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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6805 / 234쪽 135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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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난중일기』에서 인간 이순신을 만난다! 우리에게 『난중일기』는 무엇인가? 나라를 구한 영웅의 고군분투와 고뇌로 가득 찬 전쟁 일기. 그러나 이는 어쩌면 후대 사람들의 일방적인 생각이 아닐까. 『난중일기』는 어느 조선 장수의 일과와 행적이 기록된 사료(史料)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감정이 솔직하게 담겨 있는 내밀한 일기장이기도 하다. 단아하고 진중한 성격의 이순신은 언제나 자기 일에 성실했고 매사에 철저히 대비했다. 그리고 조선 수군 장수로서 자신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했다. 그러했기에 이순신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난중일기』에서 인간 이순신을 만난다! 우리에게 『난중일기』는 무엇인가? 나라를 구한 영웅의 고군분투와 고뇌로 가득 찬 전쟁 일기. 그러나 이는 어쩌면 후대 사람들의 일방적인 생각이 아닐까. 『난중일기』는 어느 조선 장수의 일과와 행적이 기록된 사료(史料)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감정이 솔직하게 담겨 있는 내밀한 일기장이기도 하다. 단아하고 진중한 성격의 이순신은 언제나 자기 일에 성실했고 매사에 철저히 대비했다. 그리고 조선 수군 장수로서 자신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했다. 그러했기에 이순신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또 조선을 지킬 수 있었다. 이순신 역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꽃의 아름다움을 두 눈에 담는 감수성 풍부한 사람이었고, 공정하지 못한 처사에 분개하며 자신을 모함하는 이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또한 전쟁터에서 가족을 그리며 남몰래 눈물짓고, 달빛 아래 잠 못 이루고 번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이 모든 내면의 감정을 일기에 적었다. 새로 읽는 『난중일기』 _주제별로 재분류한 7년의 전쟁 기록 『난중일기』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이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쓴 일기다. 이 일기가 처음부터 『난중일기』라는 제목으로 집필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일기가 쓰인 연도에 따라 ‘임진일기’(壬辰日記), ‘계사일기’(癸巳日記)처럼 그 해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1795년 정조의 명으로 ‘이충무공전서’를 간행할 때, 이순신의 일기를 수록하면서 ‘난중일기’라는 이름이 비로소 붙었다. 1592년 6월부터 12월까지와 1596년 10월부터 1597년 3월까지 등 더러 일기가 빠진 때도 있지만, 이순신은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바다에 나가 왜적과 전투를 치른 날도, 왜적이 쏜 총탄에 맞아 부상을 당한 날도, 감옥에서 풀려나온 날도, 아들의 부음을 들은 날도 일기 쓰기를 멈추기 않았다. 이순신은 왜 일기를 썼을까? 추측건대, ‘전쟁’이라는 너무나도 비일상적인 상황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일기는 말 그대로 ‘그날’의 기록이므로 이순신은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잊히기 전에 최전선에서 몸소 겪은 일을 일기에 적었다. 『난중일기』 덕분에 우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7년간의 긴 전쟁의 실체를 실상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으며, 왜적을 물리치고 조선을 지킨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인물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이순신의 기록정신은 기려져야 할 것이다. 『난중일기』는 마치 어느 수군 장수의 공무일지 같기도 하다. 일기의 많은 부분이 그날 어떠한 공무를 보았는지, 무슨 훈련을 했는지, 부하 누가 다녀갔는지, 조정이나 다른 군영에서 온 공문의 내용은 무엇인지 등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의 내면이 솔직하게 드러난 부분도 많다. 동시대 다른 문인의 일기보다 더욱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글도 여러 편이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의 공적인 면모뿐 아니라 사적인 면모, 즉 내밀한 자아까지 모두 담고 있는 이순신 개인의 ‘일기’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이순신의 『난중일기』 중 일부를 가려 뽑아 번역한 책이다. 선별한 일기를 주제에 따라 분류하고 장마다 제목을 붙였다. 1장부터 3장까지는 공적인 인간, 즉 장수로서 전쟁에 대비하고 직접 왜적을 물리치는 이순신의 모습이 담긴 일기가 들어 있다. 4장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조선과 조선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전쟁의 참상을 보여 주는 일기를 수록했다. 5장과 6장에는 이순신의 사적인 면모, 내면의 감정이 솔직하게 나타나 있는 일기를 실었다. 마지막으로 7장은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거쳐 관직에 복귀한, 정유재란 시기의 일기로 구성했다. 수많은 『난중일기』 번역본이 있지만 텍스트를 주제에 따라 재구성해 독자가 내용별로 『난중일기』에 다가갈 수 있게 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을 통해 인간 이순신의 마음을 느끼고, 이순신이 조선을 지키고 영웅이 된 까닭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조선을 지키리라 _공적인 인간 이순신 임진왜란은 예견된 전쟁이었다. 일본의 각 지방을 나누어 다스리던 다이묘(大名)들이 세력 다툼을 벌이던 일본을 통일하며 1585년 일본의 최고 권력자가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자신의 천하를 넓히기 위해 중국을 평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리하여 그는 명나라를 치러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내용의 국서(國書)를 조선에 보낸다. 조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제안을 거절하고 일본의 실정을 알아보기 위해 통신사(通信使)를 파견했다. 그러나 조선의 어느 누구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단언하지 못했다. 건국 이후 200년이 다 되도록 전쟁 없이 살아온 조선에 전쟁 방비가 갖추어진 곳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러한 때에 전쟁에 대한 방비가 철저히 이루어지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이순신이 다스리던 전라 좌수영이었다. 1592년 3월 6일 아침밥을 먹고 관아에 나가 무기를 점고했다. 활, 갑옷, 투구, 화살통, 환도(環刀)는 깨지거나 훼손된 것들이 많았다.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담당 아전과 활 만드는 장인, 감고(監考) 등의 죄를 논하였다. 1592년 4월 12일 식사 후에 배를 타고 거북선의 지자포와 현자포를 쏘아 보았다. 순찰사 아래에 있는 군관 남한이 살펴보고 갔다. 오후가 되어 동헌으로 나갔다. 활도 열 순 쏘았다. 위 4월 12일의 일기는 왜군이 부산포에 도착하기 바로 하루 전의 상황이다. 1592년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선봉이 된 왜군이 부산 앞바다에 도착했고, 5월 3일에는 한양을 그리고 6월 13일에는 평양성을 파죽지세로 무너뜨렸다. 그렇지만, 조선의 바다에는 이순신이 있었다. 경상 우수사와 힘을 합쳐 적선을 격파하라는 명을 받은 이순신은 1592년 5월 4일 경상도 해역으로 출전을 결행했다. 익숙지 않은 바다였지만 5월 7일에는 거제도 인근 옥포에서, 5월 29일에는 사천에서 일본 수군을 물리쳤다. 그리고 6월에는 고성 당항포 등지에서, 7월 8일에는 한산도에서, 9월 1일에는 부산포에서 왜적의 배를 수없이 침몰시키며 남해를 조선의 바다로 지켜냈다.(이 책 14면 ‘임진왜란 주요 해전’ 지도 참조) 1592년 5월 29일 우수사(이억기)는 오지 않았다. 혼자서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새벽에 출발해 곧장 노량에 닿았다. 경상 우수사도 약속 장소로 왔다. 왜적이 배를 댄 곳이 어디인지 묻자 적의 무리는 지금 사천 선창에 있다고 하였다. 즉시 가리키는 곳으로 갔더니 왜적은 벌써 배에서 내려 육지로 올라와 산봉우리에 진을 치고 있었으며, 배는 봉우리 아래에 줄지어 정박해 있었다. 왜적들은 재빠르고 견고하게 우리를 막아 싸웠다. 나는 장수들을 지휘하여 일시에 달려 나가 돌격하라고 명령했다. 화살을 빗발처럼 퍼붓고 여러 가지 화포(火砲)들을 폭풍 치듯 우레 치듯 어지러이 쏘아댔다. 왜적은 두려워하며 퇴각했는데 화살에 맞은 자가 몇 백 명인지 알 수 없었다. 왜적의 머리도 많이 베었다. 군관 나대용이 총에 맞았고, 나 또한 왼쪽 어깨에 총을 맞아 총알이 등을 뚫고 들어갔지만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활 쏘는 병사와 노 젓는 선원 중에도 총탄을 맞은 자가 많았다. 왜적의 배 열세 척을 불태우고 물러났다. 위 일기는 바로 사천 해전을 치른 날에 쓴 기록이다. 이순신은 이렇게 전투를 치른 날, 심지어 총탄을 맞아 부상을 당
목차
조선을 지키리라
전쟁에 대비하라
무기와 전선을 점검하라
거북선을 만들다
오늘도 활쏘기를 연습하고
아침 이슬처럼 위태로운 조선의 앞날
실정 모르는 조정 관원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영의정 류성룡
왜적의 배를 침몰시켜라
임진년, 전쟁이 시작되다
첫 출전의 날
사천 전투
당포 해전
적을 유인하라
수군의 기세에 왜적이 달아나고
나에게 항복한 왜인들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군대
정유년, 다시 왜적과 맞서다
진린과의 연합 작전
군율로 엄히 다스리리라
군율로 엄히 다스리리라
자기 잇속만 차리는 아전들
도망친 군사에겐 죽음이 기다릴 뿐
배에 여인을 태운 남해 현령
전쟁터에 첩을 데려온 순변사
싸우지 않고 도망친 경상 우수사
산에 숨은 무안 현감
아첨으로 지위를 얻은 김억추
모두에게 참혹한 전쟁
피란 떠나신 임금님
헐벗고 굶주린 군사들
왜적의 손에 부하를 잃고
피란길에 돌아가신 숙모
돌림병으로 죽은 금산이
사람 고기까지 먹는 백성들
나라 안의 적
백성의 부역을 줄여 주어야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새해 첫날에
수영(水營)에도 봄은 오고
전장에서 보낸 명절
항복한 왜인의 광대놀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잠 못 이루고
앞일을 일러 준 꿈
몸이 아파 신음하여도
점괘에 위안을 얻고
멀리서 그리는 가족
꿈에 뵌 아버지
머리 흰 아들의 어머니 생각
어머니의 당부
병든 아내
아비의 마음
염이 걱정
면아,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백의종군의 길
감옥 문을 나와
다시 남쪽으로
어머니 장례도 못 치르고
원균
나의 자리로 돌아와
두 번 다시 바다를 빼앗기지 않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