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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과 미국 트루먼 애치슨 맥아더의 역할

남시욱 저 | 청미디어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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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2166874 / 493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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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북한의 기습 남침을 받아 존망의 기로에 몰린 대한민국이 미국의 도움으로 망국의 위기에서 벗어나 생존하게 되는 과정을 심층 분석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광복 70주년, 6·25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아 출?간되었다. 원로 언론인 남시욱(전 문화일보 사장·현 세종대 석좌교수) 씨가 쓴 이 책은 아울러 유엔군이 왜 북진통일에 실패했는지도 당시 미국의 세 주역인 트루먼 대통령, 애치슨 국무장관 및 맥아더 유엔군사령관 사이의 협력과 갈등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분석방법을 통해 규명하려고 시도했다. 이 책은 먼저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 북한의 기습 남침을 받아 존망의 기로에 몰린 대한민국이 미국의 도움으로 망국의 위기에서 벗어나 생존하게 되는 과정을 심층 분석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광복 70주년, 6·25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아 출간되었다. 원로 언론인 남시욱(전 문화일보 사장·현 세종대 석좌교수) 씨가 쓴 이 책은 아울러 유엔군이 왜 북진통일에 실패했는지도 당시 미국의 세 주역인 트루먼 대통령, 애치슨 국무장관 및 맥아더 유엔군사령관 사이의 협력과 갈등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분석방법을 통해 규명하려고 시도했다. 이 책은 먼저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가 전략적 가치가 없다 해서 군사력으로 방어 할 대상국가에서 제외한 한국에 어떤 이유로 지상군 까지 파병하기로 결정했는지 그 경과와 배경을 분석했다. 그리고 당초 38선 이북으로의 북한군 격퇴만을 목적으로 했던 유엔군이 그들의 작전목표를 어떤 과정을 거쳐 북진통일로 바꾸었는지, 또한 북한 전 지역의 완전점령을 눈앞에 두고 전개된 크리스마스 공세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참패로 끝나 통일의 꿈이 물거품이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도 분석했다. “한국은 냉전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수혜자이다”라고 결론지은 저자는 또한 이 책에서 피아간 전투원만 300만 명의 인명손실을 낸 6·25전쟁을 트루먼 행정부가 왜 사전에 억제하지 못했으며, 미리 예고되었던 중국의 전쟁개입 역시 왜 차단하지 못했는지도 해부했다. 이 책은 연구서이기는 하지만 언론인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서술방식으로 대하드라마처럼 6·25전쟁사를 읽기 쉽도록 묘사했다. 이 때문에 독자들이 한 번 책을 들면 좀처럼 놓지 못할 정도로 그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본문과 함께 퓰리처 수상작을 비롯한 역사적인 6·25전쟁 사진들을 수록한 32페이지에 달하는 화보 역시 읽는 이들로 하여금 6·25전쟁의 생생한 느낌을 갖게 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책의 중요 내용 저자는 6·25전쟁이 20세기 인류문명사의 일대 사건인 동서냉전이 빚은 특이한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이 전쟁은 1948년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수립되는 순간부터 무력통일을 꿈꾼 북한 김일성의 계획과 발의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이에 스탈린이 편승해 그의 세계적 냉전전략에 이용함으로써 스탈린과 김일성의 합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스탈린이 전쟁 준비와 개시 단계에서부터 휴전협상 단계에 이르기 까지 일일이 전략 전술을 지시한 점, 특히 미 공군의 북한 폭격에 못 견딘 김일성의 애원에 가까운 조기 휴전 건의를 스탈린이 죽는 순간까지 불허한 점에서는 ‘스탈린의 전쟁’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저자에 의하면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가 신속하게 한국에 참전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한국 자체의 군사적 가치보다는 미소냉전 전략상 스탈린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6·25전쟁 발발 1년 전인 1949년 중국 대륙이 적화되자 트루먼 정권은 아시아정책의 실패로 중국을 상실했다는 공화당 등 보수세력의 거센 공세에 직면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던 국내적 요인도 파병결정에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트루먼과 군부는 공군과 해군을 동원하면서도 지상군 파견에는 주저하다가 현지 사령관인 맥아더의 강력한 건의를 받아들여 북한군 남침 5일 만에 지상군 파견을 결정했다. 저자는 이 같은 6·25전쟁의 발발 배경과 미국의 참전과정에 주목해 이 전쟁을 스탈린이 지도한 공산진영의 국제공산주의혁명 운동 대 반공주의자인 트루먼이 이끈 서방진영간의 이념적 십자군전쟁의 성격을 지녔다고 결론지으면서 수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전설을 배격했다. 다만 트루먼 정부는 6·25전쟁 참전에 대해, 특히 지상군 파견에 대해 극히 신중했고 영국 등 미국의 동맹국들도 원천적으로 이 전쟁 참전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내키지 않은 십자군원정’이었다고 평가했다. 6·25전쟁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대한민국에 위기와 희망을 주었다. 첫째 위기는 1950년 8~9월 부산교두보 방어작전 때였다. 이 때 워커 8군 사령관은 유엔군이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다면서 ‘현장 고수냐, 죽음이냐’를 선택하라고 부하장병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전투를 독려해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작전에 성공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과 뒤이은 38선 이북으로의 반격작전이 시작된 뒤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북진한 10월까지는 대한민국에 통일의 희망이 부풀어 오른 시기였다. 그러나 그해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두 번째 큰 위기가 찾아왔다. 유엔군이 중공군에게 밀려 서울 북방까지 후퇴하자 미 군부가 유엔군의 안전을 위해 한국으로부터 철수하자고 건의했을 때였다. 트루먼과 애치슨은 이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애치슨은 2차 대전 때 연합군이 나치 독일군에게 밀려 던커크에서 철수한 것은 재앙이기는 해도 치욕은 아니었다면서 유엔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면 한국인들은 학살당할 것이며 그것은 미국의 치욕이 된다고 주장해 결국 맥아더에게 버틸 때 까지 버티라고 지시함으로써 한국은 국가멸망의 위기를 넘겼다. 6·25전쟁을 억제하지 못한 원인은 일차적으로는 준비도 없이 북진통일을 외친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에게 있지만 실제로는 그 실제적인 책임은 미국에 있다. 한반도의 군사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한 트루먼 행정부는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신생 대한민국이 제대로 일어서기도 전에 8·15해방 때 진주한 미군을 서둘러 철수시켰다. 미 국무부는 동서냉전의 최전선인 한국의 정치적 중요성을 감안해 조기철군을 반대했으나 트루먼행정부의 국방예산 삭감과 병력감축 방침이라는 국내적 요인 때문에 철군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철군방침이 확정된 다음에도 그 일정이 세 차례나 변경되는 등 정책의 표류를 겪었다. 한국을 미국의 태평양방어선에 제외함으로써 김일성의 남침 시 미국이 한국을 도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스탈린에게 주었다 해서 논란거리가 된 1950년 1월 애치슨의 프레스클럽 발언은 소련과 중국의 이간, 즉 마오쩌둥을 티토화하려는 목적의 연설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관해서는 신중치 못하고 애매한 발언이었다. 비록 스탈린은 애치슨 연설 이전에 스파이망을 통해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다시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으나 애치슨 발언이 스탈린이 입수한 정보를 확인해 주는 효과가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스탈린은 애치슨 발언 중 유엔의 한국 지원 가능성에 관한 완곡한 언급에 주의하지 못했다. 트루먼 행정부가 중국의 6·25전쟁 개입을 막지 못한 것은 커다란 외교적 실패였다. 트루먼과 애치슨은 각각 공식 성명을 통해 미중 양국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강조하면서 중국이 한국사태에 개입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중국의 타이완 침공을 용인할 듯한 유화적 발언까지 했다. 그러나 소련과 중소동맹조약을 체결하고 이미 김일성의 남침 이전에 만약 한국사태에 외국세력이 개입하는 경우에는 김일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마오쩌둥은 미국을 제국주의세력으로 보고 불신감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애치슨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중국 측의 경고를 단순한 위협이라고만 오판했다. 트루먼 행정부는 맥아더의 지적대로 중국의 참전을 군사력으로 막겠다는 보다 단호한 경고를 한 번도 하지 않는 안이한 태도를 보여 결국 중국의 파병을 막지 못했다. 6·25전쟁은 미국 국내에서는 트루먼 행정부와 맥아더의 대결이기도 했다. “전쟁에는 승리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굳게 믿은 맥아더는 신속한 전쟁수행을 위한 워싱턴당국의 과도한 간섭에 대한 반발을 보이면서 만주폭격, 중국대륙봉쇄, 본국으로부터의 병력증강을 주장했다. 그는 결국 트루먼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다가

저자 소개

경북 의성 출생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정치외교학부 졸업 석사 박사 
독일베를린소재 국제신문연구소(IIJ) 수료
동아일보 수습1기생 입사
사회부 정치부 기자 
동경 특파원,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 상무이사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 
문화일보사 사장 
대통령자문통일고문
고려대학교 석좌교수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수상 경력 
동아대상(논설), 서울언론인클럽 칼럼상, 위암 장지연상(신문부문), 
중앙언론문화상(신문부문), 서울시문화상(언론부문), 홍성현 언론상 특별상, 
임승준자유언론상, 인촌상(언론부문), 서울대학교 언론인대상 수상


주요저서 
《항변의계절》, 《 체험적기자론》, 《인터넷시대의 취재와 보도》, 
《한국보수세력 연구》, 《한국진보세력 연구》


 

목차

목차
머리말/ 5
제1부 시련의 3년/ 17
I. 운명의 날/ 19
① 1950년 4월 모스크바 20
1. 스탈린과 김일성 비밀회담
2. 구체적인 남침 작전계획까지 합의
3. 스탈린이 남침을 승인한 배경
②? 1950년 5월 베이징 27
1. 마오쩌둥, 스탈린에 조회
2. 북한 지원 다짐
3.‘항미원조전쟁’ 주장은 대외 선전용

③ 1950년 6월 평양 33
1. 마지막 단계의 전쟁 준비
2. 남침 명령 내용
3. 김일성의 치명적인 작전 변경

④ 1950년 6월 서울 38
1. 망국의 위기 맞은 대한민국
2. 궁지에 몰린 거짓 발표
3. 이승만 대통령의 비상조치
Ⅱ. 미국의 참전/ 23
① 심야의 워싱턴 46
1.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소집
2. 소련을 배후 세력으로 즉각 판단
3. 애치슨의 역할
4. 블레어하우스 회의

② 맥아더의 출진 60
1. 한국에 무기 긴급 공급
2. 지상군 파견 건의

③ 유엔군 파견 결의 64
1. 자진철수 권고 거부에 2차 조치
2. 당황한 스탈린
Ⅲ. 유엔군의 북진작전 71
① 미국의 롤백전략 72
1. 소련 참전 저지 노력
2. 인천상륙작전과 참전 목표 변경 시기
3.‘평화를 위한 단결’ 결의

② 중국의 개입 84
1. 미국의 중국 개입 저지 노력 실패
2. 중국의 참전 준비
3. 미·중 대결 국면으로
4. 크리스마스 공세 참패와 ‘완전히 새로운 전쟁’

③ 숨 가빴던 3주간 100
1. 풍전 등화의 대한민국
2.”한국 철수는 절대 안돼“
3. 맥아더, 합참의 승리 의지 의심
4. 트루먼, 한국 철수 불가 결정
④ 사라진 통일의 꿈 110
1. 리지웨이 장군, 남한지역 회복
2. 통일 목표 변경

Ⅳ. 세 주역들의 협력과 갈등/ 117

① 제한전쟁의 한계 118
1.‘신속 작전 완료’ 전략과 ‘제한전쟁’ 방침
2. 서울 수복 후 행정권 이양과 국무부의 견제
3. 맥아더와 합참
② 크리스마스 공세 실패의 원인과 책임 126
1. 중공군에 관한 정보 부족과 맥아더의 과오
2. 워커 장군의 이견
3. 날개 꺾인 맥아더

③ 맥아더 전략에 대한 평가 134
1. 리지웨이도 병력 증원 요구
2.‘잘못된 전쟁’ 논란

④ 상반된 세계전략 143
1. 유럽 우선주의와 아시아 중시주의
2. 인간적 상호불신
3. 끝나지 않은 논쟁
⑤ 세 주역들의 특징 157
1. 공통점과 차이점
2. 트루먼
3. 애치슨
4. 맥아더
Ⅴ. 기나긴 휴전협상/ 203

① 휴전협상의 조건들 204
1. 영국과 인도의 협상안
2. 유엔군 북진과 협상안들
3. 영국의 ‘유엔라인’ 안과 평양-원산 방어선 안
② 험난했던 휴전협상 227
1. 아슬아슬했던 13개국 그룹의 협상안 통과
2. 볼런·케넌의 활동과 미소 담판
3. 파탄이 예정된 개성 휴전회담
4. 판문점 회담의 성과
③ 한국의 휴전 반대와 설득 작업 240
1. 이승만의 휴전 조건
2. 트루먼 행정부의 상호방위조약 체결 거부
④ 부산 정치파동과 미국 정부 245
1. 이승만의 비상계엄 선포에 제동
2. 미국의 여야 타협 추진 훈령

⑤ 휴전협상과 스탈린 251
1. 애치슨의 자유송환 원칙 비망록
2. 그 동안 잘못 이해된 포로송환 문제
3. 스탈린의 회담지연 속셈
4. 애치슨의 값비싼 승리
5. 중공군 최후의 공세로 피날레
제2부 회고와 성찰/ 275
Ⅵ. 6·25전쟁의 성격/ 277
① 세계 공산혁명운동과 스탈린 278
1. 스탈린과 한반도 현상 변경 전략
2. 세계 공산혁명운동과 특수한 북중관계
3. 세계 공산혁명 운동과 국가이익
② 20세기형 십자군 전쟁 291
1. 중세 십자군 원정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2.‘내키지 않은 십자군 원정’
3. 미국의 참전과 서유럽 반응

Ⅶ.왜 6·25전쟁을 막지 못했는가/ 297
① 무방비 상태의 한국 298
1. 허술한 방어 태세
2. 한국의 공군 보유 반대
3. 맥아더, “한국군 무기는 경찰 수준”
② 미국 측의 정보 실패 307
1. 북한을 과소평가
2. 소련의 북한군 강화에도 무관심
③ 공산 측의 정보 실패 311
1. 미국의 참전 없을 것으로 오판
2. 스탈린의 착각

④ 남침 예측과 대책 부재 315
1. 남침이 기정 사실처럼 유포되어도 무대책
2. 미국의 군사예산 삭감도 한 몫
3. 맥아더도 예방조치에 무관심
Ⅷ.6·25전쟁 전 미군 철수의 배경/ 321
① 모스크바 협정 폐기 322
1. 미국에 불리한 신탁통치 방안
2. 한국문제특별위원회 보고서
3. 미국의 국가이익과 한국
4. 한국에 사실상의 트루먼 독트린 적용 추진
5. 애치슨의 한국 경제지원안 좌초
6. 유엔의 한국 총선 결의 배경
② 철군을 둘러싼 정책 혼선 350
1. 점령군 철수 시기와 정책 표류
2. 철군 시기 확정 경위
3. 철군 연기 결정의 배경
4. 이승만의 대미 공개 비판
③ 한국판 마셜계획과 유엔군 편성안 386
1. 애치슨의 응급 처방
2. 의회의 반대로 용두사미화
3. 유엔군 편성안

④ 애치슨 연설의 교훈 397
1. 미국의 태평양방어선과 한국
2. 심각한 한국의 반응
3. 애치슨 발언 평가
Ⅸ.결어/ 439
지도 목차
맥아더 라인과 신맥아더 라인/ 123
영국의 완충지대안/ 210
?주석/ 421
?참고문헌/ 464
?찾아보기/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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