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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정치사

이희환 저 | 혜안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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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4945319 / 455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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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당쟁\u003d붕당정치\u003d철학적?정치적 다른 노선의 갈등’론의 허상을 밝힌다 이 책은 조선시대 정치의 핵심이었던 붕당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선조대 동서 분당 이후 탕평책이 실시되었던 영조대까지의 약 200여 년의 정치사를 정리한 것이다. 이 기간 정치적 특징과 성격을 규명하고, 그 실상의 접근에 장애가 되었던 기존의 사림론, 붕당론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조선시대 연산군 이후 중종대까지의 짧은 기간에 집중된 사화도 정치적 파장이 컸는데, 그보다 수백 년 이상 지속된 붕당정치는 그 파장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붕당정치는 선조 초 동인과... ‘당쟁\u003d붕당정치\u003d철학적?정치적 다른 노선의 갈등’론의 허상을 밝힌다 이 책은 조선시대 정치의 핵심이었던 붕당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선조대 동서 분당 이후 탕평책이 실시되었던 영조대까지의 약 200여 년의 정치사를 정리한 것이다. 이 기간 정치적 특징과 성격을 규명하고, 그 실상의 접근에 장애가 되었던 기존의 사림론, 붕당론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조선시대 연산군 이후 중종대까지의 짧은 기간에 집중된 사화도 정치적 파장이 컸는데, 그보다 수백 년 이상 지속된 붕당정치는 그 파장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붕당정치는 선조 초 동인과 서인의 분열로 시작되었다. 그 전 사화의 폐단을 제거하려고 혁신을 꾀하던 시기에 또 다른 폐단인 동서 분당이 이루어졌고, 그 후 남인?북인?노론?소론 등으로 세분화되어 정쟁을 지속하였다. 이 정쟁에서 조정 관료는 물론 사족까지도 자신이 속한 붕당을 옹호하면서 상대 붕당을 폄하 공격하였다. 당색이 다른 인사와 관계를 끊는 것이 당인들의 최소한의 의무가 될 정도였다. 성리학적 이념을 비롯한 갖가지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은 자신과 가문의 이해관계가 더 크게 작용한 대립의 결과였다. 특히 17세기 후반 이후 그 대립을 국왕이 이용하여 왕권을 강화하기도 했고, 국왕이 이용되어 왕권이 약화되기도 했다. 국왕의 통치력 강화와 정국 안정을 위한 탕평책이 추진되기도 했다. 붕당의 갈등에 대하여 일본인들은 식민통치를 합리화?정당화하려고 민족성까지 거론하면서 확대 해석하였고 해방 후에도 그러한 인식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민중의식이 고조되면서 우리 역사 전반을 긍정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정치적 사건 하나하나에 대한 치밀한 검토보다는 긍정적인 역사 서술에 급급하여 전시대를 포괄적으로 해석하려고 했고 자연히 무리한 결론을 도출하거나 장기간의 역사를 개관하였다. 그 결과 ‘당파’를 ‘붕당’으로 변개하여 서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서술은 조선정치사를 긍정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간주되어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역사를 긍정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 흔히 붕당이란 용어가 진붕이 모인 붕과 위붕이 모인 당의 합성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자신이 속한 집단을 진붕이라 하고 자신과 적대적인 집단을 위붕이라고 하는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였다. 정치의 속성상 권력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정치 현실에서는 진붕, 위붕 자체가 있을 수 없다. 더욱이 붕당과 관련된 수많은 사료에서도 붕당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볼 수 없다. 붕당타파를 위한 탕평책이야말로 붕당의 부정적인 면을 대변한 것이다. 붕당이 좋은 것이라면 탕평책을 논의하거나 시행할 필요도 없다. 탕평책은 붕당의 파행적인 면을 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붕당 자체를 타파하려는 것이었으므로 붕당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 결과였다. 붕당과 붕당정치의 긍정적인 면이 역사학계의 통설이 되었던 원인은 물론 사료에 대한 치밀한 분석 비판이나 역사적 상식이 결여된 결과였다. 게다가 스승 및 대가의 연구에 대한 예의이자 생존방식이 되었던 침묵도 그 한 원인이었다. 당연히 비판이나 검증이 이루어질 수 없어 새로운 학설의 진입에 장벽으로 작용하였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숭모나 현양이 지나쳤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후손이 조상을 숭모하듯이 부정적인 면은 언급하지 않거나 간략히 서술하면서 긍정적인 서술에 치중하였다. 이른바 ‘문중사학’적인 면이 많았던 것이다. 어느 인물을 연구하면서 호(號)를 많이 쓰지만, 호가 자(字)나 이름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사용하는 호칭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서술하듯이 말이다. 한편 붕당정치가 긍정적인 정치 현상으로서 이해되고 있는 현실의 근저에는 ‘사림’이라는 용어도 일조했다. 흔히 사림은 경상도 향촌의 중소지주 출신으로 성리학의 원리원칙에 철저하였고, 삼사에 종사하면서 훈구의 도덕성 경제적 비리를 집중적으로 성토한 개혁계층으로 이해하였다. 그 사림이 훈구와 대립하면서 화를 당하기도 했지만 선조대에 이르러 정권을 장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이질적인 세력에 의해 집권세력이 교체된 적도 없었고, 사림의 실상도 그렇지 않다. 그처럼 사림을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이해하여 동인 서인의 분당을 비롯한 많은 붕당 주도의 정치적 사건까지 긍정적인 현상으로 이해하였다. 때문에 붕당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려고 용어의 변개까지 시도하였다.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용어의 정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각 시대가 갖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여러 특징을 도출하여 그 성격을 규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용어만 변개하여 서술한다면 견강부회의 면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사의 각 시대를 특징지어 널리 사용하고 있는 부류의 용어들을 사료와 대조해보면 그러한 면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 이희환 교수는 ‘붕당간의 대립 정치’의 표면적 요인은 이조전랑, 대사헌 등 요직 임명을 비롯하여, 권력 남용, 같은 붕당이면서도 도와주지 않았던 일, 세자 옹립, 패륜적 행위와 대명의리, 권신의 아집과 영향력, 음모정탐, 시비문제, 장희빈 남매 처벌, 상대 붕당 치죄의 강온, 차후 집권 등 수많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 분열 대립의 이면에는 항상 권력 독점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 요인 중에서도 가장 실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이해의 상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관료들에 의해 분당되었다는 점이 이해상충이 주원인이었음을 대변하고 있다. 관료 상호간에는 이해관계가 클 수밖에 없지만 재야에서는 관료들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나 명분이 약하다면 그 동조자들도 적을 수밖에 없다. 재야 유림이 당쟁에 관여했던 것도 전·현직 관료의 대립에 동조한 결과였다. 또한 집권당이 분열되었다거나, 숙종대 노소론이 동시에 민비 복위와 환국을 추진했던 것도 이해 때문이었다. 붕당 간에 사상적 학문적 차이도 없었다. 서경덕의 문인 허엽과 박순이 동서인의 종주였다. 붕당이 처음 형성될 때부터 학문적 사상적 대립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노소론의 분열도 송시열과 윤증의 학문적 사상적 대립이 아니었다. 이이 성혼의 문인이 많았던 서인이 분열하면서 이이 계열은 노론이 많았고, 성혼 계열은 소론이 많았을 뿐이다. 즉 사상적 차이가 아니라 윤증이 성혼의 외증손이었기 때문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송논쟁도 당론이나 사상적 차이가 아니라 송시열의 아집과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었다. 경전의 한 구절도 주희와 달리 해석하면 사문난적으로 몰릴 정도로 경직된 조선사회였다. 주자학 일변도의 조선사회에서 왕통 종통을 부정하는 예론을 당론으로 채택할 수도 없다. 붕당의 분열 과정에서도 사상적 차이가 없었다. 이황의 문인 중에 남인이 많았고, 서경덕 조식의 문인 중 북인이 많았지만 사상적 차이는 없었다. 학문적 사상적 차이가 아니라 붕당이 분열하면서 학연과 연결되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붕당의 분열 대립은 관료들과 그 저변을 형성했던 양반들에 의한 것이었다. 관직에서 멀어진 대부분의 양반은 물론 일반 백성과 무관한 것으로 본다. 붕당정치의 연구에서 권력 장악의 배경이나 원인과 더불어 그 영향까지 규명되어야만 그 실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정적 긍정적의 이분법적 서술은 의미가 없고 또 다른 폐해만 양산할 뿐이어서 있는 그대로 서술해야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 소개

전북대학교 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문학박사
저서로 《조선정치사》 《조선후기당쟁사》 《아토피와 성적 수맥이 좌우한다》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조야신필》 《단암만록》 등이 있다.
현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
E-mail: lheehwan@jbnu.ac.kr 

목차

목차
머리말
제1장 사림?붕당론의 실상
1. 서론
2. 조선 초 사대부 사류 사림의 용례
1) 사대부의 용례
2) 사류의 용례
3) 사림의 용례
3. 붕당?사림정치론의 재검토
1) 붕당정치론
2) 사림정치론
4. 결론?
제2장 선조대 동서 분당과 정여립 옥사
1. 서론
2. 선조대 동·서인 분열의 배경과 원인
1) 사화의 영향과 선조 초의 정국
2) 동서 분당의 원인
3. 정여립 옥사와 정철
1) 정여립 역모설의 날조 여부
2) 정철의 옥사 확대
3) 정여립 옥사의 부정적인 영향
4. 결론
제3장 광해군 이후 현종대까지의 정국
1. 서론
2. 광해군대 정국과 이이첨
1) 광해군 초의 정국
2) 광해군대의 옥사와 폐모론
3) 광해군대의 정치상황과 이이첨
3. 인조대 정치적 논쟁과 인조
1) 원종 추숭 논쟁
2) 인성군 이공의 치죄 논쟁
3) 소현세자의 죽음과 강빈옥사
4. 효종대 북벌론과 송시열
1) 효종대의 정국
2) 효종대 북벌론의 실상
5. 현종대의 예송
1) 기해예송의 발단과 전개
2) 기해예송의 정치적 파장과 송시열의 영향력
3) 갑인예송과 그 영향
6. 결론
제4장 숙종대 환국과 당쟁
1. 서 론
2. 경신환국
1) 예송 후의 남인 중심의 정국
2) 경신환국과 서인의 집권
3) 경신환국과 김석주의 역할
3. 임술고변과 서인의 분열
1) 서인 분열에 관한 제설의 검토
2) 임술고변과 정국의 소요
3) 송시열과 윤증에 대한 시비논쟁
4. 기사환국
1) 기사환국 전의 정국 추이
2) 원자 정호와 송시열의 반대
3) 기사환국과 남인의 집권
4) 이이 성혼의 문묘출향과 인현왕후 민씨의 폐출
5. 갑술환국
1) 갑술환국 전 남인 중심의 정국
2) 함이완의 고변과 김인의 역고변
3) 갑술환국과 서인의 집권
6. 숙종대 후반 노소론의 대립
1) 장희빈 남매에 대한 치죄
2) 약방제조의 파출
3) 병신처분과 정유독대 및 대리청정
4) 병신처분 이후의 노론 정국
7. 결론
제5장 경종대 당쟁과 영조의 탕평책
1. 서론
2. 경종대 신축환국 및 임인옥사
1) 숙종대 세자의 대리청정
2) 경종의 즉위와 세자 책봉
3) 김일경의 상소와 신축환국
4) 목호룡의 고변과 임인옥사
3. 영조대 탕평책의 실상
1) 영조대 초반의 정국
2) 탕평책의 실시 과정
3) 영조대 후반의 정국
4. 결론
제6장 한 당인의 애환과 당쟁의 원인
1. 서론
2. 당인 이광좌의 정치활동과 그 애환
1) 숙종대 노·소론의 갈등과 이광좌
2) 대리청정의 철회와 신임옥사시 이광좌의 역할
3) 이광좌의 신임의리와 노?소론의 대립
3. 조선 후기 당쟁의 원인
1) 붕당의 분열 대립의 원인
2) 조선 후기 사회적 변화와 당쟁의 격화
4. 결론
부록|이광좌(1674~1740)의 관직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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