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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시리즈 : 대한민국 정체성 총서 [33]

이동욱 저 | 백년동안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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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061329 / 260쪽 150 x 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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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박정희를 죽이고 반드시 대남적화통일을 이룬다.” 김일성의 야욕이 빚어낸 제2의 한국전쟁 오직 명령대로만 움직이며 수많은 인명을 학살한 무장공비들 신념으로 목숨을 던지며 남파된 무장공비보?다 더 투철했던 이승복 소년의 죽음은 백제군에게 연전연패하던 신라군을 단결시킨 화랑 관창의 죽음과 겹쳐진다. 무장공비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진실을 숨김 없이 외칠 수 있었던 아홉 살 소년의 행동은 정직·용기·진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중요한 가치관이란 점을 국민들 가슴속에 남겨 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정신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 “박정희를 죽이고 반드시 대남적화통일을 이룬다.” 김일성의 야욕이 빚어낸 제2의 한국전쟁 오직 명령대로만 움직이며 수많은 인명을 학살한 무장공비들 신념으로 목숨을 던지며 남파된 무장공비보다 더 투철했던 이승복 소년의 죽음은 백제군에게 연전연패하던 신라군을 단결시킨 화랑 관창의 죽음과 겹쳐진다. 무장공비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진실을 숨김 없이 외칠 수 있었던 아홉 살 소년의 행동은 정직·용기·진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중요한 가치관이란 점을 국민들 가슴속에 남겨 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정신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 것일까. - 본문 중에서 ▶ 내용 소개 현재 이승복기념관 관장은 6급 교육공무원이며 7급 교육 공무원과 단 두 사람이 기념관의 행정과 전시 연구 업무를 수행한다. 나머지 6명은 기능직으로 시설관리를 하고 있고 청원경찰 3명이 근무함에 따라 총 11명이 이승복기념관을 지키는 중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듯한 5.18기념관과 4.3기념관에 연간 수십억 원씩 지원하면서 국가 정체성을 수호하는 기관은 1억 90만 원을 하달해 고사(枯死)시키는 현 정권을 두고 과연 대한민국의 정권이라 할 수 있을까. 이승복 어린이의 진실을 향한 투철한 희생은 한때나마 대한민국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가 공비와 맞닥뜨리기 4일 전인 1968년 12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을 단합시키기 위한 ‘국민교육헌장’을 공표했다. 별개의 두 사건이 실상 1969년 이후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시너지를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통령에 의한 국가 주도형 국민단합(국민교육헌장)이 ‘강한 국가’를 지향했고, ‘이승복 사건’은 국민들로 하여금 적극적 반공주의를 선택케 함으로써 ‘강한 사회’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연세대 류석춘 교수의 학설대로 ‘강한 국가’와 ‘강한 사회’의 상승작용이 ‘마을과 국가(새마을 운동)’ 그리고 ‘기업과 국가(산업정책)’의 관계로 결실을 맺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이승복 사건’ 이후 국민들은 비로소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을 체득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저자 소개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청구초등학교, 인천 부평중학교, 부산 금성고등학교를 거쳐 서강대학교 물리학과에 재학 중 軍에 입대했다. 수색대대, 특전사, 美2사단 등을 거쳐 7년간 복무를 마치고 육군 중사로 예편한 뒤 복학, 대학원에서는 정치학을 공부했다. 1993년부터 月刊朝鮮에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기자로 특채되어 활약하다 2001년에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겨 6년간 조사 전문가 겸 컨설턴트로 일했다. 이후 프리랜서 선거 컨설턴트로 세 번의 선거를 맡아 모두 당선시킨 바 있다. 모 그룹 회장 등 저명인사의 고스트 라이터로 회고록 집필과 각종 기고문 등을 쓰면서 TV조선의 ‘돌아온 저격수다’와 MBN, 채널Y 등에 출연해 정치평론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현재는 ‘팟빵’의 팟캐스트 <이동욱의 현대사 X파일>과 ‘청년미디어센터’를 통해 <대한민국 정체성 찾기 프로젝트>를 제작, 방영하고 있으며 젊은 지도자 육성을 위한 강연 <자유와 존재를 위한 아포리즘>을 지방 순회 중이다. 저서로는 《啓礎 方應謨 傳》(조선일보사), 《우리의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이렇게 죽어갔다》(기파랑), 《100% 한국인》(리즈앤북), 《이기는 선거와 현장조사》(한국갤럽·공저) 등 10여 권이 있다. 사격, 스키, 암벽 등반, 스쿠버 다이빙(master diver)에 익숙하며 근래에는 하모니카 연주자로도 활동 중이다.

책 속에서

p22
이처럼 국제정세와 국내정세를 피아간의 대립구도로 설정해 두면 통치자로서는 그 어떤 행위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점이 생긴다. 즉 군사독재뿐 아니라 개인숭배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다만 피아간 대립구도의 허상을 깨는 외부의 정보를 차단해야만 한다. 이후 북한은 김일성이 조성한 쇄국정책의 올가미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북한의 대남무력도발은 이런 배경의 연장선상에서 지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을 하부 당원이나 인민들은 알 도리가 없었고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마당에 그런 생각 자체가 불가능했다.

p57
그들이 단순 생환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런 대접을 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재영과 우명훈은 문책을 받지 않고 특진되자 이들의 전투 경험을 산지식으로 공유하기 위한 대대적인 강연과 철저한 지도 교육이 뒤따랐다고 한다. 이들이 124군부대로 진급해 가기 전엔 283부대에서 이미 강연과 지도를 했다. 강연은 100여 명 정도로 대원들을 집합시킨 가운데 연설을 하는 식이었고 지도 교육은 1대 1의 교육에서 전투기술을 토론과 함께 전수하는 방식이었다.

p154
누구랄 것도 없이 두 명의 공비가 전병두 씨에게 달려들어 대열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그의 손을 뒤로 돌려 포승줄로 묶었다. 8명의 청년들은 겁에 질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들에게 정치부 소대장 하나가 나서서 외쳤다.
“이 배신자를 처단하시오.”
청년들이 그 말에 나설 리 없었다. 틈이 생겼다. 그 틈에 포승을 묶었던 두 공비가 대검을 뽑아 들고는 전병두 씨의 양쪽 가슴과 배를 사정없이 찔렀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고꾸라진 전병두 씨 옆으로 붉은 피가 마른 풀 위를 빠르게 적셨다.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소대장이 나섰다. 그는 쓰러진 전 씨를 향해 소리쳤다.
“이놈은 악질분자야! 돌로 얼굴을 찍어 죽이라!”

p220
“승복이와 몇 마디 말이 더 오갔지요. 그러다가 그 공비가 ‘야, 너는 북한이 좋니, 남한이 좋니?’ 하고 물어요. 승복이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이야기한 것이겠지요. 서슴없이 ‘우리는 북한은 싫어요. 공산당은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바로 그 공비가 ‘야!’ 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승복이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순간 저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엉거주춤했는데 제 옆에 앉아 있던 공비가 개머리판으로 어깨를 찍어 내렸습니다.”

목차

목차
프롤로그 · 7
1부 김일성의 도발, 무장공비 김익풍
1장 김익풍 중위 · 12
2장 박정희와 김일성 · 18
3장 북한 체제 · 30
4장 강인덕 북한분석국 과장 · 42
5장 공화국 전투영웅의 탄생 · 50
6장 청와대 기습사건 · 60
7장 한반도의 초한지 · 81
8장 침투준비 · 86
9장 작전개시 · 98
2부 인민전쟁의 시작
1장 바다에서 · 114
2장 남조선 땅으로 · 128
3장 고수동의 비극 · 135
4장 공작과 포위 · 159
5장 다시 평양으로 · 176
3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장 승복이 가족 · 206
2장 운명의 그날 · 216
3장 특종보도 · 235
4부 이승복 정신을 지켜내지 못한 이야기
1장 대한민국의 화랑 관창 · 244
2장 국가 정체성을 지키는 기념관 현황 · 248
에필로그 · 252
후기 ·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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