다.
(「어떤 시작도 끝도 없는 장소」, 358~359쪽)
목차
책머리에
1부/ 파국과 파견 사이
고유명(固有名)의 포스트모던, 탈-내면화의 성장-정미경, 서하진, 정이현, 이홍의 소설
반사회적 상상력과 상호부조라는 간극-최진영 소설을 중심으로
구명도생(苟命徒生)의 소설, 그 무상(無常)의 역설-김영하의 『빛의 제국』과 김훈의 『남한산성』
파국과 파견 사이-파국의 부정성(否定性)에 관한 성찰
2부/ 신 없는 세계의 비참
죄와 피의 보편성-편혜영 장편소설 『재와 빨강』
투어의 파노라마-강영숙 장편소설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
운명의 수레바퀴-윤고은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
언어의 묵시록과 사랑의 현상학-정용준 소설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3부/ 너의 얼굴로 돌아보라
달변과 무언(無言)-천명관 장편소설 『고래』
너의 얼굴로 돌아보라-노희준 장편소설 『넘버』
리얼리즘의 리얼리즘-김종은 소설집 『부디 성공합시다』
휴양지에서 생긴 일-정미경 단편소설 「파견 근무」
주사위의 다면성-김중혁 장편소설 『미스터 모노레일』
소설이라는 이야기의 미로에 대처하는 세 가지 방법-박성원, 정한아, 박민규의 소설
세계의 어떤 개인도 결코 혼자일 수는 없으며 또한 그래서도 안 된다-김훈, 김인숙, 김연수의 소설
개인성의 자각으로부터 소설의 형식으로-백영옥, 염승숙, 윤이형, 최제훈의 소설
4부/ 기계의 이야기, 이야기의 기계
먹고 배설하는 신체로 회귀하라-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 자세히 보기
재앙의 시대, 자기(自己)라는 운명-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다시 읽기
폐허의 정령-월드와이드웹과 텍스트의 데이터베이스라는 물질적 기반에 의거하고 있는 소설들에 대하여
로봇은 휴머니티의 꿈을 꾸는가-박민규 단편소설 「로드킬」
종교 아닌 종교, 그 도상의 설계도-이인화 장편소설 『지옥설계도』
5부/ 우리는 원무(圓舞)를 추며 추측하지만, 비밀은 가운데 앉은 채 알고 있다
“우리는 원무(圓舞)를 추며 추측하지만, 비밀은 가운데 앉은 채 알고 있다”-이기호 단편소설 「이정(而丁)」 349
어떤 시작도 끝도 없는 장소-박솔뫼 단편소설 「겨울의 눈빛」
2ero?1conology / 제로(0)의 도상학-김중혁 소설집 『1F/B1』
상처받은 애착의 형식-백가흠 소설집 『힌트는 도련님』
그리고 여전히 “복수는 나의 것”-김경욱 단편소설 「염소의 주사위」
죽음에 이르는 삶-조경란 장편소설 『복어』
데이터베이스의 암흑지점-윤고은 소설집 『1인용 식탁』
나는 텍스트의 바다로 다이브한다-조현 소설집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때로 무연(無緣)은 인연보다 강하다-기준영 장편소설 『와일드 펀치』
다시, 대화와 반목으로-『젊은 도시, 오래된 성(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