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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741124 / 300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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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여성 한국광복군 지복영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 출간 - 여린 소녀에서 독립전사로 성장한 장군의 딸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광복군 출신 지복영 여사의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이 출간됐다. 이? 책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의 하나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의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에 이어 두 번째로 빛을 보았다. 지복영 여사는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막내딸로 3?1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가던 1919년 4월 11일(음) 서울... 여성 한국광복군 지복영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 출간 - 여린 소녀에서 독립전사로 성장한 장군의 딸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광복군 출신 지복영 여사의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이 출간됐다. 이 책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의 하나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의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에 이어 두 번째로 빛을 보았다. 지복영 여사는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막내딸로 3?1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가던 1919년 4월 11일(음)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24년 여름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오빠를 따라 아버지가 망명해 있던 만주로 이주했다. 이때부터 1945년 해방이 되던 해까지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이 겪었던 역경과 신산한 삶이 회고록에 오롯이 담겼다. 손발이 부르트도록 황무지를 개간해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며, 일본군과 비적이 횡행하고 밀정들이 염탐하는 불안한 환경에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던 위태로운 나날들, 장티푸스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일 등이 어두운 기억이라면, 어려서부터 고집스레 추구했던 향학열, 자연과의 교감, 국치일 기념식과 연극공연, 청년지사의 열정적 독립운동 등 자부심어린 추억에 이르기까지, 독립투사의 딸로 태어난 운명을 안고 여린 소녀가 ‘독립전사’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복영 여사는 19세 되던 해인 1938년 말, 일본군을 피해 피난 중이던 중국 광서성 유주에서 항적선전(抗敵宣傳)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39년에는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에 참가했고,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군되자 자원입대하여 『광복』 잡지 발간, 적정 탐지, 광복군 초모, 대적 한국어 방송 등의 군사활동에 복무했다. 최근 천만 관객 동원을 바라보고 있는 영화 ‘암살’에서 친일파 저격수 안옥윤으로 분한 전지현의 열연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 광복군의 회고록이 출간되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 3편으로 독립운동가 김예진 목사의 아내 한도신 여사의 회고록을 곧 출판할 예정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기존의 독립운동사가 지나치게 명망가 중심으로 사료에만 입각해 서술되고 있어 구체성과 생동감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면서, “특히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기여한 바가 큰데, 공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진 측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문헌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회고록 출간이나 생존 역사인물에 대한 구술조사사업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계획이다. 비상하는 민들레에서 민족의 모습을 보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오랜 기간의 작업 끝에 드디어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 두 번째 책으로 한국광복군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지복영 여사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지복영 여사는 1919년 4월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거목이던 지청천 장군의 막내딸로 서울에서 태어나 망명한 부친을 따라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나중에는 한국광복군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했지만 해방 이후에는 평범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다가 2007년 4월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회고록은 지복영 여사가 삶을 마감해야 할 날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노년의 나이에 초고를 쓰기 시작한 이래 고치기를 거듭했지만 끝내 마지막 마무리를 하지 못해 제목도 붙이지 않은 ‘미완’의 육필 원고를 저본으로 한 것이다. 대학노트 세 권 분량의 육필 원고 가운데 마지막 원고에 각주의 형태로 약간의 보완을 한 것은 지복영 여사의 두 아들이다. 원래는 두 아들의 이름을 같이 올려야 하지만 아우가 한사코 형의 이름만 올리는 것이 좋겠다고 우겨서 큰 아들인 이준식의 이름만 정리한 이로 올렸다. 지복영 여사는 노년이 된 뒤 생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로 두 가지를 꼽았다고 한다. 하나는 부친인 지청천 장군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1995년 3월, 76세의 나이로 펴낸 『역사의 수레를 끌고 밀며: 항일무장독립운동과 백산 지청천 장군』이 바로 그 결실이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복영 여사는 늘 독립운동을 이끌던 지도자급 인물 못지않게 이름도 남기지 않은 채 독립운동의 일선에서 싸운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지청천 장군과 함께 싸운 독립군의 집단적 기록으로 항일무장독립운동사를 쓰려고 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회고록을 남기는 일이었다. 특히 어렸을 때 만주에서 겪은 여러 가지 일을 바탕으로 고난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질긴 생명력을 발휘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 지복영 여사의 염원이었다. 아울러 회고록을 통해 언제나 삶의 버팀목이 된 어머니와의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갖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늘 올곧던 어머니의 모습이야말로 민족의 수난사와 투쟁사를 상징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리의 책임을 맡은 두 아들은 의논 끝에 지복영 여사가 회고록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남긴 한 메모에 나오는 ‘민들레의 비상’을 미완의 회고록 제목으로 정했다. 이 책은 ‘1부 회고록’과 ‘2부 논설 기타’로 구성되어 있다. 회고록은 태어나면서부터 1945년 해방 직전까지의 기록이다. 2부에 실린 것은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 창간호(1941년 2월)를 통해 발표한 ?대시대는 왔다, 한국 여동지들아 활약하자!?라는 제목의 논설을 비롯해 언론에 발표했거나 틈틈이 써놓은 논설, 한시, 편지 등 총 9편의 글이다. 말미에는 저자가 자신의 생애를 정리한 자술연보를 덧붙였다. 만주에서의 유랑생활 1940년 9월 17일 중경 가릉빈관에서 거행된 한국광복군 창립 전례식. 오른쪽 뒤편 네명의 여성 광복군 가운데 가장 키가 작은 이가 지복영 여사이다. 1924년 당시 다섯 살인 지복영은 어머니 윤용자, 오빠 지달수와 함께 봉천을 거쳐 아버지가 있는 길림시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서간도로 망명한 아버지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아버지 친구들의 장난에 속아 정작 아버지한테 “아저씨,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는 일화가 회고록에 나온다. 그러자 아버지가 친구들에게 역정을 내시고는 자신을 안아주었는데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고 한다. 길림시에 잠시 머물다가 액목현 황띠깡즈로 이사했다. 그곳에는 신흥무관학교의 후신 학교 가운데 하나이자 민족교육기관인 검성중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도 검성중학의 학생이었다. 검성중학의 교장은 신흥무관학교 교장 출신이 여준 선생이었다. 지복영 여사는 검성중학 부설 검성학교에서 처음으로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소학교에는 책상과 걸상은 물론 교과서도 없어서 학생들은 마룻바닥에 앉아서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준 것을 갱지로 된 공책에다 일일이 베껴야 했다. 더하기와 빼기를 배울 때도 나뭇가지를 잘라 셈했고 때로는 그것을 놀이기구로도 사용했다. 오빠가 다니던 검성중학의 사정도 매한가지였다. 검성중학은 농사와 학과공부, 군사훈련을 함께 실시했다. 학과공부는 주로 오전에 했고, 오후에는 학교 공동 경작지에 나가 농사를 지었다. 군사훈련은 새벽이나 저녁시간을 이용했다. 황띠깡즈에서 잊지 못할 기억의 하나는 8월 29일 국치일 행사였다. 이 회고록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부분이다. 지복영 여사의 회고에 따르면 국치일에는 나라 망한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우리 동포가 남녀노소
목차
책을 펴내며
일러두기
차례
제1편 회고록
서장
1부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1. 출생
2. 길림시 장명등의 길고 짧은 그림자
3. 황띠깡즈에서
4. 치거딩즈에서 어린 영혼의 외로움
5. 싸허즈의 민들레와 뱀
6. 충허에서-감당키 어려운 거센 물살
7. 주하현에서 일년 살이
8. 오상현의 따스허와 샤오스허―전화(戰禍)의 중압
9. 중국 고도(古都) 북평에서
10. 남경에서
2부 산도 굽이굽이 물도 굽이굽이
1. 남경 실함(失陷), 금륭비화(金隆悲話)
2. 악록산의 불빛, 영산홍
3. 산도 물도 굽이굽이-월계(奧桂) 양성(兩省)에서
4. 안개의 도시 중경(霧都重慶)
5. 고도 서안에서
6. 부양에서
제2편 논설 기타
대시대는 왔다, 한국 여동지들아 활약하자!
종군편린(從軍片鱗)
한시 2수(首)
무제
『제시의 일기』 출판기념 축사
노래에 얽힌 사연
8?15 광복일을 맞아 일본인에게 보내는 편지
편지
신문 면담 어록
자술연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