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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58101 / 320쪽 232 x 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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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이 책의 목적은 김현희-KAL 858기 사건의 맥락화를 통해 소설 쓰기 국제관계학 개념을 제안하고,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에 개입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책은 국제관계학에서 상상력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와 젠더를 어떻게 세계관으로 삼느냐를 다룬다. (28쪽)
젠더, 고통, 진실은 국제관계학에서 다른 주제들에 비해 연구가 적었고 최근에야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이 주제들은 모두 여성주의에 기반을 둔 논의와 관련이 있는데 각각 젠더, 감정(고통), 객관성(진실)이다. 나는 대한항공 858기 사건이 이 주제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아주 단순화시켜 말하면, 일단 폭파범으로 알려진 사람이 여성이고(젠더), 사건 및 그녀 말하해 여러말걘지 의문이 있으며(진실), 이에 실종자들과 그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겪게 되었다(고통). 결국 젠더-고통-진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41쪽)
다시 말해, 한반도는 사실상 그리고 가상의 군사적 충돌이 ‘끝나지 않은 전쟁’의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는 상태다. 2013년은 평화협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휴전협정 체결 60주기였다. 그리고 일상적 전쟁 상태는 60년 넘게 한반도에서 정상 규범으로 제도화되었다. 달리 말하면 한반도는 거대한 ‘전쟁 면역 공동체’가 되어버린 듯하다. (58쪽)
그러나 가족들은 김현희를 볼 수 없었다. 정부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감시를 당했고, 언론은 그들에게 무관심했다. 친북 세력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그레이스는 고심했다.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구를 믿어야 할까?’ 그녀는 절박했다. 언니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오직 언니가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시신으로라도……. (102쪽)
나는 이 사건이 (공식 결과를 따른다고 했을 때) 젠더화된 폭파 사건이며, 이는 ‘젠더 폭탄’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분적으로 이 비유는 젠더에 민감한 관점으로 보면 사건이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다. 젠더는 숨어 있는 ‘폭탄’과 같은 것이다. 동시에 이는 여성으로서의 김현희와 관련된 요소인 미모 또는 가련함을 뜻하기도 한다. 이 장에서 젠더의 정치학은 기본적으로 대한항공기 사건에서 전통적 젠더 규범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이 규범이 여성 공작원에게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139쪽)
지금도, 우리는 그래요. 남편이, 죽은 사람, 없어진 사람 말고 우리 부모들은, 지금도 뭐 저……요번에 미국 기자들 가봤으니까 만나거든요. 이북에 가서……살아서 만난다고요. 근데 지금도 20년씩 막 있어요. 혹시나, 잡아다가 어디 가서 이이 있지 않느냐.……아무것도 없어요. 옷 한 가지도 없어요. 비닐로 싸 가면 안 썩어요. 그치요? 그거 하나 없잖아요. 백 몇 명이 넘는데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믿어요? 못 믿어요(면접, 강차연, 2009년 8월 8일). (182쪽)
재판 받을 적에도 이, 저, 저만치 앉혀놓고, 우리 뒤에 앉아 있는데, “이 사람을 죽여야 됩니까, 살아야 됩니까” 글 적에 내가 손들었어. 그러니께네, 재판관이 할머니 말하라고. 죽이지 말라고, 이 죽이믄 증거가 없으니까 죽이지 말라고 그랬어. 근데 또 그 다음 날에 신문에 났는데, 뭐라 그랬는지 알아?……아들 잃은 엄마가 김현희 죽이지 말라고 그랬다고, 이렇게 왔다고. 신문에 나왔어요. 그래……그, 그 애 생각해 죽이지 말라고 그러냐? 너희들 공산당이 핸 거니까, 그걸 죽이지 말라고 그랬지. 죽일라믄 115번 죽이라 그랬어. 내가 한 번에 죽이지 말고 115번을 죽이라 그랬어(면접, 주덕순, 2009년 8월 8일). (219쪽)
만약 누군가 북한과 관련해 긍정적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나 행위를 하면 이는 ‘빨갱이’이나 ‘친북’으로 몰리기 쉽다. 다시 말해, 단지 북한에 대해 좋게 들릴 수 있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 또는 북한 추종자가 된다. 앞서 말한 대로, 이러한 낡은 반공주의가 힘을 발휘하는 부분적 이유는 북한을 남한의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231쪽)
재조사 요구를 북쪽이 비행기를 폭파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해다. 가족들이 재조사를 바라는 이유는 공식 수사 결과가 확실하지 않고 물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북쪽이 테러를 했더라도 쉽게 부인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적어도 북쪽의 책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재조사가 필요하다. 달리 표현하면, 일부 보수 진영의 주장대로 ‘친북’이기 때문에 재조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244쪽)
나는 면접을 하면서 거의 모든 이들에게 첫 번째 질문으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대한항공 858기 사건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인지요?” 압도적 다수가 공식 수사 결과가 진실인지 아닌지와 관련해 답을 했다. 이는 실제로 진실 문제가 사건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 구도에서는 젠더/고통과 같은 문제들이 충분히 얘기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점에서 나의 연구가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진실에 대한 다른 관점의 물음(불확실함과 결정 불가능성)을 던지는 한편, 이 책은 진실 외의 부분들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지고 있다. (259쪽)
대한항공 858기 사건은 이와 같은 다른 해석과 정치학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진실 문제의 경우, 남한 정부는 공식 수사 결과가 그 외의 다른 어떤 해석이나 질문도 통제해내길 바랐다고 하겠다. 하지만 수사 결과는 통제에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던 듯하다. 고통 문제의 경우, 실종자들은 그들의 삶을 갑자기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 가족들 또한 갑자기 상실의 충격을 받아야 했다. 김현희 역시 그녀의 공작을 계획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수사 결과를 따른다면) 그녀는 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붙잡혔고, 남한으로 압송되어 반북 선전 활동에 나섰다. 젠더 또한 진실-고통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약간 다른 맥락에서) 통제 불가능성과 관련된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 여성으로서 김현희는 대체로 남성성과 폭력성이 지배적이라 할 수 있는 공작원 세계에 들어왔다. 이는 통제를 벗어난 것이다. 곧,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이 여성은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이어야 한다는 지배적 관념에 도전하듯 젠더 규범의 통제를 위반한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 삶이라 하겠다. ‘갑작스러움’과 ‘통제 불가능성’은 삶의 한 부분이다. 나는 주디스 버틀러의 말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거의 없다. 인간과 사회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에는 불확실함이 섞여 있다. 그렇다면 이 갑작스러움과 통제 불가능성을 겸손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261쪽)
사람들은 말렸다.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 민감합니다. 당신이 그걸 직접 겪었잖아요. 그런데 왜 하려고 하죠? 당신의 경력과 인생을 망칠 거예요.”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올라이트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들은 카프카의 소설 심판에서처럼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그냥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그래. 괜히 우리를 괴롭게 하지 말고 말이야. 지금 이 순간, 아마 우리가 이 세상 누구보다 당신 가까이에 있을 거야.” 하지만 때로 삶은 논리적이라기보다, 신비롭다.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던 학생. 이제는 대한항공기 사건 덕에 ‘박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학문적 성취를 위해 ‘비극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뇌하기도 했다. (28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