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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발명

정광 저 | 김영사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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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4971375 / 508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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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한글 연구의 차원을 바꾼 심도 깊은 역작

한글 제정의 동기와 목적, 발명에 참여한 인물과 제정 시기부터 한글이 과학적인 이유와 영향을 받은 문자까지. 기존 한글 연구의 맹목적 정설을 뒤집는 과학적 연구. 그동안 학계가 다루어온 한글에 대한 모든 쟁점에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는 독보적 결정판. ‘영명하신 세종대왕이 사상 유례없는 독창적 글자를 만드셨다’는 신화를 넘어, 과학적이고 이론적 바탕 위에서 한글의 역사적 의미와 언어학적 가치, 탁월함을 밝힌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1. 한글, 왜 만들었는가: 한글 제정의 근본 동기는, 원나라 건국에 따라 한자의 중국어 발음과 우리 발음에 크게 차이가 생겨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데 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한자의 한어음(漢語音)을 표기하거나 우리 한자음을 수정해 백성에게 가르칠 때 필요한 발음기호로 창제된 것이지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새로운 문자가 아니었다. 한글은 한자음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로 만든 것이다. 원나라가 성립하고 이전 중국어와 발음이 전혀 다른 한아언어(漢兒言語)가 대두되면서 중국의 한자음과 우리 ... 1. 한글, 왜 만들었는가: 한글 제정의 근본 동기는, 원나라 건국에 따라 한자의 중국어 발음과 우리 발음에 크게 차이가 생겨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데 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한자의 한어음(漢語音)을 표기하거나 우리 한자음을 수정해 백성에게 가르칠 때 필요한 발음기호로 창제된 것이지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새로운 문자가 아니었다. 한글은 한자음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로 만든 것이다. 원나라가 성립하고 이전 중국어와 발음이 전혀 다른 한아언어(漢兒言語)가 대두되면서 중국의 한자음과 우리 한자음이 크게 달라져 소통에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서 우리 것을 교정하여 《동국정운》 한자음을 만들었고 이에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올바른 발음이란 의미로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유신들은 중국 한자음이 정음을 표기하는 문자라는 뜻으로 정음(正音)이라 불렀다. 교착어인 우리 말 쓰임에 고립어인 한자는 어순과 의미 전달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가 ‘변음토착(발음을 바꿔서 토를 달다)’의 난제를 해결하자 세종은 이 문자로 우리말을 기록할 수 있다고 보고 수양대군으로 하여금 《석보상절》을 짓게 하고 스스로 《월인천강지곡》을 지어 이를 확인했다. 이 책에서는 세종이 이 둘을 합편하여 《월인석보》를 간행하면서 권두에 훈민정음의 《언해본》을 붙여 공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많은 연구에서 《언해본》의 이 앞에 있는 구절 “國之語音이 異乎中國?야 與文字로 不相流通?? ― 나랏 말?미 中國에 달아 文字와로 서르 ??디 아니 ??”를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언해문이 매우 애매하여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즉, 한문 원문은 《한문본》과 《해례본》에서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 ― [한자음에 대한] 우리나라의 발음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라 하여 한자에 대한 우리의 발음과 중국과의 차이를 지적한 것이다. 다만 언해문은 “우리말이 중국어와 달라서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라고 언해되어 오해를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이 서문의 기본적인 뜻은 어디까지 한자음의 차이를 지적한 것이지 언어의 차이를 말한 것은 아니다. (15~16쪽) 고려 전기(前期)까지 사서오경(四書五經)으로 배운 한문으로 중국인과 소통이 가능하였는데 원대(元代) 이후 북경(北京)의 한어(漢語)의 발음이 우리의 전통 한자음과 매우 달라서 이 말과는 전혀 통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 우리 한자음을 수정하여 예전처럼 한문 학습에 의하여 중국과의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로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한자음을 구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개정된 한자음이야말로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바른 한자음, 즉 훈민정음(訓民正音)이었으며 이것의 발음기호로 한글을 제정한 것으로 본 것이다. (17쪽) 이 책에서 특별히 강조된 것은 한자를 그대로 읽는 것이다. 아전인수 격이나 자기 멋대로 한자를 해석하지 말고 원래의 뜻대로 읽자는 것이다. 그래야 보다 정확한 사실을 밝힐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바른 글자”로 해석한다든지 ‘정음(正音)’을 “올바른 글자”로 보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음(音)’은 발음이지 글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자에 있지도 않은 뜻이나 발음으로 한자를 멋대로 읽는다면 어떻게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가? (22쪽) 2. 누가 만들었는가: 한글 창제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불가의 학승들이었다. 훈민정음 《언해본》이 불서(佛書)인 《월인석보》에 부재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수양대군이나 동궁, 정의공주 등 가족과 세종이 직접 골랐다는 친간팔유(親揀八儒)로 불리는 성삼문, 신숙주 같은 젊은 학자의 도움도 있었지만, 한글 창제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불가의 학승들이었다. 고대 인도의 조음음성학이 팔만대장경에 포함되어 고려와 조선에 유입되면서 불가의 학승들이 음성학을 공부,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훈민정음 《언해본》이 불서(佛書)인 《월인석보》에 부재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고대 인도에서 발달한 음성학은 비가라론(毘伽羅論), 한자로 번역하여 성명학(聲明學)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속에 들어 있어 불교의 유입과 더불어 고려와 조선시대에 수입되었다. 한글의 창제에 불가의 많은 학승들이 참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글은 이러한 학술적 배경을 갖고 창제된 것이어서 과학적이며 발달된 표기체계를 보이는 것이다. (28쪽) 『죽산안씨대동보』의 ‘정의공주유사’에 보이는 기사에서 정의공주가 한 일은 ‘변음토착’을 해결한 일이다. 이것은 한문의 구결(口訣)에서 형태부, 즉 조사(助詞)와 어미(語尾)의 우리말을 한자를 빌려 토(吐)를 달 때에 “-은(隱), -이(伊), -??니(爲尼), -이라(是羅)”와 같이 한자의 발음과 새김을 빌려 적는다. 즉, 앞의 예에서 “-??니(爲尼), -이라(是羅)”의 ‘尼, 羅’는 발음을 빌렸지만 ‘爲, 是’는 새김을 빌려 ‘-??, -이’로 읽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是)’와 ‘위(爲)’라는 자음(字音)을 바꿔서 ‘-이’, ‘-??’로 토를 단 것을 ‘변음토착(變音吐着, 음을 바꿔서 토를 달다)’이라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변음의 토는 한자를 익숙하게 구사하고 한문에 정통한 유신들에게는 매우 이상하고 괴로운 문자 표기였다. (…) 훈민정음으로 토를 다는 경우 이러한 ‘변음토착’의 어설픈 한자 표기는 완전하게 해소된다. 뿐만 아니라 고유어 표기에서 한문과 다르게 조사와 어미를 붙여 써야 하는 교착적 문법구조의 우리말 표기에 대한 인식이 정리된 것 같다. 의미부는 한자나 이두로 표기해왔지만 조사와 어미와 같은 형태부 표기가 한문과 다른 우리말 표기의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184~185쪽) 한글로 토를 단 이후로는 변음토착과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한문 본문과의 구별도 확실해져서 이해가 훨씬 쉽게 되었다. 이로부터 세종은 새 문자로 고유어를 표기할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이 고안한 문자로 우리말 표기에 몰두하였는데 이것은 동궁, 수양, 안평, 정의 등의 자녀들과 함께 작업하였다(졸고, 2006). 또 자녀 가운데 수양대군은 신미(信眉), 김수온(金守溫) 등과 함께 《증수석가보(增修釋迦譜)》를 우리말로 언해하여 신문자로 우리말 표기를 실험하게 하였다. 이 시도가 성공하여 《석보상절(釋譜詳節)》이 저술되는 중간중간에 세종은 스스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지으면서 신문자로 동국정운식 한자음의 표음과 고유어의 표기를 자신이 직접 시험하게 된다. 이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을 몸소 확인하고 《해례본》에 붙인 자신의 서문과 예의(例義)를 우리말로 풀이하여 자신이 편집한 《월인석보》의 구권(舊卷)에 붙여 세상에 알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훈민정음의 《언해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187~188쪽) 3. 언제 제정되고 반포되었는가: 한글은 이미 만들어졌다가 10여 년에 걸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세종 25년 12월 기사로 나타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언해본 《훈민정음》이 《월인석보》의 권두에 부재되어 간행된 것을 진정한 의미의 반포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세종 29년의 간기가 있는 《월인석보》의 옥책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한글이 세종 28년 9월 상한에 간행한 소위 《해례본 훈민정음》으로 공표된 것으로 보아왔다. 그래서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였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해례본》은 난삽한 성리학과 성운

저자 소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문학박사)로 있다. 
미국 콜럼비아대학 방문교수, 일본 교토대학 초빙 외국인학자, 일본 동경외국어대학 초청교수, 일본 도야마대학 비상근 강사, 일본 간사이대학 초청연구원, 일본 와세다대학 교환연구원, 미국 일리노이대학 언어학과 강의 초청 등 해외에서 수많은 강의 및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학회 활동으로는 한국어학회, 한국이중언어학회, 국어사자료학회, 한국알타이학회 등의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구결학회 회장으로 있다.


연구업적으로는 [역학서 연구](J&C, 2002, 서울)를 비롯하여 [原本老乞大](外語敎學與硏究出版社, 2002, 北京), [청어노걸대신석](태학사, 1998, 서울), [사역원 역학서 책판 연구](고려대 출판부, 1998, 서울), [改修捷解新語](京都大學 安田章 敎授 共著, 태학사, 1991, 서울) 등의 사역원 역학서 관계 저서가 다수 있고, 논문으로 “譯學書硏究の諸問題”<朝鮮學報>(일본 조선학회) 제170호(1990), “<노박집람>과 <노걸대>,<박통사>의 舊本,” <震檀學報>(진단학회) 제89호(2000), “영어의 역사에 관한 헬싱키 코퍼스,” <한국어와 정보화>(태학사, 2002), “훈민정음 중성자의 음운대립,” <문법과 텍스트>(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등 100여 편이 있다. 특히 “薩摩苗代川傳來の朝鮮歌謠”(일명 ‘오나리 연구’, 일본 新村出記念財團, 1990, 京都), “韓國詩歌의 韻律硏究試論,” <應用言語學>(서울대 어학연구소) 제7-2호(1975) 등 문학연구에도 화제의 논저를 발표하였다. 

책 속에서

“한글은 한자음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로 만든 것이다. 중국의 한자음과 우리 한자음이 너무 달라서 우리 것을 교정하여 <동국정운> 한자음을 만들었고 이를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올바른 발음이란 의미로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유신들은 중국 한자음이 정음을 표기하는 문자라는 뜻으로 정음(正音)이라 불렀다.”

“한글은 세종 28년 9월 상한에 간행한 소위 <해례본 훈민정음>으로 공표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였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해례본>은 난삽한 성리학과 성운학의 이론으로 새 문자를 설명한 것이어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책이다. 그래서 <해례본> 앞부분의 석장 반을 우리말로 풀이한 훈민정음의 <언해본>이 간행된 것을 한글의 공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 <언해본>은 천순 3년(1459), 즉 세조 5년에 간행한 <월인석보>의 권두에 <세종어제훈민정음>이란 이름으로 첨부되었기 때문에 모든 연구자들이 이때에 훈민정음의 언해가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 책에서는 정통 12년, 즉 세종 29년의 간기가 있는 <월인석보>의 옥책을 근거로 하여 <월인석보>의 구권은 세종 생존 시에 간행되었고 여기에 <훈민정음>이란 이름의 언해본을 붙여 간행하여 공표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모두 한글이 사상 유례가 없는 글자를 세종대왕께서 독창적으로 만드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착적 문법구조를 가진 중국의 북방민족들은 한자로 자신들의 언어를 기록하기 어려워 일찍부터 스스로 표음문자를 제정하여 자국어를 기록하였다. 기원후 650년경에 만든 티베트의 서장문자로부터 10세기에 거란의 요나라에서 만든 거란문자, 12세기에 여진의 금나라에서 만든 여진문자가 그러하다. 13세기에 몽골의 칭기즈 칸은 위구르문자를 빌려서 몽고어를 기록하였고 14세기에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 칸은 한글과 유사한 파스파 문자를 만들어 한자음과 몽고어를 기록하였다. 이 책에서는 한글이 15세기에 이와 같은 북방민족의 전통을 이어 만든 문자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북방민족들은 새 국가를 세우면 새 문자를 만들어 추종세력들에게 가르치고 이를 시험하여 관리로 임명함으로써 통치계급의 물갈이를 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한글도 그런 전통을 이어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대 인도에서 발달한 음성학은 비가라론(毘伽羅論), 한자로 번역하여 성명학(聲明學)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속에 들어 있어 불교의 유입과 더불어 고려와 조선시대에 수입되었다. 한글의 창제에 불가의 많은 학승들이 참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글은 이러한 학술적 배경을 갖고 창제된 것이어서 과학적이며 발달된 표기체계를 보이는 것이다.”

“한글이 과학적인 것은 15세기에 제정된 훈민정음이 조음음성학의 이론에 입각하여 음운을 분석하고 문자를 제정한 때문이다. 20세기에 서양에서 발달한 조음음성학은 인간의 언어음(言語音)을 발성기관의 조음(調音) 메커니즘에 의거하여 조음 위치와 조음 방식으로 나누어 구별하였는데 세종대왕은 이보다 500여 년이나 앞서서 이러한 음성학의 이론을 동원하여 문자를 제정하고 이 문자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였으며 각 문자의 음가들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심오한 음성학적 이론을 세종은 어디서 알았을까?”

“한글의 발명에 고대 인도 음성학의 영향이 있었음은 지금까지 아무도 지적한 바가 없다. 그러나 한글 제정의 근거가 되었던 파스파 문자가 티베트의 서장(西藏)문자에서 왔는데 서장문자는 인도 음성학의 이론에 의거하여 제정된 것이다. 따라서 7세기경에 제정된 서장문자나 13세기경의 파스파 문자, 그리고 15세기의 한글에 이르기까지 그 첫 글자가 ‘ㄱ’, 즉 /k/로 시작되고 이어서 /kh, g, ng/의 문자가 이어진다. 훈민정음에서도 /ㄱ, ㅋ, ㄲ, ㆁ/의 순서로 문자를 제정하였다. 모두가 인도 음성학의 영향 아래 제정된 것이다.”

“파스파 문자의 한자음 표음은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의 한자 교육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즉, 한자음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음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므로 표음문자인 파스파자는 한자의 발음을 표음하는 데 더할 나위가 없는 좋은 발음기호였다. 이 문자가 고려 후기에 널리 애용된 것은 몽고어 표기를 위한 문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에서는 드디어 파스파 문자와 동일한 역할의 훈민정음을 제정하여 한자음 표기에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목차

목차
머리말
제1장. 들어가기
1. 한글 발명에 대한 많은 의문
2. 한글의 발명을 밝혀주는 자료들
3. 중요한 쟁점들
4. 이 책의 새로운 주장
제2장. 동아시아 제 민족의 언어와 문자
1. 중원(中原)의 북방민족
2. 티베트의 서장(西藏)문자
3. 요(遼)의 거란문자
4. 금(金)의 여진문자
5. 몽고 위구르자와 만주문자
6. 원대(元代) 파스파 문자
7. 새로운 중국어의 대두
제3장. 한글의 발명
1. 고대(古代) 한반도의 언어와 문자
2. 한자의 차자(借字) 표기
3. 발음기호로서 훈민정음 28자의 제정
4. 변음토착과 언문
5. 한글 제정의 과정
6. 《석보》와 《월인》, 그리고 《월석》
제4장. 언어학의 이론으로 본 한글
1. 조음음성학 이론으로 본 훈민정음 해례
2. 초성, 중성, 종성의 현대 음운론적 이해
3. 훈민정음 초성과 자음체계
4. 중성과 모음체계
5. 종성과 음절 말 자음제약
6. 생성음운론으로 본 훈민정음
제5장. 훈민정음과 파스파 문자
1. 파스파 문자의 제정
2. 파스파 36자모와 정음 초성 32자
3. 《몽고자운》 유모 7자와 훈민정음 11중성자
4. 《몽고자운》 입성 6개와 정음의 8종성
5. 한글 자형의 독창성
제6장 한글 발명과 보급에 기여한 인물과 연구
1. 성삼문과 신숙주의 생애
2. 훈민정음 해례와 《동국정운》 편찬
3. 《홍무정운》의 역훈과 한어음 표기
4. 최세진의 가계와 생애
5. 한글의 중흥과 최세진
제7장.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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