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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이상훈 저 | 푸른역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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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6120643 / 328쪽 152 x 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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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뒤처졌던 신라, 어떻게 살아남았나 신라, 마지막까지 살아남다 4세기 말 백제는 안팎으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 392년 신라와 우호 관계를 맺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압?박했다. 이에 맞서 백제의 아신왕은 고구려 공격을 준비하며 병력과 말을 대규모로 징발했다. 그러나 잇따른 군역軍役을 고통스럽게 여긴 다수의 백제 백성들은 신라로 이주해버렸다. 399년,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왜·가야와 동맹을 맺은 백제가 삼국 연합군을 이끌고 신라를 침공했다. 대규모 공격에 수도 경주까지 포위당하고 말았다...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뒤처졌던 신라, 어떻게 살아남았나 신라, 마지막까지 살아남다 4세기 말 백제는 안팎으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 392년 신라와 우호 관계를 맺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압박했다. 이에 맞서 백제의 아신왕은 고구려 공격을 준비하며 병력과 말을 대규모로 징발했다. 그러나 잇따른 군역軍役을 고통스럽게 여긴 다수의 백제 백성들은 신라로 이주해버렸다. 399년,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왜·가야와 동맹을 맺은 백제가 삼국 연합군을 이끌고 신라를 침공했다. 대규모 공격에 수도 경주까지 포위당하고 말았다. 신라 내물왕은 급히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했다. 이듬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5만 명의 군사를 보냈고, 경주의 포위를 풀어주었다. 고구려군은 더 남하하여 가야 지역까지 밀어붙였다. 당시 동북아의 강자로 군림하던 고구려가 한반도 남부까지 진출한 것이다.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한 대가는 혹독했다. 내물왕은 아들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야 했다. 신라 영토에는 고구려군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자기 영토에 침입한 외적을 막지 못해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야만 했던 나라, 그 외국 군대가 자기 나라에 주둔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나라. 비참했다. 하지만 힘이 없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꼭 276년이 흘렀다. 자신을 공격했던 백제와 가야, 자신을 구원했던 고구려는 모두 지도에서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가장 약한 신라였다. 최후의 승자가 된 신라의 이야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자웅을 겨루던 삼국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시기였다.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드넓은 만주벌판을 호령했다. 백제는 활발한 대외교역과 높은 생산력을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하지만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열등했다. 군사, 경제, 외교, 교역,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뒤처졌다. 신라가 뒤처진 데에는 지리적인 환경도 큰 몫을 했다.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방어는 쉬웠지만 외부로 진출하기는 어려웠다. 동남쪽에 치우쳐 있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것도 항상 늦었다. 넓은 평야지대를 가지고 있지 않아 생산력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나당전쟁에서 승리했다. 《신라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는 고구려와 백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신라의 이야기다. 《전략전술의 한국사》(2014), 《나당전쟁 연구》(2012) 등의 저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동안 전쟁사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 이상훈(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연구교수)은 이 책에서 ‘신라는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례를 정리한다. 지도자의 리더십과 전략전술, 시대 배경과 정치 상황, 위기 대처와 극복 방법, 전투와 전쟁 방식 등을 살피면서 신라의 힘을 찾는다.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현대인들 역시 매일매일 삶이라는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이 전쟁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삼국을 통일하고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끈 신라의 힘 모든 면에서 군사적 관점이 우세한 국가를 병영국가兵營國家라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Harold Lasswell이 명명한 개념이다. 신라 또한 일종의 병영국가였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주로 전쟁사 중심으로 신라사회를 살폈다. 지도자의 리더십 병력이 적은 약자가 병력이 많은 강자와 대결할 경우 정면으로 붙어서는 안 된다. 승리는커녕 제곱의 비율로 패배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약자는 강자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강자의 힘을 분산시켜야 한다. 여기에 지도자의 리더십과 전략전술이 가미되면 약자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의 일이다. 당나라 소정방이 신라군이 약속한 합류 날짜를 어겼다면서 신라 장수의 목을 베겠다고 했다. 이에 김유신은 부당한 처우라며 반발했고, 부하를 살리기 위해 연합국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대장군(소정방)이 황산에서의 싸움은 보지도 않고 단지 기일에 늦은 것만 죄로 삼으려 하니, 나는 죄 없이 욕됨을 받을 수 없소이다. 반드시 먼저 당군과 싸운 후에 백제를 쳐부수겠소.” 김유신의 강력한 반응에 결국 소정방은 신라 장수의 죄를 없던 것으로 했다. 662년 1월, 소정방이 고구려 평양을 포위 공격하고 있었다. 식량이 떨어지자 당군은 연합국인 신라에 군량을 요청했다. 신라로서는 적지인 고구려를 가로질러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김유신이 나섰다. 고구려와의 국경인 임진강에 도달했으나 병사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배에 오르지 못했다. 김유신은 “제군들이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어찌 여기에 왔는가?”라 말하며 스스로 먼저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이를 본 병사들도 김유신을 따라 강을 건너 고구려 땅으로 들어갔고, 결국 당군에 군량을 성공적으로 전했다. 유능한 장수는 불리한 전황을 바꾸고 약한 전력이라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김유신은 유능한 장수였다. 솔선수범으로 병사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부하를 살리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충성을 유도해냈다. 김유신이라는 지도자의 존재는 신라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시의적절한 전략전술 운용 나당전쟁에서 신라의 기본적인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전략상 중요한 곳에는 중앙군을 집중하여 공격하고,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곳은 그대로 방치했다. 당군과의 전면전을 회피함으로써 신라의 군사력이 한번에 약화되는 것을 방지하다가 당군의 허점이 보일 경우에는 과감하게 공격에 나섰다. 당군에 비해 부족한 병력을 집중해서 운용하는 한편, 당군에게는 지방 성들을 하나하나 공략하도록 유도하여 병력의 분산을 강요했던 것이다. 나당전쟁이 교착상태에 있던 675년 9월, 신라는 설인귀의 상륙선단을 저지하고 매소성에 주둔해 있던 이근행 부대를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결국 당군은 서쪽의 토번吐蕃(현 티베트)이 세력을 확장하자 이를 문제 삼아 한반도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신라 지도부의 유연한 대처방식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군율의 탄력적 적용 군사조직을 운용하는 데 기본이 되는 것은 군령과 군율軍律이다. 군령은 실질적인 군대의 운용 및 통솔과 직결되는 지휘, 명령, 감독권 등을 말한다. 군율은 이러한 군령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신상필벌을 가하는 것이다. 662년, 당군의 요청으로 군량 수송을 위해 평양행 길에 나섰던 김유신은 무사히 평양 인근에 도달했다. 하지만 평양 주변으로 고구려군이 적지 않게 배치되어 있었다. 당군과 연락을 취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군량을 수송해 온 상황을 당군에게 알리고, 군량을 전달할 시점과 장소를 협의해야만 했다. 김유신은 보기감 열기를 불렀다. 열기의 관직인 보기감은 신라의 17관등 중 11등 나마에서 13등 사지에 해당하는 낮은 관등이었다. 하지만 김유신은 열기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자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 때문일까. 열기는 구근과 함께 10여 명을 거느리고 무사히 당군의 진영에 도착해 신라군의 상황을 알렸고, 열기 덕분에 신라군은 무사히 당군에 군량을 전달할 수 있었다. 신라로의 귀환 후 김유신은 문무왕에게 보고하면서 열기와 구근에게 8등 관등인 사찬의 직위를 주기를 청했다. 김유신과 신라군의 공로를 잘 알고 있는 문무왕조차 주저할 정도로 파격적인 대우였다. 그럼에도 김유신은 자신을 숙여 간절히 청했고, 문무왕은 허락해주었다.

저자 소개

경북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회교육학과(역사)에서 「羅唐戰爭 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의 가쿠슈인대학(學習院大學)과 중국의 베이징사범대학(北京師範大學)에서 수학하였으며, 대구보건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다. 현재 경북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경북대학교와 경상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공저로는 󰡔東アジア海をめぐる交流の歷史的展開󰡕(東方書店), 󰡔いくさの歷史と文字文化󰡕(三弥井書店)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나당전쟁의 종전배경과 신라의 역할」, 「나당전쟁의 군사적 원인과 신라의 전쟁준비」, 「신라의 군사 편제단위와 편성규모」, 「나당전쟁기 문두루 비법과 해전」, 「나당전쟁의 개전과 설오유 부대」, 「나당전쟁기 당의 병력 운용과 전후 수습책」, 「나당전쟁기 기벌포 전투와 설인귀」, 「당의 군사전략을 통해 본 나당전쟁기 매소성 전투」, 「나당전쟁기 당의 군사전략 변화」 등이 있다. 

목차

목차
책을 펴내며 _ 최후의 승자 신라
1장|이청득심以聽得心 _ 군사의 마음을 사로잡은 김유신, 신라의 힘
2장|고무격려鼓舞激勵 _ 가족보다 병사의 사기를 먼저 생각하는 리더
3장|간성난색姦聲亂色 _ 미신, 징조에 현혹되지 않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4장|초부득삼初不得三 _ 성장하는 신라, 삼국 상쟁의 시대로
5장|양두구육羊頭狗肉 _ 신라 수군의 성장, 울릉도 복속에서 삼국통일까지
6장|군계일학群鷄一鶴 _ 화랑 반굴과 관창, 신라의 디딤돌이 되다
7장|홍안소년紅顔少年 _ 신라의 청소년 집단 화랑,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8장|위국충절爲國忠節 _ 나라를 위한 희생에 보답하다
9장|과유불급過猶不及 _ 신라, 광역방어체계로 삼국통일 기틀을 다지다
10장|조아지사爪牙之士 _ 왕권의 점진적 강화
11장|해의포화解衣抱火 _ 김춘추, 호랑이 굴 고구려로 향하다
12장|화이부동和而不同 _ 당과 손잡은 신라, 새로운 물꼬를 트다
13장|기자감식飢者甘食 _ 배식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14장|노말지세弩末之勢 _ 신라의 최종병기 노
15장|고군분투孤軍奮鬪 _ 공격과 방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16장|만신창이滿身瘡痍 _ 부상자 처리, 병사의 사기 문제와 직결
17장|계명구도鷄鳴狗盜 _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병사를 신중하게 운용하다
18장|암중비약暗中飛躍 _ 군사기밀의 중요성
19장|말마이병?馬利兵 _ 신라의 병역 제도
20장|성기전극星旗電戟 _ 깃발, 부대의 상징
21장|고진금퇴鼓進金退 _ 신라의 부대 편성, 어떻게 이루어졌나
22장|읍참마속泣斬馬謖 _ 신라의 군율, 상황에 맞게 적용하다
23장|동상이몽同床異夢 _ 신라와 당, 서로 다른 꿈을 꾸다
24장|노마지지老馬之智 _ 포로를 활용하다
25장|건곤일척乾坤一擲 _ 설오유, 오골성전투로 나당전쟁의 초기 주도권 확보
26장|병불염사兵不厭詐 _ 문두루 비법, 신라 지휘부와 명랑법사의 합작품
27장|마부위침磨斧爲針 _ 곽무종의 일본행은 신라 수군의 끈질긴 공격 때문이다
28장|구밀복검口蜜腹劍 _ 오직 살아남는 데에만 집중하다
29장|천군만마千軍萬馬 _ 삼국통일 후 부대를 개편하다
30장|토사구팽兎死狗烹 _ 반란을 진압하고 왕권을 강화하다
31장|등하불명燈下不明 _ 경주에서 달구벌로의 수도 천도를 계획하다
32장|불비불명不飛不鳴 _ 대공의 반란, 누가 적인지 확인한 후 제압하다
33장|물극즉반物極則反 _ 사병의 강화, 신라 무너지다
책을 마치며_식민사관과 만선사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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