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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진리 비폭력 투쟁의 기원

원제 : Gandhi's Truth: On the Origins of Militant Nonviolence (1969년)

에릭 H. 에릭슨 저 | 송제훈 역 | 연암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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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054773 / 616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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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책속으로 추가 청소년기의 모한다스는 한때 자신의 유별난 성격에 대해 절망ㅡ후일 그의 반복적인 우울함의 원형이 되는ㅡ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어린 모니야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의식,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으리라는 높은 개연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임상적 관점에서 우리는 간디의 고백으로부터 그가 불합리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만 주목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하트마는 거기에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실험을 했다. 그가 수치심과 의심, 죄의식과 열등감을 강조한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이러한 표... 책속으로 추가 청소년기의 모한다스는 한때 자신의 유별난 성격에 대해 절망ㅡ후일 그의 반복적인 우울함의 원형이 되는ㅡ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어린 모니야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의식,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으리라는 높은 개연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임상적 관점에서 우리는 간디의 고백으로부터 그가 불합리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만 주목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하트마는 거기에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실험을 했다. 그가 수치심과 의심, 죄의식과 열등감을 강조한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이러한 표면적인 모습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고 생각된다) 것은 모두 그 실험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감정들에 도전했고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는 남다른 아이라면 그런 도전을 하기 마련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모든 아이가 그와 같은 도전을 한다. 다만 남다른 위대함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잃고 마는 것을 스스로 확증하며 간직할 수 있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신들을 시험하는 아이에게 그의 부모가 보여준 여유와 이해심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아이의 실험에서 이따금 엿보이는 사디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만만한 태도나 섬세한 분별력 같은 조숙함의 특질이 타고난 성격과 아직 맞물리지 못하고 있을 때 아이는 주도성과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쉽다. 그런 점에서 모니야는 부모를 잘 만난 것 같다. 어쩌면 그의 유일한 좌절은 너무 이른 시기에 자신만큼이나 고집이 센 소녀와 결혼을 한 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131쪽 모한의 13세와 15세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세 장의 사진이 있는데, 모니야의 이미지보다 이때의 모습이 마하트마 자신이 묘사한 청소년기의 모습에 (그리고 이 묘사에 토대를 둔 다른 사람들의 설명에) 더 잘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사진 속의 모한은 마하트마 자신이 이야기한 그 옛날의 소년보다 더 반듯하고 훨씬 말쑥한 모습이다. 바르지만 뻣뻣하지 않고, 수줍음이 많지만 소극적이지 않으며, 총명하지만 책에 파묻히지 않은, 의지가 굳지만 고집불통은 아닌, 감각적이지만 무르지 않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그것이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그런 소년을 누가 묘사할 수 있으며 누가 “분석”할 수 있겠는가ㅡ 우리는 그러한 소년과 아버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하트마는 사춘기의 혼란 속에서 아버지를 간병하면서도 자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역사학자와 정치학자들은 이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문제의 핵심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어떻게 한 사람을 위인인 동시에 신경증 환자로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데 필요한 독창성과 재능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은 한 젊은이가 다른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는 콤플렉스를 어떻게 다루었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는 보통 사람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양심(부모와 사회에 의해 내면화되는 개인의 의식으로, 프로이트는 양심의 근원인 초자아와 자아 사이의 긴장이 죄책감으로 표현된다고 보았다ㅡ옮긴이)에 대해 주로 기술했을 뿐, 비범한 인물들이 예외적이고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은 설명하지 않았다. (이것은 어쩌면 모세에 대한 프로이트의 내밀한 동일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는 꿈을 통해 무의식이 내적 콤플렉스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에 만족했지만, 그 자신의 꿈을 이해하게 해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그는 도덕성의 개념처럼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139쪽 마하트마는 자서전에서 그에게 큰 인상을 남긴 신화와 연극을 언급한다. 그중 어느 유랑극단이 공연한 종교극에서 “슈라바나가 양어깨에 걸머진 대나무 바구니에 눈먼 부모를 태우고 순례를 하는 장면”이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는 그러한 모습을 본받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속절없이 슈라바나는 숨을 거두고, “아들의 죽음 앞에 통곡하는 부모의 비통한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 장면에서 나온 곡조가 내 심금을 울렸고 나는 아버지께서 사주신 아코디언으로 그 곡을 연주하곤 했다.” 이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아버지보다 강해지고 싶다는 소망을 간디가 감정적으로 부정한 것이라는 해석을 하는 이도 있겠지만, 우리는 프로이트조차 오이디푸스의 주제는 의식의 차원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의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한 개인이 자신의 전 존재로 겪는 문제를 너무 쉽게 다루는 것이다. -147쪽 모한다스의 어린 신부는 성적 요구의 강도와 빈도, 만족도가 실제로 어떠했든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힌두교 문화에서 여자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모한다스는 자신의 은밀한 마술로 그녀를 끌어들이려 애쓰는 동안 난생 처음 (그리고 많은 이들의 판단으로는 평생) 만만찮은 상대를 만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고집과 존엄성은 약해질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결혼 초 그녀는 신체적으로 남편보다 강했을 뿐만 아니라 고집도 세서 글을 가르치려는 남편의 끈질긴 노력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훗날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지만 끝내 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했다. 피아렐랄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는 “말 한마디로 아픈 곳을 찌르는 데 천재적이었으며…… 언제든 그로 하여금 무력감을 느끼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피할 수 없는 희생의 삶에 조금씩 굴복하게 되었다. 샨케를랄이 노년에 접어든 그녀에게 좋은 옷을 입고 싶은 여자의 욕심이 생길 때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겁니다. 나머지 길은 다 잊어야죠.”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의 내밀한 결혼 생활에 대해ㅡ간디의 고백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조차ㅡ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가 마하트마의 고백을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은 아우구스티누스주의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150쪽 1888년 9월 모한이 배ㅡ당시에는 50일이 걸린ㅡ를 타고 영국으로 출발했을 때 그는 카티아와르 촌뜨기에 불과했다. 문화와 행정의 중심지로 가까이에 있는 아메다바드조차 그는 영국으로 떠나기 1년 전 대학 입학 자격시험을 응시하기 위해 가본 것이 처음이었다. 정부의 학비 지원을 받기 위해 포르반다르의 행정관을 만난 것이 그로서는 영국인과의 공식적인 첫 만남이었다. 사실 그는 영자신문을 읽어본 적도 없었다. 봄베이를 처음 구경한 것도 영국으로 떠나기 직전 유학에 대한 특별 허가를 받기 위해 그가 속한 상인 계급의 원로들을 만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의 당당한 태도는 원로들보다 오히려 모한 자신이 놀랄 만한 일이었다. 이것은 그에게 생존ㅡ이를테면 정체성의 생존ㅡ의 문제였던 것이다. 당시 그의 내면에서는 앞선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새로운 기회에 눈을 뜨기 위해서는 반항이 오히려 더 높은 차원의 순종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 내면의 목소리가 힘을 얻도록 하기 위해 그는 우선 중요한 금기들을 지키기로 다짐했다. 모든 금기들 중에서도 육식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겨진 것은 육신의 생존과 정신의 파멸이라는 양면성의 중심에 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178쪽 언뜻 보아도

저자 소개


인간의 심리사회적 발달 8단계와 정체성 위기라는 개념으로 잘 알려진 에릭슨은 1902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생부가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유대인 소아과 의사와 재혼하면서 성이 홈부르거로 바뀌었으며, 유대인의 특징을 발견할 수 없는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중등 교육을 마친 후 미술을 공부하려다 포기하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독서와 사색에 몰두했다. 비엔나의 정신분석학연구소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의 도움으로 1927년부터 6년간 정신분석을 연구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동 정신분석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 공식적인 학위가 없었음에도 UC 버클리에서 종신교수직을 제안 받았고 1960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이밖에도 여러 대학과 병원, 연구소에서 임상 치료와 연구를 병행했으며 『간디의 진실』로 1969년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첫 저서인 『유년기와 사회』 이후에도 그는 『청년 루터』, 『정체성: 청년과 위기』, 『생애 주기의 완성』 등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심리학의 관심을 인간의 심리성적 발달에서 심리사회적 발달로 돌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으며, 심리학을 문화인류학과 역사학에 접목시키는 시도로 이후 심리학의 연구방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대 발달심리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는 1994년 사망했다.

역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 원묵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 개인의 삶과 정신의 성장이 기록된 책을 관심 있게 읽고 옮기고 있으며, 인간의 심리적 발달에 대한 주제로 그 관심을 넓히고 있다. 『유년기와 사회』, 『아버지의 손』(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내 이름은 이레네』, 『러셀 베이커 자서전: 성장』(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 ,『옥토버 스카이』등을 번역했다. 

책 속에서

P.23 : 인도의 진면목을 보고 싶은 이는 임페리얼 뉴델리 같은 최고급 호텔을 빠져나와야 한다. 올드 델리(Old Delhi)에서 마주치는 인파는 아시아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범람하듯 쏟아져 나와 빠른 물살처럼 지나간다. 한 시간만 걸어보면 체형이 우아하거나 구부정한, 활력이 넘치거나 병이 든 모든 부류의 남녀노소를 마주치게 된다. 누구든 익명의 군중을 잠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건강상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으며, 관광객들이 다니는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거의 적대적이라 할 만한 생물학적 환경과 관습을 목격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인도인들의 개인적, 국가적 운명을 다시 들여다볼 것이고, 어떤 이는 간디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영국인들이 떠난 이후 생겨난 진공 상태에서의 혼란(또는 누군가의 표현대로라면 “격동”)을 주목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인도인들의 따뜻하고 쾌활한 표정과 친절한 몸짓만으로도 이방인은 다시 숨을 고르게 되며, (이방인이라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노상 방뇨와 배변조차 인도인들의 순박함을 보여주는 증거로 보이게 된다. 우리는 인도에 도착하기 며칠 전 갈릴리 호수에서 수영을 했고 밤에는 호숫가를 산책했다. 그곳은 몇 마디 말로 어부들의 마음을 움직인 한 남자의 흔적이 완고한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세대를 내려오며 기억되는 곳이다. 나는 그 갈릴리 사람과 델리에 묻힌 깡마른 인도의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유사성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두 사람의 공통점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현존성일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조용히 귀 기울이는 이에게만 들리는 강력한 침묵의 현존이다.
 
P.71 : 간디는 『자서전』 또는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로 불리는 책의 집필을 1925년에 시작했다. 그 즈음 간디는 인도의 일부 소작농과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남아프리카에 체류하는 인도인들에게 지도자로 부상해 있었다. 사실 그는 이미 최초의 전국적 시민 불복종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무렵 일종의 정체기를 맞고 있었다. 지도자로서의 첫 시기가 1922년 아메다바드의 재판으로 일단락된 것이다. 그는 6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감옥에서 보낸 기간은 이보다 훨씬 짧았다. 수감 중 급성 충수염에 의한 입원으로 가석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결코 가벼운 형량을 원치 않았던 그가 6년형이라는 선고를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구속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이 때문에 원래의 형기가 끝날 때까지 스스로를 영국의 죄수로 여겼다고 추정할 만한 근거가 있다. 이 시기에 그는 영국 정부에 대한 공격을 눈에 띄게 자제했으며 대신 인도의 내부 여건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수감 중에 이미 인도의 민중이 시민 불복종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며 자신이 이끈 위대한 과업을 사실상 중도에 철회했다. 이로써 그는 이중의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준비도 되지 않은 봉기로 이끌었다는 비난과,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 나기도 전에 그들을 저버렸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이 시기에 그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1921년 11월의 봄베이 폭동 직후 C. F. 앤드루스는 그를 “마치 죽음의 골짜기를 막 지나온 사람처럼 초췌하고 야윈” 모습으로 묘사했다.
 

목차

목차
옮긴이의 글
서문
프롤로그 사건의 반향
제1장 인도: 첫 만남
제2장 아메다바드의 세미나
제3장 규정하기 어려운 사건
제1부 질문
제1장 증인들
1. 자서전 2. 생존자들
제2장 맞수
제3장 네 명의 노인들
제2부 과거
제1장 유년기와 청소년기
1. 모니야와 어머니 2. 모한과 아버지 3. 저주 4. 모한다스와 나쁜 친구
제2장 서약에서 소명까지
1.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2. 소액사건 법원의 아르주나 3. 유일한 사람
제3장 가장(家長)
1. 중요 인물 2. 보잘것없는 인물 3. 평화의 도구 4. 선언
제3부 사건
제1장 사적인 편지
제2장 예언자
1. 왜 아메다바드여야 했는가? 2. 4중의 파탄 3. 대결 4. 정면 돌파
제3장 동지들과 반대자들
1. 사라바이 남매 2. 샨케를랄 반케르 3. 마하데브 데사이 4. 아들들과 추종자들
제4장 사건의 재구성
제5장 여파
1. 사티아그라하 운동가와 군인 2. 환자와 마하트마
제4부 진리의 지렛대
제1장 종교적 인간
제2장 도구
1. 전략 2. 의식(儀式) 3. 통찰
에필로그 바닷가를 향한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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