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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5641704 / 256쪽 146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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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여성 혐오’로 읽는 우리 사회의 민낯 혐오 세계의 문법에 관해 물어야 할 것들 혐오라는 정동이 우리 사회를 잠식해가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거리에서 맞불 시위를 하고, 일베 청년들이 세월호 유?가족 단식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이고, 특정 성별과 지역, 이데올로기를 비하하며 혐오스러운 말들을 온라인상에 전시하던 찰나에, 한 소년은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이슬람국가(IS)로 향했다. 이 일련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현상에 관한 갑론을박이 진행되는 가운데, ‘여성 혐오’라는 말이 발 빠르게 지배적인 ‘혐오’의 얼굴로 등장했다. 그래서... ‘여성 혐오’로 읽는 우리 사회의 민낯 혐오 세계의 문법에 관해 물어야 할 것들 혐오라는 정동이 우리 사회를 잠식해가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거리에서 맞불 시위를 하고, 일베 청년들이 세월호 유가족 단식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이고, 특정 성별과 지역, 이데올로기를 비하하며 혐오스러운 말들을 온라인상에 전시하던 찰나에, 한 소년은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이슬람국가(IS)로 향했다. 이 일련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현상에 관한 갑론을박이 진행되는 가운데, ‘여성 혐오’라는 말이 발 빠르게 지배적인 ‘혐오’의 얼굴로 등장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시공간을 ‘혐오 시대’라고 명명한다. 혐오가 우리 사회의 지배적 정동이라면, 이 사회가 무엇을 주된 혐오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지를 묻고, 그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확인하는 일이 시급하다. 현실문화 편집부는 주된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여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드러내보자는 취지로 이 책을 기획했다. 이 책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은 현실문화가 펴내는 ‘우리 시대의 질문’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며(1권: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세월호 이후 인문학의 기록』), 논의의 시급성에 응답한 윤보라, 임옥희, 정희진, 시우, 루인, 나라 여섯 필자의 글을 묶은 책이다. 이 책은 최근 인터넷과 방송을 매개로 촉발된 혐오 전쟁부터, 대학 캠퍼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차별 논쟁,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 들 안에 잠재된 혐오, 사회 지배적인 혐오를 내재한 자기혐오 등 다양한 혐오의 얼굴들을 드러낸다. 그러는 동안 혐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혐오의 대상은 누구인지, 혐오라는 강렬한 감정의 기능과 효과는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혐오로부터 나아갈 수 있는지를 묻고 답한다. ‘여성 혐오’를 입구 삼아 우리가 진정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혐오 사회’의 민낯이다. 혐오할 만한 여성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가?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 ‘좋은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이라는 함정 여성 혐오 논쟁을 촉발시킨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2015년 1월 대한민국의 한 소년이 돌연 이슬람 무장단체로 향하며 ‘지금은 남성이 차별받는 시대’이고 ‘페미니스트가 싫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사람들은 테러조직에 가담할 만큼 싫다는 ‘페미니스트’란 도대체 무엇인지 질문하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논의의 구도는 자연스레 페미니즘은 무엇이 문제적인가, 즉 페미니즘/페미니스트의 해악을 찾는 방향으로 흘렀다. 한 칼럼니스트는 태동기의 본래 의미를 잃고 지배구조 대신 남성을 공격하는 ‘무뇌아적 페미니즘’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즈음부터 ‘여성 혐오’라는 말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해석하는 중요한 틀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책은 여성 혐오 문제에 접근하는 우리의 생각의 틀을 먼저 점검하게 한다. ‘본래의 페미니즘 정신’과 대비시킨 ‘무뇌아적 페미니즘’, ‘모든 여성’은 아니지만 ‘일부 여성’은 비난받을 만하다는 널리 공유된 생각은 신중하고 점잖은 의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련된 여성 혐오일 뿐이다. 페미니즘이 구조를 문제 삼는 대신 남성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있다는 그 칼럼니스트의 비판은 정작 소년이 박탈감을 느끼게 한 사회구조의 문제를 ‘페미니즘’의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이 책의 첫 장 윤보라의 글은 여성 혐오의 아이콘이 ‘된장녀’에서 ‘김치녀’로 이행한 것이 이 현상의 작동 방식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예전에는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스러워 남자의 ‘등골’을 빼먹는 여성만이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면, “이제 한국의 모든 여성이 ‘나쁜 여자’의 몇 가지 유형 안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17쪽)는 것이다. 이 (나쁜) 여성의 “거푸집”은 얼마든지 많은 여성을, 내킨다면 한국의 모든 여성을 혐오받아 마땅한 ‘나쁜 여자’로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 왜 ‘나쁜 여자’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쁜 여자’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은 어떤 존재이기에 이토록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여성’이라는 범주에 관해서 다시 생각해볼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누적된 행위의 효과일 뿐 “자명한 진실로서 성별은 없다”(정희진, 100쪽). 무의식의 차원에서 보면, 남성이 자신을 주체로 구성하기 위해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토하고 추방하는”(임옥희, 74쪽) 과정에서 여성은 만들어진다. 따라서 시우의 말을 빌리자면, ‘나쁜 여자’ 만들기는 “여성을 매개로 남성 사이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133쪽) 것이다. 여성이란 “규범적 남성 젠더를 승인하는 기호이자 이성애 규범적 경제를 작동시키기 위한 내부의 타자”(시우, 151쪽)인 셈이다. 이처럼 주체와 타자가 구성되는 과정을 염두에 두면, ‘여성’은 더 이상 생물학적 성이 아닌 ‘타자’의 이름으로 확장된다. ‘나쁜 여자’를 만들어내는 거푸집은 여성 혐오뿐 아니라 종북 빨갱이 혐오, 이주 노동자 혐오, 재난 희생자 혐오, 장애인 혐오 등 온갖 혐오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임옥희의 말처럼, “여성 혐오는 이 모든 혐오에 유비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58쪽). 이런 까닭에 여성 혐오는 제도적으로 권리가 배제되어 “시민성조차 인정받지 못하”(나라, 230쪽)는, 심지어 최근에는 보수 기독교 세력이 광적인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성소수자 문제를 사고하게 만든다. 여성이 약자 혹은 타자의 다른 이름으로서 배제되고 억압받아온 역사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면, 여성 혐오와 함께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약자 혐오를 아울러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혐오는 간단하게 설명되는 감정이 아니다 혐오는 ‘나’의 경계선을 관리하고 주체가 되는 데 필수적인 감정인 동시에, 부정적인 기능과 효과 이외에도 유용한 가능성 역시 잠재되어 있는 감정이다. 이 책은 혐오라는 부정적 감정과 행위를 도덕적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혐오라는 격렬한 감정이 무슨 일을 하는지에 주목해볼 것을 권한다. 단순한 멸시나 비하, 조롱이라기에 지금 이곳의 혐오 감정, 혐오 행위는 열정적이다. 무장단체의 테러리스트가 될 정도의 독한 결심을 품은 감정은 자기 존재를 거는 주체적인 행위로 읽어볼 여지가 있다고 제안하는 임옥희는 혐오를 “주체화의 열정”(56쪽)으로 설명한다. 혐오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자, 남성 중심 사회의 여성, 기독교 중심 사회의 ‘이교도’ 등에게는 필수적인 생존전략과 같은 “유익한 정치성”(53쪽)으로 기능하기도 하는 점을 들며, 혐오라는 감정을 다층적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한편 루인은 트랜스젠더퀴어의 경우를 예로 들며 혐오는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날카롭게 인식하는 과정”(224쪽)이기 때문에, 세계와 내가 만나는 방식을 사유할 분석틀을 제공해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혐오의 양상으로 발현되기 전에는 이 강렬한 감정이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며, 폭력과는 다른 주체적인 힘이 될 수 있음을 조심스레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여성 혐오’의 출구는 있는가 여섯 명의 필자는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혐오’라는 표정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관해 여섯 가지 목소리를 들려준다. 임옥희는 여성을 혐오하게 만든 “마법적인 힘”(58쪽)을 여성들이 되찾기를 바라며 바로 거기서 혐오의 위협을 동결시킬 가공할 위력을 기대한다. 연세대 ‘논지당’ 사건
한때 여러 커뮤니티에서 칼로 절반씩 잘라놓은 도넛 여러 개가 상자 안에 담긴 사진 딱 한 장만이 실린 게시물이 이곳저곳 떠돌았다. 본문에는 어떤 설명도 없고 그저 “여직원들에게 도넛 한 판 사줬더니”라는 제목이 전부였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핑계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사준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여직원들’을 힐난했다. 그러나 해당 도넛 사진을 구글 이미지 검색 서비스로 검색해보면, 사진의 출처는 엉뚱하게도 외국의 한 유머사이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직원들에게 도넛을 사준 사람도, 도넛을 먹은 사람도 없다. 이 사건은 여성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댓글을 모아 “사진 한 장으로도 여성 혐오가 가능”이라는 게시물이 만들어지면서 폭로되었다.(27~28쪽, 윤보라,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에서)
그렇다면 여성은 메르스와 같은 바이러스적 주체여서,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남성 숙주를 변형시키는(여성화하는) ‘마법적’인 힘을 갖고 있는가? 혐오가 끔찍한 두려움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면 여성에게 어떤 끔찍한 힘이 있길래 여성은 혐오의 대상이 되는가? 탈마법화된 시대임에도 여성들에게는 어떤 ‘마법적’ 힘이 남아 있기에 깔끔한 면역 주체가 되려는 남성을 감염시키는가? 거세되어 탈마법화된 시대를 구차하게 살아가는 자신들과는 달리 여성에게 신비하고도 마법적인 힘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남성의 공포심과 선망이 여성 혐오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69~70쪽, 임옥희, 「주체화, 호러, 재마법화」에서)
여성 혐오 발화는 가부장제의 일상이지만 시공간적 맥락과 배경이 있다. 여성 혐오는 공기와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화되었을 때만, 우리는 공기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문제는 여성 혐오 자체가 아니라 ‘지금, 여기’다. 남녀 간의 임금 격차, 빈곤의 여성화는 여전하지만 상대적으로 혹은 재현의 영역에서 성차별보다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의 격차가 가시화되자 일부 남성들은 자신의 계급적 처지를 젠더로 ‘해결(전가)’하기 시작했다. 그 편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97쪽, 정희진,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에서)
대학에 있는 모두가 젠더화된 공간 질서에 연루되어 있음에도 상대새아는 직접적으로 여학생 휴게실을 들여다본 몇몇 남성을 예외적인 존재로 두면서 이들을 제외한 남성 전체를 피해자로 호명해낸다. 이에 직접적인 잘못을 한 남학생 몇몇을 배제하는 것을 통해 나머지 남학생들은 피해자의 모습으로 규범적 남성 범주에 속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교직원은 상대새아가 예외적인 존재로 배제한 이들과 무고한 존재로 재현한 그 외의 남학생의 구분선 그 자체를 질문한다. 교직원은 성적 가해를 여학생 휴게실을 들여다본 몇몇의 잘못이 아니라 여학생 휴게실에 접근한 남학생 모두가 연루되어 있는 젠더 상황으로 파악하면서, 적합한 남성과 탈락한 남성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134~135쪽, 시우, 「다른 목소리로: 남성 피해자론 및 역차별 주장 분석하기」에서)
[트랜스젠더퀴어가 자신의 몸에 대해 느끼는] 이 불편함과 자기혐오는 끊임없이 몸의 표면을 예리하게 인식하도록 하고, 내가 세계와 조우하는 방식을 민감하게 포착하는 감각/감정이다. 자기혐오를 통해 어떤 몸을 여성적 몸으로, 어떤 행동을 남성적 표현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혐오는 내가 세상과 조우하는 과정에서 내 몸이 어떤 모습으로 형상되고 인식되는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지를 첨예하게 사유하는 과정이다. (223~224쪽, 루인, 「혐오는 무엇을 하는가: 트랜스젠더퀴어,바이섹슈얼 그리고 혐오 아카이브」에서)
오늘날 성소수자 혐오는 사회적 위기의 책임을 소수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면서 각개 생존의 미로에 갇히길 바라는 자들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 성소수자 운동과 시민사회, 진보 진영은 성소수자 혐오의 정치적 구실과 효과를 이해하고 사회 변화의 전망을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 혐오라는 괴물이 노리는 것은 단지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 또 다른 소수 집단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길 바라는 자들은 누구인가. 혐오가 파괴하는 누군가의 존엄은 나의 존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런 질문에 함께 답해야 할 때다. (255쪽, 나라, 「누군가의 삶에 반대한다?: 성소수자 운동이 마주한 혐오의 정치세력화」에서)
목차
기획의 말 - 6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 : 온라인 공간의 여성 혐오 / 윤보라 - 9
무언가 잘못되었다 | 거푸집 만들기 | 삭제된 여성들과 훼손된 ‘개념녀’ | ‘드립’의 정치학과 벌거벗은 임금님들
주?체화, 호러, 재마법화 / 임옥희 - 47
혐오, 주체화의 열정 | 참수냐 자본이냐 | 공포의 힘, 여신, 괴물성 | 약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 | 귀환하는 젠더 무의식 | 젠더의 재마법화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 / 정희진 - 89
말이라는 것 | 여성은 실재가 아니라 재현이다 | 표현할 말이 있는가? ―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 | 페미니즘은 인식론 ― 지식 생산과 성별 | 말하는 자연, 여성에 대한 혐오
다른 목소리로 : 남성 피해자론 및 역차별 주장 분석하기 / 시우 - 117
공간과 범주의 젠더 정치학 | 남성 피해자 정치학의 한계 | 경합하는 성평등 논의 | 어쩌면, 다시 페미니즘
혐오는 무엇을 하는가 : 트랜스젠더퀴어, 바이섹슈얼 그리고 혐오 아카이브 / 루인 - 165
혐오라는 복잡하고 양가적인 감정 | 비트랜스 페미니즘의 트랜스 혐오, 동성애의 바이 혐오 ― 혐오로 조우하기 | 폭력의 예감 | 혐오의 체화 ― 결론을 대신하며
누군가의 삶에 반대한다? : 성소수자 운동이 마주한 혐오의 정치세력화 / 나라 - 227
혐오의 시대 | 혐오가 파괴하는 삶들 | 우파 지배의 도구가 된 한국의 성소수자 혐오 | 혐오에 맞선 저항과 연대 | 충격과 공포를 넘어, 무기력에 맞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